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212화 (1,212/1,497)

< 1212화 > 1212. 광명승천도

“소문을 이용한다. 백산금가의 뿌리는 백산문이라는 문파다. 백산에 백산문의 무공과 법기가 있다는 소문을 흘릴 것이다.”

“그런 소문을 흘리더라도 백산금가가 믿겠습니까?”

“그 소문에 천마신교가 가장 먼저 움직인다.”

“……과연. 가능성이 있습니다. 천마신교가 움직이면 천의맹도 움직일 것입니다. 소문이 가짜라도 적에게 보물이 넘어가는 걸 원하지는 않을 테니. 그리고 천의맹까지 움직이면… 백산금가는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움직일 테죠.”

“천마신교, 천의맹, 백산금가의 병력들을 백산으로 이끈다. 그곳에서….”

“인간의 탐욕을 이용해 전투를 일으키는 겁니다. 한 번 대량의 피가 흐른다면… 백산금가는 더 이상 중립을 유지할 수 없게 되겠지요.”

“시작은 천의맹에서 하는 편이 가장 좋으나… 그렇게 생각대로 잘 풀리지는 않겠지.”

“이 계획을 시작하려면 인간의 탐욕을 확실하게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소문만으로 가능하겠습니다.”

“그건 내가 하지. 366번. 너는 소문을 퍼뜨려줬으면 한다. 567번과 290번은 대기한다.”

“신교에 보고하지 않고요?”

290번, 서문소려가 물었다.

“151번은 천의맹의 첩자였다. 신교 내에 첩자가 천의맹의 첩자가 한 명만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보고하지 않았다가 문제가 발생하면요?”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

천유운이 단호하게 말했다.

현 천마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천유운이다. 그가 나선다면 고작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123번.”

제갈모순이 나를 불렀다.

“뭐지? 내가 해야 할 일이라도 있나?”

“소문을 퍼뜨리는 데 도움을 줬으면 합니다”

“내가 직접 나서서 소문을 퍼뜨리면 의심을 살 거다. 소문의 신뢰성도 떨어질 거고.”

“소문은 백산성 외부에서 시작합니다. 123번은 우연은 가장해 소문을 퍼뜨리는 일에 힘써주십시오.”

“……어떤 방식으로?”

“후에 시간과 장소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그곳에 도양문의 문파원들을 데리고 가주시면 됩니다. 그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소문은 문파워들이 알아서 퍼뜨릴 테니.”

“알겠다.”

소문을 이용한 계획.

꽤 그럴싸했다. 여기가 현대라면 좀 힘들겠지만, 이곳은 현대가 아니었다. 소문 때문에 문파 간의 전쟁이 일어나는 일이 비일비재한 세상이었다.

•••

나흘이 지났다.

소문을 퍼뜨린다는 계획은 성공했다.

백산성 전체가 백산의 보물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당장 아무 객잔에나 들어가 귀를 기울이면 소문을 들을 수 있다.

“자네, 백산에 보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나? 듣자하니 백산문의 법기라더군.”

“들었지. 사람들이 죄다 떠들더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개소리. 누군가가 심심해서 지껄인 개소리네. 백산문이 사라진지가 500년이 넘지 않나. 이제 와서 보물이 나온다? 신빙성이 없는 말이네. 무엇보다 어떤 보물인지는 알려지지도 않았잖나.”

“쯧쯧. 자네는 아직 그 소문을 접하지 않은 모양이구만.”

“무슨 소문? 내가 모르는 소문이 더 있다고?”

“백산문의 보물말이세. 그 정확한 정체가 밝혀졌네. 백산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한 낭인이 보물을 봤다고 하네.”

“……어떤 보물인가?”

“소문이 개소리라며. 가짜 소문을 들어서 뭐 하려고 하시나? 자네 집 개와 대화라도 하려고?”

“거참, 사람 민망하게 그럴 건가?”

“크흠. 오늘 그 이야기만 몇 번을 했는지 아나? 목이 말라서 영 말할 기분이 안 드는군.”

