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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217화 (1,217/1,497)

< 1217화 > 1217. 광명승천도

보름이 지나고 우리는 천마신교로 돌아갔다. 백산성의 일을 마무리하는 건 천마신교 백산성지부의 일이었다. 거의 다 떠먹여 줬으니 어지간히도 무능하지 않은 이상 성공적으로 백산성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이번 시험의 결과는 입마소에 도착한 당일에 발표되었다.

“임무를 완수하고 가장 많은 공적을 쌓은 분대부터 발표하겠다. 1분대, 4분대, 11분대….”

입마소장 배택주가 담담히 분대를 불렀다. 그의 의견에 반하는 자들은 없었다. 특히 1분대가 가장 먼저 불렸을 때 모두가 납득했다.

1분대는 1조 중에서도 우수자들이 모인 곳이다. 다른 분대보다 훨씬 어려운 임무를 받았고, 전쟁에서 567번, 연예하의 활약이 눈부셨다.

연예하는 그 일로 인해 새로운 별호까지 얻었다.

백산마녀(白山魔女). 백산에서 하얀 검기를 뿌리며 적들을 죽인 그녀에게 붙여진 별호다. 별호에 마(魔)가 들어갔다는 건 천마신교의 일원으로서 완전히 인정받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어서 수준 미달의 분대를 발표하겠다. 15분대, 19분대, 21분대…. 이상 17개의 분대는 강등이다. 이 중 퇴소자들은 46명이다. 지금 발표하지.”

배택주가 번호를 불렀다. 그에게 불린 입소자들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들은 오늘 입마소를 나가게 된다.

천마신교를 떠나 괜찮은 문파에 입문할 수도 있고, 입마소가 아닌 다른 천마신교 부대에 들어가 신교인으로 활동할 수도 있다.

후자가 압도적으로 가능성이 컸다. 한번 천마신교의 힘을 맛봤는데 다른 어중이떠중이 문파가 눈에 들어올 리 없으니까. 그리고 입마소에서 반년을 버텼다고 하면 천마신교의 다른 부서에서 쉽게 받아주는 편이다. 어찌 보면 이것도 천마신교의 의도 중 하나다.

나는 눈동자만 움직여 주위를 둘러봤다.

‘입마소에 남은 인원은 대충 300명 정도인가.’

이제 남은 교육 기간은 반년. 입마소를 수료할 때가 오면 100명도 되지 않을 것이다.

‘원작대로라면 50명도 넘기지 않겠지만… 원작대로 흘러갈 거라고 확신할 수 없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원작의 주인공이나 비중 있는 조연이 죽지 않는 이상, 원작에 개입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대부분 원작대로 흘러가니까.

“이번 시험은 특수했다. 너희는 시험이긴 했으나 신교를 위해 일했다. 신교는 은과 원을 잊지 않는다. 성적 우수자들부터 영단을 하사하겠다. 567번, 앞으로.”

연예하가 앞으로 나갔다. 배택주는 교관에게 받은 목함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열었다.

목함 내에는 검은색 환단 하나가 들어있었다. 알싸한 향기와 함께 순수한 마기가 느껴졌다. 모두가 군침을 꿀꺽 삼켰다.

“567번을 포함한 우수자 10명에게 마정단(魔晶丹)을 하사하고, 그 외 다른 이들에겐 귀영단(鬼影丹)을 하사한다.”

마정단은 내공의 양을 늘려주고, 탁한 마기를 어느 정도 순수하게 만들어준다.

귀영단은 마정단보다 세 단계 정도 떨어지는 영단이었다. 먹으면 내공을 늘려준다.

“88번, 366번, 123번, 290번….”

배택주가 번호를 불렀다. 나를 포함한 1분대는 모두 마정단을 받았다.

나는 목함에 담긴 마정단을 보며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솔직히 말해서 내겐 별 도움은 안 되겠군.’

나는 삼정의 경지를 코앞에 두고 있다. 탄탄하지도, 높지도 않은 벽을 넘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영 쉽지 않다. 마정단 정도의 영약으로는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먹는 척하고 다른 이에게 줘야겠어. 남궁설이나 남궁린에게 주기엔 좀 그렇네. 마정단은 마공을 익힌 무인들에게 특화된 영단이니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마정단을 어떻게 쓸지 정했다.

