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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175화 (1,175/1,497)

< 1175화 > 1175. 15일

열심히 밥을 먹고 있는데 구멍가게의 문이 열리며 손님이 들어왔다. 나와 나카가미 리사는 고개를 빼 손님을 확인했다.

하가와 료코와 와다 쿄시로였다.

“나카가미 선배랑 성 상?”

와다 쿄시로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옆에 서 있는 하가와 료코는 눈살을 찌푸리며 나와 나카가미 리사를 바라보고 있다.

“1학년들이잖아. 사러 온 거야?”

“나카가미 선배. 식사… 하고 계셨네요. 여기 식사도 팔아요?”

“파는 건 아니야. 할머니가 같이 식사하자고 해서 하는 중이야. 그렇죠, 할머니?”

나카가미 리사가 노파에게 웃으며 말했다. 노파는 내 눈치를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럼. 혼자 밥을 먹기엔 적적해서 학생들을 불렀다네.”

와다 쿄시로와 하가와 료코가 다가왔다.

꼬르르륵.

음식을 확인한 와다 쿄시로의 배에서 민망한 소리가 났다. 와다 쿄시로가 얼굴을 붉혔다.

“학생들도 배고프지? 와서 먹어.”

노파는 내 눈치를 보다가 밥그릇에 밥을 담기 시작했다.

“사양해야 하는데… 너무 먹음직해서… 사양하고 싶지 않네요.”

“사양할 필요 없어.”

“그, 그럼 조금만.”

와다 쿄시로와 하가와 료코가 식사에 참석했다. 와다 쿄시로는 연신 감탄하며 음식을 먹었고, 하가와 료코는 의심 가득한 눈으로 젓가락을 깨작거렸다.

“와. 진짜 맛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것 같네요.”

이 자리에서 와다 쿄시로만 별생각 없는 것 같았다.

“…저기, 나카가미 선배와 성 상은 왜 여기에 같이 있었나요?”

하가와 료코가 조심스레 물었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나카가미 리사가 웃는 얼굴로 내 오른팔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우리 어제부터 사귀기로 했어.”

“……왜요?”

“왜 냐니. 좋아서 사귀지. 유진은 좋은 남자야. 내게 딱 맞는 남자이기도 하고. 반대로 유진에게도 나 같은 여자가 딱 맞고.”

“…축하드려요. 선배.”

“축하드립니다, 선배! 성 상!”

하가와 료코와 와다 쿄시로가 말했다.

의외인 점은 하가와 료코였다. 대놓고 기뻐할 줄 알았는데 무표정했다. 그녀는 아무 관심 없다는 듯 잡채에 젓가락을 뻗었다. 당면이 젓가락에서 미끄러졌다. 그녀는 젓가락질을 몇 번 더 하고서야 당면을 집었다.

어느 정도 배가 찬 와다 쿄시로는 어딘가 어색한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 맞다. 아까 모리 선배에게서 타나카 선배에 대한 말을 들었는데…. 타나카 선배가 밤사이에 또 도망쳤대요.”

“도망쳤다고?”

나카가미 리사는 그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 타나카 히로시면 내가 머리채를 잡아 벽에 찍어 죽인 놈이다. 시체는 그대로 유치장에 내버려 두고 왔으니 경찰이 알아서 치웠겠지.

“네. 모리 선배도 시마다 상…. 그 파출소장에게서 들었다고 하던데 산 아래로 도망쳤대요.”

“어떻게? 그놈은 유치장에 갇혀 있었을 거 아니야?”

“유치장 철창이 고장 나 있어서 제대로 안 잠겨 있었다던데요. 모리 선배랑 같이 타나카 선배에게 연락하려고 했는데, 휴대폰이 꺼져 있어서 연락이 안 돼요. 곤조 선배랑 사쿠라이 선배도 마찬가지고요.”

“와다. 아직 그놈들을 선배라고 불러?”

“아…. 나카가미 선배. 그 선배들이 성격이 좀 안 좋긴 한데… 범죄를 저지를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무슨 근거로?”

“감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와다 쿄시로는 노파를 힐끗거리며 망설이다가 말했다.

“이 마을은 좀 이상해요.”

“흐음.”

나카가미 리사는 고개만 끄덕였다. 와다 쿄시로를 보는 그녀의 눈빛이 약간 바뀌었다. 돌멩이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조금 특이한 돌멩이를 보는 눈빛이다.

