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3화 > 1213. 광명승천도
천마신공(天魔神功) 용권(竜拳).
당황한 놈은 내 공격에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공격이 제대로 먹혔다. 용권이 그림자의 복부를 때린다. 그림자가 뒤로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그림자는 아무렇지 않게 땅에 섰다. 치명상은 아닌 듯했다. 나는 놈의 기세가 흔들렸다는 것에 만족한다.
“네가 사용하는 마공은 분명 천마신공이다. 허나 내가 알고 있는 천마신공이 아니군. 기존의 천마신공을 개조한 건가? 아니면… 또 다른 천마신공인가….”
그림자가 말했다. 그 와중에도 그림자의 마기가 꿈틀거리며 주변 공간을 장악하려고 한다. 아까 싸우면서 느꼈다. 놈의 천마신공의 특징은 잠식이다. 상대의 힘을 서서히 갉아 먹으며 상성의 우위를 점한다.
허나 내 천마신공이라면 놈의 마기를 쉽게 버틸 것이다.
“백양화를 내놓고 죽어라.”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검(天魔劍) 마풍(魔風).
칼날을 휘둘렀다. 검은 바람이 불며 그림자를 향해 날아간다.
그림자가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검끝에서 시커먼 마기가 촛불처럼 흔들리더니 갑자기 면적을 늘려 방패가 되었다. 검막이다. 검은 바람은 검막에 막혀 사라졌다.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이런 단순한 공격에 놈이 당할 거라고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앞으로 나아간다.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주위 공간이 내게 지배되는 게 느껴졌다. 나는 곧 그림자의 공간을 침범했다. 단번에 놈의 공간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조금씩 지배권이 내게 넘어오는 게 느껴졌다.
나는 씩 웃었다. 예상했던 대로 놈의 마기는 내 마기를 잠식하지 못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검(天魔劍) 구중삼살(九中三殺).
그림자의 머리와 양어깨를 동시에 찌른다.
그림자의 몸이 미끄러지듯이 움직였다. 놈은 다리를 움직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그림자를 잡아당긴 것 같은 요상한 움직임이었다.
“뭐냐 그건. 술법이냐?”
“천마군림보다.”
“겨우 그게?”
“천마군림보의 일부일 뿐이지.”
나는 공격을 이어갔다. 그림자는 유령처럼 움직이며 내 공격을 모조리 피해낸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림자가 두 개로 늘어났다. 진짜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똑같았다. 더 웃긴 건 이놈들이 각각 다른 자세로 움직였다.
‘술법을 사용하는 느낌은 없었다. 법기의 능력이군.’
당황할 필요는 없다. 이 세상에서 분신술의 술법은 선술에 가깝다. 일개 법기가 담아낼 수 있는 술법이 아니다.
‘자기 자신과 완전히 똑같은 분신을 만들어내는 건 미령도 하지 못해. 기껏해야 분신은 본신의 3할 정도의 힘을 발휘하겠지.’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검(天魔劍) 회천(回天).
검강을 회전시켜 사방에 휘둘렀다. 회전하는 검강이 주위 공간을 찢어발긴다. 이번에도 내 검은 그림자를 맞추지 못했다. 공간에서 미끄러지는 듯한 그림자의 보법은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림자의 몸이 또 늘어났다. 2명에서 4명으로.
‘분신술이 아니라… 이형환위 같은 눈속임 같은 건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늘어난 분신은 제각각 다른 움직임을 취하고 있다.
내가 가만히 있자 분신은 더 늘어났다. 4명에서 8명으로. 8명에서 16명으로. 어느새 그림자들이 내 주위를 포위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무언가를 깨닫고 놀랐다.
“놀란 모양이군.”
“……이게 네 천마군림보냐?”
그림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대답이기도 했다.
그림자들이 동시에 내게 달려들었다. 놈들은 16방위를 전부 점했다. 천장은 막혀 있고, 땅을 파고 내려갈 수도 없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오직 반격뿐이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파형(波形).
