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0화 > 1210. 광명승천도
키이이이이잉
은태망의 3m에 달하는 거대한 참마도가 진동하며 울었다. 은태망의 내공이 칼신을 감싸더니 바람이 되어 회오리쳤다.
“풍진쾌격(風進快擊)!”
은태망이 외치며 나를 향해 거대한 참마도를 휘둘렀다. 초식명을 외치는 꼴이 병신같지만, 그 위력은 결코 좌시할 수 없었다.
거대한 바람의 참격이 땅을 가르며 내게 날아온다.
우우웅.
나는 푸른색 검기가 서린 칼을 위로 치켜들었다.
참귀도법(斬鬼刀法) 악귀십살(惡鬼十殺). 칼을 십자로 휘둘러 검기를 날렸다. 십자(十字) 형태로 날아가는 검기는 은태망의 바람의 참격과 허공에서 부딪쳤다. 이긴 건 내가 날린 십자 검기였다. 바람을 베어가르며 은태망에게 날아간다.
은태망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두꺼운 다리를 앞으로 내밀며 앞으로 진격했다. 푸른 십자 검기가 그의 몸에 도달한다.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그가 몸에 걸친 갑옷이 검기를 흡수한 것이다.
은태망은 내 앞에 다가와서 칼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쳤다. 나는 칼을 가로로 눕혀 공격을 막아냈다. 그 거구만큼이나 힘이 엄청났다.
“하하하! 칼질 한 번에 다리를 떠는군! 자신만만하길래 한수 있는 줄 알았더니 전부 허세였나! 네놈의 오인단! 내가 잘 먹겠다!”
“…….”
나는 입술을 씹었다.
은태망의 공격이 문제가 아니다. 내 안에서 뇌천류를 사용하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뇌천류로 이 새끼를 지져버리고 싶다…. 하지만… 참아야 해. 염구석은 뇌기를 사용하지 못해. 지금 뇌천류를 사용하면 지금까지 해온 모든 노력이 수포가 된다.’
참귀도법(斬鬼刀法) 역귀추(逆鬼追).
순간적으로 힘을 폭발시켜 칼을 위로 올려 친다. 놈의 거대한 참마도가 위로 튕겨 나갔다. 나는 다음 공격을 이어가려 했다.
‘어깨를 노린다.’
은태망은 물러나는 대신 진격을 강하게 밟았다. 그의 검은 갑옷이 반응하며 충격파를 일으켰다. 충격파에 말려든 나는 뒤로 날아가 비무장을 굴렀다.
은태망이 높이 뛰었다. 거대한 참마도가 번뜩이며 떨어진다. 나는 옆으로 뛰어 은태망의 공격을 피했다. 쾅! 거대한 참마도가 땅에 박혔다.
“으하하하하! 화들짝 놀라 뛰는 꼴이 꼭 메뚜기 같구나!!”
은태망이 땅에 꽂힌 참마도를 뽑아 들며 나를 비웃는다.
“푸하하하! 역시 문주님의 입담이야!”
“비무 중에도 웃으시다니… 문주님은 대단하시다!”
“문주님! 저 건방진 놈을 묵사발 내주십시오!”
흥분한 놈의 부하들이 소리친다. 은태망은 그 응원을 당연하다는 듯이 웃으며 듣고 있다.
“적수문의 한수평. 제법 하는군. 여기서 제안 하나 하마. 내 부하가 돼라. 그럼 지금까지의 무례는 용서해주마.”
“네 부하가 될 바엔 차라리 죽고 말거다.”
“하하하! 마지막 기회를 걷어찰 줄이야! 그 의개를 높이 사마! 허나, 넌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거다!”
은태망이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의 전신에 푸른 아지랑이가 일어났다. 은태망이 내게 달려온다. 아까보다 훨씬 빨라진 속도다.
‘참귀도법만으로는 힘들겠군. 찰나.’
느려진 시야 속에서 확실히 보였다. 저건 무공의 힘이 아니라 법기의 힘이다. 은태망이 걸친 갑옷이 내공을 연료로 은태망의 신체를 강화하고 있다.
은태망이 묵직한 참마도를 번쩍 들더니 내게 휘둘렀다.
은태망의 옆으로 뛰어 공격을 피했다. 촤아아아악! 신발 밑창에서 마찰이 일어났다. 발바닥이 뜨겁다.
‘찰나.’