•••

입소자들에게 일주일간의 휴식이 주어졌다.

입마소 밖으로 나갈 수 있었고, 입마소 내에서 수련을 해도 상관없었다. 대부분은 입마소 밖으로 나가 스트레스를 풀었다.

반년이 지난 지금 교관들의 감시도 느슨해졌다. 입소자들이나 교관이나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진 것이다. 지금에 와서 입마소에서 사고를 칠 놈들이 거의 없기도 했다. 수료까지 반년밖에 남지 않았다. 여기서 사고를 쳐서 성적을 깎아 먹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건 교관에게도 휴식이 주어졌고 감시가 느슨해졌다는 것이다.

나는 서문소려를 수련장 뒤편, 인적이 없는 곳으로 불러냈다.

연예하의 미모에 가려져서 그렇지, 서문소려도 어디가서 꿇리지 않는 미인이었다. 그녀는 키가 컸다. 나보다 5cm 정도 작다.

팔과 다리가 길쭉하다. 상체보다 하체가 더 길었다. 가슴은 C컵 정도로 한 손으로 쥐면 넘치는 크기다. 그녀는 가슴보다 골반이 더 발달했다.

풍성한 검은색 머리카락을 한데 묶은 말총머리를 하고있다. 허벅지 언저리까지 내려오는 길이다.

얼굴은 깔끔했다. 피부는 깨끗한 하얀색이고 이목구비는 뚜렷했다. 앞머리는 8대2 가르마를 타서 이마를 시원스레 드러냈다. 그녀는 이마가 매력적인 여자였다.

“123번. 중요한 말이란 게 뭐죠?”

내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자 서문소려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목소리에는 약간의 날카로움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지저분하지 않고 깨끗했다. 뉴스 아나운서를 하면 잘 어울릴 것 같다.

“제안할 게 하나 있다.”

“제안이요? 들어보죠.”

“290번. 네가 다소 불쾌해할 수도 있는 제안이다. 미리 말하지. 네가 내 제안을 거절한다면, 나는 그대로 물러나 이번 일을 잊을 것이다.”

“네. 말하세요.”

서문소려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얼핏 보면 연예하같은 여자라고 착각할 수 있으나, 원작을 알고 있는 나는 그녀가 뜨거운 여자라는 걸 알고 있다. 마교보다는 정파에 어울리는 여걸이다.

서문소려가 천마신교에 입교한 이유는 자신이 여자라는 점과 뿌리가 되는 문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은거 기인으로부터 무공을 하사받았다. 무공만을 하사받았다. 그것도 마공을.

“너를 안고 싶다.”

서문소려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진다.

“…당신이 술과 여자를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선을 넘는군요.”

서문소려의 주위로 바람이 일었다. 내공을 급격히 끌어올리며 발생한 바람이다. 나는 맞대응하지 않았다. 여기서 내가 내공을 사용한다? 그건 서로 죽이자는 뜻이었다.

대신 품에서 두 개의 목함을 꺼냈다.

“물론 그냥 하는 말은 아니다. 대가는 준비했다.”

목함을 연다.

두 개의 영단이 존재감을 내뿜었다.

하나는 지성단(智城丹). 출지의 경지를 코앞에 둔 서문소려에겐 지금 가장 필요한 영단이다.

다른 하나는 어제 받은 마정단이다.

서문소려가 숨을 삼켰다. 놀라운 물건들에 그녀의 기세가 한풀 꺾인다.

“…123번. 제정신인가요? 지성단과 마정단이라니…. 그것들을 팔기만 해도 기루 몇 개는 사고도 남을 거예요.”

“하지만 기루에는 네가 없지 않나. 나는 너를 안고 싶다.”

“……하, 어이가 없군요.”

그렇겠지. 여자 한 명 안고자 지성단과 마정단을 주는 미친놈은 이 세상에 없을 테니까. 특히 마정단의 경우 마공을 익힌 무인들에겐 보물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보물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이미 마정단을 받은 그녀지만, 탐욕이 일어날 것이다. 그 증거로 지금 그녀는 진지하게 내 제안을 생각하고 있다.

