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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229화 (1,229/1,497)

< 1229화 > 1229. 광명승천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2개의 흑목주를 손에 넣었다.

흑목주는 거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시작이 무척 좋았다.

문제는 출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출구를 발견하는 게 늦으면 늦을수록 나에게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동료라 할 수 있는 1분대와 합류하는 것도 힘들지.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까.'

합류 지점도 없었다. 아니, 정하지 못했다. 우리는 입마굴의 존재는 알아도 그 구조에 관한 정보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입마굴은 각자도생이다.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

‘그래도 나는 남들보다 사정이 훨씬 낫지. 천안(天眼)이 있으니까.'

[천안(天眼)을 개안합니다.]

나는 천안의 개안을 선호하는 편이 아니었다. 천안은 다 좋은데 지속적인 마나 소모가 크다. 이 세계식으로 말하자면 천안을 발동하는 동안 내공이 계속 소모되는 것이다. 당장은 아무렇지 않은 수준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부담은 커진다.

'이런 상황에선 어쩔 수 없어.'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벽을 투시한다. 투시한 벽 너머에 또 다른 벽이 보인다. 나는 더욱 눈에 힘을 주었다. 더 많은 내공이 소모된다. 투시를 이어가던 나는 고개를 저으며 천안을 해제했다.

'…젠장. 지나치게 넓잖아.'

출구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도 나를 중심으로 반경 100m 내에 무엇이 있는지 대략 파악했다.

나는 눈을 쓰다듬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천안을 무리해서 쓰면 지금처럼 눈에 부담이 쌓인다.

한참 앞으로 나아가던 나는 멈칫했다.

한 남자가 복도에 죽어 있었다. 방금 죽었다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몸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

'아까 천안을 통해 주변을 살폈을 때, 이놈은 살아 있었어. 방금 죽은 거야.'

요괴의 짓인가? 아니다. 이 근처에 요괴는 없다. 다른 사람도 없었다. 나는 복도의 벽과 바닥을 바라봤다. 벽을 공격한 흔적과 바닥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녹색 액체.

'벽과 바닥에 설치된 함정이군.'

아까 천안으로 주위를 투시할 때 특이한 구조물들이 보였다. 그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것들이 함정인 것 같았다.

'어쩔까. 이대로 다른 길로 갈까?'

함정을 피하는 것으로 날 지켜보고 있을 교관들에게 현명함을 어필할 수 있었다.

'다른 길로 가면 요괴 놈들이 있어서… 체력은 최대한 아끼고 싶군.'

함정을 돌파하기로 했다.

잠깐 천안을 사용해 함정을 훑어봤다.

'예상했던 대로 벽에서 독액을 내뿜는 구조군.'

독액을 맞으면 여기 죽어 있는 놈처럼 몸이 썩어 문드러지게 될 것이다.

앞으로 걸어갔다.

순간 철컹하는 소리와 함께 벽 일부가 열리며 동그란 금속 원통이 툭 튀어나온다. 총구와 비슷하게 생겼다. 총구에서 녹색 액체를 무자비하게 뿜어댔다. 출지에 이른 무인도 피하기 어려울 정도로 빼곡하게 뿌려댄다.

나는 내공을 끌어올리며 기막을 펼쳤다. 벽에서 쏘아지는 독액은 기막에 막혀 후두둑 떨어진다.

'아예 아무것도 몰랐다면 모를까. 이미 함정을 알고 있는데 이딴 함정에 당할 리가 없지.'

기막을 이용해 여유롭게 함정을 통과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여기가 맞는 길인지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한참 앞으로 나아가던 나는 곧 미간을 찌푸렸다.

'이 앞에 뭐가 있을지는 나도 모른다. 다시 천안을 사용할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공을 최대한 아끼고 싶었다. 그리고 천안을 사용하더라도 뒤로 돌아가 다른 길을 택하기에는 너무 많이 와버렸다.

'요괴가 있으면 죽이고, 함정이라면 아까처럼 돌파하면 돼.'

전진한다.

후웅.

몸이 붕 뜨는 감각을 느꼈다.

'결계다. 결계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경계심을 올렸다.

"123번이군요."

벽 뒤에 숨어 있던 366번 제갈모순이 모습을 드러냈다.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던 그는 나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 결계를 치고 숨어 있었나?"

"예. 결계를 이용하기 딱 좋은 곳입니다. 아, 섣불리 움직이지 마시고 제가 말하는 대로 움직이십시오. 그 앞에 함정 있습니다."

“결계를 써서 함정을 이용하는 거군."

“기존에 있는 걸 이용하는 건 효율적이지요. 앞으로 일보, 오른쪽으로 4보. 다시 앞으로 3보."

제갈모순이 말하는 대로 움직였다. 결계뿐만이 아니라 진법도 설치해둔 것 같았다. 나는 곧 그의 앞에 당도했다.

"이렇게 보니 무척 반갑군요. 123번."

"다른 이들은?"

"없습니다. 여기엔 저 혼자 있습니다. 아, 흑목주는 찾았습니다. 여기 천장 중심에 박혀 있더군요. 주위에 함정이 3개나 있어서 꽤 애를 먹었습니다."

“그래도 흑목주는 얻었군. 나도 요괴를 죽이고 흑목주를 얻었다."

"즉, 우리는 출구만 찾으면 된다는 거군요. 다행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놈이었다면 죽이고 흑목주를 빼앗았겠지만, 천유운의 측근이 될 제갈모순을 죽일 수는 없었다.

나와 제갈모순은 입마굴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다. 흑목주를 하나 더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숨겼다. 동료라고 해서 모든 걸 미주알고주알 말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나는 제갈모순을 그렇게까지 믿는 편이 아니었다.

“그렇군요."

제갈모순은 검을 뽑아 들더니 바닥에 무언가를 슥슥 그린다.

