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183화 (1,183/1,497)

< 1183화 > 1183. 15일

끼이이이익.

문을 열고 목공소 안으로 들어갔다. 최대한 살살 문을 밀었는데, 문이 낡아서 그런지 소리가 크게 났다.

윤간을 즐기던 남자들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저놈은?!”

“그놈이다! 사사키 씨를 죽인 놈!”

“죽여! 저놈에게 죽은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야!”

알몸의 남자들이 내게 달려든다. 끔찍하면서도 익숙한 광경이었다.

‘야동에서 몇 번 본 적 있지.’

AV 배우를 뒤쫓는 모습이지만, 설마 내가 그 대상이 될 줄이야.

나는 서둘러 문 옆에 놓인 무기를 들었다. 일본도의 칼날이 조명을 받아 반짝인다.

“네놈들의 알몸 따윈 보고 싶지 않았다….”

이놈들을 전부 죽이기로 했다.

알몸의 남자들은 내가 칼을 쥐자 잠시 주춤거렸으나, 이내 다시 달려든다. 아까보다 조심스럽게 내 주위를 포위한다. 나는 혼자고, 저들은 10명이 넘는다. 놈들이 믿고 있는 건 수적인 우위였다.

‘그 우위가 얼마나 부질없는지 가르쳐주지.’

완전 회복은 사용할 수 없다. 쿨타임이 12시간이고, 그 절반의 절반도 지나지 않았다.

조심해야 하나, 질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내 손엔 칼이 들려있고, 놈들은 맨손에다 알몸이다.

“쓰으읍.”

숨을 들이켰다. 근육이 팽창한다. 나는 칼자루를 꽉 쥐고서 놈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하, 한 번에 덮쳐!”

사방에서 일제히 손을 뻗어온다. 나는 몸을 회전하며 칼을 휘둘러 원을 그렸다.

피와 비명이 튀었다.

“아아아악! 내 눈!”

“내 손이!!”

놈들이 당황한다. 그리고 놈들 사이에서 공포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나를 보는 눈에 두려움이 담긴다. 몇몇 머리 좋은 놈들은 내 옆에 놓인 무기를 가지려고 뛰었지만, 내가 허락할 리 없었다. 무기를 가지려는 놈들을 최우선으로 죽이고, 가장 가까이 있는 놈들부터 죽이기 시작했다.

놈들은 공포로 몸이 굳은 채 동료가 도륙당하는 걸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다. 도망? 유일한 출입구는 내 등 뒤에 있었고, 창문은 사람이 나가기엔 너무 작았다.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목공소에 살아 있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3명이 전부였다. 그중에 남자는 나밖에 없었다.

미네와키 쥬리에와 아이자와 나치코에게 다가가려다가 멈췄다. 그녀들은 나를 보며 덜덜 떨고 있었다. 열 명이 넘는 인원을 3분 만에 다 죽여버렸으니 그럴 만했다.

“…….”

죽일까. 말까.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녀들에게 살의를 느끼지 않는다.

그녀들의 배신? 애초부터 믿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는데 그게 배신이라 할 수 있을까.

‘내 취향도 아니어서 강간할 생각도 안 들고. 이년들이 어떻게 되든 알 게 뭐야.’

남자라면 죽였겠지만, 여자이니 자비를 내리기로 했다. 혹시 모르는 일이다. 그녀들이 미래에 미녀를 낳을지.

‘뭐, 퀘스트가 끝난 나는 현실로 돌아가겠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죽일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러기로 했다.

쨍그랑.

일본도를 떨어뜨렸다.

손에 힘이 풀린 게 아니다. 버린 것이다. 10명이 넘는 사람을 베면서 날이 상했다. 다른 무기를 찾아야 했다. 다행히 일본도는 한 자루만 있는 게 아니었다. 두 자루가 더 있었다. 일본인이라 그런지 일본도를 선호한다.

‘이 무기도 있군.’

체인소.

전기톱이었다.

실제 무기로서의 효율은 둘째치고 전기톱의 엔진 소리는 사람의 공포를 부른다. 나는 전기톱을 챙겨 목공소를 나섰다.

안에 있는 두명의 여자에겐 시선도 주지 않았다.

