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8화 > 1198. 광명승천도
무인들에게 끌려간 나는 교관과 만났다.
교관으로부터 한 소리 들은 후에 광장으로 나갔다. 그놈의 눈깔을 붓으로 찌르긴 했으나, 죽이지는 않았기에 잔소리만으로 끝났다.
‘내 경지를 확인하고 그냥 넘어간 거지.’
나는 현재 입식 9단이었다.
원래는 오기 10단의 경지인데, 미령의 도움을 받아 술법으로 몸에 금제를 가했다. 어중간하게 실력을 숨기면 들킬 게 분명했으므로 아예 금제를 가한 것이다.
‘21살에 입식 9단이면 최상급 인재지. 놓치고 싶지 않은 인재.’
교관이 잔소리만 하고 넘어간 이유였다.
어느 세력이든 인재는 귀하고, 인재를 갖고 싶어 하니까.
광장에 들어온 나는 조용히 주위를 둘러봤다. 광장에 줄 서 있는 자들 모두 오늘 입마소에 들어온 신입들이다. 그들은 조용히 얼어붙어서 분위기를 살피고 있다.
나는 등이 따끔거리는 걸 느꼈다.
‘교관들이 날 지켜보고 있군.’
내가 사고 치지 않는지 지켜보고 있다. 교관들은 검은 옷에 붉은 허리띠를 둘렀다.
지금 당장 사고 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한 번씩 사고를 쳐줘야 한다. 내가 연기하는 염구석이라는 놈은 사고를 자주 치는 놈이었으니까.
‘700명 정도인가.’
적다.
이 세계에 더럽게 많은 인구수를 생각하면 매우 적은 편이다. 거기에 이중 절반은 입마소를 수료하지 못하고 죽는다.
‘천마신교에 들어오는 방식은 입마소만 있는 게 아니니까.’
빽이 없는 놈들,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은 놈들, 출세를 노리는 놈들이 입마소에 입소한다. 입마소는 악명이 자자한 만큼, 수료만 할 수 있다면 출셋길은 보장되었다고 봐도 좋기 때문이다.
붉은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입소자들 사이를 당당하게 걸으며 광장 앞에 섰다.
얼굴 절반이 수염으로 뒤덮인 그는 조용히 주변을 둘러봤다. 그의 두 눈은 호랑이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매서웠다.
“반갑다. 나는 입마소장(入魔所長) 배택주다. 입마소의 총책임자다.”
“…….”
광장은 조용했다. 백태주는 입소자들의 침묵이 마음에 든다는 듯 씨익 웃었다.
“1번 앞으로 나와라.”
배택주가 다짜고짜 1번을 호명했다. 입소자들 사이에서 잔뜩 굳은 표정의 한 남자가 배택주의 앞으로 걸어갔다.
배택주는 쭈뼛대는 1번의 정수리에 손을 올렸다.
“…중중(中中). 2조.”
교관이 다가와 1번에게 수련복과 번호표를 건넸다. 1번은 교관의 지시에 따라 2조(二組)라 적힌 깃발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2번 앞으로 나와라.”
배택주는 2번을 불렀다.
“하중(下中). 3조.”
입소자들의 경지를 기반으로 하는 분류였다. 여기에 있는 자들을 모두 수준에 맞게 가르치겠다는 뜻이었다.
합리적이었다. 이곳에 모인 자들 모두 시작 지점이 다른데, 똑같이 대우하는 건 오히려 불공평하다.
‘대부분 3조로 빠지는군.’
3조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였다. 뭐, 재능있는 놈들은 알아서 위로 올라갈 것이다.
“88번!”
배택주가 어느새 88번을 불렸다.
나는 집중해서 앞으로 나가는 남자를 쳐다봤다. 잘생긴 얼굴의 남자였다. 무표정한 그가 바로 ‘빙의 천마’다.
‘얼굴을 보니 확실하군. 다행히 원작대로 88번을 받았어.’
천유운.
[깨어나 보니 천마가 되어 있었다]의 주인공이다. 나는 그를 빙의 천마라고 부른다.
지금 천유운은 [천무신군]이라는 무협 소설에 나오는 악역에 빙의되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광명승천도 때문에 세계의 배경이 선협물로 조금 바뀌긴 했어도, 기본적인 내용은 [천무신군]의 내용을 따라가고 있으니까.
