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7화 > 1207. 광명승천도
“366번.”
연예하의 깨끗한 목소리는 소란스러운 공간에서도 아주 잘 들렸다. 참고로 그녀가 부른 366번은 제갈모순의 번호다.
“당신에게 비무를 신청합니다.”
“…이유가 뭡니까?”
항상 침착함을 유지하던 제갈모순이 눈살을 찡그리며 의문을 드러냈다. 지켜보고 있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연예하의 비무 신청은 너무 갑작스러웠다. 그리고 연예하와 제갈모순은 같은 분대 소속이었다.
“당신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굳이 오늘 이렇게 비무를 신청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런 이유라면 대련으로 충분할 터인데요.”
비무는 대련과 다르다.
오직 실력 향상만을 위한 대련과 달리 비무는 자신의 명성을 걸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생사결이 될 수도 있었다.
“전 당신의 전력을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분대원으로서 내 실력에 의구심이라도 가진 건가.”
제갈모순은 한숨을 내쉬었다.
비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다른 장소라면 몰라도 이곳에는 보는 눈이 많았다. 여기서 비무를 거절한다면 입소자들이 수군거리게 될 것이다. 특히나 이곳은 천마신교. 그 무엇보다 힘의 논리가 중요한 곳. 겁쟁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순간 멸시당한다.
“567번. 비무 신청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생사결을 원하십니까?”
연예하의 대답은 뻔했다. 그녀 성격이라면 목숨을 건 비무를 원할 것이다. 그래야 제갈모순의 실력을 파악할 수 있으니까.
그녀가 대답하기 전에 천유운이 급하게 나섰다.
“잠깐 기다려라. 입마소에서 목숨을 건 비무는 금지다.”
“…88번. 그런 조항이 있었습니까?”
제갈모순이 묘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 내 말이 의심스럽다면 입마소장에게 직접 물어봐라.”
“전 88번의 말을 믿습니다. 567번. 아쉽군요. 생사결을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참에 비무도 없던 걸로 하지 않겠습니까? 우린 내일 서쪽으로 떠날 준비를 해야합니다.”
“생사결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고집이 세시군요. 알겠습니다. 대련장으로 가지요.”
제갈모순이 비무를 받아들였다. 비무를 거절하는 것 보다 차라리 싸워서 패배하는 쪽이 얻는 게 더 많기 때문이다.
“심판은 내가 맡지. 내가 불안하다면… 교관을 불러와도 상관없다.”
천유운이 나서며 말했다. 천유운의 정체를 알고 있는 그들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들은 수련장으로 향했다. 여기서 다짜고짜 검을 뽑아 들며 싸울 수는 없었다. 그들이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주변을 에워싼 군중도 한 걸음 움직였다. 그들 입장에서 이런 좋은 구경거리를 놓칠 수 없었다.
나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연예하가 제갈모순에게 비무를 신청한 이유, 그건 아마도 제갈모순이 강간범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저번에 연예하를 제압할 때 내 실력을 보였지. 제갈모순의 실력이 뛰어나다면… 연예하는 범인을 확신하고 제갈모순을 죽일 거야.’
대놓고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검마의 딸인 그녀에겐 제갈모순을 죽일 방법 정도는 얼마든지 있다.
‘제갈모순은 질 거야.’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연예하는 천유운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반면 제갈모순은 1조이긴 하나 무술 실력만 따지면 1조 내에서도 하위권이다.
‘젠장. 지금까지 제갈모순을 범인으로 몰아갔었는데…. 제갈모순은 이제 연예하의 용의선상에서 제외되겠군.’
연예하와 제갈모순은 서로 일정 거리를 벌리고 검을 뽑았다.
“비무를 시작하기 전에 다시 한번 말하지. 이건 생사결이 아니다. 살의를 일으키지 마라.”
