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6화 > 1226. 광명승천도
선해도와 추저는 심각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병살단주의 연락이 끊어졌다는 말이 사실입니까?”
“어제저녁에 믿을 수 있는 무인을 병살단의 본거지로 보냈네. 오늘 아침에 돌아왔지. 병살단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더군.”
“…병살단이 습격당한 겁니까?”
“그런 게 아닐세. 병살단은 재산을 가지고 사라졌네. 전투의 흔적은 없었고.”
“…병살단이 잠적한 겁니까? 의뢰를 포기하고?”
“그건 아닐 걸세. 내가 거기 병살단주를 잘 아는 편인데… 그는 야심이 가득하네. 여기서 멈출 놈이 아니네.”
“그럼… 설마 놈이…?!”
“그건 조금 보기 힘들군. 그는 조심성이 많네. 직접 움직일 때는 혼자 움직이지 않지. 그놈이 혼자서 병살문의 살수들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 보나? 다른 누군가가 개입한 것이네.”
“……천마신교군요. 천마신교 밖에 없습니다.”
“그래. 천마신교 밖에 없네. 그리고 천마신교가 직접 움직였다는 건….”
“우리에게 주어진 여유시간도 얼마 없다는 뜻이군요.”
“그렇네. 나는 놈이 고통받기를 원했지만… 오늘 안에 처리해야 할 것 같네. 정오 무렵에 놈을 광장으로 불러낼 것이네. 그 이후는… 자네에게 달렸지. 할 수 있겠나?”
“놈의 목숨을 확실하게 끊어버리겠습니다.”
“믿음직스럽군. 자, 움직일세. 놈이 비열한 수를 쓸 수 있으니 광장에 몰래 진법을 설치해두겠네. 소소하지만 자네에게 도움이 될 거야.”
“감사합니다, 가주.”
그때였다.
거대한 폭음과 함께 땅과 건물이 흔들렸다. 지진이라 하기엔 폭발음이 신경 쓰였다.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어 밖을 바라봤다.
선해도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선가장의 별채 중 하나가 반쯤 무너져 불타고 있었다.
“끄아아아아아악!”
“내 팔이!!”
“무인들은 사람을 먼저 구해라! 나머지는 불을 끌 물을 가져와라!!”
“이건 습격이다! 정찰 부터해라!”
사람들의 비명과 하늘 높이 올라가는 검은 연기. 선가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콰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앙!
폭발이 계속 일어난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이건 습격이었다.
“이런 미친! 이건 벽력탄이다! 천마신교가 벽력탄을 사용해 습격한 건가?!”
선해도가 주먹으로 창틀을 내려쳤다.
콰아아아앙!
선해도가 있던 본채에서도 폭발이 일어났다.
“크으으윽…!”
분노에 잠겨 있던 선해도의 반응이 조금 늦었다. 그는 등에 화상을 입은 채로 창밖으로 튀어 나갔다.
“아아아악!”
추저가 벽을 부수며 밖으로 나왔다. 그의 왼팔은 폭발에 휘말려 사라진 상태였다.
선해도는 서둘러 추저에게 다가갔다. 그는 어설픈 실력으로 추저의 왼쪽 어깨에 점혈을 짚었다.
•••
콰아아아앙! 콰아아앙!
벽력탄 터지는 소리에 몸을 떨었다.
개 같은 선가장이 부서지는 꼴을 보니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덩실덩실덩실.
나도 모르게 어깨춤을 추고 있었다. 그 만큼 내 기분이 좋다는 뜻이었다. 물론 섹스할 때보다는 못하다.
나는 선가장에 있었다. 일루시터로 모습을 감추고 벽력탄에 의해 부서지는 선가장을 특등성에서 지켜봤다.
꾸욱.
오른손에 쥔 버튼을 누른다. 땅에 대충 묻어둔 8번째 벽력탄이 터진다. 그 주위를 뛰어가던 무인들의 몸이 하늘로 솟구쳤다. 그들은 벽력탄의 화력을 견디다 못해 떨어진 도자기처럼 부서졌다. 팔과 다리가 찢어지고, 하늘로 치솟은 몸통이 피와 내장을 흩뿌린다. 절망적인 광경이었다.
‘9번째 폭발!’
콰아아아아앙!
연못에 넣어둔 벽력탄이 폭발했다. 물기둥이 생기고 잉어가 바닥에 떨어져 죽었다.
