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3화 > 1163. 15일
[성유진
레벨 : 80
근력 : 100 체력 : 100 민첩 : 100 지능 : 100 정력 : 100 마나 : 100]
[사용 가능 포인트 : 8,517]
유희 세계에서 나온 나는 포인트부터 확인했다.
8,517 포인트.
'일단 정력부터 올려둘까.'
[정력 능력치를 올리기 위해선 400포인트가 필요합니다.]
[정력 능력치를 올리겠습니까?]
알림창을 본 나는 무심코 혀를 찼다. 400 포인트. 랜덤 뽑기를 400번이나 할 수 있다. 물론 랜덤 뽑기를 400번 한다고 해서 그만큼의 가치를 뽑아낼 수 있을 거라고 보기에는 어렵지만.
'뭐, 포인트라면 얼마든지 또 벌 수 있어. 능력치를 올리는 건 나한테 투자하는 거야.'
[성유진
레벨 : 80
근력 : 100 체력 : 100 민첩 : 100 지능 : 100 정력 : 110 마나 : 100]
[사용 가능 포인트 : 4,517]
[정력 능력치를 올리기 위해선 600포인트가 필요합니다.]
[정력 능력치를 올리겠습니까?]
'능력치 100부터는 600포인트가 필요하군.'
남은 4,500 포인트를 보며 고민하다가 남겨두기로 했다. 나중에 포인트가 급하게 필요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쪽으로 향했다. 커튼을 젖히고 바깥을 바라봤다. 해는 이미 저물었다. 도로 위로 수많은 자동차가 줄 서 있는 광경이 보인다. 놀라울 건 없었다. 퇴근 시간마다 보는 광경이었다.
한동안 창문 밖을 멍하니 바라봤다. 가끔씩 내가 있는 현실도 창작물 속 세계가 아닐까 하는 웃기지도 않는 생각에 빠질 때가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럴 때였다.
'현실이 창작물 속 세계라면... 주인공은 누구지? 역시 유희 생활 능력을 가진 나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주인공 감은 나밖에 없었다. 이 세상에서 유희 생활 어플 능력을 각성한 내가 가장 특별했다.
'내 현실이 창작물 속 세계든, 뭐든 아무렴 어때. 난 내 인생을 즐기면 돼.'
스마트폰을 꺼내 날짜를 확인했다. 특별한 스케줄 같은 건 없었다. 당분간은 널널하다. 평소대로 C등급 던전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며 돈과 실적을 모으고 섹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된다.
'그러다 색다름을 원한다면 유희 세계에 들어가면 될 일이고.'
부르르.
친구인 오준혁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오랜만에 클럽에서 불금을 조지자는 내용이었다. 나는 고민하다가 오케이 했다. 솔직히 여자는 크게 기대되지 않는다. 한하린이나 하승희같은 진짜 끝내주는 미녀는 클럽같은 곳에 잘 다니지 않는다. 그 정도 미녀를 만나는 건 정말 운이 좋을때 가능하다.
그런데도 클럽에 가는 것은 오준혁 때문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 친구니까. 대학교 1학년 때는 얘 덕을 보기도 했고.'
가끔씩 오준혁과 어울리는 건 나쁘지 않다. 재밌는 녀석이기도 하고.
나는 방 안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패션에는 영 자신 없으나, 캐주얼하게 입으면 된다.
'옷은 전부 명품으로... 이때를 위해 구입한 손목시계도 껴야지.'
누구나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요즘 세상에서 손목시계는 시간을 확인하기 위한 시계가 아니다. 과시하기 위한 것들이지.
나는 이날을 위해 구입한 10억짜리 시계를 손목에 찼다.
ㆍㆍㆍ
열흘이 지났다.
나는 소파에 느긋하게 앉았다.
'슬슬 유희 세계로 들어가 볼까. 저번에 [아카데미 구원자] 세계에 들어갔으니... 이번에는 [광명승천도]로...'
광명승천도 세계에 들어가기 직전, 유희 생활 퀘스트를 갱신할 수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바로 새로 고침을 눌러 퀘스트를 확인한다.
무심하게 퀘스트를 확인하던 나는 갱신된 퀘스트 하나를 보고 두 눈을 부릅떴다.
[15일
일본의 어느 산골 마을에 고립되었습니다.