심판을 맡은 천유운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천유운은 지금 똥줄이 바짝 탈 것이다. 연예하와 제갈모순은 그가 눈여겨보고 있는 인재들이다. 비무 중에 사고가 일어나 둘 중 한 명이 불구가 된다? 천유운이 잃는 손해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내 말을 두 사람 모두 잘 알아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비무를 시작하지.”
먼저 공격한 것은 연예하였다. 절도있게 보법을 밟으며 제갈모순의 정면으로 검을 휘두른다. 무술의 오묘함도 뭣도 없는 무식한 공격이었다.
나라면 가볍게 옆으로 피해 반격했겠지만, 제갈모순은 내가 아니었다.
제갈모순은 검을 세워 연예하의 공격을 받아냈다. 그 방법밖에 없었다. 제갈모순에겐 연예하의 움직임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을 테니까.
연예하의 단순한 공격이 이어졌다.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수련장을 가득 채운다.
“허억, 헉…!”
제갈모순은 급급했다. 연예하의 검을 받아내는 것만으로도 점점 한계에 몰리고 있었다. 힘과 내공의 차이다.
일방적인 전투가 계속 이어지는 찰나, 제갈모순의 오른발에서 창백한 손이 튀어나와 연예하의 다리를 붙잡으려 했다. 술법이다. 연예하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제갈모순의 공격을 피했다가 허공에 검을 한차례 휘둘러 세 개의 검풍을 만들었다.
검풍이 주춤거리는 제갈모순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그가 재차 반격하려고 했지만, 거리를 좁힌 연예하의 검이 제갈모순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졌습니다.”
“…….”
연예하는 조용히 검을 거뒀다. 심판인 천유운이 그녀의 승리를 선언하기도 전에 몸을 돌려 수련장을 나선다.
“잠깐, 잠깐 기다려주십시오!”
제갈모순이 소리쳤다. 연예하가 뒤를 돌아봤다.
“대체 왜 저와 비무를 한 겁니까?!”
“…전 이미 대답했습니다.”
“내 실력을 확인해보고 싶었다고? 아니, 당신은 다른 목적이 있었습니다! 진지하게 대답해주십시오!”
“전 처음부터 목적을 말했습니다.”
연예하는 수련장을 빠져나갔다. 제갈모순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좋은 구경거리를 한 사람들은 제각각 볼일을 보러 사라졌다.
천유운이 제갈모순에게 다가갔다. 나는 귀에 내공을 집중해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366번. 567번은 정말로 네 실력을 보고 싶었을 뿐일 거다.”
“…그걸 당신이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나와 그녀는 옛날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다. 그녀는 무인이다. 강함을 추구하지. 네게 비무를 신청했다는 건, 너를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전 처참하게 패배했습니다. 그녀가 마음먹었다면, 저를 일합에 쓰러뜨릴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그녀가 절 인정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그녀가 예전보다 강해지긴 했으나,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납득이 안 되나 보군. …너는 그녀의 목적이 뭐라고 짐작하나?”
“…567번은 저를 통해 무언가를 확인하려 했습니다. 그건 제 실력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입니다. 그렇게 느꼈습니다.”
“……모르겠군.”
“88번. 당신이 567번에게 물어 봐주지 않겠습니까?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 아닙니까.”
“그녀는 거짓말은 하지 않으나, 숨길 줄은 안다. 아마 내가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을 테지. 그런데 마지막에 쓴 술법은… 강시술인가?”
“예. 강시술 중 하나입니다. 제 몸을 매개체로 강시의 손을 소환하는 기본 강시술법 중의 하나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들의 대화를 엿들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연예하가 사라진 방향을 확인했다. 숙소로 향하는 길이다. 거리는 제법 떨어져 있다. 연예하는 천천히 걸어갈 테니 뛰어가면 앞지를 수 있을 것이다.
‘연예하가 싸우는 걸 봤더니 꼴리는군…. 만나러 갈까.’
나는 사람의 시선이 없는 곳에서 일루시터를 소환해 손목에 착용했다. 그리고 일루시터를 발동한다. 몸이 투명해졌다. 연예하의 숙소가 있는 방향으로 냅다 뛰었다.