연속으로 찰나를 사용한다. 은태망에게 뛰었다. 검기가 서린 칼날이 은태망의 어깨를 베어 가른다. 갑옷이 찢기고 피가 튀었다. 갑옷 때문에 공격이 얕다.
“의미 없는 발악이다!!”
가속된 내 몸은 무거웠다. 그러나 아직 더 가속할 수 있었다.
‘찰나.’
세 번째 찰나의 가속으로 몸을 회전시켰다. 칼에 원심력을 담는다.
‘찰나.’
네 번째 찰나로 방향성을 확인했다.
참귀도법(斬鬼刀法) 나찰회섬(羅刹回閃).
칼이 번뜩이며 푸른 빛살이 되어 은태망의 갑옷을 베어 가른다. 은태망은 반응도 하지 못했다. 내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였는지 파악하지도 못한 것이다.
카아앙!
놈의 갑옷이 부서지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동시에 입마소에서 받은 내 칼이 부러져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털썩.
은태망의 무릎이 무너졌다.
“무, 문주님!!!”
“처, 철성진을 준비해라!!”
나는 은태망을 향해 내달렸다. 은태망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그 목에 부러진 칼날을 가져다 댔다.
“움직이지 마라. 은태망은 아직 죽지 않았다.”
“크흐으으으….”
은태망이 가래 끓는 소리를 냈다. 그의 입에서 피가 울컥 튀어나온다. 위험해 보이지만, 놈은 갑옷 덕분에 아직 살아있다.
부하들이 조용해졌다. 그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며 은태망을 바라봤다.
“겨, 경거망동하지 마라…!”
은태망의 외침에 부하들이 멈춘다. 주위는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조용해져서 다행이군. 은태망. 이 비무는 내가 이겼다. 인정하나?”
“인정한다…. 날 놓아라. 날 죽이면 내 부하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널 죽일 생각은 없다. 비무에 이긴 이상 도양문은 이제 내 거다. 약속을 지켜라.”
“다, 당신을 도양문의 문주로 인정하겠습니다.”
은태망의 말투가 공손해졌다. 정말로 굴복한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걸로 상황은 어느 정도 정리될 것이다. 일은 잘 풀리고 있었다.
“거기 너.”
근처에 있는 한 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저 말입니까?”
“명령이다. 오인단을 가져와라.”
“그, 그게…”
그가 은태망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은태망의 뒤통수를 한 대 쳤다.
“은태망은 더 이상 도양문의 문주가 아니다. 이놈은 비무에서 졌고, 나를 도양의 문주로 인정했다. 내가 도양문의 문주다.”
“아, 알겠습니다. 문주님.”
놈이 오인단을 조심히 가져와 내게 건넸다. 나는 품 안에 오인단을 넣었다. 참고로 이 오인단은 천강성 시스템의 출석 보상으로 얻은 영단이었다.
나는 은태망의 등을 밟고 섰다. 주위의 모두가 불안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꿇어라. 내가 너희의 새로운 문주인 한수평이다.”
“문주님을 뵙습니다!”
놈들은 바로 바닥에 무릎 꿇고 고개를 숙였다.
흑도 문파는 힘의 논리가 잘 통했다.
“그래. 이제야 좀 마음에 드는군. 근데 마무리는 깔끔하게 해야겠지.”
나는 은태망의 몸을 발로 찼다. 놈이 고통스러운 목소리를 흘리며 바닥을 굴렀다. 나는 점혈을 짚어 놈의 몸에 응급조치를 했다. 아직 죽어선 안 된다.
“아까 네가 했던 말 기억하나?”
“…네. 전 이미 당신을 문주로 인정했습니다. 도양문은… 당신의 것입니다. 살려주십시오.”
“살려는 준다. 넌 쓸모가 있으니까. 근데 내가 물은 건 그 말이 아니다. 넌 분명 내게 이렇게 말했지. 내 팔과 다리를 잘라 연못에 던져 물고기들에게 특식을 준다고 했지. 내가 뭐라 말했는지… 알고 있겠지?”
은태망의 얼굴이 시커멓게 변한다.
“제, 제가 잘못했습니다. 충성을 맹세할 테니 제발…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남아일언.”
“대협! 부탁드립니다! 숨겨둔 재산도 모두 드리겠습니다!”
부러진 칼날이 은태망의 목에 향했다.
“남아일언.”
“……중천금.”