한 달 전의 서문소려였다면 이 제안은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서문소려에겐 다르다. 그녀는 지금 힘을 갈망하고 있다.

‘백산 전쟁에서 연예하의 활약을 보고 자극받은 거지. 그날 이후부터 서문소려는 밤마다 수련에 힘쓰고 있으니까. 지금 같은 휴식 시기에 입마소 밖으로 나가지 않은 이유도 수련을 위해서지.’

지금 그녀가 내 제안을 받아들일 확률은 약 70% 정도다. 그녀는 연예하와 달리 배경이 없다. 굳이 정조를 지켜야 할 이유가 없었다.

“…마정단을 거는 이유가 궁금하군요. 그걸 먹어야 당신도 강해질 수 있을 텐데요? 더군다나 당신은 흡성대법까지 익혔잖아요. 마기를 순수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 텐데요.”

“내 걱정을 해주는 건가?”

“이해가 안 돼서 물어보는 것뿐이에요.”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흡성대법과 상성이 좋다. 내가 흡성대법을 운용하는 방식을 보고 있던 교관들이 놀랄 정도였지. 그리고 나는 마정단이 반드시 있어야 할 정도로 약하지 않다. 나는 그 이상으로 너를 원한다.”

“……진심이신가요?”

“지금 여기서 이것들을 줄 수 있다.”

“제가 영단들을 받고 당신을 모른 척하면 어쩌려고요?”

“내가 아는 너는 그런 여자가 아니다.”

“…멍청하시네요. 당신이 저에 대해 뭘 안다고…. 하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긴 하군요.”

“그럼 내 제안을 받아들이는 건가?”

“……”

서문소려는 탐욕어린 눈으로 마정단과 지성단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녀는 탐욕을 끊어내듯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겨우 영단 두 개에 제 인생을 팔기에는 제가 너무 아깝군요. 제 가치는 그 이상이에요.”

“동의한다. 대신 조건을 바꾸지. 한 달. 30일 동안 내 여자가 되어라.”

“……무슨 목적이시죠?”

“불만인가?”

“그럴 리가요. 제겐 좋은 조건이에요. 오히려 너무 좋아서 의심스러울 정도로.”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나는 30일 안에 너를 함락시키고 내 여자로 만들 자신이 있다.”

“…….”

서문소려의 표정이 잠깐 멍해졌다. 그러다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피식 웃는다.

“123번. 당신이 이렇게 재밌는 인간인 줄 몰랐네요.”

“칭찬으로 알겠다. 그래서 내 제안은 받아들일 건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목함을 건넸다.

“아까 말했던 대로 하지. 내일 이 장소에서, 같은 시간에 대답을 기다리겠다. 거절하겠다면 영단을 내게 돌려다오.”

“…정말 영단을 제게 맡기다니… 당신은 절 믿고 있군요.”

“믿는다고 말했잖나.”

“……내일 반드시 대답을 들려드리죠.”

미련 없이 돌아섰다. 그녀에게 질척거려봤자 역효과만 나올 뿐이었다.

서문소려는 분명 내일 나올 것이다.

•••

방으로 돌아온 서문소려는 3개의 영단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바라봤다.

마정단 2개. 지성단 1개.

입식(入式) 10단의 경지인 그녀에게 지성단은 가장 필요한 영단이었다. 지성단을 이용하면 출지(出志)의 경지에 오를 확률이 올라가고 주화입마 같은 만일의 사태를 막을 수 있어 안전하다.

출지.

기운을 외부로 발산하고, 기운에 자신의 뜻을 담는 경지.

사람들은 출지의 경지에 닿은 무인을 고수라 부른다.

서문소려는 무심코 지성단을 향해 손을 뻗었다가 멈칫했다.

‘…지성단을 먹는다면… 나는 창녀가 되는 거야. 돈이 아니라 영단에 몸을 판 창녀.’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몸은 팔지 않았다. 자신의 정조를 노리는 놈들은 많았으나, 맞서 싸우거나 도망치면서 정조를 지켜냈다.

‘안 돼. 여기에서 무너질 수 없어.’

마음속으로 안 된다고 외쳤으나, 허공에 멈춰 있는 손을 거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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