나는 숙소로 향하는 길의 옆에 있는 좁은 골목길에서 연예하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예하가 보였다. 다행히 그녀 주변에 사람은 없었다.
그녀가 골목길 앞을 지나치려고 할 때 손을 뻗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봉천(封天).
점혈로 그녀의 내공을 봉하고 허리와 어깨를 잡아 골목길로 끌어당겼다.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골목에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저항하지 않았다. 검을 뽑지도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투명한 상태인 내게 담담하게 말했다.
“당신이군요.”
“맞아. 여전히 침착하군. …혹시 내가 덮칠 것을 예상하고 있었나?”
제갈모순의 목소리를 연기하며 말했다.
“아뇨.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놀랐습니다. 설마 대낮에, 그것도 길에서 대놓고 덮쳐올 줄은 몰랐으니까요.”
놀란 기색이 전혀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내려 내 몸을 바라봤다. 그녀가 너무 담담하게 말해서 투명화가 풀린 줄 알았다. 일루시터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당신은 제갈모순이 아니었군요.”
“…….”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띠를 풀고 바지를 내렸다. 검은색의 화려한 속옷이 보였다. 내가 선물해준 속옷이다. 버리지 않고 잘 입고 다니는 모양이다. 팬티를 옆으로 젖히고 보지를 만졌다. 두툼한 소음순이 내 손가락을 감싼다. 느긋하게 애무할 시간이 없으니 성감 고조를 사용했다.
“여기서 저를 범할 생각인가요?”
“방금 비무에서 너한테 졌으니 그 복수를 해야지.”
끝까지 제갈모순인 척했다. 내 작전이 통했는지 판단하기 힘들었다. 그녀의 포커페이스는 무적이었다.
“저항하지 않는군.”
“협조할게요. 대신 질문에 대답해줘요.”
“이번이 4번째 질문이던가?”
“5번째, 이번 조건에선 마지막 질문이에요.”
질문 5개에 진실 1개.
어젯밤에 그녀는 내게 오른손잡이냐, 왼손잡이냐고 물었다. 나는 오른손잡이라고 말했다. 그건 진실이었다. 그러니 이번 질문에 거짓을 말해도 상관없다.
“당신의 가장 가까운 거처는 동쪽에 있나요? 아니면 서쪽에 있나요?”
“…….”
1조 남자 숙소가 서쪽에 있었고, 2조와 3조 남자 숙소는 동쪽에 있었다. 남쪽은 교관들이 머무는 숙소가 있었고, 북쪽은 여자 교관들이 머무는 숙소가 있다.
‘연예하는 두 가지의 예시를 줬지만… 착각하면 안 된다. 질문은 객관식이 아니야.’
나는 생각 끝에 대답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거처는 남쪽에 있다.”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연예하는 한쪽 다리를 벽에 기대듯이 올리고는 보지를 내게 보여줬다. 보지에서는 투명한 액체가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적극적이군.”
“협조하기로 했으니 협조할 뿐입니다. 괜한 실랑이를 벌일 생각은 없어요.”
“넌 내게 범해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
“…네. 그러니 당신을 찾아내 죽일 겁니다.”
나는 발기한 자지를 그녀의 보지에 찔러 넣었다.
“아….”
연예하가 작은 숨을 흘리며 몸을 움찔 떨었다. 그녀는 이어 양손으로 내 상체를 잡았다. 손이 움직이며 상체를 쓰다듬는다. 목적은 분명하다. 내 체격을 확인하고, 있을지 모를 신체적 특징을 발견하려는 거겠지.
그녀는 딱히 뭔가를 찾지 못할 것이다.
“하윽… 앙.”
나는 골목에서 연예하를 30분 동안 범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일루시터의 제한 시간 때문에 약속한 1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없었다.
‘투명 상태로 하는 섹스… 생각보다 더 흥분되네. 앞으로 자주 즐겨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