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170화 (1,170/1,497)

< 1170화 > 1170. 15일

“계십니까?!”

남자의 목소리가 울린다.

모리 마사히로는 숨을 들이켰다.

“…일단 나가보겠다. 누구 한 명 나랑 같이 가줬으면 좋겠군. 아니면 다 같이 나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내가 한 손을 들었다.

“제가 모리 선배랑 같이 가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성.”

모리 마사히로와 함께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모리 마사히로의 걸음걸이가 무겁다.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저번에 모리 마사히로가 말해준 이야기가 떠오른다. 작년에 이 마을에 있었던 실종사건. 겁에 질린 타나카 히로시를 보니 어쩌면 그 사건의 범인은 이 마을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뭐, 거의 확실하겠지. 이 세계는 그런 쪽 장르일 테니.’

모리 마사히로는 미세하게 떨리는 손에 애써 힘을 주며 현관문을 열었다.

대략 20명 정도의 마을 주민들이 있었다. 늙은이가 절반 이상이고 나머지는 중년인들이다. 가장 앞에 서 있는 중년인은 경찰복을 입고 있다. 근데 얼굴에 칼자국이 있어 경찰이 아니라 야쿠자처럼 보였다.

“오오카루마 마을에서 일하는 파출소장인 시마다입니다. 타나카 히로시가 여기로 도망친 걸 알고 있습니다. 그를 내주십시오. 아니, 비켜주시면 그를 체포하겠습니다.”

“시마다 상. 타나카는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했습니다.”

시마다는 어이없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얼굴에 남은 칼자국이 흉측하게 꿈틀거린다.

“범죄자가 그렇게 말했습니까?”

“범죄자…. 타나카가 무슨 일을 저지른 겁니까?”

“타나카 히로시. 그놈 성폭행범입니다.”

“…예?”

“자세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놈은 어디에 있습니까? 설마 범죄자를 두둔할 생각이십니까?”

“아, 아니. 좀 더 자세히 말해주십시오. 타나카가 범죄자라뇨? 타나카는….”

“놈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놈은 유치장에서 여기로 도망쳤습니다. 당신까지 공무집행방해죄로 체포하고 싶지 않으니 비켜주시죠.”

시마다가 억지로 들어오려고 했다. 모리 마사히로는 이를 악물고 버티다 소리쳤다.

“타나카는! 곤조와 사쿠라이가 마을 사람들에게 살해당했다고 말했습니다! 당신들, 타나카를 죽이려고 모여든 거지?!”

시마다가 멈칫했다.

“…이런. 아직 제가 전해드리지 못했군요.”

그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곤조와 사쿠라이. 그들은 다른 방향으로 도망쳤습니다. 다른 순경이 그들을 쫓고 있습니다.”

“…그 말을 믿으라고?”

“조금만 조사해도 알아낼 수 있는 정보를 왜 거짓말하겠습니까. 저는 경찰입니다.”

시마다가 경찰수첩을 보여줬다.

모리 마사히로는 몸에 힘을 뺐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타카나 히로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게 맞은 상황이니까.

“잠깐.”

모리의 앞으로 나섰다.

“…또 뭡니까.”

“뒤에 있는 사람들은 뭐지?”

“마을 어르신들입니다. 절 도와주기 위해 함께 오셨습니다.”

“내가 노인 냄새를 싫어해서 숙소에 노인 냄새가 배는 건 못 참거든. 경찰은 댁뿐이니 댁만 안으로 들어가.”

노인들이 내 어조에 발끈한다.

“이, 이놈이!!”

“새파랗게 젊은 자식이 예의가 없군!”

“저놈 저거 말본새하고는!! 애미 애비가 가정 교육을 어떻게 한 거야!”

“어르신들 고정하십시오. 저는 범인은 놓칠 수 없기에 들어가 볼 테니 어르신들은 여기서 기다려주십시오.”

시마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모리 선배.”

“으, 음?”

“저 경찰 따라가서 도와줘요. 타나카가 범죄자면 잡아야죠.”

“그, 그래.”

모리 마사히로까지 올라갔다.

나는 바깥에 있는 이들과 대치했다. 시선을 천천히 돌리며 얼굴을 살핀다. 그들은 아까와 달리 긴장한 듯 입을 꾹 다물고 내 눈치를 살폈다.

‘이 새끼들 왜 이렇게 쫄았어?’

저들 모두 노인만 있는 게 아니다. 중년인이 섞여 있다. 그런데도 새파랗게 젊은 내 눈치를 본다.

“…알고 있네?”

영화 속 살인마를 생각하면서 말했다. 히죽 웃어주니 반응이 확실했다.

“……!”

흠칫.

일제히 놀라며 한걸음 뒤로 물러난다.

나는 그들을 보며 담담히 말했다.

“앉아.”

“…….”

“앉으라고.”

앞에 있는 노인의 어깨를 잡아 아래로 밀었다.

“끄아아아악!”

노인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앉는다.

“니들은 뭐해. 안 앉아?”

