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3화 > 1223. 광명승천도
“사장 나와!!!”
내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직후에 찾아온 것은 숨 막히는 고요함이었다. 비록 강호인은 아니지만, 강호와 맞닿아 있는 삶을 사는 양민들은 알아서 시선을 깔고 입을 꾹 다물었다. 내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최대한 거슬리지 않게 행동한다.
나는 고요함 속에서 눈을 번뜩이며 객잔을 둘러봤다. 천안이 벽을 투시하며 숨어 있는 놈들을 포착한다. 숙수는 주방장 구석에서 덜덜 떨고 있고, 객잔 방 안에 있는 놈들도 상황이 끝나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어젯밤에 객잔 주인을 봤다. 뚱뚱하고 코 옆에 점이 있는 중년 남자다.’
없었다.
객잔 전체를 3번이나 훑어봤는데도 객잔 주인을 발견할 수 없었다.
‘……튀었나.’
이건 확실하다. 객잔 주인은 죽은 점소이와 같은 살수였다. 일이 틀어졌다고 판단하자마자 도망쳤다.
‘주방의 숙수는 보아하니 아무 연관 없는 일반인이군.’
의자에 앉았다.
한 놈을 놓쳤다는 것에 짜증이 났지만, 화풀이로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 지금은 대낮이다. 보는 눈도 너무 많았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도중에 피 냄새가 거슬려서 시체와 어죽 그릇을 발로 차 구석으로 보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객잔 손님들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자 쥐새끼처럼 살금살금 객잔 밖으로 빠져나갔다.
콰앙!
객잔 문이 부서지며 무인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무복 가슴에 새겨진 선(先)이란 문자가 유독 밝게 느껴졌다. 우르르 들어온 무인들은 대략 20명. 그 전원이 나를 중심으로 포위하며 위압감을 내뿜었다.
“…….”
금제를 풀지 않는 이상 이대로 싸우면 내가 죽는다. 그러나 다행히도 놈들은 날 죽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뚜벅뚜벅.
뒤늦게 한 남자가 차분한 걸음으로 객잔 내로 들어왔다. 눈에 익은 얼굴이었다. 선해도. 선가장의 가주다. 그는 내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가시의 객잔에서 사람을 대놓고 죽이다니… 선가장이 그렇게 우습나?”
“…….”
“이건 천마신교의 선전포고로 받아들이면 되겠나?”
“개인적인 일이다. 죽은 놈은 점소이가 아니라 날 죽이려 한 살수였다. 시체의 품을 뒤져봐라. 독이 든 병이 있을 거다.”
선해도가 부하들을 향해 손짓했다. 그 의도를 읽어낸 부하들은 바로 점소이의 시체를 뒤적였다.
“있습니다. 독병과 비수입니다. 이놈은 살수입니다. 비수의 형태를 보니 병살단의 살수인 것 같습니다.”
“…그렇군. 이건 내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강호의 일이로군.”
선해도는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싸늘한 눈으로 날 내려다본다.
선가장의 가주인 선해도는 하가시의 치안을 지킬 의무가 있었다. 그가 이 도시의 대표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도시 내에서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를 즉결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게 강호의 일이 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강호인의 다툼으로 일반인이 휘말리면 모르겠으나, 살수는 강호인도, 일반인도 아닌 범죄자로 취급된다. 대놓고 살수를 죽여도 그건 정당방위다.
“지나가던 대협. 자네인가?”
“느닷없이 찾아와서 영문 모를 소리를 지껄이는군.”
“골목길에서 시체들이 발견되었다. 골목길에서 놀던 왈패들이 무참히 학살당했지. 그들이 죽은 시각을 추정해보니 자네가 선가장을 나선 시간과 겹치더군. 골목길의 위치도 선가장과 가깝지.”
“내가 그놈들을 죽였다고?”
“아닌가?”
“증거는?”
“…….”
“하다못해 목격자는?”
“…….”
“아무것도 없다는 거군. 확실하지 않은 일로 피곤하게 굴지 마라.”
선해도의 얼굴이 한순간 와락 일그러졌다가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변검을 보는 듯한 표정 변화였다.