진각을 밟았다. 기파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그림자 놈들을 덮쳤다. 기파에 맞은 그림자의 분신이 풍전등화처럼 흔들리더니 사라지고, 내 등을 노리는 딱 한 명의 그림자만 남는다. 아쉽게도 놈의 공격을 피하기에는 늦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금강마룡(金剛魔龍).
육체의 내구성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놈의 검은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에 내 몸을 22번을 베었다. 금강마룡을 사용했음에도 피부가 찢어지고 피가 사방에 튀었다. 허나 치명상은 없었다. 나는 놈의 공격에 버텨냈다.
그림자는 금강역사처럼 서 있는 나를 보며 헛웃음을 흘렀다.
“이걸 버텨? …터무니없군.”
천마신공(天魔神功) 금강마룡(金剛魔龍) 반(反).
금강마룡에 축적된 피해를 그림자를 향해 발산했다. 폭발적인 기운에 그림자의 몸이 위로 뛰어오른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신장(天魔神掌).
그림자의 복부에 천마신장을 날렸다.
“커어억!”
그림자의 허리가 꺾이면서 바닥에 처박힌다.
“드디어 네놈의 정체를 알 수 있겠군.”
그림자에게 다가가 화련비도를 치켜든다. 화련비도의 붉은 칼날은 시커먼 검강에 감싸여 있었다.
우선 필요한 것은 정보였다. 그림자의 팔다리를 자르고 심문해서 정보를 알아낼 생각이다. 필요하다면 미령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그림자는 위기의 순간에도 차분했다. 그에 약간의 불안감을 느낀 나는 당장 칼을 휘두르려고 했다.
콰지이익!
몸에서 괴상한 소리가 들리며 고통이 밀려왔다. 하마터면 칼을 놓칠뻔한 나는 몸을 비틀대며 가까스로 자세를 잡고 내 몸을 내려봤다. 아까 놈에게 받아 찢어진 피부에서 시커먼 마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숨겨둔 비장의 한 수를 썼다.”
놈이 왼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마기가 내 몸 안으로 파고든다. 천심을 사용해 놈의 마기를 떨쳐내기에는 너무 늦었다. 놈의 마기는 벌써 내 심장에 닿았다.
“자부심을 느껴도 된다. 너와 너의 천마신공은 충분히 대단했다. 너는 방심한 것도 아니다. 그저 나에 대한 정보가 없었을 뿐이지.”
몸속으로 파고든 마기가 내 심장을 움켜쥐더니 파괴한다.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어…!’
의식이 아득해진다. 몇 번이나 느껴본 죽음의 감각이다. 나는 의식을 붙잡는다. 파지직, 뇌전의 전류가 내 몸을 자극한다. 아까보다 편해진 감각에 칼을 움켜쥐고 놈의 머리에 칼을 쑤셔 박았다.
“……놀랍군. 설마 벌써 너 같은 변수를 마주할 줄이야. 하지만 너라는 변수는 이제 없을 것이다.”
그림자가 녹아내리더니 사라졌다. 그림자가 있던 장소에는 검은 심장 하나가 화련비도에 찔려 펄떡거리고 있었다.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처음부터 기만이었다. 그림자는 원래부터 분신이었던 것이다.
‘…아니. 분신이라기보다는 아바타 같은 개념이겠지. 놈의 진짜 힘은 그림자보다 훨씬 강하다.’
진짜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놈이 본체로 왔다면 반격도 하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을 테니까.
털썩. 힘이 빠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죽음 저항이 발동했습니다. 앞으로 15초간 죽지 않습니다.]
[완전 회복을 사용합니다.]
다시 눈을 떴다. 온몸의 상처는 사라졌다. 내 육체에 파고들었던 놈의 마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반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공동은 전투의 흔적으로 엉망이었다. 그리고 구석에 천유운이 기절한 채로 쓰러져 있다.
눈을 찌푸렸다. 뒤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문제가 되었다.
‘우선… 백양화는 내가 챙긴다.’
다음은 천유운이다.
이대로 내버려 두고 떠나는 것과 천유운을 데리고 떠나는 방법. 두 가지가 있다.
전자는 내가 편해진다. 후자는 전투 흔적을 최대한 지워야 했기에 동공을 무너뜨려야 한다. 대신 천유운의 신임을 얻을 수 있다.