우우우웅.

와다 쿄시로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나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은 배터리를 아끼려고 스마트폰을 꺼놓은 상태다.

“모리 선배네요. 오후 3시까지 남자 숙소로 모이래요. 오늘 저녁에… 마을에서 여름 축제를 한다는데요?”

오오카루마 마을의 여름 축제.

재팬 페스티벌 스터디 서클이 이 마을에 들어온 이유가 이 축제를 조사하여 실적을 쌓기 위해서다.

부장인 모리 마사히로 입장에선 고립된 상황에서도 이 기회를 놓칠 순 없다. 다른 서클원들도 마찬가지다. 고립은 고립이고 대학교로 돌아간 뒤의 상황도 생각해야 하니까.

식사가 끝나고 와다 쿄시로와 하가와 료코는 음료수를 비롯한 식재료를 구입했다.

“나카가미 선배, 성 상. 여기에 계속 있을 거예요?”

와다 쿄시로의 질문에 내가 씩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랑 이야기 할 게 있어서. 3시 전까지 돌아갈 테니 걱정 마.”

오후 3시까지 2시간 이상 남았다. 그들은 떠났고 구멍가게에는 우리 셋만 남았다.

노파는 덜덜 떨었다. 내가 해코지하지 않을지 두려워하는 것이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나는 노파에게 아무 관심 없었으니까.

“리사 선배. 밥 먹었으니 운동해야죠?”

“여기에서 할만한 운동이 있어?”

“섹스 운동은 어디서나 가능해요. 나랑 선배가 같이 있다면요.”

“풋. 좋아. 나도 운동하는 건 싫어하지 않으니까.”

그녀는 화끈하게 옷을 집어 던졌고, 우리는 노파가 보는 앞에서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

“할망구! 구석에 찌그러져 있어!”

“…네, 네.”

노파는 구석에 앉아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

나와 나카가미 리사가 남자 숙소로 들어갔다. 약속 시간 보다 일찍 왔는데도 모두 모여 있었다.

타나카 히로시와 똘마니 2명이 사라지고 서클원은 9명이었다. 남자 4명과 여자 5명이다. 여자가 더 많았지만, 여자들은 모두 소극적이었다.

“좋아. 다 모였군.”

부장인 모리 마사히로는 무언가를 가져와 우리들 앞에 펼쳤다.

오오카루마 마을 지도였다.

“모리 선배. 지도는 어디서 구했습니까?”

내가 물었다. 이 마을은 이상하다. 마을 주민들은 명백하게 무언가를 노리고 있다. 어제 들었던 타나카 히로시의 말이 사실이라면 놈들의 목적은 우리의 목숨과 관련 있다. 마을 지도 같은 중요한 정보를 우리에게 줄 리 없다.

“아, 이거? 후도와 같이 직접 만들었다.”

후도 준. 3학년 남학생이다. 그는 모리 마사히로와 유독 친해 보였다.

“잘 만드셨네요.”

“마을 곳곳을 촬영한 디지털카메라 자료를 참고해서 만들었다.”

“그런데 지도는 왜? 굳이 만들 필요가 있었나요?”

“음. 있으면 편할 것 같아서 말이다.”

모리 마사히로가 대충 둘러댔다. 물론 그럴 이유가 아닐 것이다. 모리 마사히로는 이 마을의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 지도를 준비한 것 같다.

그는 지도 한 곳을 가리켰다.

“여기가 우리 숙소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마을 출입구와 떨어져 있다. 신사와도 꽤 거리가 있는 편이지.”

숙소 뒤쪽에는 산이 있었고, 그 주위에는 민가 대신 밭이 있었다.

“아까 후도와 뒤쪽을 탐색해봤다. 멀지 않은 거리에 낭떠러지가 있더군. 꽤 깊은 낭떠러지인지라 이쪽으로 밖으로 나가는 건 불가능하다.”

와다 쿄시로가 손을 넣었다.

“모리 선배. 꼭 밖으로 나갈 방법을 설명하려는 것 같은데… 우린 도로가 수리될 때까지 여기에 있기로 했잖아요.”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이 마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타나카와 곤조, 사쿠라이가 경찰에 잡히고 도망쳐서 실종되었다. 곤조와 사쿠라이는 둘째치더라도 타나카는 도망칠 수 없는 몸 상태인데도 밤사이에 도망쳤다.”

