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2화 〉 1162. 아카데미의 구원자
성하리는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녀의 옆으로 가면서 이질감을 느꼈다.
'성하리의 기척이 좀 더 강해졌나...?'
내게는 이럴 때 쓰기 좋은 능력이 있었다.
『이름 : 성하리
근력 : S 체력 : A 민첩 : A+ 내구 : A- 마나 : A
특성 : 정령 포식자(S)
스킬 : 신창합일(A), 투창(A), 전투감각(A), 정화(E+), 역장(C-)
호감도 : 64』
정령 한 마리 포식했을 뿐인데 저번에 확인했을 때보다 일부 능력치가 올랐다.
특히 근력 능력치의 경우 S랭크로 급상승했다.
'...평범한 정령은 아니지. 바람의 상급 정령을 포식했지.'
상급 정령.
무려 모카와 같은 상급 정령이다.
상급 이상 되면 정령계가 아닌 현실에서도 제 마음대로 실체화할 수 있고, 현실의 어느 한 구역에 자리 잡아 신령 취급까지 받을 수 있다.
성하리는 그런 상급 정령을 먹고 강해졌다.
만약, 이곳에 있는 정령들을 모두 포식한다면...
'얼마나 강해질지 감도 안 잡히네. 완전 치트키 같은 특성이잖아.'
정면으로 걸어가던 성하리가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하리야. 거기 맞아? 작전 구역이랑 조금 다른 곳인데."
"응? 아, 나도 모르게 이쪽으로 갔네. 근데 여기가 맞는 것 같아. 느낌이 그래."
"네 느낌이 맞겠지."
이미 중국 히어로 협회와의 관계는 끝났으니 작전대로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나는 성하리를 따라 움직였다.
[가자! 가자! 가자! 렛츠고!]
성하리의 품에 안긴 마키나의 텐션이 평소보다 높다. 정령계와 가까운 환경의 영향인 듯했다.
쿠르르르 쿠르르르.
땅이 흔들린다. 정돈된 길이 부서지고 2m 크기의 두더지가 나타났다.
땅의 상급 정령이다.
당당하게 나타난 정령은 성하리를 보자마자 덜덜 떨었다. 두려움에 질린 모습이다.
[여, 여기는 못 지나간다...!]
정령의 목소리까지 떨리고 있었다.
성하리의 발걸음이 흠칫 멈췄으나, 이내 무표정한 얼굴로 땅의 정령에게 다가갔다.
내가 성하리를 말리기도 전에 땅에서 바위가 솟구쳤다. 바위는 오직 성하리를 노리며 떨어졌다. 성하리가 지면을 박차며 떨어지는 바위를 피한다. 역장을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그녀의 움직임은 무엇보다 자유로웠다.
피할 수 없는 바위는 창으로 걷어내거나 박살 낸다.
'...힘만으로 되는 게 아니야. 고도의 기술이 서려 있다.'
성하리가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기술을 따지면 나보다 윗줄에 있다는 걸 진즉에 알고 있었다.
'또 성장했네.'
신체뿐만이 아니라 기술적인 성장.
'아니, 신체 능력이 올라가면서 기술의 한계가 더 늘어난 건가...?'
어느 쪽이든 성하리는 지금의 나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성하리는 바위 폭풍을 뚫고 땅의 정령의 정령핵을 창으로 갈랐다.
[아프다...! 아파!! 아아아아아악!]
바위 정령은 처참한 비명을 내지르며 성하리에게 먹혔다.
성하리는 또 강해졌다. 그러나 정작 성하리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두 눈에는 슬픔과 근심이 가득했다.
『이름 : 성하리
근력 : S 체력 : A 민첩 : S 내구 : A- 마나 : A
특성 : 정령 포식자(S)
스킬 : 신창합일(A), 투창(A), 전투감각(A), 정화(E+), 역장(C-)
호감도 : 64』
'이번에는 민첩이 S랭크로 올랐군.'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신체 능력은 A랭크부터 죽어라 안 오른다. 그 이상으로 오르려면 재능, 영약, 노력을 모두 갖춰야 한다.
성하리는 슬픔을 떨쳐내고. 아니, 슬픔을 뒤로 미루고 계속해서 나아갔다.
정령들이 나타나 그녀를 가로막았다.
하급, 중급 정령들은 성하리를 보자마자 겁에 질려 도망쳤다.