‘소천마 천유운.’
놈은 아직 천마가 아니었다.
천마의 아들이다. 후에 천마가 되는 인물이다.
‘이 새끼는 이세계 천마인 신종우처럼 쉽지 않아. 멍청하지도 않지. 묵지련(墨地聯)이라는 기반도 이미 만들어뒀어.’
그런 철저한 놈이 왜 입마소에 입소한 것일까.
인재를 얻기 위해서였다. 놈은 [천무신군] 무협소설을 통해 재능있는 인간을 대부분 파악하고 있다.
‘그중에 내가 죽이고 그 신분을 차지한 염구석이 포함되지.’
천유운은 염구석에 대해 알고 있으나, 얼굴은 모른다. 염구석을 소설로만 알고 있을 테니까.
‘내 등에 새겨진 붉은 악귀 문신을 보고 내가 염구석이라고 확신하겠지.’
일은 내가 계획했던 대로 진행되고 있다.
“…최상(最上). 1조.”
배택주가 천유운을 보며 말했다. 입마소 총책임자인 그는 천유운의 정체를 미리 알고 있었다.
‘천유운이 입마소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고 한다. 라고 알고 있지.’
나는 조용히 주위를 둘러봤다.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이들이 제법 있었다. 딱 봐도 명문가 출신 같은 놈들. 그놈들은 실제로 천마신교 간부의 자식들이다. 그들은 차기 천마가 될 천유운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입마소에 들어왔다.
“123번!”
배택주가 나를 부른다.
나는 당당하게 그의 앞에 섰다. 배택주는 묘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내가 입마소에 오자마자 사고 쳤다는 걸 보고 받은 모양이다. 배택주가 손을 뻗어 내 머리에 얹었다.
‘늙은 남자 새끼가 내 정수리를 만지더니… 기분 개좆같군.’
백회혈을 통해 배택주의 기운이 들어온다.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배택주의 기운은 곧 사라졌다. 여기서 조금 쫄렸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놈이 내 진짜 실력을 알아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계획이 꼬인다.
“최상(最上). 1조”.
다행히 우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받을 건 받고 1조로 움직였다. 1조는 아직 10도 되지 않았다. 아마 이 지루한 분류가 끝나면 100명 정도가 1조에 속하게 되겠지.
“123번.”
천유운이 말을 걸어왔다. 나는 삐딱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가 내 옆에 다가온 순간부터 교관들의 시선이 이곳에 집중된다.
“…뭐냐.”
“너무 경계할 필요 없다. 인사나 나눌까 하고 왔을 뿐이다.”
“내가 너 따위랑 인사를 나눌 필요가 있나?”
“같은 조 잖냐. 앞으로 잘 지내야지.”
“……경고하지. 나대지 마라.”
한차례 으르렁거린 나는 고개를 돌려 천유운을 무시했다. 물론 이것도 계획의 일종이었다.
“567번. 최상, 1조.”
모두의 시선이 567번에게 향했다.
567번은 여인이었다. 그것도 눈이 번쩍 뜨일 정도의 미모를 갖춘 미녀. 검은 긴 머리카락과 새하얀 피부, 장인이 빚은 것 같은 이목구비. 무표정함에도 그 아름다움은 숨길 수 없었다.
‘빙의 천마의 히로인이군. 검마의 딸, 연예하.’
천유운과 연예하의 시선이 서로 부딪혔다.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그들 사이에 어떠한 접점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연예하의 뒤태를 보며 입술을 핥았다.
분류가 모두 끝났다.
입마소장 배택주는 입마소에서 지켜야할 규칙을 말해주고는 사라졌다. 교관에게 대들지 않는다, 입소자들끼리 싸우지 않는다. 등의 규칙이었다.
1조, 2조, 3조는 교관의 뒤를 따라 각각 다른 방향으로 이동했다.
앞으로 1년 동안 머물 숙소가 있는 곳이었다. 숙소는 조마다 달랐다. 3조는 허름하기 짝이 없는 숙소를 배정받을 것이고, 1조는 고급 여관 수준의 숙소다.
강자존.
