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7화 > 1197. 광명승천도
[광명승천도]는 총 6개의 창작물이 섞인 유희 세계다.
배경이 되는 광명승천도는 선협 세계지만, 다른 세계는 모두 무협이다. 그러니 당연히 천마신교도 존재한다.
‘어떻게 보면 천마신교가 가장 중요하지. 6개 중 4개의 세계가 천마와 연관이 있으니까.’
천마신교에 입교한다.
그 계획의 시작은 충동이었다. 나는 천마다. 천마로서 쓸만한 세력인 천마신교를 갖고 싶었다.
‘세력을 일구는 방법도 있긴 한데… 그건 너무 오래 걸리잖아.’
아무것도 없이 천마신교 수준의 세력을 일구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그리고 그게 시간만 있다고 해결 될 일일까? 차라리 천마신교를 집어삼키는 쪽이 더 빠르고 편하리라.
‘처음에는 천마신교 근처에서 적당히 사고를 치고, 놈들과 싸워 내 실력을 증명한 뒤 천마신교에 입교하는게 목적이었다.’
천마신교는 기본적으로, 그리고 공식적으로 강자존(强者尊)의 법칙을 따른다. 강자인 나를 죽이기보다는 회유하려 들것이고, 나는 못이기는 척 천마신교에 입교한다. 정파와 달리 천마신교는 나름 자유로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입교와 달리 퇴교는 자유롭지 못하지만.
나는 이 첫 번째 계획을 실행하기에 앞서 천마신교의 정보를 모았다.
화월루주 공비가 있었기에 천마신교에 대한 고급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현재 천마신교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천마신교의 정보를 확인해본 결과 더 좋은 계획이 떠올랐다. 더 빠르고, 더 확실하게 천마신교의 핵심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계획이.
천마신교로 떠나기 위해 스승인 위유의 허락을 받는 건 필수였다.
그녀는 의외로 바로 허락했다. 만무탑에 있을 때도 자주 낙월산에 자주 들려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내게는 공간 이동 주문서와 천강성 시스템의 공간 전이 시스템이 있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순식간에 만날 수 있다.
남궁설은 입술을 삐죽 내밀긴 했으나, 결국 허락했다. 미령과 남궁린의 허락을 받는 건 어렵지 않았다.
“천마신교로 떠난다고 하지만…. 영영 떠나는게 아니라 꼭 출장 가는 남편을 보는 것 같네요. 열심히 일해서 우릴 먹여 살려주세요, 서방님!”
그날, 약간 우울해진 분위기를 띄우듯 미령이 발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히죽 웃었다. 이번 계획에는 미령의 도움도 필요하다. 미령처럼 우수한 실력의 술법사는 좀처럼 없으니까.
그리고 미령도 오래 놀았으니 슬슬 일할 때도 됐지. 뭐, 당장 그녀가 필요한 건 아니었다.
나는 [광명승천도] 세계의 시간으로 몇 년을 준비한 끝에 천마신교로 향했다. 천마신교는 대륙 북쪽의 십만대산에 있었다.
낙월산과 천마신교의 거리는 약 25,000km로 추정된다. 선협 세계답게 엄청난 거리였다. 참고로 서울과 뉴옥의 거리가 약 11,000km다.
무척 멀지만, 미령의 도움을 받으면 며칠 만에 주파할 수 있는 거리였다. 한 번 주파하면 공간 전이 시스템을 이용해 자유롭게 오갈 수 있기에 문제는 되지 않았다.
자잘한 문제를 해결했으니 이젠 계획을 시작할 때다.
•••
나는 바로 천마신교로 향하지 않았다.
천마신교에서 말로 30일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마을로 향했다. 난도(暖挑)란 이름의 마을이다.
여긴 평범한 마을이 아니었다.
도적 마을.
도적들이 모여 만든 마을이었다. 마을 전체가 한통속이다. 마을 근처를 지나치는 만만한 놈들을 벗겨 먹는다. 주 사냥감은 강호를 유람하며 명성을 쌓겠다는 얼치기 무인과 행상인이다.
나는 마을에 들어가지 않고 근처에 텐트를 치고 마을을 지켜봤다.
4일이 지났을 때 마을 중심에서 연기가 치솟았다.
나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대로… 아니, 원작대로군.’
마을에서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내분이 일어나 도적끼리 싸우는 것이다.