[괴, 괴물!]
[이 정령학살자!]
[도, 도망쳐! 잡히면 먹힐 거야!]
성하리는 정령들을 쫓지 않았다. 그녀의 목적은 이 사태를 해결하는 거지, 정령을 죽이는 게 아니었다. 목적을 착각해선 안된다.
상급 정령들은 중하급 정령들과 달랐다. 성하리를 두려워하면서도 도망가지 않았다. 존재를 걸고 성하리를 막으려고 했다.
하나씩 나타나던 상급 정령들은 둘씩, 혹은 셋이서 나타나 성하리를 공격했다.
성하리는 상급 정령들을 모조리 쓰러뜨리고 그 힘을 흡수했다.
[아줌마가 너무 슬퍼 보여...]
마키나가 걱정할 정도로 성하리의 상태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름 : 성하리
근력 : S- 체력 : S- 민첩 : S+ 내구 : S 마나 : S-
특성 : 정령 포식자(S)
스킬 : 신창합일(A), 투창(A), 전투감각(A), 정화(E+), 역장(C-)
호감도 : 64』
어느새 그녀의 신체 능력 전부가 S랭크에 올랐다.
나조차도 성하리를 막을 자신이 없었다.
'......성하리는 정령 포식자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어.'
내가 볼 때 정령 포식자(S) 특성은 패시브였다. 게임으로 치자면 정령으로 받는 피해가 감소하고, 정령에게 주는 피해가 증가한다. 거기에 정령이 치명상을 입으면 그대로 정령의 존재를 흡수하여 강해진다.
사기 능력이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내가 저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저렇게 잘 쓸 자신이 없다.
'중급 이하는 효율이 거의 없겠고, 상급 이상의 정령을 상대해야 하는 건데... 그것들이 상대하기 편할 리 없잖아.'
나는 뒤쪽을 돌아봤다. 성하리와 상급 정령의 전투 여파로 반경 1km 이상이 초토화되었다.
'...하이난 사태는 던전 밖에서 일어난 현실이겠군. 성하리가 20대 초반에 세계 최강의 히어로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이거였어.'
마키나의 품에 안고 걸어가던 성하리가 돌연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내게 마키나를 건넨다.
"오빠.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서 갈게."
"갑자기 무슨 말이야?"
"이 앞에 엄청난 존재가 있어. 아마 최상급 정령이라고 생각해. 오빠는 정령사니까 알지? 제힘을 온전히 발휘하는 최상급 정령이 얼마나 위험한지."
정령은 인간계에서 온전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특히 등급이 높을수록 여러 제약을 받는다. 허나 정령계에선 그 힘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최상급 정령이 온전한 힘을 발휘한다면... 도시 하나쯤은 우습게 없애버리겠지.
"전투에 휘말리면... 오빠가 위험할 거야."
"내 걱정은 하지 마. 위험하면 알아서 내뺄 테니까. 나한테는 공간 이동 주문서도 있어. 잊은 거야?"
성하리가 불만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본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가볍게 입을 맞춘다. 성하리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같이 가자. 그리고 이 일이 끝나면... 돌아가서 떵떵거리며 노는 거야. 중국에 복수도 해야지."
"복수? 그거 꼭 해야 해? 그렇게 너무 많은 사람이 죽을 텐데. 그리고 우리가 복수할 자격이 있을까?"
"하리야. 중국 히어로 협회 놈들이 일을 잘 처리했으면 이런 일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어. 우린 놈들 때문에 죽을 뻔했고. 우리가 복수하는 건 당연한 권리야. 아니, 권리가 아니더라도 해야 해."
"그렇게 중국 히어로 협회가 싫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놈들은 우리를 이용하려 했어. 그리고... 네가 죽을 뻔했잖아."
성하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살짝 벌렸다.
"...그러네. 오빠도 죽을 뻔했어. 오빠 말대로 복수해야겠어."
"그래. 그건 나중으로 하고 같이 가자."
"응. 위험하면 바로 주문서로 도망가야 해. 알았지?"
"너도."
성하리와 함께 앞으로 걸어갔다.
느껴진다.
저 앞에 있는 거대한 존재감이.
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고, 내 어깨에 매달린 마키나는 표정을 굳혔다.
하늘에는 방금까지만 해도 없었던 먹구름이 모여있었다.
쿠르르르릉. 콰콰쾅! 콰르르르!