“경찰이… 타나카 선배에게 뭔가를 했다는 겁니까?”

와다 쿄시로가 심각한 어조로 물었다.

“…물증은 없다.”

“심증은 있다는 거군요.”

“저번에 내가 했던 이야기 기억하나? 작년에도 이런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오오카루마 마을에 온 관광객이 실종된 사건이지.”

그때, 한 여자가 손을 들었다. 마른 몸과 큰 키답게 길쭉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녀는 긴 머리카락은 윤기가 없었고, 눈동자는 삼백안으로 날카롭다. 코는 매부리코이고 입술은 가늘며 턱이 뾰족했다. 음침하게 생겼다.

2학년인 미네와키 쥬리에다.

“모리 선배. 그 일 말인데요…. 제가 확인해봤는데요….”

“확인해봤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봤어요. 작년 여름에 관광객이 온 적은 없다던데요.”

“미네와키. 나도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대답은 모두 한결같더군. 부정하거나, 대답을 피하거나. 마을 사람들을 너무 믿지 마라. 마을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건 너도 알 텐데?”

“…….”

미네와키 쥬리에는 입을 다물었다. 모리 마사히로가 다시 사람들에게 말하려는 찰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스마트폰으로 선배가 말한 실종 사건도 조사해봤어요. 실종과 관련된 기사는 하나도 없었어요…. 선배는 어떻게 실종사건을 아셨어요…?”

모두의 시선이 모리 마사히로에게 향한다. 분위기가 무겁다. 고립된 상황인지라 모두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아 예민해졌기 때문이다.

“…후우. 작년에 이 마을에서 실종된 사람 중 한 명이 내 고향 친구였다. 마지막으로 통화했던 때가 바로 이맘때였지. 마을이 이상하다. 내가 들은 건 그 말이 전부였다. 경찰에 신고하고 수사를 진행해주기를 원했지만… 들은 체도 안 하더군.”

불편한 공기가 주위를 감돌았다.

미네와키 쥬리에의 얼굴은 본 나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는데 그게 꼭 귀신처럼 흉악했다.

“당신 때문이라는 거잖아!”

“…미네와키?”

“당신이 우릴 여기 데려오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거야! 당신은 실종된 친구를 찾겠다고 우릴 여기에 데려온 거야! 자기 사심을 채우기 위해! 타나카, 곤조, 사쿠라이가 실종된 것도 모두 당신 탓이야! 당신 탓이라고!!”

미네와키 쥬리에가 악을 쓰는 소리가 거실 가득 채웠다.

모리 마사히로는 두 눈을 질끈 감고 허리를 숙였다. 완벽한 90도 인사다.

“미안하다. 미네와키의 말대로 나는 실종된 친구 때문에 오오카루마 마을을 선택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혼자서 왔으면 됐잖아! 왜 우리를 끌어들인 거야?!!”

“…두려웠다. 이곳에 혼자 올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외면하며 잊고 지냈는데…. 기회가 생겨서 오오카루마 마을을 선택했다. 혼자가 아니라면 괜찮을 거라 생각 했다. …내가 너희만큼은 책임지겠다. 그러니 내 지시를 따라줬으면 한다.”

“아아아아악! 난 당신 못 믿어!!”

미네와키 쥬리에는 히스테릭을 잔뜩 부리더니 그대로 여자 숙소로 돌아갔다.

모리 마사히로는 그녀가 나갔음에도 머리를 들지 못했다.

결국 3학년인 후도 준과 나카가미 리사가 나섰다.

“전 이 사태의 모리 선배의 잘못은 20% 정도 있다고 봅니다. 나머지는 80%는 모리 선배 탓이 아니죠. 이 빌어먹을 마을과 일본 전체를 덮친 태풍 때문입니다. 탓하려면 마을 사람을 탓해야죠. 고개 드십시오, 모리 선배.”

“지금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떻게 하냐는 거지. 시시비비는 나중에 가려도 돼. 너희는 어떻게 생각해?”

나카가미 리사가 2학년과 1학년들에게 물었다.

우리는 모두 모리 마사히로를 두둔했다. 마음속으로는 불만을 품고 있을지는 몰라도 지금은 표출할 때가 아니다.

모리 마사히로는 모두의 의견을 확인하고서야 고개를 들었다.

“고맙다. 미네와키는… 내가 나중에 찾아가 사과하고 설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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