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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181화 (1,181/1,497)

< 1181화 > 1181. 15일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의사 가운을 입은 2m에 달하는 거구의 남자가 무심한 눈으로 날 보고 있다.

“누구냐.”

“카미노야마 카즈토. 이 병원의 병원장이다.”

“병원장? 여기가 병원이라고?”

주위를 둘러봤다. 피와 살덩이가 있긴 하나 병원 같은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내가 볼 땐 여긴 공장이었다.

“본가와 병원은 연결되어 있다. 효율을 위해 이런 식으로 설계했지. 재료 수급은 병원이 편하고, 귀중한 완성품인 혈단은 본가가 관리한다.”

병원은 저택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곳에 올 때 지하 통로를 지나왔으니 여기가 병원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뭐, 여기가 병원이든 아니든 아무래도 좋지만.

일본도의 칼자루를 꽉 쥐었다.

카미노야마 카즈토는 여전히 무심한 눈빛으로 가운 주머니에서 무기를 꺼냈다. 검은색의 권총이 모습을 드러냈다.

콜트 M1911.

100년이 지나도 사랑받는 권총의 총구가 나를 겨눈다. 나는 피눈물을 흘리면서 놈을 노려봤다.

불리하다. 아니, 불리한 수준이 아니다. 놈과 나 사이에는 10m 이상의 거리가 벌어져 있다. 지금 내 신체 능력으로는 10m의 거리를 한 번에 좁힐 수 없다. 달리는 순간 총알이 날아올 것이고 몸에 구멍이 생기겠지.

‘완전 회복을 써야겠군.’

한 번 죽을 각오는 이미 끝마쳤다.

“네게 제안 하나 하지.”

“…제안?”

“마을 사람을 수십 명을 죽였다지? 네 능력이 탐나는군. 남부럽지 않은 연봉을 지급하지. 내 밑에서 일해라.”

“미안한데, 난 이 마을에 처박혀 있을 생각 없어.”

“그거라면 걱정 마라. 이번 사태가 수습되면 작업장을 옮길 생각이다. 무녀가 허락해야겠지만…. 누구 덕분에 이 마을의 가치가 떨어졌으니 허락하겠지.”

“그래도 싫어. 네 새끼 밑으로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거든.”

“아쉽군.”

그가 방아쇠를 당겼다. 그의 손가락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곧장 옆에 있는 기계 뒤로 이동했다.

“총알을 피할 줄이야…. 대단하군.”

“카미노야마 카즈토. 네가 이 마을… 아니, 이 사업의 총괄자냐?”

“사업이라…. 마음에 드는 단어다. 그러나 총괄자는 내가 아니다. 굳이 말하면 2인자지.”

“신사의 무녀님이 총괄자라는 거군. 무녀랑은 무슨 관계지?”

“형제다. 뭐, 그 괴물 년이 날 오빠라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 테지만….”

카미노야마 카즈토는 쉽게 대답했다. 나는 그가 날 죽이기 위해 가까이 다가오기를 바랐지만, 그는 거리를 좁히지 않는다. 대신 옆으로 걸어가 날 사격할 수 있는 위치를 점한다.

나는 놈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기계 옆으로 이동했다. 팅! 기계에 부딪힌 총알이 튕겨 나갔다.

“괴물이라고? 괴물 치고는 아주 예쁘던데.”

“나는 사람의 외면이 아닌 내면을 본다. 사람의 외면이란 결국 살덩어리에 불과하다. 무녀는, 그 여자는 사람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한다.”

“가지고 논다라….”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 사람들이 서클원들을 죽이려 했다면, 마을에 들어온 첫날에 죽일 수 있었다.

사람, 무기, 지형. 그 모든 게 마을에 유리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첫날에 공격하지 않았다. 대신에 위화감을 연출했다. 기이함과 위화감, 공포감을 조성한다. 잘 짜인 연극처럼. 그리고 무녀는 연극의 작가이며, 연출가다.

하지만 그러려면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무녀가 이 마을을 완전히 장악해야 할 것.

“어떻게? 무녀는 어떻게 이 마을을 장악했지?”

“신앙과 마약이다. 산신이라는 되지도 않는 개소리로 마을 사람들을 홀렸지. 적절하게 마약을 사용하고, 혈단은 신의 선물로 꾸민다. 놀랍게도 마을 사람들은 별달리 의심하지 않고 믿더군.”