“점소이! 여기 죽엽청 한 병 가져오게! 자, 됐나? 이제 좀 말해보게. 무슨 보물인가?”

“목인봉(木印棒).”

“목인봉? 그게 뭔가? 나무 막대기인가?”

“어허. 평범한 나무 막대기가 아닐세. 목인봉을 쥐고 휘두르면 그 끝이 늘어나고, 목인봉으로 지면을 찍으면 땅에서 나무가 치솟는 보물이네. 백산문의 법기라더군.”

“법기라… 신비한 힘을 가진 보물들 말이지. 정녕 백산문의 보물이 백산에 있다는 말인가…?”

“그거 때문에 지금 낭인들이 난리가 나지 않았다. 백산에 올라가서 목인봉을 손에 넣겠다고 벼르고 있다네. 그리고 이런 소문도 있다네. 백인봉은 백산문의 비전 절기를 품고 있다고.”

“소문이 구체적이구만. 정말 소문이 진짜인가…?”

“이 사람, 의심이 참 많구만.”

“자네도 생각해보게. 소문이 진짜라면 백산금가가 가만히 있는 게 이상하지 않나?”

“내 오늘 낮에 조카에게서 들은 게 있는데, 백산금가는 보기에도 멀쩡해 보여도 내부에선 난리가 났다고 하더구만. 분위기가 어찌나 살벌한지… 조카는 숨도 쉬기 힘들 지경이라 일을 마치고 바로 도망쳤다고 하네.”

“백산금가의 분위기가 그렇게 심각하다고…? 소문이… 진짜인가…?”

“소문은 진짜일세. 내 직감이 말해주고 있네. 그리고 이것도 내가 들은 소문이네만….”

“…자네는 어째 소문을 자주 접하는구만. 대체 비결이 뭔가?”

“인맥이지 뭐가 있겠나.”

“음. 죽엽청 한 잔 쭉 들이켜고 말해보게. 어떤 소문인가?”

“천마신교와 천의맹이 백산에 올라가 목인봉을 찾을 계획이라는 소문이네.”

“오호. 목인봉을 찾아 백산금가에 줄 생각인가? 그럼 백산금가의 호의를 얻을 수 있을 테니 아주 좋은 생각이군.”

“자네, 병신인가?”

“으음? 갑자기 그게 무슨 망발인가!”

“아, 미안하네. 어처구니없는 말을 들어서 나도 모르게…. 목인봉은 말일세. 법기 중에서도 상급이라 알려져 있네. 그 상급 법기는 어지간한 중소문파 보다 더 귀하지. 만약 천마신교나 천의맹이 목인봉을 얻었다? 백산금가에 주는 대신 백산성을 포기할 것이네. 목인봉에는 그 정도의 가치가 있으니까.”

“허참. 천마신교와 천의맹은 백산금가가 무섭지도 않나?”

“자넨 백산성 토박이라 아무것도 모르는군. 백산금가가 힘을 줄 수 있는 건 여기 백산성 뿐이네. 백산성 밖으로 나간다? 천마신교와 천의맹의 눈치를 보며 설설 기어야 하지. 그게 현실일세.”

“하아. 괜히 기분이 이상해지는구만….”

“그래도 여긴 백산성이네. 백산금가의 영역이지. 백산금가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걸세. 보물을 손에 넣은 자는 아무도 없으니 기대를 갖고 기다려 보세. 백산금가가 우리를 실망시킨 적이 있던가?”

“없지. 암, 없고말고.”

이런 식으로 백산성 전체에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목인봉. 그건 진짜 백산문의 법기야. 백산금가가 당황하는 것도 그 때문이지. 백산금가만 알고 있는 법기의 이름과 능력까지 퍼지고 있으니까.’

백산금가는 현재 내부에서 정보를 퍼뜨린 이를 찾아내고 있을 것이다.

‘법인은 찾지 못하고, 소문이 진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겠지.’

약간의 신뢰성이 생긴 순간 백산금가는 나설수 밖에 없다. 선조의 보물을 천의맹과 천마신교에게 빼앗기기는 죽기보다 싫을 테니까.