‘천유운을 이용해 천마신교의 상층부로 자연스레 올라갈 수 있어. 천유운을 죽이는 건 안 돼.’
천유성은 아직 쓸모가 있었다.
‘귀찮지만 천유운을 데리고 간다. 그래야 천유운의 신임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천유운을 데리고 백산을 내려갔다. 물론 내려가기 전에 동공을 무너뜨려 전투 흔적을 치웠다. 천유운의 팔을 잡고 질질 끌면서 움직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림자. 그놈의 정체는 회귀천마가 분명해.’
그게 아니라면 말이 설명되지 않는다.
문제는 내가 알고 있는 회귀천마와 좀 다르다는 것이다. 회귀천마의 소설인 [천마복수전]의 주인공은 원래 이런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다. 주인공이 사용하는 천마신공과도 달랐다.
‘원작과 달라도 회귀천마인 건 확실해. 놈은 천유운이 기연을 얻는 걸 알고 있었고, 진짜 염구석의 얼굴도 알고 있었어. 즉, 놈은 이미 이 세계에서 회귀했다는 거지.’
다행히 놈은 나를 몰랐다. 회귀 전에 나와 마주치지 않았다는 뜻이다.
‘…나는 유희 생활 어플을 가졌으니까. 놈의 회귀 전 세상에선 내가 없었을 가능성이 커.’
그럼 상황이 설명된다.
회귀천마가 원작과는 다른 힘을 쓰는 것? 이 세계의 배경은 선협이다. 놈이 회귀 전에 어디의 경지였는지 몰라도… 이상한 힘을 쓰는 것도 이 세계의 배경을 생각하면 모두 설명된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놈의 목적이다.’
[천마복수전]은 주인공은 천하제일인이었으나, 세상은 그의 죽음을 원했다. 부하들에게 배신당하고, 천마신교 외부 세력의 함정에 걸려 죽는다.
‘이 세계에 천마신교는 하나뿐이다. 빙의천마와 회귀천마의 원작 설정이 서로 충돌했고, 이 세계에 적용된 건 빙의천마의 배경 설정이다.’
천유운이 소천마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유희 생활 어플은 설정 충돌을 알아서 메꿨겠지. [천마복수전]의 원작 설정은 거의 남아 있지 않겠군. 남아 있더라도 바뀌었을 게 분명해.’
하지만 딱 하나. 회귀천마가 회귀했다는 가장 중요한 설정은 바뀌지 않았다.
‘회귀천마의 목적은… 복수겠지. 중요한 건 복수대상이다. 원작에서는 천마신교고 나발이고 죄다 부수며 진행되는데… 지금은 달라. 아바타를 이용해 본체를 감추면서 은밀히 움직이며 영약을 가져가고 있다.’
회귀천마는 힘을 쌓고 있었다. 그 본체는 이미 삼정이상의 실력이라고 추측된다. 그런데도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
‘그 정도의 강자가 대놓고 움직였다면 이미 소문이 돌았겠지. 삼정의 경지로도 힘이 부족하다는 건가?’
어쩌면 천마신교는 놈의 복수 대상의 작은 일부일지도 모른다.
‘회귀 전의 그놈은 대체 어느 경지까지 올라갔던 거야? 복수 대상은 또 누구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머리를 써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 모든 의문의 정답은 오직 회귀 당사자인 그놈만이 알고 있겠지.
다만, 확실한 건 놈은 천유운을 당장 죽일 생각이 없다. 천유운을 습격할 때 살의를 느끼지 않았다. 어쩌면 천유운은 복수 대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천유운을 이용하고 나중에 죽여버릴 계획이겠지.
‘이세계 천마, 신종우를 죽일 때까지만 해도 일이 잘 풀렸는데… 일이 꼬이네.’
그런데 회귀천마 말고도 변수가 남아 있었다.
환생천마.
그 새끼는 또 뭐 하고 있을까.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가 쌓인다.
‘아, 오늘 밤에는 연예하를 꼭 따먹어야겠어.’
이럴 땐 섹스가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