“……자네는 운이 꽤 좋은 편이군.”
“내가 운이 좋긴 하지.”
“그 운이 끝까지 이어지기를 기원하겠네.”
선해도는 부하들과 함께 객잔 밖으로 나갔다. 그의 부하들이 모여든 양민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선해도가 왜 직접 온 거지? 부하들만 보내도 충분했을 거야. 날 죽이러 왔나?’
그건 아닐 것이다. 천마신교의 눈치가 보이니 대놓고 날 죽이지 못한다.
‘이 사건을 트집으로 날 구속하는 게 목적이었나? …아니. 놈은 그런 것치고 아무것도 안 하고 돌아갔어. 날 쏘아본 게 전부지. ……쏘아봤다?’
선해도의 목적을 알았다.
그는 내가 멀쩡한지 직접 알아보러 온 것이다.
‘어젯밤 살수를 고용한 건 놈일 테니까. 내가 살아있다는 걸 알고 얼마나 멀쩡한지 보러온 거야. 내가 다쳤으면 아마도 잔뜩 비웃고 돌아갔겠지.’
쯧.
혀를 찼다.
선해도는 오기의 경지를 밟고 있는 무인이다. 그 눈썰미는 달인 이상의 것. 내 오른팔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님을 알아차렸을 것이 분명하다.
‘…내가 초조해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오른팔의 상태로 놈에게 미끼를 던지려 했으니까.’
나는 추저에 대한 정보를 모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정오 무렵에 선가장으로 향했다.
잔뜩 긴장한 문지기들이 날 노려본다.
단전에서 내공을 끌어올린다. 내공은 위로 올라와 폐에 가득 모였다. 나는 드래곤이 브레스를 토하듯 내공을 뱉으며 외쳤다.
“천마신교에서 섬전도 염구석이 왔다! 선가장의 식객! 천마신교의 배신자! 화우마검(火羽鬼劍) 추저! 네놈에게 비무를 신청한다!”
“…….”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문지기들은 미리 지시받은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외쳤다.
“추저! 이 비열한 겁쟁이 놈!! 나는 네 부모를 존경한다! 내가 만약 너의 부모였다면, 너같은 역겨운 자식은 돌로 내려쳐 죽였을 것이다! 헌데 너의 부모는 네놈을 버리는 것으로 끝냈지! 오오! 어찌 이리 자비로울 수가! 나는 네놈의 부모가 부처의 환생이라 믿는다!”
“…….”
“추저! 이 더러운 배신자 놈! 내가 기필코 네놈을 죽일 것이다!”
“…….”
돌아오는 답은 여전히 없었다.
나는 선가장 정문에 침을 뱉고 몸을 돌렸다.
•••
“추저 공, 진정하게.”
선해도가 다급히 말했다.
추저는 주먹을 꽉 쥐고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맹렬한 분노의 불길이 당장 밖으로 나가 놈을 죽이라고 한다.
“가주…. 이건 제가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들어보는 폭언입니다…!”
추저는 모독에 대한 내성이 없었다.
그는 출지 2단의 무인이다. 출지의 벽을 넘은 그는 고수로서 우대받는다. 그는 고수로서 품위를 잃지 않으려 했고, 이쪽이 먼저 품위를 갖추면 상대도 대게 품위를 갖춰서 대해준다. 지금처럼 일반적으로 모독을 당했던 적은 처음이었다.
“원래 겁먹은 개가 소리 높여 짓는 법이라네. 놈이 초조해하고 있다는 증거지. 놈은 이미 우리 손바닥 안에 있으니, 그 발악에 어울려 줄 필요 없네.”
“그놈의 오른팔이 정상이 아니라고 했잖습니까. 그 정도라면 비무를 해도 제가 이길 수 있습니다.”
“그 정보는 확실하지 않네. 놈이 급하게 찾아온 걸 보면… 놈도 이길 자신이 있다는 건데… 아마 비장의 한 수가 있는 거겠지. 그리고 말일세. 나는 놈이 고통받다가 비참하게 죽기를 원하네. 추저 공, 지금은 분노를 가라앉히고 기다리게. 놈은 하가시의 광장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니.”