‘알아서 하겠지.’

•••

위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전기톱이 회전하는 소리가 마을에 울렸다.

“아아아아아아아악!”

마을 사람 한 명이 비명을 내지르며 도망간다. 나는 놈을 끝까지 따라가 전기톱을 휘둘렀다. 전기톱이 놈의 등을 가른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나는 이마에 흐르는 핏물을 손등으로 닦으며 시체를 걷어찼다.

저 앞에 병원이 보였다. 여기까지 오면서 마을 사람이 보이는 족족 죽였다. 대충 8명은 죽인 것 같았다.

‘죄다 죽었는지 사람이 안 보이던데… 저기 있었군.’

병원 옆, 저택에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작은 공성전을 벌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저택 안으로 들어가려 했고, 대학생들은 저택 안에서 버티고 있었다. 담을 넘는 마을 사람에게 돌멩이를 던지거나, 무기를 휘두른다.

마을 사람들 중심에는 시마다 파출소장이 있었다. 그는 흥분한 열댓 명의 마을 사람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그들은 아직 내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저항이 너무 거칠군. 담을 넘으려 하니 돌멩이가 날아오고…. 사람이 더 필요하겠어. 지원은 어떻게 됐지?”

“목공소에 있는 놈들에게 연락했는데… 감감무소식입니다.”

“목공소에 일이 생긴 건가.”

“일은 무슨. 여자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겠죠.”

“10명만 더 있어도 일제히 담을 넘어서 덮쳤을 텐데….”

“저택에 불을 지르면 안 됩니까? 그럼 저 어린놈들이 알아서 튀어나올 텐데요.”

“이 저택이 누구의 것인지 잊었나? 무녀님의 본가다. 무녀님의 진노를 감당할 자신 있나?”

“…잘못 말했습니다. 못 들은 걸로 해주십시오. 제가 오죽 답답했으면 이렇게 말했겠습니까….”

“못 들은 걸로 하지.”

위이이이이이이잉!

전기톱이 돌아간다. 저택 앞에 있던 마을 사람들이 고개를 획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들은 조용히 나를 노려봤고, 나는 그들에게 히죽 웃어 보이며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시마다가 리볼버를 꺼내 들었을 때는 늦었다. 나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신나게 전기톱을 휘둘렀다.

“아아아아악!”

비명이 울려 퍼진다.

탕! 타앙! 탕!

시마다는 마을 사람들이 주위에 있음에도 주저 없이 리볼버의 방아쇠를 당겼다. 내 앞에 있던 마을 사람이 총에 맞아 쓰러진다. 나는 다른 마을 사람의 뒤로 이동했다. 사람을 엄폐물 삼아 시마다에게 접근한다.

“너무 대놓고 쏘잖아. 총알에 맞는 마을 사람이 불쌍하지도 않아?”

“네놈을 죽이는 게 우선이다.”

탕!

4발째 총알은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전기톱을 바닥에 버렸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권총 두 자루를 꺼냈다. 리볼버가 아니라 자동권총이다.

“총?! 이런 미친!”

“검은 옷을 입은 놈들을 죽이고 빼앗았어. 쌔끈하지? 내 사격 실력은 형편없지만… 이 거리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양손에 쌍권총을 쥔 나는 시마다를 향해 난사했다. 시마다의 머리와 몸통에 7개의 총알이 박힌다. 나는 이어 도망치는 마을 사람들을 뒤쫓으며 총알을 난사했다.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사람이 죽어 나갔다. 10m 거리면 몰라도 3m 거리라면 나도 헤드샷을 할 수 있다.

거리는 마을 사람의 시체로 가득했다. 나는 총알 없는 빈 권총을 내다 버리고 저택 앞으로 걸어갔다.

“계세요?! 접니다, 성 유진! 마을 사람들은 다 처리했습니다! 문 열어주세요!”

“…….”

대답은 바로 들려오지 않았다.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뭐해. 문 열어.”

“…나카가미. 너는… 두렵지 않나?”

“유진은 내 남자친구야. 비켜. 내가 문 열 거니까.”

“…….”

문이 열렸다.

금발의 미녀, 나카가미 리사가 나를 보더니 씨익 웃었다.