“혈단이 그만큼 뛰어나니까. 효과를 보면 믿을 수밖에 없겠지.”

먹는 것만으로 신체 능력이 상승한다. 감기에 걸린 상태로 먹으면 감기가 순식간에 낫는다.

이 세계관에서 혈단은 상식적이지 않은 물건이었다. 거기에 마약까지 이용했다? 게임 끝난 거나 다름없다.

“그 여자는 혈단이 없어도 마을을 지배했을 거다.”

“여동생을 고평가하고 있군. 그거 아나? 여기에 오기 전에 저택에 있는 늙은이를 죽이고 왔다.”

“아버지가 죽었나. 그래서? 내가 네게 분노를 느끼기를 바라나?”

“애비가 살해당했는데 화가 안 나? 이거 호로자식이네.”

“무능한 인간이 죽었을 뿐이다. 나는 오히려 네게 호감을 품고 있다.”

“애비랑 사이가 안 좋았나.”

대화를 이어가는 도중에도 전투는 이어졌다. 놈은 신중하게 방아쇠를 당겼고, 나는 기계를 엄폐물 삼아 놈과의 거리를 좁혔다.

“아버지랑은 상관없다. 그 여자, 무녀가 너 때문에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괴성을 지르더군. 자신의 각본이 망쳐져 화가 난 것이지. 그 모습을 보니 십년 묵은 체중이 확 내려가더군. 아주 통쾌했다.”

탕.

총알이 날아온다. 아슬아슬하게 내 뺨을 스쳤다.

‘3m. 이 정도면… 완전 회복을 쓰지 않고도 놈을 죽일 수 있겠어.’

결심하고 놈에게 달려들려고 할 때였다.

콰앙!

문이 부서지듯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왔군.”

카미노야마 카즈토가 거리를 벌리며 물러선다. 그는 애초에 시간을 끌며 난입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총을 가운 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기계 위에 올라가 난입한 자를 쳐다봤다.

검은 옷을 입은 거구의 남자였는데 몸의 비율이 이상했다. 하체는 평범한 것에 비해 상체가 지나칠 정도로 컸다. 팔뚝은 나무통 같았다. 머리를 검은색 천으로 가리고 있었다. 놈이 숨을 내쉴 때마다 머리를 가린 검은색 천이 흔들린다.

“…조센징. 무녀님께서 네놈을 죽이라고 말씀하셨다.”

놈은 성큼성큼 다가온다.

“…저거 인간이야?”

“인간이다. 혈단을 이용해 개조를 좀 했을 뿐이지. …문제는 내 말을 전혀 듣지 않는다는 거지.”

“저리 비켜라, 병원장.”

“시바타. 여기 있는 기계는 비싼 거다. 되도록 부수지 말도록.”

“…….”

시바타라 불린 놈은 저돌적으로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기계에서 뛰어내려 옆으로 피했고, 시바타는 기계와 부딪혔다. 기계가 부서진다. 안에 들어 있던 인간의 피가 바닥에 쏟아졌다.

“여전히 무식하군.”

카미노야마 카즈토가 혀를 찼다. 그는 벽에 기대어 느긋한 표정으로 상황을 주시한다. 담배를 꺼내 입에 무는 것을 보니 끼어들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조센징…! 죽인다…!”

기계와 부딪힌 시바타의 몸은 멀쩡하지 않았다. 오른쪽 어깨와 팔뚝 모양이 찌그러지고 상처가 났다. 놈의 근육이 꿈틀거린다. 상처가 사라지고 찌그러진 근육이 원래 형태를 찾는다. 말도 안 되는 회복 속도다.

놈은 커다란 손으로 기계를 들어 올렸다. 못해도 500kg은 할 것 같은 기계를 나를 향해 아무렇지 않게 던진다.

나는 바닥을 굴려 공격을 피했다.

“이런 괴물을 만들어냈다고?!”

“무녀는 이렇게 말하더군. 산신의 기적이라고. 그리고 내 의견으로는 기적에 가까운 우연이다.”

카미노야마 카즈토가 대답했다.

“무녀님! 저놈을 죽일게요! 네! 산신님의 뜻대로!”

“저 새끼. 누가 봐도 뇌가 병신이잖아.”

