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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220화 (1,220/1,497)

< 1220화 > 1220. 광명승천도

선가장 정문을 쳐다봤다.

지금은 해가 떠 있는 대낮이라 그런지 정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열린 틈으로 내부가 엿보인다. 정원은 깨끗했고 건물은 크고 화려했다.

문은 당당히 개방되어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대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정문을 지키는 두 명의 문지기가 매서운 눈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을 무시하고 걸음을 내디딘다. 그들이 곧장 창을 치켜들어 나를 겨눴다.

내가 뒤로 빠지자 그들이 다시 본래의 부동자세로 돌아갔다. 훈련을 아주 잘 받았다.

“…….”

걸음을 내디딘다. 그들이 창을 겨눈다. 뒤로 물러난다. 그들이 창을 거둔다.

대충 8번 정도 반복했을 때였다. 문지기 중 한 명이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만! 지금 장난하는 거냐?! 용건이 있다면 말로 해라!!”

“소리 지르지 마라. 죽여버리기 전에.”

“……!”

살의를 내보인다. 압도된 그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전투 자세를 취했다. 문지기를 죽이는 건 쉽다. 어차피 문지기는 보여주기식의 말단일 뿐이니까.

‘문제는 이 안에 있는 놈들을 금제 없이 감당하기 힘들다는 거지.’

천마신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 행동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금제를 풀고 쳐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다. 그랬다간 지금까지 해 온 것들이 모두 물거품이 된다.

“나는 천마신교에서 나왔다.”

문지기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고 무기를 내렸다. 그들의 이마에 식은땀 한줄기가 뺨을 가로지른다.

“…천마신교의 무인께서 선가장에는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신교의 임무를 수행 중이다. 신교의 배반자를 척결하는 임무지. 선가장은 신교에 협조해라.”

“……저희에게 그럴 권한은 없습니다. 가주님께 보고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일다경의 시간을 주겠다. 그 후에는 억지로라도 선가장에 들어가겠다.”

문지기 한 명이 부리나케 선가장 안으로 달려갔다.

선가장은 천마신교에 협력하는 세력 중 하나다. 하가시가 천마신교 근처에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선가장은 천마신교를 무시하지 못한다. 일은 잘 풀리겠지. 목표인 추저를 죽이면 돼. 나와 실력이 비슷하니 도망치려 하려나? 도망치면 일이 귀찮아지겠군.’

기감을 퍼뜨렸다. 누군가 선가장에서 도망치는 기척이 느껴지면 바로 움직일 것이다.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안으로 들어갔던 문지기가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내게 말했다.

“가주님께서 소협을 정식으로 초대하셨습니다! 제가 접견실로 안내하겠습니다!”

일은 잘 풀렸다.

나는 당당하게 선가장의 문턱을 밟았다.

접견실에서 선가장의 가주와 마주했다. 40대로 보이는 남자였다. 깔끔하고 차분한 차림새였다. 짙은 눈썹과 턱에 난 수염. 그야말로 무협지 속의 대협 같은 이미지다.

“만나서 반갑네. 나는 선가장의 가주인 선해도라고 하네.”

학려선검(鶴麗先劍) 선해도.

선해도가 가진 별호였다.

“천마신교에서 온 섬전도(閃電刀) 염구석이다.”

“일단 앉아서 얘기하지.”

나는 그가 가리키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탁자 위에는 찻잔이 놓여 있었다. 깨끗한 녹차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내가 선가장을 찾아온 목적은 문지기에게 말했던 대로다. 추저. 천마신교의 배신자가 선가장의 식객으로 지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놈을 데려와라.”

대놓고 적의를 풀풀 풍겼다.

선해도는 내가 천마신교를 들먹였음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추저가 천마신교의 배신자라… 믿을 수 없군.”

“천마신교를 의심하는 건가?”

“아니, 오해 말게. 우리 선가장은 천마신교와 동맹을 맺고 있지. 동맹인 천마신교는 당연히 믿고 있네. 내가 믿지 못하는 건 자네야.”

“그 천마신교가 내게 임무를 내렸다. 배신자를 죽이고, 그 배신자의 머리를 가져오라는 명령이다. 선해도. 선가장이 천마신교의 동맹이라면, 지금 당장 내게 협력해라.”