새카만 먹구름은 역설적이게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번개가 지상으로 쉬지 않고 내려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번개 한 줄기가 성하리에게 떨어졌다. 성하리가 창을 휘둘렀다. 놀랍게도 번개가 옆으로 튕겨 나무에 부딪혔다. 나무는 그대로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평번한 번개가 아니다.
번개는 내 쪽으로도 떨어졌다. 찰나를 사용했다. 성하리가 나를 지켜주려고 했으나, 저 번개가 궁금했다.
'내겐 뇌전이 있으니 한 번 맞아도 죽진 않겠지. 죽으면... 부활하면 돼.'
손을 뻗어 번개를 맞았다. 내 몸을 타고 번개가 흐른다. 나는 번개를 제어하려고 했으나, 번개가 너무 사나워 실패했다. 번개는 내 몸을 질주했다.
[이 미친놈아!]
마키나가 내 허벅지에 주사기 같은 기계를 꽂았다. 내 몸을 파괴하려던 번개가 주사기로 빠져나간다.
"콜록."
기침했다. 피 대신 번개 한 뭉치가 입밖으로 빠져나와 바닥에 떨어졌다.
"오빠!!"
성하리가 서둘러 다가와 내 몸을 살폈다. 마키나는 허벅지의 꽂은 주사기를 저 멀리 던져 없앴다.
"괜찮아. 내가 번개를 다루는 건 알지? 번개 내성이 있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강하네. 이질적이라고 해야 하나..."
"오빠. 두 번 다시 이런 짓 하지마. 그때는 진짜 내가 오빠를 죽여버릴 거야."
성하리의 진심이 느껴졌다. 나는 입을 꾹 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하리가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걸어갔다. 아까보다 훨씬 조심스럽다.
'뭔가 알 것 같은데... 알쏭달쏭하군.'
중심으로 다가갔다.
뜻밖의 인물들이 보였다.
왕쯔신.
사령제라 불리는 중국의 S급 히어로인 그가 12명의 남자들과 구덩이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은 모두 구덩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12명. 인간이 아니군.'
강시나 좀비는 아니다. 사령술로 불러낸 악령이다. 이미 악령을 본 적 있기에 확신한다.
"드디어 왔군."
왕쯔신이 성하리를 보며 말했다. 그의 옆에 있는 검은 남자가 그의 말을 통역한다. 능숙한 한국어였다.
"어떻게 먼저 온 거지?"
성하리가 양쯔신에게 물었다. 그의 곁에 있던 검은 남자는 반대로 중국어로 통역해 양쯔신에게 말한다.
"네 덕분이다. 상급 정령들이 모두 네게 몰려간 덕분에 쉽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상급 정령들은 맛있었나?"
"......"
성하리에게서 살기가 뿜어졌다. 성하리는 창을 손에 쥐고 그에게 다가갔다.
"너를 적대할 생각은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이난의 안정을 되찾는 것이다. 자잘한 일은 내가 끝냈으니... 너는 마무리만 하면 된다."
"마무리?"
딱!
양쯔신이 손가락을 튕겼다.
촤르르륵.
구덩이 속에서 보랏빛 사슬에 묶인 최상급 정령이 위로 떠올랐다. 몸이 전류로 이루어져 있었다. 형체는 인간에 가까웠다.
눈이나 입은 존재하지 않은 그 존재는 양쯔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다.
[내 모든 것을 걸고 너희를 죽여버릴 것이다!]
정령이 일갈했다.
보랏빛 사슬이 파들파들 떨린다. 먹구름에서 번개 여러 줄기가 양쯔신에게 내리쳤다. 투명한 보호막이 양쯔신을 보호했다.
"시간이 없다. 놈의 구속이 완전히 풀리기 전에 죽여라."
"내가 그럴 것 같아?"
성하리가 으르렁거렸다. 양쯔신은 어디까지나 무표정하게 성하리를 바라봤다.
"그러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
"나를 죽여도 모두 죽는다. 모두에는 네 뒤에 있는 남자와 이 섬에 있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말한다. 수백만 명이 죽도록 내러벼둘 생각인가?"
그녀는 으스러지도록 창을 쥐었다.
"...한 가지 물어보자. 대체 정령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말해주지 않는다면... 그냥 여기서 모두 죽는 걸 선택하겠어."