“멋진 모습인걸?”

나는 전신이 피투성이였다. 물론 내 피는 아니다.

“무사해서 다행이네요, 선배.”

문 안으로 들어갔다.

부장인 모리 마사히로를 비롯한 서클원들이 보인다. 모두 나를 경계하고 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그들 앞에서 수십 명을 총으로 쏴 죽였으니까. 게다가 저들로선 내가 밖에 있는 이유도 궁금할 것이다.

“성. 바로 문을 열지 못한 건….”

“이해합니다, 모리 선배. 다른 사람이 나인 척 연기 할 수도 있으니까요.”

“…고맙군. 네가 왜 밖에서 왔는지, 총은 어디에서 났는지… 네게 묻고 싶은 게 많다.”

“다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근데 샤워하고 해도 괜찮을까요? 지금 제가 무척 찝찝해서.”

“오히려 내가 부탁하고 싶군.”

•••

샤워를 끝내고 옷도 갈아입었다.

뽀송뽀송한 몸이 되었다.

나는 깨끗해진 손을 바라봤다. 만화나 영화를 보면 피를 묻힌 손은 깨끗이 씻어도 피가 묻은 것처럼 보이는데… 나는 아니었다. 손은 깨끗하고 향긋한 비누 냄새가 났다.

서클원들이 모두 모여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긴장한 눈으로 날 지켜봤다. 나는 그들 중심에 털썩 앉아 이 마을에 대해 말했다. 내 말을 들은 모두가 경악한다. 몇몇은 구역질을 참는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중 모리 마사히로가 분노에 찬 눈으로 이를 갈았다.

“…인간을 재료로 혈단이라는 마약을 만드는 건가. 이 마을은… 그 공장이었고.”

“네. 우린 재료가 될 뻔했습니다. 타나카 선배와 곤조 선배, 사쿠라이 선배의 시체도 병원 지하에서 발견했습니다. 못 믿으시겠다면… 당장 여기 별채에 가서 확인해보시면 됩니다.”

“별채는 우리도 확인했다. 그… 혈단이라는 약과 마약 가루가 있는 걸 확인했지. 지하 통로를 발견하긴 했는데… 일단 막아뒀다. 그쪽으로 마을 사람들이 들어오면 곤란해지니까. …설마. 지하 통로 너머에 그런 기계가 있을 줄은 몰랐지만….”

모리 마사히로는 어떻게든 분노를 통제하려 애썼다. 그가 분노를 느끼는 이유는 작년에 이 마을에서 실종된 친구 때문이리라.

“제가 봤을 땐 이 일에는 오오카루마 마을만 관련된 게 아닙니다. 외부의 조력이 있었을 겁니다.”

“…혈단을 꾸준히 생산한다면… 외부에서도 시체를 들여와야겠군.”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외부의 조력자들이 이미 산 아래를 포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우리는 이 마을에 갇힌 건가. 너의 말대로라면 산에 내려가봤자 포위하고 있는 놈들이 달려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겠군.”

“네. 그리고 여기에 가만히 있는 것도 안 좋습니다.”

“놈들이… 마을로 올라올 수 있으니까.”

모리 마사히로가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의 표정이 안 좋았다.

“방법이 있습니다.”

“…방법?”

“이 일의 책임자는 무녀입니다. 무녀를 붙잡으면… 방법이 생길 겁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외부와 연락할 수만 있다면… 이곳에서 벌어진 참혹한 일들을 알리고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한패 일수도 있지 않나?”

“일본 정부가 아닌 곳에 도움을 청하면 되죠. 미국이나 한국에요.”

“……여긴 일본이다.”

“혈단. 그 약품이 알려지면 미국과 한국이 가만히 있겠어요? 특히 한국은 일본과 사이가 안 좋잖아요.”

모두가 생각에 잠겼다.

“…가능성이 있어.”

후도 준이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눈이 반짝인다. 삶을 향한 의지가 느껴진다. 그들도 이런 곳에서 죽고 싶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좀 더 대화를 나누고 결론을 냈다.

신사를 찾아가 무녀와 붙잡아 협박해 외부와 연락하기로. 설령 무녀가 협박에 굴복하지 않더라도, 무녀는 인질로서 가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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