오오카루마 마을에는 어떠한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음산하고 위험합니다. 당신은 오오카루마 마을에서 생존해야 합니다. 탈출, 은신, 거래, 살인.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생존하십시오.
오오카루마 마을을 탈출하거나, 15일 동안 생존.
※페널티가 다수 존재합니다.]
15일.
기억에 있다. 2년 전에 본 일본 만화다. 줄거리는 주인공 일행이 산골 마을에 갇혀 15일 동안 생존하는 만화다. 애니메이션까지 제작되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은 폭망했고, 만화는 나름 재밌었다.
'솔직히 말해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정도는 아니었어. 다른 만화 중에 애니화 할만한 게 없어서 선택됐다는 말이 떠돌았지.'
딱히 들어가 보고 싶은 창작물 세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퀘스트에 걸린 생살권 보상이 무척 탐났다.
[생살권
대상의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어야 한다.
죽은 자를 살린다.
살아 있는 자를 죽인다.
가격 -
※주의
부활 능력을 가진 대상은 부활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새끼를 문답 무용으로 죽여버릴 수 있다는 거지?'
반대로 죽은 자를 살릴 수도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죽은 자의 소생]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상위 아이템이다. 나는 이게 무척 탐났다.
'라플라스나 메킨 같은 놈도 한 번에 죽일 수 있는 거겠지?'
그러나 라플라스나 메킨에게 사용할 생각은 없다.
[아카데미의 구원자] 세계의 최강자 수준의 힘을 가진 놈들이다. 생살권을 사용해 한 번 죽여도 부활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놈들은 내 손으로 직접 죽일 것이다.
'이게 있으면 죽은 자의 소생을 두 개 가진 거나 다름없어. 당장 필요는 없더라도 가지고는 있어야지.'
나는 퀘스트를 선택해 페널티를 확인했다.
[페널티 1. 평범한 육체.]
[모든 능력치가 일반인 수준으로 맞춰집니다. 마나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페널티 2. 노 인벤토리.]
[인벤토리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페널티 3. 스포 금지.]
[원작 정보를 알 수 없습니다.]
[페널티 4. 초능력 안 돼!]
[총 3개의 특성과 스킬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용 가능한 특성과 스킬 : 연기, 완전 회복, 성감 고조.]
[포인트를 소모해 페널티를 완화할 수 있습니다.]
[페널티가 너무 심합니다. 어드밴티지가 주어집니다.]
[한정 스킬 '대길(Lv.Master)'을 획득합니다.]
[대길 Lv.Master
하루에 한 번 행운이 일어난다.
*'15일' 유희 세계에세만 사용할 수 있는 한정 스킬입니다.]
어드밴티지를 본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루에 한 번 행운이 일어난다? 이런 스킬도 있어?'
스킬이긴 한데 내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스킬이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좋은 스킬인지, 안 좋은 스킬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나중에 유희 세계에 들어가 보면 알겠지. 그보다 사용 가능한 특성과 스킬은... 실질적으로 도움 되는 건 완전 회복뿐인가.'
완전 회복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15일] 원작에는 좀 위험한 놈들이 나오지만, 내가 진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신체 능력이 떨어지고 특성과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겪었던 경험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야.'
유희 세계에 들어가기 전,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페널티를 완화하기로 했다.
[500 포인트를 소모해 페널티 1. 평범한 육체 페널티를 완화합니다.]
[정력 능력치가 20 적용됩니다.]
'원작에서 미녀들이 꽤 나온단 말이지. 원작은 19금 만화라 좀 야하기도 하고... 일반인 수준의 정력? 그건 내가 못 참아. 정력은 필수야.'
생살권이라는 어마어마한 보상이 걸린 퀘스트.
실패해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실패할 자신도 없어.'
그리고 즐길 건 즐겨야지.
[유희를 시작합니다.]
ㆍㆍㆍ
덜컥덜컥.
승합차가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낡은 승합차는 심각할 정도로 차체가 흔들렸다. 차에 문제가 있는 게 확실했다.
승합차 가장 뒤쪽에 앉은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15일... 생살권을 위해 퀘스트 유희 세계에 들어왔지. 퀘스트 성공 조건은... 뭐지?'
기억이 안 났다.