‘천유운. 원작 지식을 이용해 소문을 잘 퍼뜨렸어.’

참고로 목인봉은 존재하지 않는다. 몇백년 전에 부서졌다.

•••

다음 날 아침, 천마신교가 병력을 꾸리고 백산을 향해 움직였다. 천유운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였다.

몇 시간 뒤에 천의맹이 부랴부랴 병력을 짜서 천마신교의 뒤를 따라 백산에 향한다.

백산금가는 천의맹보다 늦게 출정했다.

나는 합류하는 천마신교에 합류하는 척하다가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천유운은 백산에 숨겨져 있는 영약이 목적이다. 그걸 내가 빼앗아야지.’

금제를 풀어서라도 영약을 빼앗을 각오가 있었다.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영약이 제법 귀했기 때문이다. 또 영약을 빼앗아야 천유운의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

백산을 오른다.

그 이름대로 하얀 산이었다. 눈이 내려서 하얀 게 아니라 나무와 흙이 새하얗다. 그 원인은 나도 모른다. 밝혀지지도 않았다. 원작에서는 음기 어쩌고저쩌고하며 천유운이 추측한다. 딱히 중요한 건 아니었다.

‘저기 있군.’

천안(天眼)으로 천유운의 위치를 확인했다. 천유운은 내가 뒤따르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천유운이 영약을 얻는 순간 뒤통수치는 거야.’

나는 미령에게 부탁해 받은 금제를 풀기로 했다.

걸음을 멈추고 두 눈을 감았다. 자기 관조에 들어간다. 내 단전과 기혈을 막고 있는 술법이 느껴졌다. 술법은 수기(水氣)와 목기(木氣)로 이루어져 있다. 미령은 일부러 물과 나무의 기운으로 내게 금제를 가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뇌기가 수기와 목기에 강하기 때문이지.’

뇌기를 일으킨다. 뇌기는 내 의지에 따라 술법을 태우며 금제를 없앴다.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수백 kg의 짐 덩어리를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가자.’

일루시터를 준비했다. 완벽한 기습을 위해 몸을 투명하게 만들고 천유운의 뒤를 따랐다. 천유운은 요리조리 왔다 갔다 하며 잘도 길을 찾아냈다. 그는 하얀 나무와 바위 사이의 틈을 찾아내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나 또한 그의 뒤를 따랐다.

거대한 공동이 나왔고, 그곳에 커다란 하얀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하얀 나뭇가지에는 나뭇잎 대신에 하얀 머리카락이 자라 있었다.

백발귀목(白髮鬼木). 요괴라기 보다는 영수에 가까운 생물이었다.

천유운은 허리춤에서 검을 뽑고 백발귀목에게 달려들었다. 천유운이 본격적으로 천마신공을 사용했다.

‘경지 차이 때문인가. 천마신공이 별 볼 일 없어 보이는군.’

천유운은 5분 동안의 격렬한 전투 끝에 백발귀목의 핵을 찔러 쓰러뜨렸다. 백발귀목의 몸에 금이 가더니 부서지기 시작했다.

‘백발귀목은 죽은 뒤에 꽃을 피우지.’

백발귀목의 몸통이 갈라지더니 새하얀 꽃이 아름답게 피어났다.

백양화(白陽花). 영약 중의 영약이었다.

“…드디어 손에 넣는군…!”

천유운이 기뻐하며 백양화에 손을 뻗는다. 나는 천유운의 뒤통수를 칠 준비를 했다. 기습 한 번에 천유운을 기절시키고 백양화를 빼앗는다. 완벽한 내 계획이었다.

계획을 실행하기 전에 변수가 일어났다.

나보다 한발 앞서 바위 뒤에 숨어 있던 누군가가 나타나 천유운을 발로 차 기절시키고는 백양화를 빼앗은 것이다.

‘이런 씨발!’

바로 튀어 나가 정체 모를 누군가에게 화련비도를 휘둘렀다. 적은 보법을 밟으며 가볍게 내 공격을 피했다. 나는 눈살을 찡그렸다. 적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시커먼 그림자 같은 것이 적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얼굴도 당연하고 체격까지 보이지 않는다.