본래 벽력탄은 이렇게 원격으로 폭발시키지 못한다. 벽력탄은 수류탄과 닮은 물건이었다.
‘하지만 이 세계에는 술법이 존재하지.’
삼정의 술법사인 미령의 도움을 받아 벽력탄을 원격으로 폭발시킬 수 있었다.
‘15번까지 연속 폭발이다!’
폭발이 연달아 일어난다. 불길이 선가장을 뒤덮고, 검은 연기가 하늘을 가린다. 선가장의 자랑스러운 무인들은 시체 조각이 되어 후두둑 떨어진다.
나는 계속 설치해둔 벽력탄을 터트리며 앞으로 걸어갔다. 곧 선해도를 발견했다. 그는 추저와 같이 있었다. 일루시터를 해제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선해도. 이렇게 보니 반갑군. 안녕하나?”
“네놈…! 염구석!!”
“네놈의 짓이냐!!”
추저와 선해도가 소리치며 검을 뽑아 들어 나를 겨누었다. 벽력탄에 습격 당한 그들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특히 추저는 왼팔을 잃은 상태다. 일이 생각보다 더 잘 풀린 것이다.
“네이놈!! 벽력탄을 사용하다니 제정신이냐!! 강호의 법도가 두렵지 않느냐!! 이 일로 천마신교 또한 강호의 비난을 피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벽력탄?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군. 나는 벽력탄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발뺌하느냐!! 벽력탄을 사용할 놈은 네놈밖에 없거늘!!”
“심증만으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붙이지 마라. 날 범인으로 몰고 싶으면 증거를 내밀어라. 증거를. 난 선가장이 불타는 걸 보고 찾아왔을 뿐이다. 선가장에 숨어 있는 추저를 죽일 최적의 기회라 여겼지. 그리고 상황은 보다시피 내 예상대로다. 크크.”
“염구석…!! 네놈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을 후회할 것이다. 널 여기서 죽이고, 천의맹의 힘을 빌려서라도 천마신교에 이 일을 따지겠다!!”
나는 히죽 웃으며 손에 쥐고 있는 버튼을 꾹 눌렀다.
콰아아아앙!
선가장 뒷문에 설치된 벽력탄이 터진다.
“선해도. 내가 저번에 말했을 터다. 나중에 다시 찾아와 선가장을 주춧돌 하나 남기지 않고 없애 버리겠다고. 나는 어지간한 약속은 지키는 편이다. 또한 네놈의 아내를 범해 죽이고, 작식을 찢어 죽이며, 식속들을 불태워 죽일 거라 했지. 근데 말이다. 네놈의 아내는 늙어빠졌더군. 내가 범하기에는 너무 늙었다. 거기에 딸은 없고 아들은 셋이지. 그래서 그냥 죽이기로 했다.”
나는 검지로 별채를 하나 가리켰다. 본채 옆에 딱 붙어 있는 별채였다. 그곳이 선해도의 가족이 생활하는 집이었다.
꾹, 꾹, 꾹, 꾹.
버튼을 빠르게 4번 눌렀다.
별채에 설치해두었던 4개의 벽력탄이 동시에 폭발했다. 벽력탄 하나만 있어도 객잔하나를 없애버릴 수 있다. 헌데 벽력탄이 무려 4개다.
“크크크! 네 아내랑 자식 놈들이 죽어버렸군!”
선해도의 얼굴이 한순간 멍해졌다. 그러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외쳤다.
“이 개자식이!!!!”
선해도가 검을 휘둘렀다. 바람과 함께 검기가 날아온다. 나는 옆으로 피하며 칼을 뒤로 휘둘렀다.
“커억!”
내 뒤로 몰래 접근하던 추저의 가슴팍에 칼이 박혔다. 놈이 비틀거린다. 나는 자비 없이 놈의 목을 베었다.
“추저, 난 뒤에도 눈이 있다.”
천안(天眼)은 조용히 움직이는 추저를 행동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내게 분노를 토해내던 선해도의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놈이 분노하던 것은 내 시선을 끌기 위한 연기였다. 선해도는 차분하게 검을 들었다. 나 또한 칼을 들어 선해도를 겨눴다.
원래라면 싸우지 않는다. 선해도는 오기 2단이고, 나는 현재 출지 2단이다. 그 차이는 명백했다. 아마 놈이 전력을 다한다면 나는 10합도 버티지 못하고 죽으리라.
