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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184화 (1,184/1,497)

< 1184화 > 1184. 15일

우리는 조심스럽게 저택 밖으로 나왔다.

“히이익….”

안경 쓴 단발머리의 수수한 여자, 네바타 노리코가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저택 앞에 시체가 가득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체를 무시하고 사방을 경계하며 신사로 향했다. 신사로 향하는 계단까지 마을 사람을 한 명도 마주하지 않았다.

가장 아래에서 계단을 올려다봤다.

까마득했다.

어두워서 계단 위가 보이지 않았다. 착시인지 몰라도 마치 계단이 무한히 이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계단을 올라가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최소 5분은 잡아야 한다. 만약, 저 위에서 총을 쏴댄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군.”

모리 마사히로의 말에 서클원 모두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계단이 아닌 다른 길로 신사를 올라간다? 포장된 길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산을 올라가는 건 힘든 일이다. 5분이면 할 수 있는 걸 1시간 넘게 걸릴 수도 있었다.

우리는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너무 급하게 올라가면 금방 지치게 된다. 다행히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습격은 없었다.

‘시바타. 그 괴물 놈도 분명 신사에 있겠지?’

솔직히 말해서 썩 자신이 없었다.

지금 나는 완전 회복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다.

혈단? 챙기긴 했는데 너무 많이 먹으면 부작용으로 죽을 수 있었다. 나는 시바타와 동귀어진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내가 죽으면 퀘스트는 실패로 끝난다. 퀘스트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계단의 끝이 보였다. 앞장서서 올라가던 나는 걸음을 멈췄다. 다행히 계단 위에 적이 매복하는 일은 없었다.

“작전을 좀 짜죠.”

“작전?”

“거창한 건 아니에요. 위에 올라가면 분명 적들이 있을 거예요. 놈들이 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으니 정면으로 대치하는 건 안 좋아요. 그러니….”

나는 계단의 양옆을 바라봤다. 경사진 땅과 나무가 있었다. 좀 많이 경사지긴 했으나 기어 올라간다면… 계단을 이용하지 않고도 신사에 올라갈 수 있으리라. 목적지도 이미 가깝고.

“알겠다. 네 말은 샛길로 이동하자는 거군.”

“예. 인원을 나눠서요. 저랑 모리 선배, 후도 선배랑 네바타 선배, 그리고 와다는 이대로 계단 위로 올라갑니다.”

“…나카가미와 하가와는 계단 옆을 돌아간다? 인원 배치가 좀 이상한 것 같다만?”

“아뇨. 이게 맞습니다. 놈들은 저와 모리 선배를 가장 경계하고 있을 테고, 인원이 너무 없으면 그것도 이상함을 느끼겠죠. 만약, 계단 위에 매복한 자들이 없다면… 나카가미 선배와 하가와는 우리와 합류하지 않고 별동대로 움직여 무녀를 사로잡았으면 합니다.”

“잠깐만, 성! 나카가미 선배와 하가와가 너무 위험한 거 아니야?!”

와다 쿄시로가 발끈했다. 하가와 료코를 힐끗거리는 걸 보니 그녀가 걱정되는 모양이다. 정작 하가와 료코는 어떤 반론도 없이 내 말을 듣고 있지만.

“나쁘지 않네.”

나카가미 리사가 말했다. 손도끼를 든 그녀는 하가와 료코를 보면서 입술을 말아 올렸다.

“꼭 닌자가 받는 임무 같잖아. 그렇지? 료코?”

“…하가와 선배. 전 닌자가 아니에요. 그리고 이름으로 부르지 말아 주세요.”

“우리 사이에 그 정도는 괜찮잖아. 너도 날 이름으로 불러도 돼.”

“…….”

와다 쿄시로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카가미 리사와 하가와 료코를 번갈아 쳐다본다. 그녀들이 언제 이렇게 친밀해진 것인지 궁금한 모양이다. 나와 그녀들이 셋이서 알몸으로 부대껴서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이 작전에 너도 불만 없지?”

나카가미 리사가 하가와 료코에게 물었다. 하가와 료코는 품속에 숨긴 단도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합당한가는 둘째치더라도… 전부 모여서 정면 돌파하는 건 불안하니까요.”

“그렇게 정해졌으니 우리는 유진의 말대로 움직일 거야.”

그녀들은 계단 옆의 산속으로 걸어갔다.

그녀들은 잘할 것이다. 적어도 사람을 죽이는데 아무런 망설임이 없으니까. 나카가미 리사의 경우엔 실력이 조금 미덥지 못하지만, 닌자 가문 출신의 하가와 료코가 있으니 괜찮을 것이다.

“…성. 료코와 많이 친해진 것 같네.”