“후우. 가주만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병살단은 계속 이용하실 생각이십니까?”
“병살단주가 직접 움직일 걸세.”
“…단주까지 고용하셨습니까? 상당한 돈이 들었을 텐데… 대단하시군요.”
“아닐세. 놈은 객잔에서 병살단의 살수를 너무 비참히 죽여버렸네. 덕분에 하가시 전체에 어죽에 빠져 죽은 병살단의 살수의 소문이 삽시간으로 퍼지고 있지.”
“병살단의 명성에 금이 갔군요.”
“살문은 우습게 보이는 순간 끝이지. 뭐, 병살단주가 놈을 죽일 일은 없을 테니 걱정 말게. 놈을 죽이는 건 자네일세.”
“그 시간이 조금이라도 빨리 찾아오기를 바라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추저는 뿌득뿌득 이를 갈며 수련장으로 떠났다.
추저가 떠나고 몇 분 뒤, 선해도는 주먹을 내려쳐 탈자를 산산조각 냈다.
“염구석… 이 빌어먹을 새끼….”
염구석은 선가장 정문 앞에서 큰 소리로 추저를 도발했다. 염구석이 선가장을 개무시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선해도는 며칠 뒤에 비참하게 죽을 염구석을 상상하며 부글부글 끓는 속을 달랬다.
•••
“소, 소협! 죄송합니다! 루주가 소협을 기루에 들이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
“죄송합니다!!”
기루의 책임자를 필두로 흑도에 속한 남자들이 내게 허리를 90도 숙이며 말했다.
기루에 입장 거절을 당한 건 이번이 세 번째였다.
이유는 오늘 낮에 객잔에서 친 사고 때문이었다. 사고 칠 가능성이 큰 강호인을 가게에 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렸다.
선가장이 나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고, 천마신교의 감시자가 내 행보를 주목할 것이다. 어떤 명분도 없이 기루에서 깽판 치는 건 미래적으로 손해가 극심했다.
저녁이 되어 영업을 시작한 유흥 거리를 걸으며 생각했다.
‘오랜만에 창관으로 가볼까? 기루의 고급 기녀에는 못 미치겠지만… 그래도 비싼 창녀는 나름 미모가 뛰어날 테니….’
우뚝.
걸음을 멈춘 나는 내 옆을 지나치는 소년의 손목을 잡았다. 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소년의 손에는 날카로운 비수가 들려 있었다. 조금만 반응이 늦었어도 배때기가 쑤셔졌을 것이다.
“…기척은 완벽하게 숨겼다. 어떻게 알아차렸지?”
그 목소리는 외형과 같은 어린아이의 것이다. 허나 말투와 분위기에서 살벌함이 묻어 있다.
‘오늘 낮부터 천안을 유지하고 있기를 잘했군.’
나는 천안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조금 피곤하기는 한데 사수 대책으로 이것만 한 게 없었다.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내가 못 죽일 것 같나?”
소년의 손목을 으스러뜨릴 생각으로 손아귀에 힘을 준다. 허나 그 전에 소년의 손목이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기이한 감각이었다. 소년의 손목이 갑자기 연기가 되어 사라진 것 같았다.
‘찰나.’
참귀도법(斬鬼刀法) 악참(惡斬).
문답 무용으로 소년을 베었다. 소년의 몸에서 피 분수가 뿜어나오지 않았다. 대신 소년의 형상이 일그러지더니 허깨비처럼 사라진다.
-병살단이 너를 지켜보고 있다! 죽음의 공포에 빠져 두려워해라!
놈의 전음이 귓가에 남았다.
“…….”
어젯밤 살수에게 당한 오른팔에서 통증이 밀려온다. 억지로 팔을 움직인 대가였다. 슬슬 거슬렀기에 완전 회복을 사용했다.
[완전 회복을 사용합니다.]
팔이 회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알게 모르게 육체에 쌓인 피로가 사라졌다. 한결 개운해진 나는 도시 밖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