‘놈이 만전인 상태에서는 그렇지. 놈은 벽력탄에 당했다. 등가죽에 화상을 입었고, 검 끝이 떨리는 걸 보면 어깨도 정상이 아니다. 금제를 풀지 않아도 내가 이길 가능성은 있다.’
나는 천마신공의 마기를 끌어 올렸다.
“크크. 역시 그렇군. 네놈은 아내나 자식에게 아무 관심도 없었군. 평판 때문에 늙은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있었나?”
“내가 위선자라고 욕이라도 할 생각이냐?”
“아니. 예상대로라서 웃음이 나왔을 뿐이다. 하여간 선협 세계는 이렇다니까.”
“……처와 자식의 복수는 할 것이다. 네놈을 죽이고 죽은 처와 자식들의 장례를 치른 뒤에, 다시 선가장을 일으켜 세우겠다…!”
그가 땅을 박차며 내게 쇄도했다.
학려선검(鶴麗先劍) 선해도.
그의 검은 학처럼 고고하고, 사슴처럼 우아하다고 한다.
그러나 내 눈앞에 있는 선해도의 검술에는 고고함도, 우아함도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놈의 검에서 느껴지는 것은 날카로운 살기와 화산 같은 분노뿐이다.
카앙!
놈의 검과 내 칼이 교차한다. 힘에서 밀려나는 건 내 쪽이었다. 나는 뒷걸음질을 치면서 선해도의 공격을 받아냈다.
“겨우 출지에 불과한 실력으로 잘도 받아내는군!”
내가 평범한 출지 2단의 무인이었다면, 내 패배로 결판이 났을 것이다.
“자신을 위해 날 추켜세우지 마라. 내가 네놈의 검을 어렵지않게 받아내는 이유는… 네놈의 검이 약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그리 지껄일 수 있는지 보겠다. 날 실망시키지 마라…!”
선해도가 근엄한 표정을 짓는다.
‘…필살기 같은 비장의 한 수가 날아오는 거냐?’
날아오긴 날아왔다.
흙더미가.
‘이 새끼. 흙을 발로 찼군.’
눈에 흙이 들어갔다.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걸렸군.”
선해도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놈의 검에서 검강이 번뜩이며 나를 노린다. 어떻게 아냐고? 나는 지금까지 계속 천안(天眼)을 사용 중이었다.
‘찰나.’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뒤로 물러서며 선해도의 검을 피한다.
완벽하게 피했다. 허나 내 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옆구리까지. 사선으로 베였다.
‘이 새끼 존나 골때리는군. 검강의 끝부분이 투명해서 보이지 않잖아. 오기의 고수면서 이딴 잔재주를 부리다니.’
집중해서 본 끝에 겨우 알아차릴 수 있었다.
“피했나. 운이 좋군. 하지만 그것도 시간문제다. 아직 눈을 뜨지 못한 네놈은 죽는다.”
“죽는 건 너다.”
꾸욱.
왼손의 버튼을 눌렀다.
바닥에 숨겨둔 벽력탄이 터진다.
콰아아아앙!
‘…폭발하는 순간 기막을 아래로 둘러 폭발의 여파를 최대한 낮추고 공중으로 뛰었군.’
놈은 오기의 경지에 폼으로 올라선 게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완전히 피한 건 아니군. 오른쪽 발목은 날아갔고, 왼쪽 발목은 겨우 붙어 있는 수준. 놈에게 기동성은 없다.’
이건 내가 이겼다.
바닥에 착지한 선해도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얼굴을 굳히며 내게 검을 휘두른다.
검기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온다. 발목이 박살난 놈이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검기를 날리며 내가 죽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나는 선해도를 비웃으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검기를 모조리 피해냈다. 찰나를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빌어먹을…!”
선해도의 발악은 곧 끝났다. 검기를 날리는 짓거리는 내공을 마구잡이로 써대는 짓이다.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다.
“목숨이라도 구걸해봐라.”
“……구걸하면 살려주는 건가?”
“아니.”
나는 놈을 향해 벽력탄을 던졌다. 선해도는 자신의 발치에 굴러오는 벽력탄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나를 죽일 듯이 보며 외쳤다.
“지옥에서 네놈을 저주하겠다!!”
콰콰콰콰쾅!!
선가장은 주춧돌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임무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