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216화 (1,216/1,497)

< 1216화 > 1216. 광명승천도

“…이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지금 삶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부문주. 그건 네 생각일 뿐이다. 주위를 둘러봐라.”

부문주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본다.

부문주처럼 내게 반발하며 흥분하는 문파원은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4~5명이 전부다. 나머지는 부문주의 시선을 피해 눈을 내리깔았다.

흑도 문파.

말이 좋아 문파지 실제로는 깡패에 가깝다. 어느 정도 실력이 있고, 직위가 있는 놈들은 살만하다. 부문주처럼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 그러나 일반 문파원들의 삶은 그리 좋지 않았다.

제대로 된 무공을 배우는 것도 아니고, 다른 문파와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가장 먼저 죽어 나간다. 그렇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것도 아니다. 어찌어찌 살아남는다고 해도 그 이후는?

흑도 문파는 기본적으로 힘을 쓰는 놈들이 모인 곳이다. 늙으면 떠나야 한다. 괜히 억지로 붙어 있어봤자 죽을 뿐이다.

모아둔 돈? 버는 돈은 족족 술이나 기녀를 사는데 써버리는데 그딴 게 있을 리가.

농사일을 하면 된다? 농부도 경력직이다. 농사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놈들이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설령 하더라도 힘들고 지루해서 그만두는 놈들이 대다수다.

“도양문에 남아 있는 모든 재산을 너희들에게 나눠주마. 적지 않은 돈이다. 5년은 일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다. 그 돈으로 무관에 들어가 무공을 배우든, 땅을 구해 농사를 짓든, 가게를 차리든 상관하지 않겠다.”

문파원들이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그 정도의 큰돈을 쉽게 만져보지 못하니까.

다만 부문주는 달랐다.

“돈으로 우리의 의리를 흔들지 마십시오! 도양문은 우리의 역사입니다!”

“의리. 그래. 항상 의리가 문제지.”

부문주의 멱살을 확 낚아챘다. 발로 부문주의 종아리를 걷어차 부러뜨리고, 주먹으로 부문주의 어깨를 내려찍어 박살 냈다.

“끄아아아아악! 무, 문주님!!”

“부문주. 지금부터 그 잘난 의리를 시험해보겠다. 네가 말한 의리가 진정 존재한다면, 문주의 자리를 네게 넘겨주지.”

“헉, 허억, 다, 다리가…!”

“다리 좀 부러졌다고 징징거리지 마라. 짜증 나서 죽여버릴 뻔했잖나.”

“…….”

내 목소리에서 살의를 느낀 부문주가 입을 꾹 다물었다. 겁에 질린 눈동자가 애처로울 지경이다.

“보시다시피 부문주가 내 손에 잡혔다. 나는 부문주를 죽일 생각이다. 부문주를 구하고 싶으면 앞으로 나서라. 단, 부문주를 대신해 죽을 각오가 있는 놈만. 그 잘난 의리를 내게 보여준다면 부문주는 살려주마.”

매서운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문파원들은 내 눈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평소 부문주와 함께 지내며 수족을 자처하는 놈들도 쥐 죽은 듯 가만히 있었다.

“부문주. 네가 말하는 의리는 이곳에 없는 것 같군.”

“무, 문주님. 잘못했습니다…! 제가 잠깐 정신이 나갔었습니다. 문주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부, 부디 한 번만 더 기회를…!”

“기회는 이미 줬다.”

주먹을 쥐었다. 부문주는 일반인에 가까워서 굳이 칼을 뽑을 필요가 없다. 이놈은 무공 없이 정치와 수완만으로 부문주의 위치에 오른 놈이었다. 도양문이 나름 돈을 만지는 건 부문주의 두뇌 덕분이었다.

“도저히 못 봐주겠군.”

문파원들 사이에서 전 도양문주였던 은태망이 앞으로 나섰다. 거대한 참마도와 검은색 갑옷을 몸에 무장한 상태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놈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가만히 있어라.”