천마신교는 강한 놈들만 대우해준다. 숙소뿐만이 아니라 모든 편의에서 1조는 최상의 대우를 받을 것이다. 3조와 2조는 어떻게든 1조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할 테고, 1조에 속한 놈들은 강등당하지 않게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남자는 이 건물, 여자는 저 건물을 사용한다. 멍청한 짓은 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남자와 여자가 헤어졌다. 남자들은 아쉬운 한숨을 흘리며 숙소로 걸어갔다.
“반 시진 뒤에 숙소 앞에 집합한다. 집합 시간에 조금이라도 늦는다면…. 기대해도 좋다.”
교관이 서늘하게 웃으며 무게를 잡았다. 다른 놈들 대부분이 긴장했다.
방을 배정받았다.
1인 1실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 후, 일주일 동안 정신 교육이라는 명목하에 뺑뺑이 쳐야 했다. 교관을 암살할까 진심으로 고민했다.
•••
“123번. 앞으로 나와라.”
교관이 나를 불렀다.
나는 교관 앞으로 나갔다. 교관이 내게 칼을 던지듯이 건넸다.
“대련이다. 들고 자세를 잡아라.”
“진검으로 대련입니까?”
“천마신교의 무인이 진검 대련이 두렵나?”
“그럴 리가.”
“나는 교관이다. 존댓말을 붙여라, 건방진 놈.”
교관에게서 노골적인 적의가 느껴진다.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다른 교관들은 끼어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대련을 빙자해 나를 불구로 만들 생각인가?’
불구가 되면 입마소에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첫날에 내게 붓으로 눈이 찔린 놈. 그놈이 사주했나? 그게 아니면 그놈의 친구인가?’
일의 내막은 아무래도 좋았다.
다만, 날 해치려는 놈을 곱게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내가 칼을 들자 교관이 씨익 웃었다.
“지금부터 실전 같은 대련을 시작한다.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도록.”
교관이 보법을 밟으며 성큼 다가온다. 교관의 칼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깔끔하고 정직한 일격이었다.
‘대련 초반에는 적당히 이어가다가 타이밍을 봐서 날 불구로 만들 생각이었겠지.’
어설펐다.
나는 교관의 쳐내고 찰나를 사용해 교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어, 어억?!”
교관이 내 속도에 당황하며 손바닥을 휘젓는다. 그의 손바닥이 허공에서 움직일 때마다 열기가 피어오른다.
‘열양계열의 장법인가.’
교관의 손바닥이 내게 닿는 일은 없었다. 그 전에 내 칼이 먼저 놈의 배때기를 쑤셨기 때문이다.
“컥…!”
교관이 내 목에 손을 뻗어온다. 날 죽이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이 정도는 충분히 피할 수 있다.’
일부러 피하지 않고 왼팔을 올렸다. 내 목을 노리던 교관의 손바닥이 내 팔목을 잡았다. 치지지지직. 옷이 불타고 피부가 타들어 간다. 나는 고통을 참으며 교관의 몸을 발로 찼다.
교관이 흠칫 떨며 일어나려고 했으나, 다른 교관들이 나서서 우리를 말렸다.
“그만! 이건 대련이다. 두 사람 모두 지나쳤다! 두 사람 모두 의무실로 데려가라! 너희들이 계속 감시해라. 사고라도 일어난다면… 너희들도 가만 두지 않겠다.”
고참으로 보이는 교관의 말에 교관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신속하게 움직였다.
나는 교관들에게 붙들려 의무실로 향하는 놈을 보고 입가를 말아 올렸다. 칼끝은 정확히 놈의 단전을 꿰뚫었다.
단전은 신체의 중심이자, 무공의 핵심이다. 단전을 통해 내공을 모은다. 단전이 박살 나면 내공을 신체에 내공을 모을 곳이 없다. 특별한 신체 혹은 특별한 무공이라면 예외겠지만, 저놈이 특별했다면 여기서 교관일을 하고 있진 않았겠지.
‘저건 신의가 와도 못 고쳐. 무인으로서의 인생은 끝장났군. 크크.’
저놈은 이제 나와 만난 일이 없을 것이다.
‘불이익은 나도 받겠지만… 나도 피해자야. 그리고….’
나는 힐끗 고개를 돌렸다. 88번. 소천마인 천우윤이 두 눈을 빛내며 나를 보고 있었다. 놈은 내게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나를 조사할 테고, 내가 염구석이라는 걸 알게 될 테지.
‘크크. 일이 잘 풀리고 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