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7화 > 1167. 15일
모리 마사히로는 서클원들을 모두 부르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모두 불만 가득한 표정이었으나, 대놓고 불만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현재 일본은 태풍과 지진으로 시름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에 불만을 표해봤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린 지진과 침수를 겪을 일이 없다는 거다.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만 있으면 된다.”
모리 마사히로가 그나마 긍정적인 말을 해왔다. 되지도 않는 말이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의 집은 모두 도시에 있으니까. 내가 빌린 원룸도 돌아가면 원망인 상태겠지. 뒷정리할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때였다. 형광등이 깜빡이더니 빛이 나갔다.
딸칵딸칵딸칵.
와다 쿄시로가 향광등 스위치를 계속해서 눌러보지만, 꺼진 형광등이 다시 켜지는 일은 없었다.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거실은 어두웠다. 창문에 붙여 놓은 신문지 때문이다.
“아, 뭐야. 정전이야?”
여자 3학년, 여자 중에서 최연장자인 나카가미 리사가 짜증스레 중얼거렸다.
“그래. 정전인 것 같군…. 있을 수 있는 일이 일어났다. 나는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해봐서 해결할 수 있는지 알아보지.”
모리 마사히로는 말하고서도 별 기대하지 않는 눈치였다. 지금 정전은 높은 확률로 태풍에 의해 마을 전체가 정전되었을 것이라고 예감한 것이다. 그럴 경우 마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태풍이 끝나고 전문가가 들어와 고쳐주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다른 곳은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있으니…. 일본의 느린 행정력을 생각하면 정전을 수리하기까지 몇 달은 걸릴지도 몰라.’
모리 마사히로는 건물 밖으로 나갔다. 후도 준은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타나카 히로시를 비롯한 양아치 삼인방은 기다렸다는 듯이 하가와 료코와 여자들에게 다가갔다.
“심심한데 보드게임이나 같이 하자. 이 마을에 올 때 챙겨온 게 몇 개 있거든.”
나카가미 리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스마트폰 빛에 비치는 그녀의 얼굴은 짜증으로 가득했다.
“야, 타카나. 개수작 부리지 말고 해야 할 일이나 해.”
나카가미 리사가 나서자 타나카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으나 이내 웃음으로 여유를 가장하며 말했다.
“해야 할 일이라뇨? 선배, 이 상황에서 뭘 합니까. 같이 즐겁게 시간이나 보내는 거 말고 할 건 없습니다. 선배도 심심할 겁니다. 스마트폰은 충전할 수도 없으니까요. 맥주 가져올 테니 선배도 같이 노시죠?”
“넌 뉴스도 안 봐? 오늘 밤에 바람이 더 심해질 거야. 최악의 사태가 있을 수 있으니 대비해야 해.”
“아니. 선배. 그걸 우리가 왜 합니까? 집주인이 해야죠.”
“그 집주인이 지금 마을에 없으니까 문제지. 비바람 맞으면서 자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대비 잘해.”
나카가미 리사는 반론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나와 와다 쿄시로를 쳐다봤다.
“너희는 여자 숙소 준비하는 거 도와줘.”
“네, 넵!”
“알겠습니다.”
와다 쿄시로와 내가 대답했다.
타나카 히로시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진다. 그는 무언가 내뱉으려 하다가 한숨을 쉬고는 다른 양아치들과 함께 우비를 입고 밖으로 나갔다.
“타나카 선배! 어딜 가시는 겁니까?!”
“와다. 내가 애새끼로 보여? 산책하는 것까지 너한테 보고해야 하냐?”
“아, 아뇨. 죄송합니다, 선배. 근데 산책이라니… 지금 날씨는….”
“닥쳐 새끼야.”
쾅!
타나카 히로시가 문을 확 열어젖히며 밖으로 나갔다. 나카가미 리사는 기가 찬다는 듯이 타나카 히로시의 뒤통수를 노려봤다.
양아치들이 정말 산책을 위해 밖으로 나가는 건 아니다.
그 목적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보나마나 여자다.
이 마을의 인구수는 150명이다. 첫날 이 마을을 둘러본 결과 대다수가 노인들이지만, 젊은이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학교에서 일하는 선생이나,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등이 그렇다.