“기억해둬라, 나 한수평은 한다면 하는 남자, 한남 한수평이다.”
부러진 칼에 내공을 담아 은태망의 거시기로 던졌다.
은태망이 입을 쩌억 벌리며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 커다란 비명은 분명 도시 전체에 울렸으리라.
“은태망.”
“꺼어억! 크아아아아아악!”
“은태망. 잘 들어라.”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잘 듣는 게 좋을 거다. 내 심기를 거슬러서 좋을 건 하나 없으니. 네 부하들에게 개처럼 따먹히고 싶나?”
“…….”
“앞으로 내게 절대 복종해라. 네 부하들에게 개처럼 따먹히기 싫으면 말이야. 알아들었나?”
“추, 충성하겠습니다. 제발 그것만은….”
“지켜보겠다.”
나는 은태망의 머리를 후려치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두려움에 가득한 시선이 내게 향한다. 기선 제압은 성공한 모양이다.
“오늘은 기쁜 날이다. 이런 날에 술과 여자를 빠질 수 없지. 오늘은 기루에 간다. 준비해놔라.”
부하들의 두 눈이 번쩍 뜨인다. 술과 여자. 군침이 확 도는 단어에 그들의 두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네! 문주님!”
나는 부하들에게 은태망의 치료를 명령하고, 은태망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것저것 뒤지기 시작했다.
‘찾았다.’
숨겨 놓은 돈과 장부를 발견했다. 장부를 펼쳐 대충 훑어봤다. 백산금가와의 거래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걸로 백산금가를 무너뜨릴 수 있다! 라는 건 전혀 아니었다. 백산금가는 고작 장부 하나에 무너질 정도로 허술하지 않다.
‘그래도 원작에서처럼 어느 정도 압박은 할 수 있겠지.’
내가 직접 쓸 것도 아니었다.
천유운에게 갖다주면 된다. 그럼 제갈모순이 알아서 잘 쓸 것이다.
‘염구석의 일은 끝났다. 이제… 성유진의 일을 해야겠지.’
일단 피곤하니 조금 쉬기로 했다.
•••
다음날.
나는 백산성에서 최고라 불리는 란란루(亂蘭樓)에서 에이스 기녀들을 불러 즐거운 밤을 보내고 낮이 되어 기루 밖으로 나왔다. 나오기 전에 목욕으로 몸에 묻어 있는 분 냄새를 없애고 숙소로 향했다.
“123번. 어젯밤에 안 들어왔더군. 어디에 있다 온 거지?”
천유운이 내게 물었다. 나는 그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도양문이라는 흑도 문파가 있더군. 그곳을 접수하고 왔다.”
“…뭐? 흑도 문파를 접수해?”
천유운이 어이없다는 듯이 날 쳐다봤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군요.”
제갈모순이 말했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슬쩍 보니 백산성의 정보가 적혀 있는 서류들이었다.
“흑도 문파는 정보에 민감합니다. 불법적인 일을 하려면 정보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도양문은 백산성 유일의 흑도 문파. 잘 활용하면 쓸모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제갈모순의 말을 한 귀로 흘러듣고 천유운에게 장부를 건넸다.
“123번. 이건 뭐지?”
“도양문의 문주의 방에 있던 장부다. 백산금가와 관계있는 모양이더군.”
“호오, 그래? 대어를 낚았군.”
천유운이 기뻐하며 받았고, 제갈모순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천유운에게 다가갔다.
“장부라… 흥미롭군요. 저도 보여주십시오.”
나는 그들이 장부를 보든 말든 아무래도 좋았다.
“다른 이들은 어디에 있지?”
“151번은 천의맹을 감시하며 동태를 확인하고 있다. 567번과 290번은 보고를 위해 잠시 나갔다. 아마 지금쯤 약속 장소에서 교관을 만나고 있을 테지.”
“특별한 진전은 없는 모양이군.”
“아직은 정보를 수집하는 단계다.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건 내일부터다. 지금 계획으로는 내가 직접 백산금가에 찾아가 협상할 생각이다.”
“그렇군.”
“뭘 어떻게 협상할지 궁금하지 않나?”
“너라면 알아서 잘하겠지.”
대답한 나는 몸을 돌렸다.
“123번. 다른 볼일이라도 있나?”
“난 앞으로 도양문에서 생활할 거다. 쓸만한 정보가 생기면 가지고 오지.”
미련 없이 숙소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