와다 쿄시로가 내게 말했다.

“내가 하가와랑 친하다고? 무슨 착각을 하는 거야?”

“착각이 아니야. 료코는… 성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알 수 있어.”

감이 좋은 건가.

아니면 소꿉친구로서 하가와 료코의 습관이나 버릇 같은 걸 알고 있는 건가.

어느 쪽이든 지금 여기서 와다 쿄시로와 대화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나중에 얘기하자. 지금은 그럴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야.”

“…그래.”

신사 입구에 도착했다.

토리이라고 하던가. 커다란 붉은색 문이 우리를 반겼다. 우리는 토리이를 지나 돌바닥을 걸어 신사로 걸어갔다.

신사는 조용했다.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풀벌레 소리만이 사방에서 울렸다. 전체적으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나는 신사 건물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건물이 여러 개였기 때문이다.

“무녀가 어디에 있을 것 같습니까?”

모리 마사히로에게 물었다. 그는 축제 때 신사에 와본 적 있었다.

“…나도 모르겠군. 신사가 이렇게 넓으니 무녀가 숨을 곳은 많다. 내 생각에는 안채에 있지 않을까 싶군.”

“본관이 아니라요?”

“어제 둘러봤을 때 본관은 의식을 위한 건물이었다. 사람이 머무는 곳이 아니다.”

“…뭐, 천천히 돌아다니다 보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겠죠.”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게 신경 쓰이는군. 놈들이 매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

나는 대충 짐작이 간다.

이 마을은 이미 끝장났다. 마을을 지배하고 마약 공장으로 사용하던 무녀는 정리해야 할 것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나를 죽이려고 사람까지 보냈지. 그놈들은 역으로 내 손에 죽었지만.’

무녀는 지금쯤 아주 바쁠 것이다.

우리는 신사를 여기저기 뒤적거렸다. 특별한 무언가는 없었다.

아무 소득 없이 본관을 나섰을 때였다.

콰앙!

거친 소리와 함께 별채의 문이 열렸다. 작은 문 사이로 거구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체에 비해 비대하게 큰 상체, 얼굴까지 가리는 새까만 옷.

그는 시바타였다.

“뭐, 뭐야. 저 괴물은!”

와다 쿄시로가 경악한다. 그는 저도 모르게 긴장하며 야구방망이를 시바타에게 겨눴다.

“…성이 말한 그 괴물인 것 같군. 들을 때는 반신반의 했는데… 직접 보니 다리가 더 떨리는군.”

창을 쥔 모리 마사히로가 시바타를 노려봤다.

“저런 괴물을 상대해야 한다고?”

“어, 어쩌죠?!”

후도 준과 네바타 노리코가 당황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두려움의 대상인 시바타는 정작 그들에게 관심 없고 오직 나만 쳐다본다. 천으로 얼굴이 가려져 있어서 정확한 시선은 안 보이지만, 직감적으로 놈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너! 왜 살아 있는 거냐!”

시바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나는 히죽 웃었다. 부논한 목소리로 감추고 있지만, 놈은 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나는 시바타의 오른팔을 바라본다. 내가 잘라낸 놈의 오른팔이 붙어 있다. 자세히 보면 두꺼운 철사로 꿰매 팔을 봉합했다.

그것만으로 팔이 붙을 리 없었다. 오른팔은 축 늘어져 있다. 움직이지 못하는 게 확실하다.

“무녀는 어디에 있냐.”

“…무녀님이 너 죽이라고 했다. 너, 죽인다.”

시바타가 뛰기 시작했다.

처음 봤을 때보다 그 속도가 느렸다. 그래도 무시할만한 속도는 아니었다.

“흩어지세요! 흩어져서 놈을 죽여야 합니다!”

양손에 일본도를 든 나는 뒤로 뛰면서 말했다. 시바타는 노골적으로 날 노리고 있었다.

시바타와의 전투는 예측하고 있었고, 이미 서클원들에게도 말을 해놨다.

내가 시바타의 주의를 끌었고, 모리 마사히로와 와다 쿄시로가 시바타의 뒤를 공격했다.

“거슬린다!”

쿵, 쿵쿵!

시바타가 왼팔을 휘두르며 날뛰었다.

신사에 장식된 조각상을 들고 내던진 것이다. 어이없게도 그 조각상에 맞은 첫 번째 피해자는 가장 떨어진 곳에서 숨죽이고 있던 네바타 노리코였다.

“꺄아아아아악!”

퍼억.

그녀는 날아오는 조각상을 피하지 못하고 머리가 박살 나 죽었다.

“이 자식이…!”

네바타 노리코 옆에 있던 후도 준이 시바타에게 나이프 5개를 투척했다. 2개는 빗나갔지만, 3개는 명중했다. 2개는 등에 꽂혔고, 1개는 그의 머리에 꽂혔다.