“이게… 무슨 짓이냐. 이러고도 네가.”

“앉으라고.”

짜증을 담아 중년인을 쳐다본다. 중년인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바닥에 앉았다. 다른 사람들도 그제야 우후죽순 앉는다.

나는 그들을 훑어보고 말했다.

“일어서.”

“…….”

그들이 일어난다.

“앉아.”

“…….”

“일어서.”

“…….”

“앉아.”

“…….”

“일어서. 아, 망할. 건방지게 앉지 말고 제대로 앉으라고. 내가 앉는 법도 알려줘야 하나? 앉아!”

한 번 짜증을 부리자 그제야 그들은 공손이 무릎 꿇고 앉았다. 나는 그제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리 선배!! 미쳤습니까! 저 경찰! 저놈들이 곤조와 사쿠라이를 죽였다고! 살인자를 데려와?! 미쳤어?!”

“진정해라, 타나카! 내가 최대한 도와주마! 대화부터 하자!”

“강간범 주제에 이제는 소설까지 쓰는군.”

2층이 시끄러웠다. 여러 가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뭐, 내 알 바 아니다.

나는 꿇어앉은 사람 중 한 명을 검지로 가리켰다.

“너 일어나.”

“…….”

지목당한 노인은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렸다.

“일어나라고! 한번 말하면 알아들어라! 부탁이니까!”

퍼억.

사정없이 노인의 복부를 걷어찼다. 노인은 바닥을 구르다가 몸을 웅크렸다.

“꺼억…! 아, 알았다…. 이, 일어날 테니 그만 때려라….”

노인이 부들거리며 일어났다. 나는 주위를 돌아봤다. 누구 하나 나서서 도와줄 줄 알았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똑바로 서.”

노인이 다리에 힘을 주었다. 허리를 꼿꼿이 세웠지만, 몸은 덜덜 떨리고 있다.

“아까 했던 말 또 해봐.”

“이, 일어날 테니 그만 때려라…?”

“그거 말고.”

“…….”

“시발. 갑자기 벙어리가 됐나?”

주먹을 들어 올리자 노인이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모기 날갯소리만큼 작았다.

“애, 애미 애비가 가정 교육을 어떻게… 한 거야….”

“이렇게 했다. 씹새끼야.”

노인의 무릎을 있는 힘껏 걷어찼다.

“끄아아아아아악!”

노인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진다. 무릎을 몇 번 더 걷어찬다. 다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꺾였다.

쪼그려 앉아 노인의 머리를 잡고 바닥에 처박았다. 푸욱. 바닥은 아직 마르지 않아 진흙이었다.

“옛날에 우리 엄마 아빠가 말했지. 자기들 욕먹을 짓은 하지 말라고. …했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했을 거야. 아무튼 나는 지금 생각했어. 우리 애… 엄마 아빠를 욕한 놈에게 진흙 먹는 형벌을 내리면 다시는 우리 엄마 아빠를 욕하지 않을 거라고.”

“푸으읍, 커억! 사, 살려…주… 커허허억!”

진흙을 한움큼 쥐어서 놈의 입에 강제로 쳐 넣었다.

“진흙 먹어 새끼야. 뭐, 바위 먹는 형벌보다는 낫잖아?”

“먹으라고.”

머리를 몇 번 후려치니 노인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노인의 머리를 밟았다. 노인의 얼굴이 진흙에 파묻힌다.

“계속 먹어.”

와장창!

2층 창문이 깨지더니 누군가가 아래로 떨어졌다.

타나카 히로시였다. 그는 숙였던 몸을 일으켜 주위를 한 차례 둘러봤다. 지금 보이는 광경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산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한다.

“타나카!!”

“멈춰!!”

위에서 모리 마사히로와 시마다가 소리치더니 2층에서 뛰어내린다.

나는 그들보다 빠르게 타나카 히로시를 뒤쫓아 산속으로 뛰어갔다.

‘타나카. 이 새끼 안 그래도 내 여자, 료코에게 찝적거리는게 마음에 안 들었어. 좋은 기회니 내가 조져버리자.’

지친 상태인 타나카를 쫓는 건 어렵지 않았다. 30M도 가지않아 놈을 따라잡았다.

“빌어먹을 조센징! 당장 꺼져! 난 도망쳐야 한다고!”

놈이 내게 주먹을 휘두른다. 가소로워서 웃음이 나왔다. 놈의 주먹을 잡아 뒤로 던졌다. 놈이 나무에 부딪혀 아래에 떨어졌다.

타나카에게 뛰어갔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모리 마사히로와 시마다가 달려온다.

“시간이 없군.”

“서, 성! 도, 도와줘! 내가 잘못했으니… 아아악!”

양팔과 양다리를 무너뜨리고 얼굴에 죽빵을 갈겨줬다.

“성! 그만둬!”

모리 마사히로가 달려와 내 몸을 잡았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타나카의 머리를 떨어뜨렸다.

“…아무리 범죄자를 쫓는 일이었다고 해도 너무 심했습니다.”