‘무공? 술법? 법기? 어느 쪽이든 평범한 건 아니군. 내 천안이 통하지 않아.’

그림자는 거리를 벌린 채로 나를 쳐다봤다. 마치 날 관찰하는 듯한 시선이다.

“넌 누구지?”

그림자의 입에서 변조된 목소리가 울렸다.

“목소리 한 번 좆같군. 모습을 드러내라.”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만?”

내 목소리는 천유운의 것이었다. 놈이 시커먼 그림자로 몸을 가렸다면, 나는 일루시터로 몸을 투명하게 만들었다.

나는 기척을 최대한 없애며 그림자에게 달려들었다. 그림자가 바로 반응했다. 꼭 내가 보이는 것처럼.

‘반응이 조금 늦군. 내가 보이는 게 아니라 감각이 좋은 건가. 찰나.’

뇌천류(雷天流) 뇌광(雷光).

화련비도가 붉은 뇌전을 칼날에 담으며 그림자의 목을 노린다. 그림자가 검을 세워 내 공격을 튕겨냈다. 그 반발력에 나와 그림자는 동시에 뒤로 날아갔다.

“처음 보는 검술이군. 넌 누구냐.”

그림자가 지껄이며 자세를 잡는다.

“처음 보는 검술? 그건 내가 할 말이다.”

나 또한 영천류. 아니, 이젠 뇌천류의 자세를 잡으며 조용히 호흡했다. 내뱉은 호흡 속에 전류가 섞여 있었다. 파지직. 붉은 번개가 내 몸을 감싼다. 그림자의 눈에는 내가 붉은 번개로 보이겠지.

뇌천류(雷天流) 질풍신뢰(疾風迅雷).

일보를 내디딘다. 단숨에 거리를 좁히고 그림자에게 칼을 휘둘렀다. 그림자가 놀란 듯 주춤거리더니 상체를 숙이며 검을 휘둘렀다. 나는 그의 검에서 순수한 마기를 느꼈다.

‘이건 마치 천유운의…!’

검격을 나눈다. 그림자는 침착하게 내 모든 공격을 받아쳐 냈다. 나 또한 그림자에게 상처를 입혔지만,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빠직, 빠지직….

붉은 번개가 놈의 마기에 잠식당해 사라진다. 놈의 마공과 뇌천류는 상성이 좋지 않았다. 나는 혀를 찼다. 저 마기에 대항하기에는 내 실력이 부족하다. 정확하게는 뇌천류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

퍽!

그림자의 주먹이 내 복부를 때렸다. 방어하지 못한 나는 주먹에 맞아 뒤로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대충 네 검술에 대해 알았다. 대단한 검술인 건 인정한다. 허나 거기까지다. 결국 내가 너보다 더 강하다.”

키이잉.

일루시터가 짧은 소음을 내며 꺼졌다. 지속시간이 다한 것이다. 내 모습이 드러났다. 맨얼굴이 드러났다.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복면을 쓰지 않은 게 실수였다. …설마 저런 놈이 나타날 줄은 나도 몰랐다.

그림자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다.

“…전혀 모르겠군. 누구냐, 너.”

“나는… 염구석이다.”

입을 타고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닦아내며 자세를 잡았다.

“염구석? 하, 웃기고 있군. 염구석은 너보다 조금 더 멍청하게 생겼다.”

“…….”

그림자는 염구석에 대해 알고 있었다.

“뭐, 됐다. 네 정체는 나중에 천천히 알아보지.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일단 죽여주마.”

그림자의 몸에서 검은 마기가 피어오른다. 지금 보니 확신할 수 있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안목은 갖춘 놈이군.”

마기는 그림자의 검으로 모여든다.

“쯧. 개나 소나 다 천마신공이군.”

“뭐?”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기(天魔氣).

천마신공을 발동했다. 시커먼 마기가 내 몸을 감싼다. 나 또한 그림자와 마찬가지로 칼에 마기를 모았다.

그림자가 경악한 듯 멈칫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보는 눈이 있는데?”

놀라는 놈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용권(竜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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