지도였다. 내가 말한 정보와 제갈모순이 직접 겪은 입마굴을 바탕으로 그리는 지도.

“저는 이곳에서 시작하여 일다경 정도 움직여서 여기 함정이 있는 방에 도착했습니다. 반면에 123번의 시작 지점은 이곳이죠."

"대충 맞는 것 같군. 근데 이런 게 의미 있나?"

"있습니다. 입마굴 바로 위에 있는 입마소 내 건물들의 위치와 비교해 보면 대략적으로나마 입마굴의 크기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제갈모순은 지도 위에 또 다른 지도를 그렸다. 입마굴 위에 있는 입마소의 지도다. 입마소는 거의 1년 동안 생활했던 곳이라 그런지 거침없이 그려 갔다. 나는 제갈모순의 그림 실력에 감탄했다. 미래에 천유운의 최측근이 되는 만큼 재주가 많은놈이었다.

"저는 여기서 시작했습니다."

"나는 저기서 시작했다. 바닥에 생긴 구멍을 통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통로가 상당히 경사져 있더군."

"덕분에 편하게 내려왔지요. 깊이는 대략 5장에서 7장 사이로 파악됩니다. 그러니까…."

그는 입마굴의 지도에 커다란 테두리를 그린다.

"입마소의 크기와 대조한다면 입마굴의 크기는 이 정도겠지요. 출구로 생각되는 곳은 가장자리에 있는 이곳입니다. 우리는 제가 왔던 쪽의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그렇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서 제갈모순의 말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왜 가장자리에 출구가 있다고 확신하는 거지? 어떻게 입마굴의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거지?

이유를 들어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입 닥치고 있기로 했다.

슥슥.

제갈모순은 계속 검을 움직이며 지도를 그려 갔다.

"뭐하는 거지? 결론은 나지 않았나?"

"이곳에 올 다음 사람을 위해서입니다. 일부러 거짓 정보를 넣어둬서 그에게 혼란을 줄 생각입니다."

지도 작성이 끝났다. 그는 결계와 진법을 위해 땅에 박아두었던 강철 막대기들을 회수하고 내게 말했다.

"가시죠, 123번. 저희 둘이 힘을 합치면 빠르게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제갈모순과 함께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는 제갈모순이 쓸만하다고 판단했었으나, 그 판단을 철회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123번. 검은 발판은 밟지 마십시오. 밟는 순간 함정이 발동할 겁니다."

"아까는 붉은 발판을 밟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그건 계산 실수입니다. 처음 보는 함정이니 계산 착오가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나는 검은 발판의 옆에 있는 하얀 발판을 밟았다. 발판이 아래로 쑤욱 들어가며 천장에서 얼음송곳이 떨어진다. 긴장하고있던 나는 바로 뒤로 물러나 함정을 피했다.

"음. 발판의 색이 아니라 배열이 중요한 것 같군요."

“이 빌어먹을 새끼가. 솔직하게 말해라. 함정을 이용해 날 죽일 생각이냐?!"

“실수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이 정도로 죽을 리 없지 않습니까. 전 123번을 믿고 있습니다."

"내가 네놈을 못 믿겠다. 네가 앞으로 나서라."

"농담도 잘하시는군요. 전 123번보다 신체능력이 떨어집니다. 무술 실력은 말할 것도 없지요. 어떻게 봐도 123번이 앞장서서 가는 게 합리적입니다."

"술법을 사용해라! 술법을! 기껏 술법을 익혔으면서 왜 쓰지 않는 거냐?!"

“이 상황에서 어떤 술법을 사용하라는 겁니까?"

“함정을 파악하는 술법을 써라! 하다못해 허공을 날 수 있는 술법을 쓴다면…! 이런 발판 함정 따윈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수 있지 않나!!"

"허. 말은 참 쉽게 하시군요."

제갈모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술법은 만능이 아닙니다. 술법에도 계열이 있고 상성이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강시술. 시체와 제물을 통한 술법 발동이 특기지요. 술법으로 함정을 미리 알아낸다? 그건 탐색 계열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전 탐색 계열에 대해 잘 모릅니다. 허공을날아서 이동하는 술법? 그 술법을 발동하려면 술식을 계산해야 합니다. 정교한 술식 제어는 필수지요."

"넌 술법으로 유명한 제갈세가 출신이잖나!"

그가 불쾌하다는 듯이 날 노려봤다.

"제갈의 피를 이었다고 해서 모든 술법에 능통한 것은 아닙니다."

"내가 아는 술법사는 따지지 않고 다 하더군."

미령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녀는 술법이라면 어떤 것이든 따지지 않고 쉽게 해냈다. 술법을 이용해 집을 짓거나, 술법으로 대량의 물을 소환하거나, 결계는 물론이고 금제까지 걸 줄 알았다. 심지어 술법으로 요리까지 한다.

미령을 보고 있자면 술법은 못 하는 게 없는 만능에 가까웠다.

"대단한 술법가를 알고 계시는 모양이군요. 어쨌든 저는 못 하는 것들입니다."

"젠장. 그냥 막 달리는 편이 훨씬 낫겠군."

"123번.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는 말을 아십니까? 체력을 아낄 필요가 있습니다."

"몸이 나쁘면 머리가 고생한다는 말도 있지. 시간은 금이다. 이딴 함정에 시간을 소모해야겠나?"

“시간은 금이다. 음.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무슨 일이든 확실하게 하는 편이 좋습니다. 그리고 이 함정의 배열은 이제 완벽하게 파악했습니다. 제가 말하는 대로 발판을 밟으십시오. 흑흑백흑백 순서입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내 방식대로 함정을 돌파한다."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진짜 그럴 일 없었다. 나와 제갈모순은 안전하게 함정을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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