“하하. 자네는 꼭 천마신교를 대표해 말하는 것 같군. 자네는 천마신교의 천마라도 되는가? …아니지. 이건 너무 불경했나. 말을 바꾸지. 자네는 천마신교의 장로라도 되는가?”

“…….”

분위기가 이상했다. 선해도는 내게 협조할 마음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일이 잘 안 풀리고 있는 것 같다.

“선가장의 식객을 쉽게 내치지 않네.”

“놈은 천마신교의 배신자라고 말했다.”

“천마신교가 문제가 아니지. 나는 자네 말을 믿을 수 없는 거지. 장로의 이름이 들어간 천마신교의 정식 협조 요청서를 가져오게. 그럼 두말 않고 협조하겠네.”

“…….”

지금 이 시점에서 천마신교로 돌아간다? 경공술로 빠르게 뛴다고 해도 최소 4일은 걸린다.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공적인 일에 공간 이동 주문서를 사용할 수도 없다. 설령 천마신교로 돌아갔다고 해서 선해도가 원하는 장로의 협조 요청서를 작성해줄 가능성은 없다.

“이맘때쯤 천마신교의 입마소에는 세 번째 시험을 진행하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군.”

“자네가 천마신교의 무인이란 걸 믿어 의심치 않네. 허나 내가 무조건 자네에게 협력해야 할 이유는 없지.”

내 임무에 천마신교의 지원은 없다. 어떻게든 내 힘으로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선가장을 설득하는 것도 내 몫이다. 추저를 죽이기 위해 선해도의 협조를 받아내는 것도 임무의 일환이었다.

“자네는 처음부터 내게 예의를 갖추고 협조를 요청했어야 했어. 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네. 예의를 갖추게. 무릎을 꿇고 내게 고개를 숙여 사과하게. 그럼 내가 자네의 요청을 고려해보겠네.”

차라리 돈으로 협조를 요청하는 편이 더 빨랐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짜증이 치솟았다. 선해도의 경지는 기껏해야 오기 2단. 놈은 나보다 약했다. 금제를 풀고 전력을 다하면 50합 내로 죽일 자신이 있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선해도는 무언가를 기대하며 두 눈을 반짝인다.

나는 탁자 위의 찾잔을 잡아 벽에 던졌다. 쨍그랑! 찻잔이 박살 나고 찻물이 벽을 타고 주르륵 흐른다. 선해도에게서 살의가 느껴졌다.

나는 입을 열어 살의와 함께 목소리를 내뱉었다. 천마신공이 꿈틀거렸다. 마기가 목소리에 담긴다.

“이 버러지 새끼야. 나중에 다시 찾아와 네놈의 쥐좆만한 선가장을 주춧돌 하나 남기지 않고 없애주마. 네놈의 아내는 범해 죽이고, 자식은 찢어 죽이고, 식솔들은 모조리 불태워 죽일 거다. 선가장이란 이름은 강호에서 영영 사라질 것이다. 네놈은 후회하며 그때를 기다리고 있어라.”

콰직!

선해도가 쥐고 있던 찻잔이 부서진다. 그는 덜덜 떨었다. 분노? 아니다. 그는 명백히 내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입술을 깨물었다. 필사적으로 두려움을 감추며 분노를 연기한다.

“…지금. 선가장을 협박하는 것이냐? 너 따위가? 내가 너를 지금 죽이더라도 천마신교는 내게 어떤 죄도 묻지 않을 것이다!”

“죽일 수 있으면 죽여보던가.”

“…….”

놈은 입을 꾹 다물었다.

내게 협조하지 않는 것과 천마신교 소속인 나를 죽이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거기에 내 당당한 태도에 뒷배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조용히 천마기를 갈무리했다. 금제를 확인한다. 금제는 풀리지 않고 멀쩡했다. 아직 딱딱하게 굳어 압도당한 선해도를 보며 천마신공의 위력을 실감한다.

밖으로 나갔다. 선해도의 무인과 마주쳤다. 그냥 지나갔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여기서 난리를 칠 순 없었다. 선가장과의 전면전은 불리했다.

‘밤에 찾아와서 추저를 암살하는 건… 힘들 것 같군. 경계도가 잔뜩 올라가 있을 테니까. 추저도 내 존재를 알아차렸을 테니 선가장에서 나오려 하지 않을 테고….’