“이 쓰레기 놈들!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감히 내게 이빨을 들이밀어?!”
“먹여줘? 일주일에 밥 한 끼 주는 주제에 먹여줘? 까고 자빠졌네! 네 집에 쌀이 쌓여 있는 걸 모를 줄 알아?!”
“내 아들이 아침에 눈을 뜨면 뭐라고 하는지 알아? 배고프다. 배고프다고 말한다! 난 내 아들만큼은 안 굶길 거다!!”
“뭐, 뭐해! 이놈들을 죽여!!”
해가 저물고 저녁이 되었다.
전투 소리는 줄어들었으나, 마을은 더 활활 불타올랐다.
불타는 마을 속에서 한 남자가 비틀거리며 마을 밖을 기어 나온다. 나는 그제야 움직였다. 기어 나오는 남자의 앞으로 걸어간다.
“누, 누구냐?”
다부진 체격의 남자가 고개를 위로 올렸다. 그의 피 묻은 옷은 반쯤 찢어져 있었고, 등에 붉은 악귀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염구석, 맞나?”
“마, 맞다. 내가 염구석이다. 너는 누구냐.”
겨우 입식(入式) 수준의 무인인 염구석은 나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놈의 손이 허리춤으로 향한다. 놈은 부서진 칼의 자루를 꽉 쥐었다.
“별건 아니고… 여기서 죽어줘야겠다.”
스르르륵.
칼을 뽑자, 염구석이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누가… 누가 날 죽이라고 했지?! 마을에 있었던 내분도 네 짓이냐?!”
“뭔가 오해하고 있는 모양이군. 난 살수가 아니다. 네 마을에 일어난 내분은 네 애비가 욕심이 많아서 일어난 일이고.”
“…목적이 뭐냐.”
“네 목숨. 나는 네가 될 거야.”
“지랄!!”
염구석이 벌떡 몸을 일으켜 내게 달려들었다. 그가 쥔 칼끝은 내 명치를 정확히 노리고 있었다.
허나 너무 느렸다.
하품이 나올 정도로.
푸욱.
내 칼이 염구석의 목을 쑤셨다.
“크크. 병신 새끼. 그냥 살려달라고 빌 것이지.”
“크으으…. 사, 살려줘….”
“늦었어.”
염구석이 쓰러져 절명했다.
나는 염구석의 시체에서 상의를 벗기고 붉은 악귀가 새겨진 등을 노려봤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꺼내 유희 생활 어플을 실행했다.
[성유진
레벨: 81
근력: 105 체력: 100 민첩: 100 지능: 100 정력: 110 마나: 103]
[사용 가능 포인트: 7,580]
스마트폰 화면에는 내 모습이 있었다. 알몸의 내가 가만히 서 있었다. 여기서 포인트를 사용해 얼굴을 바꾸거나, 키를 키우거나, 자지의 길이와 둘레를 내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었다.
나는 화면 속 몸을 돌려 그 등에 문신을 추가했다. 원하는 문신을 떠올리자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다.
[3포인트를 소모해 문신을 추가하겠습니까?]
문신을 추가했다.
아무 느낌 없었다. 스마트폰 화면 속 내 등에는 염구석의 등에 있던 붉은 악귀 문신이 있었다.
나는 옷을 벗어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이용해 내 등을 촬영했다. 붉은 악귀 문신이 내 등에 있었다.
만족스럽게 웃으며 염구석의 시체를 불길 속에 집어 던졌다.
‘준비는 끝났군.’
염구석은 ‘빙의 천마’의 왼팔 격인 놈이다.
나는 염구석이 되어 ‘빙의 천마’의 최측근이 될 것이다. ‘빙의 천마’의 신의를 얻을 것이고, 때가 되면 놈의 뒤통수를 칠 것이다. 이 세계 천마신교의 천마신공을 얻고, 천마신교의 주인이 될 것이다.
인벤토리에서 공책 하나를 꺼냈다.
염구석에 대한 정보를 정리해놓은 공책이다. 염구석이 좋아하는 음식, 염구석의 사소한 버릇에서부터 시작해서, 원작 염구석의 행동까지.
‘빙의 천마’를 속이기 위해선 완벽하게 염구석을 연기해야 한다.
•••
천마신교의 본단 입구를 바라봤다.
그 크기는 어지간한 대도시에 맞먹을 정도였다.
나는 도시 구석에 있는 입마소(入魔所)로 향했다.