아니, 말하지 않더라도 성하리는 정령을 죽일 것이다. 그래야 수백만 명을 구할 수 있으니까. 그녀는 수백만 명을 구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정령을 사령처럼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령술과 정령술은 달라. 사령과 정령도 다르고. 그건 이미 증명됐어."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오만이었지. 몇 번 실험한 결과 사령술로 도저히 정령을 다룰 수 없더군. 그래서 생각을 좀 바꿨다. 빙의를 아나?"
"...설마 정령을 강제로 사람에게 빙의시킨 거야?"
"정령도 일종의 정신체이며, 영혼이다. 그렇다면 빙의 정도는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육체를 족쇄삼아 정령들을 다루는 것이 목적이었다만... 제대로 된 연구를 시작하기도 전에 던전이 붕괴했다. 하이난섬의 일부는 정령계가 되어 멸망의 위기에 처했다."
정령 빙의.
그 성공 사례는 존재했다.
정령강령(精靈降靈).
정령을 자기 자신에게 강령시키는 진령성가의 비술이다.
던전 붕괴가 일어나지 않고 연구가 진행되었다면... 양쯔신은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자랑하듯 지껄이기는... 당신이 얼마나 미친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는 있는 거야?"
"정령은 인간이 아니다. 도덕적 책임은 없다."
"당신이! 당신들이 그 짓거리만 저지르지 않았어도 이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어!"
"이 사태의 원인은 던전 붕괴다. 운이 나빳다고밖에 볼 수 없다."
"던전을 공략하면 됐잖아! 정령 던전은 굳이 정령을 해치우지 않더라도 조건만 충족하면 공략할 수 있는 던전이야!"
"네 말대로 정령 던전은 비교적 안전한 던전이지. 그래서 실험에 최적이었다. 던전 붕괴가 아니었다면..."
처음으로 양쯔신이 감정을 표했다.
아쉬움.
그는 실험을 이어가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너, 죽여버릴 거야."
"그 전에 정령부터 죽여라. 구령사쇄(九靈死鎖)도 슬슬 한계다. 네가 정령을 죽이지 않으면 수백만 명이 죽는다."
"......"
성하리는 이를 악물었다. 정령의 앞으로 다가간 그녀는 잠깐 망설였다가, 떨리는 창끝으로 정령을 찔렀다.
번개의 최상급 정령은 성하리를 조용히 바라봤다.
성하리의 정령 포식자(S)가 힘을 발휘한다. 정령의 존재력이 그녀에게 빨려 들어간다. 성하리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지금이다!"
양쯔신이 양손을 확 벌리며 말했다. 12명의 남자들이 성하리를 둘러싼다. 그들은 일제히 알 수 없는 말을 읊조렸다. 술법이다.
"이럴 줄 알았다."
스톰브레이커를 몸에 걸친 내가 양쯔신에게 달려들었다. 마키나의 힘이라면 수작을 부리기 전에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에게 다가서기도 전에 성하리의 창이 움직였다.
일격에 성하리를 포위한 12명의 검은 남자들이 베인다. 그들은 상반신과 하반신이 나뉘어 땅에 쓰러졌다. 피는 물론이고 내장도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영독(靈毒)을 정령핵에 심어 뒀을 텐데! 어떻게 멀쩡한 거냐!!"
"뭔가 착각한 모양이네. 내 특성은 정령을 잡아먹지만, 실제로 먹는 것과는 달라."
"...빌어먹을. 영독은 정령과 관련 없어서 흡수되지 않았다는 건가. 성공이 코앞이었는데... 꼬여버렸군."
양쯔신이 손톱으로 왼팔을 긁었다. 핏방울이 바닥에 후두둑 떨어진다. 양쯔신의 마나가 요동치고 무언가가 나타나려고 한다. 그리고 양쯔신의 머리가 허공을 날아 바닥에 떨어졌다. 성하리가 가차 없이 양쯔신의 머리를 베어낸 것이다.
'움직임이 전혀 안 보였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성하리의 정보를 확인했다.
『이름 : 성하리
근력 : SS 체력 : S+ 민첩 : SS+ 내구 : S 마나 : SS
특성 : 정령 포식자(S), 인드라의 섬뢰(SS)
스킬 : 신창합일(A), 투창(A), 전투감각(A), 정화(E+), 역장(C-)
호감도 : 64』
신체 능력은 터무니없이 높아졌고, 새로운 특성이 나타났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내게 다가왔다.