“무녀가 공들여 세뇌한 결과다. 곁에서 봤는데… 아주 철저하게 세뇌하더군. 만약, 내가 시바타처럼 세뇌당했다면 망설임 없이 자살했을 거다. 뭐, 이해는 한다. 시바타 정도의 괴물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나는 카미노야마 카즈토에게 대꾸하지 못했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시바타의 공격을 피하기도 바빴다.

‘인간을 상대한다는 생각은 버려야겠어. 이놈은… 몬스터야.’

등급으로 따지면 E급 몬스터.

현실의 내 신체 능력이면 주먹질 한 번으로 머리를 터트려버릴 수 있으나, 지금의 나는 가속 능력도 쓸 수 없다.

시바타의 공격은 단순 무식하다. 그 행동이 뻔히 보이니 피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대로면 내가 죽는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체력의 한계가 보인다. 시바타의 공격을 피하고 칼을 휘둘러 반격한다. 그러나 효과가 없다. 치명적인 일격을 먹이기엔 힘이 부족하다.

‘…괴물을 상대하려면 나도 괴물이 될 수밖에.’

주머니에서 혈단을 꺼낸다.

7개.

난 3개를 더 꺼냈다. 10개의 혈단은 입안에 털어넣었다. 으적으적. 혈단을 씹고 삼켰다.

“미쳤군….”

카미노야마 카즈토가 흥미진진한 눈으로 날 지켜봤다.

새빨갛던 시야가 더 새빨갛게 물들고 온몸이 뜨거워진다. 넘쳐흐르는 주체하기 위해 칼자루를 더 강하게 쥐었다. 우지끈. 손의 피부가 찢어지고 뼈가 부러지며 피가 튀었다. 그러나 손아귀의 힘은 풀리기는커녕 더 강해진다.

고통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그 고통이 꼬집는 수준도 되지 않을 정도로 미약할 뿐이다. 이 자극은 도리어 기분 좋게 느껴진다.

“크, 크큭.”

시바타의 움직임이 훤히 보인다. 혈단의 효과로 동체 시력이 상승했다는 증거였다.

‘해볼 만 해.’

나는 놈과 정면에서 부딪혔다. 놈의 오른팔을 반쯤 잘랐고, 놈의 왼 주먹을 맞아 뒤로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

안 된다.

혈단 10개를 씹었어도 놈에 비해 신체 능력이 떨어진다. 그나마 혈단의 효과 덕분에 즉사하지는 않았다. 갈비뼈 대여섯 개는 부서진 것 같지만.

“헉….”

숨 삼키는 소리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당황한 카미노야마 카즈토가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내 옆구리에 쐈다. 총알이 옆구리에 박힌다. 고통이 없으니 위험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나는 칼을 휘둘러 카미노야마 카즈토의 목을 베었다.

아래로 떨어지는 머리통을 잡아 시바타에게 던졌다. 시바타는 날벌레를 쳐내듯 왼손으로 머리통을 받아쳤다. 머리통은 기계 쪽으로 날아가 수박처럼 박살 났다.

시바타가 뛰어온다.

나는 문을 열고 도망쳤다. 정면으로 싸우는 건 포기했다. 혈단을 더 먹어도 저놈에겐 안 될 것 같다.

“거기 서라!!”

계단을 올라가자 병원 1층이 나왔다. 불이 켜져 있었고, 간호사 몇 명이 보였다. 젊은 간호사는 없고 죄다 중년인이다.

“꺄아아아아악!”

간호사들은 나는 보자마자 비명을 내질렀다. 이해는 한다. 혈단을 10개나 처먹었으니, 지금 내 꼴은 사람 꼴이 아닐 것이다.

나는 간호사들을 지나쳐 로비 쪽으로 나갔다. 로비에 있던 정장 입은 남자들이 벌떡 일어나더니 품에서 총을 꺼내 나를 겨눈다. 반응은 제법 빠르지만, 총구가 내 움직임을 쫓지 못한다. 나는 권총을 든 놈들을 죄다 베어 죽였다.

‘권총을 얻었군. 그 괴물 새끼도 총 앞에선 평등하겠지.’

나는 내 뒤를 쫓는 놈에게 총을 쐈다. 머리를 노렸으나, 머리에 명중하는 총알은 하나도 없었다. 대신 놈의 몸에 총알 몇 발이 박혔다.

총은 평등하지 않았다.

놈의 몸에 박힌 총알은 밀려 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놈은 그 순간까지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이리 와서 얌전히 죽어라!”

“얌전히 죽겠냐.”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원 밖으로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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