‘어제 둘러보니 이 마을에 특출난 미녀는 없었지.’
내 목표는 여전히 하가와 료코와 나카가미 리사다.
마을 사람들이 말하는 ‘무녀님’이 조금 신경 쓰이기는 한데, 미녀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특별한 직책에 있는 여자라 해서 무조건 미녀인 건 아니니까. 나중에 볼 기회가 오겠지.’
나와 와다 쿄시로는 여자 숙소로 이동했다. 므훗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저녁 무렵이 될 때까지 숙소를 수리하거나, 태풍을 대비해 일해야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양아치 삼인방은 숙소로 돌아오지 않았다.
•••
나카가미 리사의 말대로 바람은 더 거세졌다. 바람 소리가 시끄러워서 쉽게 잠들 수 없었다. 거기다 바람에 돌멩이라도 날리는지 벽을 때리는 소리가 쉬지 않고 들린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 상?”
“와다. 깨어 있었냐?”
“시끄러워서 잠이 안 와. 성 상은?”
“마찬가지야. 배도 고프니 컵라면이나 먹으려고. 너도 먹을래?”
“난 됐어. 밤에 뭐를 먹는 건 안 좋아하거든. 타나카 선배… 아직 안 들어왔지?”
“그것들이 걱정되냐?”
“그것들이라니. 타나카 선배들이 안 좋은 사람들인 건 맞지만… 그래도 선배야.”
“선배면 선배 노릇을 해야 선배지. 나이 많다고 선배면 이 세상에 선배 아닌 사람이 어딨냐. 그놈들이 정 걱정되면 연락해보던가.”
“연락처가 없어.”
“……그놈들은 알아서 잘 있을 거야. 애도 아니니까.”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혹시 몰라 바로 여자 숙소로 가지 않고 부엌을 들렀다가 여자 숙소로 향했다.
비바람이 어찌나 센지 우비를 입었음에도 효과가 전혀 없었다. 몸이 축축하게 젖어 간다.
‘우산을 가져왔으면 바람 타고 날아갔겠군.’
그래도 좋은 점은 있었다. 강력한 비바람이 내 기척을 지웠기 때문이다. 숙소 문을 쳐다봤다. 당연히 현관문은 잠겨 있었다. 나는 철사를 꺼내 열쇠 구멍에 찔러 넣었다. 철컥철컥.
‘만화 같은 거 보면 쉽게 잘 따던데…. 안 되네.’
3분 정도 시도해본 나는 고개를 저으며 철사를 갖다 버렸다.
‘플랜 B로 간다.’
현관문 옆을 지나 창문 앞으로 이동했다.
여자 숙소는 남자 숙소와 구조가 똑같았다. 즉, 내 앞에 있는 창문은 남자 숙소로 치면 나와 와다 쿄시로가 머무는 방이다.
‘이 방을 이용하는 건 하가와 료코지.’
창문 안쪽은 보이지 않는다. 안쪽에 신문지와 테이핑을 해뒀기 때문이다. 원래는 나무판자를 붙이려고 했는데 숙소 곳곳을 보강하느라 나무판자를 다 써서 신문과 테이프로 창문을 보강했다.
창문에 오른 주먹을 갖다 댔다. 창문의 매끈함이 주먹을 통해 느껴진다. 나는 그 상태로 잠시간 기다렸다.
강력한 바람이 불어와 창문을 뒤흔드는 순간에 창문에서 주먹을 뗐다가 힘을 주었다. 원인치 펀치. 달리 촌경이라 불리는 기술이다. 이 세계에선 달인의 기술이지만, 내가 사는 세계에선 잡기 수준이다.
창문에 금이 간다. 힘 조절은 완벽했다. 나는 창문에 조금씩 힘을 가해 조용히 부쉈다. 창문에 붙은 신문지가 소리를 조금이나마 없애 주었다.
부서진 창문에 손을 넣고 잠금을 해제했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다다미 위에 조심히 내려선 나는 창문을 닫았다. 우비와 상의를 벗어 부서진 창문 구멍에 대충 박았다. 비와 바람이 들어오지 않는다.
하가와 료코는 벽장 쪽에 붙어 자고 있었다. 푹신한 이불을 깔고 얇은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 올린 채다.