“그럴 수는 없지. 다른 놈들은 몰라도 부문주는 내게 필요하다. 부문주의 두뇌가 있다면… 도양문은 이 위기를 겪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것이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오늘부로 도양문은 해체한다.”

“하하하! 세상일이 네 마음대로 될 듯싶으냐!”

“…….”

나는 은태망을 무시하고 주먹을 휘두르려고 했다. 일단 부문주부터 죽이고 은태망을 죽일 생각이었다.

방해가 들어왔다. 은태망의 뛰어와 내게 참마도를 휘두른다. 나는 백스텝을 밟으면서 부문주를 앞으로 내밀었다.

“허어억!”

거대한 참마도가 부문주의 코앞에서 멈췄다. 부문주가 기겁하며 바들바들 떨었다.

타타타탓!

수련장 밖에서 복면을 쓰고 손에 검을 쥔 놈들이 달려와 나를 포위한다.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니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다. 무공을 배우고 훈련을 받은 태가 났다.

‘뻔하지. 백산금가겠지.’

은태망이 백산금가에 도움을 청한 것이다. 안 그래도 저번 백산 전쟁으로 인해 백산성에서의 영향력을 잃어버린 백산금가다. 도양문의 힘이 아쉽겠지.

“하하하. 형세 역전이군! 좋은 말로 할 때 부문주를 내려놓아라! 그리고 오인단을 내게 넘겨라! 그럼 고문 없이 깔끔하게 죽여주마!”

“지랄이 좀 심하군.”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단숨에 부문주의 목을 쳤다. 부문주의 머리가 허공에 떠오른다.

은태망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 빌어먹을 놈이! 당장 놈을 죽여!!”

나를 포위한 놈들이 일제히 달려든다. 나는 복부와 무릎에 힘을 주며 하늘로 뛰어올랐다. 내공의 힘은 대단했다. 나는 단숨에 5m 높이로 뛰어올랐다.

은태망이 입술을 곱씹으며 나를 노려본다. 내가 내려가는 순간 바로 공격할 속셈이다.

발바닥 쪽으로 내공을 방출했다. 단순 무식한 내공 사용에 발바닥에 있는 용천혈이 터진 듯했지만, 공중에서 방향을 틀어 은태망을 쇄도하는 것에 성공했다.

은태망이 참마도를 치켜들며 반격의 자세를 취한다. 느리다. 그리고 어딘가 어설프다.

‘이놈. 아직 비무때 입은 상처가 낫지 않았군.’

은태망이 참마도를 휘두르는 순간에 맞춰 찰나를 사용했다. 느려진 시야를 통해 은태망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보였다. 내 칼과 은태망의 참마도가 부딪친다. 불리한 건 나다. 은태망과 달리 내 발은 아직 땅에 내려서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나는 은태망을 전부 파악하고 있다. 알고 있다면 이용할 수 있다.

은태망의 힘을 역이용한다. 놈의 참마도에서 오는 충격을 이용해 몸에 회전을 걸고 찰나를 이용해 칼의 세세한 움직임을 조정한다.

참귀도법(斬鬼刀法) 나찰회섬(羅刹回閃).

칼에 실린 검기가 회전하며 은태망을 몸을 난도질한다. 몸이 토막나지 않은 건 몸에 걸치고 있는 검은 갑옷 덕분이다. 허나 피부가 베이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의 몸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

은태망은 비명을 지르는 대신 반격을 선택했다. 그 정신력만큼은 인정해줄 만 했다. 반격은 내게 간파된 순간부터 의미 없었지만.

은태망의 참마도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바닥을 착지하며 바로 다시 뛰어올랐다. 칼끝으로 놈을 턱을 베었다.

위로 뛰어오른 몸은 중력에 의해 내려가기 마련이다. 나는 내려가면서 은태망의 목을 절반 이상 베었다. 결판이 났다. 은태망은 뒷걸음질 치다가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젠… 장….”