이 세계가 [15일] 이라는 만화 세계라는 걸 안다. 그러나 퀘스트의 목적을 모르겠다. 원작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이라고 할까. '나'에 대해서는 기억난다.
'정확하게는 나에 대한 설정이라고 할까.'
나는 한국인이다. 그러나 유학생으로서 일본 나이오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 나는 나이오 대학 1학년생이다.
지금 내가 이 사고 나기 딱 좋은 승합차를 타고 있는 건 서클 때문이다.
일본 대학교는 서클이나 동아리에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한다. 동아리는 빡세고 서클은 널널하다.
내가 속해 있는 재팬 페스티벌 스터디 서클은 자유로운 서클이다. 서클에 가입만 하고 실제로 서클 활동을 한 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말하자면 페이퍼 컴퍼니같은 유명무실한 곳이다.
'그래서 이 서클에 들어온 거지. 자유롭게 놀 수 있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활동을 너무 하지 않은 게 문제였다. 대학교 측에서 서클을 유지하고 싶으면 서클 활동을 하라는 통보 해 온 것이다. 덕분에 친하지도 않은 서클원 11명과 함께 규슈의 미야자키현에 있는 산골 마을로 이동 중이다.
'마을 이름이... 오오카루마 마을이라고 했던가? 이상한 이름이군.'
목적은 오오카루마 마을의 여름 축제를 연구하기 위해서다. 말이 연구지, 실제로는 사진 몇 번 찍고 축제를 즐기고 돌아가면 된다. 무척 귀찮고 따분한 일이지만... 평화롭고 자유로운 다음 학기를 위해 내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있다.
'진짜 내 사정은... 퀘스트와 연관되어 있다는 거지. 젠장. 퀘스트 조건이 안 떠올라. 원작 정보만 안 떠오르는 거 아니었나? 존나 너무하네.'
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지금은 한여름. 기온만 해도 38도인데 습도도 장난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차의 에어컨까지 맛이 가버려서 가만히 있는데도 땀이 삐질 나올 정도로 덥다. 당연히 자동차 창문은 열어놨지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뜨거운 바람은 불쾌할 뿐이다.
덜컥덜컥.
승합차가 흔들린다. 승합차는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목적지인 오오카루마 마을은 인구수가 150명으로 시곤치고는 인구수가 제법 많은 편이다. 물론 대부분 노인이겠지만.
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승합차 안을 둘러봤다.
나를 포함한 총 12명. 원래는 30명이 넘는 인원이었는데, 12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다른 서클로 들어갔다.
'남자는 7명이고 여자는 5명이다. 성비는 그럭저럭 맞군.'
여자 2명은 쉽게 볼 수 없는 미인이었다. 다른 3명의 경우 평범 이하다.
'2명은 꼭 따먹어야지.'
1명은 앞쪽에 앉아 있다. 검은색 긴 생머리에 청초한 얼굴을 한 여자다. 나데시코. 그러니까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요조숙녀다. 이름은 하가와 료코.
다른 한 명은 나카가미 리사.
내 옆에 앉은 여자다. 3학년 선배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가는 손가락에는 긴 인조손톱이 붙어 있다. 오렌지에 가까운 밝은 갈색 머리카락은 웨이브 져 있고, 얼굴은 기가 세 보이는 고양이상이다.
그녀는 아르바이트로 모델 일을 하고 있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확실히 갸루 느낌이 많이 드는 미인이긴하다.
'어떻게 말을 작업을 걸어 볼까...'
하가와 료코의 옆에 앉은 남자가 획하고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나는 눈을 피하지 않고 무심하게 그를 봤다. 그가 멋쩍게 웃으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와다 쿄시로.
하가와 료코의 소꿉친구다. 내가 알기로 아직 료코와 사귀는 관계는 아니다.
'료코는 저놈한테 마음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저놈의 고백을 기다리고 있는 건가?'
느낌이 팍 왔다.
와다 쿄시로. 저놈이 아마 이 세계의 주인공이리라.
"꺄아아아아아악!"
앞에 앉아 있던 안경 낀 단발머리의 수수한 여자, 네바타 노리코가 느닷없이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숙였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한다.
비명의 원인은 곤충이었다. 말벌 한 마리가 자동차 안에 들어와 노리코의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