시마다가 타나카를 보며 말했다.

“이놈이 저항이 심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죽인 것도 아니니 적당히 봐주시죠?”

“……전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시마다는 고개를 돌렸고, 모리 마사히로는 복잡한 표정으로 날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우리는 타나카를 데리고 숙소로 돌아갔다.

그들은 여전히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시마다가 그들에게 말했다.

“어르신들 왜 앉아 계십니까?”

“아, 아니 이건….”

그들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누가 일어서도 된다고 했지?”

흠칫 놀란 그들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들을 포함한 시마다와 모리 마사히로의 눈이 내게 향한다.

“농담입니다. 농담. 그냥 해본 농담.”

“…….”

“…….”

당연히 분위기는 풀어지지 않았다.

시마다는 한 노인에게 걸어갔다. 내가 무릎을 박살 내고 진흙을 먹인 노인이었다.

“어르신… 괜찮으십니까. 무릎은 왜 이렇고… 얼굴에는 진흙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습니까?”

“아까 넘어지더군요.”

내가 태연하게 말했다. 그들이 경악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저, 저놈이…!!”

진흙 먹은 노인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날 가리킨다.

시마다가 날카로운 눈으로 날 바라본다.

나는 노인을 지긋이 쳐다봤다.

“…….”

겁에 질린 노인은 손을 내렸다.

“시, 시마다 군. 난 넘어졌을 뿐이네. 날 병원에 데려다주지 않겠나?”

“아, 그렇습니까. 저도 어르신을 직접 모시고 싶습니다만… 범죄자를 인도해야 해서 힘듭니다. 다른 분들, 괜찮으시다면 어르신을 병원에 데려다주시겠습니까?”

“우, 우리만 믿게.”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시마다는 타나카 히로시를 데리고 파출소로 갔고, 모리 마사히로가 그의 뒤를 따라갔다. 다른 사람들은 진흙 먹은 노인을 데리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나는 숙소 앞에 서서 시마다의 등 뒤를 바라봤다.

‘내가 노인의 무릎을 박살 냈다는 걸 알아차렸을 텐데…. 모르는 척했군.’

시마다의 허리춤을 바라본다. 리볼버 한 정이 홀스터에 들어가 있다. 일본 경찰이 쓰는 권총이다.

“시마다 씨!”

그를 불렀다. 시마다가 몸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할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조로인가 뭔가 하는 늙은이가 실종됐다고 들었는데… 아직도 실종된 상태입니까?”

“…지로 어르신 말이군요. 네. 아직 실종됐습니다.”

“그거참 안타깝군요.”

“…….”

시마다는 다시 몸을 돌려 걸어간다.

나는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그 노인을 죽인 범인이란 걸 아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군. …흐음. 오늘 밤에는 저놈을 죽일까. 권총이 있으면 꽤 쓸만할 거야.’

•••

그날 밤.

나는 구멍가게에서 자정이 될 때까지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구멍가게 주인인 노파는 내 눈치를 살폈다.

“자네. 언제까지 있을 생각인가? 우리 영업시간은 벌써 끝났네…. 벌써 자정이 넘었어.”

“아, 가야죠. 료코랑 떡쳐야 하는데…. 여기에 이러고 있을 순 없지.”

손에 든 맥주캔을 바닥에 버리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노파가 내 팔을 잡았다.

“이렇게 가면 어떡하나!”

“아, 또 뭡니까. 아까는 가라면서요.”

“값은 치르고 가야지! 8700엔 일세!”

“내가 돈을 안 가져와서…. 나중에 줄게요.”

“뭐? 우리 집은 외지인 외상 불가야!”

“아 씨발.”

짜증이 치솟았다.

눈앞이 빙글 돈다. 취기가 머리끝까지 오른 것이다. 나는 오랜만에 느끼는 취기에 당황하다가 끓어오르는 감정에 몸을 맡겼다.

노파를 발로 찬 것이다. 노파가 뒤로 날아가 몸을 꿈틀거렸다. 끙끙 앓고 있으나 죽지는 않았다.

“나중에 갚는다니까!”

냉장고에서 맥주캔을 하나 더 꺼냈다. 취기가 돌아서 그런지 술이 계속 당겼다. 소주도 먹고 싶은데 아쉽게도 냉장고에 소주가 없었다.

놈들이 나타나기를 구멍가게에서 밤까지 기다렸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잘못 생각한 모양이다.

비틀비틀.

술에 취하니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

‘이게 얼마 만에 취하는 거냐. 머리끝까지 취하니 기분 좋네.’

[대길(Lv. Master)이 발동합니다.]

퍼억.

어깨가 부딪혔다.

“어깨빵? 쒸바알!”

바로 주먹을 쥐고 응징했다.

전봇대였다.

“끄아아아아악!”

정신이 번쩍 드는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빌어먹을 고통은 기분 좋던 취기를 단번에 없애버렸다.

나는 빨간 주먹을 문지르며 고개를 들었다. 어둠을 틈타 누군가가 내게 접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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