"오빠 일은 끝났어. 한국으로 가자. 여기에 있을 이유는 없어. 좀 피곤해... 가서 쉬고 싶어."
이질적으로 변했던 세계가 원래대로 돌아온다.
"하리야. 정령왕을 만난 거지?"
갑옷에서 마키나의 목소리가 울렸다.
"마키나도 정령이라 눈치챘구나. 맞아. 정령왕을 만났어."
나는 다시 한번 그녀의 상태창을 살폈다. 정령왕의 주박(SS)은 없다.
"...정령왕과 무슨 이야기를 한 거야."
"말하기 좀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오빠니까 말해줄게. 정령왕과 계약했어."
"계약? 그것도 정령왕과? 대단하잖아!"
"오빠가 생각하는 정령 계약이 아니야. 내가 정령을 죽이고 그 힘을 빼앗은 죄를 용서해주는 대가로... 이 일과 관련된 모든 인간을 죽이는 계약이야. 정령왕의 계약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아마 난 죽었을 거야."
"강제로 한 계약안가. 뭐, 내용이 그거면 별거 아니네."
"......"
성하리의 표정은 썩 밝지 못했다.
'...실수했군. 나한테는 별거 아니지만 성하리에겐 별거야. 이 일에 관련된 놈들은 적지 않을 거야. 땅이 큰 만큼 인구수도 더럽게 많은 놈들이니... 관련된 놈들만 못해도 수천 명은 되지 않을까?'
바깥의 성하리를 떠올린다.
그녀는 정령왕의 주박(SS)에 의해 시간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정령왕의 주박이 생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성하리는 한 손으로 자기 자신의 몸을 주물거렸다.
"하리야. 갑자기 왜 그래?"
"응? 아, 몸이 좀 쑤시네. 육체가 갑자기 너무 강해져서 느끼는... 성장통? 그런 느낌이야. 돌아가서 푹 쉬면 좋아질 거야."
"할 거야?"
"뭘?"
"정령왕과의 계약. 이행할 거냐고."
"해야지. 오빠가 아까 복수하자고 말했잖아. 도와줄 거지?"
"...내 복수이기도 하니 당연히 도와줘야지. 몸 주무르는 것도 도와줄게."
스톰브레이커를 벗고 성하리에게 다가갔다. 양손으로 그녀의 몸을 주무른다.
"앗. 오빠. 가슴은, 가슴은 괜찮은데... 으흐응..."
"혹시 모르잖아."
"아이 정말..."
성하리가 내 몸에 팔을 둘렀다. 그녀가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는다. 나는 한 손으로 그녀의 가슴을 주무르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커다란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오빠. 난 오빠만 있으면 다 괜찮아."
"나도..."
"오빠?"
『악마 사냥꾼(S)이 악마의 존재를 감지했습니다.』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일시적으로 악마에 대한 공격력이 상승합니다.』
『악마 사냥꾼(S)이 악마를 간파합니다.』
『라플라스. 여덟 번째 군단장.』
나는 굳은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고양이 꼬리를 가진 보라색 피부의 악마가 하늘에 떠 있었다. 정장을 입은 그는 신사처럼 인사했다.
"다시 보니 반갑군, 우리의 천적이여."
"라플라스...!"
십어 뱉듯이 놈의 이름을 곱씹었다. 화련비도와 스톰브레이커를 소환해 손에 쥐려는 순간, 내 품에 있던 성하리가 움직였다. 하늘로 도약해 라플라스를 향해 창을 휘두른다.
라플라스는 아슬아슬하게 창을 피했다. 온전히 피하지 못했는지 오른쪽 눈이 뭉개지고 아래로 떨어졌다.
"이런."
떨어지는 눈알을 낚아챈 라플라스는 다시 오른쪽 눈구멍에 넣었다.
"무섭구만 무서워."
라플라스가 땅을 내려봤다. 땅에는 300m가 넘는 거대한 상흔이 남겨져 있었다. 성하리가 휘두른 창의 여파였다.
"이게 인간 최강인가. 대단하군. 하지만 지금 그 상태에선 이게 한계이겠지."
성하리의 몸이 떨어진다.
나는 달려가 그녀의 몸을 받았다.
"오, 오빠. 몸이... 안 움직여."
성하리가 바들바들 떨었다.