‘이게 요바이인가. 정말 대단한 문화야.’
끝내주는 일본 전통 문화에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거린다.
나는 아예 바지와 팬티, 젖은 양말까지 전부 벗었다. 하가와 료코에게 다가간다. 얇은 이불이라 그런지 굴곡진 몸매가 보인다.
‘가슴은 E컵 정도 되겠군.’
하가와 료코. 일본의 전통 요조숙녀 같은 그녀가 내 밑에 깔려 어떤 교성을 흘릴까. 나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기대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얇은 이불을 한 손으로 잡고 잡아당긴다.
그 순간, 하가와 료코가 기다렸다는 듯이 두 눈을 부릅떴다.
“……!!”
하가와 료코는 내게 이불을 확 밀었다. 시야가 가려진다. 동시에 이불 왼쪽으로 단도가 찔러온다.
냉철하고 완벽한 기습이었다. 단, 내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녀를 덮칠 때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수많은 미인계에 당했던 나다. 여자를 안을 때 무엇을 조심해야 할지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하물며 이건 강간. 여자가 저항하는 건 당연하다.
설마 이렇게 저항할 줄은 몰랐지만.
나는 몸을 뒤로 빼며 단도를 피하며, 이불을 손에 말아 단도의 칼날을 쥐어 뺏었다.
“이 더러운 조센징이…!”
하가와 료코는 베개 밑에 숨겨두었던 다른 칼을 손에 쥐고 내게 휘두른다. 정확하게 목을 노린다. 망설임 없는 행동을 보니 평범한 여자로 보이지 않았다.
빼앗은 단도로 그녀의 공격을 막아냈다.
챙, 채앵.
‘요바이하러 왔는데 나이프 파이팅까지 하게 될 줄이야.’
하가와 료코는 마구잡이로 공격해오는 게 아니다. 내가 죽일 생각이 없다는 걸 알고 대담하게 몸을 밀어 넣는다. 거기에 칼날은 내가 조금만 방심해도 빈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전문적으로 배운 게 확실하다.
‘평범한 대학생이 아니었나?’
허나 부족한 게 보였다.
실전 경험.
연습은 많이 했어도 실제로 목숨을 걸고 싸운 경험은 없어 보였다. 그 증거로 공격에 페이크를 섞자 바로 걸려들었다. 흥분으로 인해 시야가 좁아졌다는 증거였다.
나는 일부러 빈틈을 내보였고, 하가와 료코의 칼날이 기회라는 듯이 달려든다. 나는 오히려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팔뚝과 겨드랑이로 료코의 단검을 잡고 그녀의 복부의 주먹을 내질렀다.
“커억!”
하가와 료코가 비틀거렸다.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도 간신히 버틴다. 나는 그녀의 손목을 꺾어 단도를 빼었다. 그녀를 밀쳐 침대로 떨어뜨리고 목에 칼을 겨눴다. 왼손으로 양 손목을 잡아 고정했고, 그녀의 하체는 내 다리로 막았다.
“끝났지? 아니면 무기를 더 숨겨났나?”
하가와 료코가 입을 오므리더니 나를 향해 침을 뱉었다. 타액이 아니라 바늘. 나는 급히 고개를 돌려 바늘을 피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반응이 조금만 늦었어도 바늘은 내 오른쪽 눈에 박혔을 것이다.
“앙칼진 수준이 아닌데.”
칼을 들고 그녀의 상의를 찢었다. 푸른색 브래지어가 반발하다가 끊어진다. 가슴이 출렁이며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벌어졌다.
“비열한 조센징…!”
하가와 료코의 입이 벌어지고 공기를 삼킨다. 나는 그녀가 소리지르기 전에 칼을 버리고 강제로 입을 막았다.
“좋게 가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
나는 그녀를 구속하기 시작했다. 이불을 찢어 재갈을 물리고 양 손목을 묶는다.
“겨드랑이가 꼴리네.”
하얀 겨드랑이를 매만졌다. 구속된 그녀는 수치심으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날 죽일 듯이 노려봤다.
나는 그녀를 범하기에 앞서 그녀의 소지품을 확인했다.
하가와 료코의 정체가 궁금했다.
‘정체를 알아내면 더 꼴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