정문 밖으로 나온 나는 뒤로 돌아 선가장을 바라봤다. 화려한 건물이 무척 성가셨다. 선해도의 협조만 받았어도 쉽게 끝날 일이 꼬이고 말았다. 살기가 일어난다.

“……!!”

문지기 두 명이 무기를 꼬나쥐고 맹렬히 노려봤다.

“뭘 봐. 눈깔아.”

“…….”

천마신공을 운용하며 으르렁거리자 문지기들이 바로 눈을 깔았다.

거리를 걷는다. 방법을 떠올리려고 머리를 굴린다. 그러나 좀처럼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치솟는 짜증이 생각을 방해한다.

골목을 지나가 낄낄거리고 있는 왈패가 보였다. 골목길에 쪼그려 앉아 뭐가 즐거운지 저들끼리 웃고 있다. 놈들은 골목길 앞에 서 있는 나를 보자마자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이건 또 뭐… 꺽!!”

말을 거는 놈을 발로 찼다.

“너희는 내 샌드백이다. 그냥 처맞아라.”

퍽! 퍽! 퍽! 퍽!

왈패들의 멱살을 잡아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힘 조절은 당연히 했다. 지금 나는 염구석이다. 쉽게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 하물며 지금 임무 중이다.

한동안 주먹질을 하던 나는 곧 손을 내렸다. 죽일 생각은 없었는데 너무 약해서 무심코 죽여버리고 말았다. 어느 정도 무공을 익힌 놈들이었는데 입식의 경지에도 이르지 못한 삼류 떨거지 놈들이었다.

‘시발. 샌드백 노릇도 못 하는 건가. 쓸모없는 새끼들.’

골목길은 이미 피투성이였다. 외진 곳이라 목격자는 보이지 않는다. 신교의 정보원도 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도 아니니 지금 일은 모를 것이다.

몰래 골목을 빠져나가려던 나는 문득 재밌는 생각이 들었다.

쓰러진 놈들의 피를 묻혀 골목 벽에 후기를 남겼다.

「샌드백이 영 별로네요.

작성자: 지나가던 대협

별점: ★☆☆☆☆

노브랜드라 그런지 패는 맛이 존나 없음.

샌드백 애미애비들에게 말한다.

샌드백 좀 제대로 만들어라, 병신 새끼들아.」

리뷰를 쓰니 기분이 조금 풀렸다.

‘후우. 이럴 땐 역시 기루에 가야겠지. 보이루에서 스트레스를 풀자.’

그리고 다음 날. 나는 떠나기 전 옆 건물을 사들여 건물 벽에 후기를 작성했다.

「명불허전 하가시 최고의 기루, 보이루.

작성자: 지나가던 대협

별점:★★★★★

(본 후기는 광고비를 받지 않았음을 알림.)

음식의 맛은 그럭저럭임. 술은 명품을 써서 그런지 좋음. 근데 기루에서 술이나 요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음. 기루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기녀임.

기녀들이 재주가 뛰어남. 미모는 두말할 것 없이 최고고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춤. 특히 영이(零二) 춤을 만족스럽게 춤. 최상급 기녀 중 가슴은 혜월이가 으뜸임. 보지는 월향이 최고 명기임.

기녀를 부를 때 세 명 이상 부를 것을 추천함. 그래야 분위기가 안 떨어짐.

보이루는 다른 기루들보다 특실이 잘 꾸며져 있음. 근데 특실을 빌리는 것보다 배를 빌려 강에서 노는 것을 적극 추천함.

뱃놀이는 신세계임. 강물에 비치는 기녀들의 몸이 메마른 나의 감성을 자극해줌. 참고로 보이루의 최상급 기녀들은 모두 소녀경을 익혔다고 함.

추가로 점소이 새끼들은 빠릿빠릿 움직여라. 니들 때문에 별 하나 깎으려다가 혜월이 가슴이랑 월향이 보지 떠올리면서 참았다.」

훗날, 건물에 침입한 누군가로 인해 후기가 세상에 알려지며 보이루는 한층 더 유명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지나가던 대협’의 기루 평가는 대륙의 전설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남긴 후기 중 별 2개 이하는 쓰레기 기루로 취급받으며, 별 4개 이상은 최고의 기루로 칭송받았다. 별 3개는 무난한 기루였다. 그리고 ‘할가수’라는 후기 작성자가 나타나 천하를 경악에 빠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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