"하리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네. 공격을 피했을 뿐이지."
라플라스가 씨익 웃는다. 그가 손을 허궁에 휘저었다. 성하리를 보자마자 도망쳤던 중하급 정령들이 모여들었다. 그 수만 약 800이 넘는다.
정령들은 하나로 뭉치며 거인의 형상을 취한다. 그 육체는 새까맣다. 평범한 정령이 아니라 한순간에 타락하여 마령이 된 것이다.
"중하급이라 해도 이만한 수의 정령들을 한 번에 타락시키는 건... 아무리 나라도 좀 피곤하군."
라플라스는 손목을 돌리며 하늘로 날아간다.
"그때와 다르게 자네가 감당할 수 없는 상대이니... 나는 이만 물러나도록 하지."
라플라스는 사라지고 타락한 정령 거인이 발을 내디딘다. 비틀. 정령 거인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허나 그것도 잠시. 정령 거인은 금세 균형을 잡아간다.
"우리도 튀어야겠군."
성하리의 손을 잡고 주문서를 찢었다. 성하리가 정해진 좌표로 이동해야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라플라스...! 이 새끼가 수작을 부렸구나...!'
이를 빠득 갈며 몸을 일으킨다. 스톰브레이커와 화련비도를 합체시키고 마키나에게 명령했다.
"마키나! 성하리를 데리고 도망가! 내가 시간을 번다!"
"알았어! 하리는 걱정하지 마! 내가 어떻게든 안전한 곳으로 데려갈게!"
"...아니야. 됐어."
성하리가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떨어진 창을 잡고 정령에게 다가갔다.
"최상급 이상이야. 오빠는 이놈을 감당 못 해."
"아니, 하리야. 아까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며?"
"지금 엄청 무리하고 있는 거야. 내가 아니면 오빠는 죽을 테니까."
"......팩트라서 반박할 말이 없군."
거인이 주먹을 들어 올렸으나, 그 주먹이 내려쳐지는 일은 없었다. 성하리의 창이 타락한 정령 거인의 정령핵을 꿰뚫은 것이다.
정령 거인의 존재력이 성하리에게 스며든다.
위기는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털썩.
성하리가 쓰러졌다.
나는 성하리에게 뛰어갔다. 성하리는 기절했다.
『이름 : 성하리
근력 : SSS 체력 : SS 민첩 : SSS 내구 : SS 마나 : SS+
특성 : 정령 포식자(S), 인드라의 섬뢰(SS)
스킬 : 신창합일(A), 투창(A), 전투감각(A), 정화(E+), 역장(C-)
호감도 : 66』
'능력치가 더 올라가다니... 진짜 터무니없이 강해졌네.'
그녀를 안아 들었다. 일단 안전한 곳으로 도망가야 했다. 공간 이동 주문서를 사용하지 못하더라도 내게는 마키나가 있었다.
"마키나. 드릴카."
"드릴? 좋지!"
드릴카를 타고 땅굴로 도망쳤다. 하이난섬의 외곽에선 공간 이동 주문서가 제 능력을 발휘했다.
ㆍㆍㆍ
3일 뒤. 성하리는 상쾌한 얼굴로 침대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아아! 기분 좋네!"
"...어디 아픈 곳은 없고?"
침대 옆에 앉은 내가 성하리에게 물었다.
"완전 건강해. 근데 오빠. 표정이 왜 그래? 나 괜찮다니까? 옆에 있는 주문서는 왜 이렇게 많아?"
"주문서는 10장. 위험할 때 써. 뭐, 지금 네게 위험이 될만한 일이 있을까 싶다만."
"......분위기가 왜 그래. 꼭 떠날 사람처럼. 마키나. 너도 왜 울상이야?"
마키나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흑... 하리야. 건강해야 해."
"...마키나?"
나는 창밖을 힐끗거렸다. 하늘이 무너지고 있었다. 던전이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다. 즉, 나와 마키나는 던전 밖으로 나간다.
'여긴 던전이다. 전부 가짜 세계다. 눈 앞에 있는 성하리도... 가짜다.'
애써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이 던전에 들어올 방법은 2번이나 더 남았어. 라플라스 놈이 거슬리긴 하지만... 이 던전은 과거의 비밀을 파헤치기 딱 좋으니까.'