다음은 은태망이 데려온 나머지를 처리한다. 이놈들은 은태망보다 약했다. 뭉쳐 있어서 조금 성가시긴 했어도 혼자서 처리하는데 문제없었다.

10분이 지나고 전투가 끝났다.

내 주변은 시체로 가득했다. 죽은 놈들의 복면을 벗기고 정체를 확인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정체는 백산금가의 무인일 게 뻔하고, 지금 와서 백산금가와 싸울 생각도 없었다.

‘조금 빡치긴 하는데 지금 백산금가에 처들어가서 난리를 피우면 내 계획이 망해.’

시체를 넘어 아직 수련장에 서 있는 문파원들에게 향한다. 날 보는 그들의 눈에는 경외심이 담겨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한다. 오늘부로 도양문은 해체한다. 불만 있는 놈들은 앞으로 나와라.”

“문주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좋다. 말했던 대로 돈을 나눠주마. 받고 그대로 꺼져라.”

문파원들에게 돈을 나눠준 나는 미련 없이 도양문을 나섰다. 내가 향하는 곳은 숙소가 아니라 백산성의 성문이다. 백산성에 남아 있으면 백산금가의 추적을 받을 수 있었다. 일단 공개적으로는 백산성을 벗어나고, 숙소에는 밤에 몰래 들어갈 생각이었다.

“…….”

저벅저벅.

길을 걷던 나는 뒤로 돌아봤다.

도양문의 문파원 6명이 내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백산성에서 나온 지금도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무슨 짓이냐.”

6명은 바로 내 앞에 무릎 꿇었다. 그리고 이마가 땅에 닿을 정도로 깊숙이 머리를 숙였다.

“문주님! 저희를 거두어 주십시오! 저희는 문주님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영원한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부디 저희를 거두어 주십시오!”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뻔히 보였다.

내 무공을 배우고 싶은 것이다. 이놈들에게 있어 나는 기연이기도 하니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귀찮아 뒤지겠군.’

짜증이 치솟았다.

전부 죽여버릴까. 한순간 고민했다. 기껏 살려줬는데 다시 죽이기는 뭣했다. 한 번 자비를 베풀었으니 두 번 베풀지 못할 것도 없다.

“도양문은 해체했다. 나는 도양문주가 아니다. 너희들도 도양문 소속이 아니다. 꺼져라. 너희들이 살길은 너희가 알아서 찾아라.”

“문주님…! 아니, 한수평 대협! 시키는 건 뭐든지 하겠습니다! 받은 돈도 돌려드리겠습니다! 저희를 거두어 주십시오!”

쿵. 쿵쿵쿵.

놈들이 땅바닥에 머리를 박는다. 이마가 찢어져 피가 흐른다. 자기들이 진심임을 어필하는 듯한데, 나는 어떤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

“6명은 너무 많다.”

“……예?”

“2명이 적당할 것 같군.”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몸을 돌려 걸어갔다.

일곱 번째 걸음을 내디뎠을 때였다. 등 뒤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이윽고 욕설 섞인 고함과 칼부림 소리가 들렸다.

아흔다섯 번째 걸음.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몸을 돌리자 피투성이의 두 명의 남자가 털썩 무릎 꿇었다.

“대협!”

“저희를 받아주십시오!”

“정말이지 귀찮아 죽겠군.”

“…대협. 저희는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2명이 아니라 1명만 필요하다고 하신다면….”

놈들은 살의를 담아 서로를 힐끗 바라봤다. 그들은 내 명령이 떨어지면 당장에라도 서로를 죽일 것처럼 긴장했다.

웃기지도 않았다.

“하, 이 개버러지 새끼들. 제발 부탁이니 주제 좀 알아라.”

놈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내 허리춤에서 뽑힌 칼이 놈들의 목을 베었다. 두 개의 머리가 흙바닥을 데구루루 구른다.

“하여간 쓸데없이 칼을 휘두르게 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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