시바타는 커다란 왼손으로 머리에 꽂힌 나이프를 빼냈다. 머리를 가리고 있던 천이 떨어진다. 공개된 시바타의 얼굴은 혐오스러웠다. 붉은 두 눈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고, 턱은 S자로 히어져 있으며, 이마 정중앙은 뿔처럼 툭 솟아있다.

체격만큼이나 얼굴도 인간 같지 않았다.

“너, 너…!!”

시바타가 몸을 돌려 후도 준을 향해 고함쳤다. 어이가 없는 건 분명 나이프가 머리에 꽂혔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움직인다는 점이다.

‘진짜 괴물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이놈, 눈이 맛이 갔어. 약에 취해 있는 거다. 피눈물은 안 흘리지만… 혈단을 먹은 거겠지.’

시바타가 후도 준에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후도 준이 놀라며 도망치려 하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그 머리통을 터트려 주마!!”

시바타가 쓰러진 후도 준의 머리를 왼손으로 감싸 쥐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왼손에서 피와 뇌수가 흘러내린다.

나는 시바타가 후도 준을 죽이는 동안 몰래 접근해 오른쪽 허벅지를 베었다. 완전히 벨 수 없었다. 상체만큼이나 허벅지 근육도 질겼다.

‘그래도 놈이 절뚝거리게 만드는 것엔 성공했다.’

시바타가 뒤돌아본다.

“내 다리!!”

“무녀 어딨어.”

“죽어!!”

황급히 뒤로 물러나 그의 공격을 피했다. 시바타는 다시 날 노리기 시작했다. 기동력을 빼앗아서 그런가. 아까처럼 위협적이지 않다.

“모리 선배! 와다! 거리만 유지하면 됩니다! 거리만 유지하면 쉽게 사냥할 수 있습니다!”

“사냥이라니…! 저 괴물 같은 자도 일단은 인간이다!”

“전 성의 말이 마음에 드는데요. 인간 머리를 손으로 쥐고 터트리는 게 인간입니까?!”

모리 마사히로와 와다 쿄시로가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했다. 서클원 두 명의 죽음에 분노한 것이다.

“으아아아아아!!”

시바타가 소리치며 발광한다. 우리는 기동력을 잃은 놈에게서 일정 거리를 끝까지 유지하며 전투를 이어갔다.

쿵!

그리고 마침내 시바타가 쓰러졌다.

나는 쓰러진 놈에게 달려들어 눈구멍에 칼을 쑤셔 넣었다. 놈이 바들바들 떨더니 절명했다. 지겨운 싸움이 끝났다.

털썩.

모리 마사히로가 주저앉았다. 전투 중 시바타의 공격을 맞은 그의 왼팔은 처참하게 부러져 있었다. 나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팔을 확인했다.

“모리 선배…. 솔직히 말해서 이 팔은 가망이 없어요.”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놈이 약해지지 않았다면… 팔이 아니라 목숨을 잃었겠지.”

“일어설 수는 있겠어요?”

“다리는 멀쩡하니 걸을 수는 있다. 근데, 조금 쉬고 싶군.”

“이참에 영원히 쉬시죠?”

“뭐…? 커억?!”

칼로 모리 마사히로의 가슴을 찔렀다. 심장을 관통한 감각이 손에 느껴진다.

“선배라고 거드럭대는 꼴이 마음에 안 들었어. 죽어.”

시바타를 상대하기 위해 데려온 놈이었다. 시바타가 죽은 이상 모리 마사히로는 필요 없다. 그리고 와다 쿄시로도 똑같은 이유로 여기서 죽일 것이다. 와다 쿄시로가 뒈지면 하가와 료코는 내 것이다.

“성!!!”

와다 쿄시로가 소리치며 내게 달려와 찌그러진 야구방망이를 휘두른다.

나는 야구방망이를 피하며 칼을 휘둘렀다. 칼은 와다 쿄시로의 몸통을 베었다. 그러나 얕다. 내장을 베는 느낌이 없었다.

퍼억!

피한 야구방망이가 내 옆구리를 때렸다. 궤도가 도중에 바뀐 것이다.

“…좀 치네?”

마무리 하기 위해 칼을 들어 올렸다. 와다 쿄시로는 내게 방망이를 던지더니 도망쳤다. 따라가려는 데 얻어맞은 옆구리가 욱신거리며 방해했다. 나는 옆구리를 매만지며 혀를 찼다. 옷을 들쳐서 옆구리를 확인해보니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와다 쿄시로는 앗 하는 수간에 산속으로 도망쳤다. 쫓기에는 너무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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