입마소는 천마신교의 하급 무사들을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곳이다. 동시에 어중이떠중이를 솎아내는 곳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천마신교의 밑바닥이었으며, 시작 지점이었다.
입마소의 문은 1년에 1번 열흘 동안 열린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시기였다.
입마소에 들어가자 한 남자가 책상에 앉아 있었다. 붓을 든 그가 나를 힐끗 보며 사무적으로 물었다.
“이름이 무엇이오?”
“염구석이다.”
붓이 우뚝 멈췄다.
“…말이 좀 짧으시구려.”
“천마신교는 강자존이라 들었다.”
“그 말은… 내가 당신보다 약하다?”
그는 사나운 기세를 흘리며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담담히 그를 내려다봤다. 시선이 교차한다. 먼저 시선을 돌린 건 상대 쪽이었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붓을 움직였다. 종이에 내 염구석의 이름이 적힌다.
“크흠. 나이는 어떻게 되시오.”
“스물하나.”
“출신은 어디오?”
“난도.”
“거긴 또 어디오?”
“여기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이다. 한 달 전에 불타서 사라졌지.”
“불타서 사라져…?”
“반란이 일어났다. 아버지의 부하들이 먹을 것 좀 안 줬다고 무기를 들더군. 뭐, 내가 다 죽여버렸지만.”
“아, 그렇소.”
기록을 끝낸 그는 내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당신은 앞으로 1년 동안 입마소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을 것이오. 무사히 입마소의 교육과 훈련을 수료하면 그때 서야 진정한 천마신교의 무인이 되는 것이오.”
“123번?”
나는 얼굴을 굳혔다. 원작의 염구석은 155번이었기 때문이다. 원작의 염구석보다 일찍 도착한 모양이다.
“왜. 번호가 마음에 안 드시오? 이건 당신이 떼를 써도 바꿔줄 수 없소. 아니면 이제 겁이나기 시작하셨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소. 왔던 길 그대로 밖으로 나가시오. 그럼 당신이 이름이 적힌 종이를 찢어 버리겠소.”
“아니, 됐다. 어디로 가야 하지.”
놈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 멱살을 잡았다. 놈이 으르렁거리며 내 귓가에 속삭이듯 말한다.
“네가 거칠게 살아온 건 알아. 아마 도적이나 산적 출신이겠지. 근데 여긴 천마신교야. 촌뜨기인 네놈보다 더 거칠고, 잔혹한 자들이 많지. 우리가 괜히 마인(魔人)으로 불리는지 알아? 인간을 벗어났기에 마인이다. 네 선배로서 조언하나 해주지. 넌 강자가 아니다. 흔하디흔한 버러지 중 하나다. 죽기 싫으면 건방지게 굴지 말고 예의 있게 굴어라.”
“……씨발. 입냄새.”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붓을 손에 쥐고 놈의 오른쪽 눈에 찔러넣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악!”
놈이 비명을 내지르며 내 멱살을 놓았다. 비틀거리던 놈은 손톱을 세우고 내 목에 휘둘렀다. 고개를 옆으로 꺾어 쉽게 피한 뒤에 놈의 다리를 걷어찼다. 놈이 바닥에 쓰러져 허우적거렸다.
“그만!!”
“멈춰!!”
무인 둘이 나타나 내 몸을 붙잡았다. 나는 그들에게서 저항하지 않고 쓰러진 놈을 지켜봤다.
“누가 봐도 네가 벌레잖아.”
“닥쳐라! 넌 신교의 무인을 건드렸다!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나?!”
다른 무인들이 달려와 쓰러진 놈에게 점혈법을 이용해 응급 처치를 한다.
“저도 지금 막 신교에 입교했습니다. 전 신교인입니다. 그리고 시비를 먼저 튼 것도 저 새끼입니다.”
“…그가 무슨 잘못을 했지?”
“주제도 모르고 기어올랐습니다.”
“뭐?”
“약자 주제에 기어올랐단 말입니다!!”
“…또 미친놈이 들어왔군.”
무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천마신교 입마소에 들어오는 놈들 절반은 범죄자다. 나 같은 놈은 널리고 널렸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놈을 죽이지는 않았으니 입마소에서 쫓겨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여기서 붓질이나 하는 놈이 뒷배가 있을 리 없지.’
나는 무인들에게 끌려가면서, 다른 무인들에게 어딘가로 실려 가는 놈을 비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