그녀에게 10장의 공간 이동 주문서를 남기는 것은 다음에 이 던전에 들어왔을 때, 저번 던전처럼 이어져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
남겨진 그녀가 걱정됐다.
"...오빠. 아니지? 나랑 함께하기로 했잖아!"
성하리가 울먹이며 내 어깨를 꽉 잡았다.
"미안하다. 그럴 수밖에 없어. 나와 마키나는... 이 세계 존재가 아니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
여기는 던전이고, 너는 가짜다.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성하리라면 내 말을 믿겠지만, 그녀의 정신을 흔들고 싶진 않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자 성하리가 눈물을 흘렸다.
"오빠! 부탁이야! 가지 마! 나랑 같이 있기로 했잖아! 복수도 같이해야지!"
"미안... 이건 나도 어쩔 수 없어."
"그, 그걸 말이라고 해?"
"......"
나는 그녀의 몸을 끌어안고 키스하려 했다. 그러나 성하리가 고개를 돌려 키스를 거부했다.
"키스로 어물쩍 넘어가려 하지 마...! 제대로 설명하라고!"
"나중에 또 만나게 될 거야."
"...진짜 떠나는 거야?"
"......"
"우, 웃기지 마! 내가 오빠를 보내줄 것 같아? 나 이제 오빠보다 강해! 오빠는 내 허락 없이 아무 데도 못 가!"
성하리가 내 몸을 꽉 잡았다. 소용없는 짓이다.
나와 마키나는 무너지는 던전 세계를 보며 끝이 도래했음을 알았다.
나는 역으로 성하리의 어깨를 잡았다.
"성하리! 잘 들어!"
"오빠?"
"넌 내 여자야! 한 번 내 여자는 영원히 내 여자지! 바람필 생각하지 마! 나중에 확인한다!"
"오빠! 나 못 믿어?! 내가 오빠를 두고 다른 남자를... 아니, 잠깐! 지금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잖아! 어, 오빠 몸이 없어지고... 오빠?!"
『특수 던전, ???에서 퇴장합니다.』
ㆍㆍㆍ
눈앞에 류하나가 있었다. 마키나는 바로 영체화하더니 울먹이는 얼굴로 어딘가로 날아갔다. 아마 진짜 성하리를 만나러 갔겠지.
"...왜 그렇게 봐?"
"무사해서 다행이라 생각해서. 근데 던전에서 어떻게 나온 거야?"
"네가 사람들에게 붙잡히고 얼마 안 돼서 던전이 무너졌잖아."
"아. 그랬나."
나와 류하나는 던전에서 나온 시기가 달랐다.
'던전이 변질되어서 그런가.'
류하나의 안색을 살폈다. 개운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주작의 낙인은 사리진 모양이다.
"유진. 대련하지 않을래?"
"아니. 이후에 일이 있어서. 다음에 하자."
주작검, 청룡창, 백호도, 현무갑.
주작검과 청룡창은 이미 사용해 시련을 통과했으니 그 던전에 들어가지 못한다.
백호도와 현무갑은 지금 시점에서 얻기 힘들었다.
'그 던전에 다시 들어갈 계확은 나중에 짜고... 지금은 성하리가 보고 싶네.'
아무도 안 보이는 곳에서 주문서를 찢어 성하리가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아카데미에 오기 전까지 쓰던 방에 나타난 나는 거실로 들어갔다.
"어, 유진아?! 어, 언제 온 거야?!"
팬티와 캐미솔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치킨을 뜯고 있던 성하리가 날 웃으며 반겼다.
"방금."
"느닷없이 찾아오다니...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엄마가 보고 싶어서 왔어."
"아, 그랬구나. 자, 치킨 먹어. 닭다리는 엄마가 다 먹었지만... 날개는 있으니까!"
"날개 별론데."
"...하나 더 시킬까?"
『이름 : 성하리
근력 : A(SS) 체력 : A(S+) 민첩 : A-(SS+) 내구 : C+(S) 마나 : B-(SS)
특성 : 정령 포식자(S), 인드라의 섬뢰(SS)
스킬 : 신창합일(SS), 투창(S), 전투감각(S), 정화(D+), 역장(C+)
호감도 : 100
심리 : 치킨 시키는 김에 피자도 시킬까?
※정령왕의 주박(SS)에 의해 능력치가 하락했다.』
던전의 성하리와 달랐다.
나는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왜 그래? 치킨 안 땡겨? 피자... 아니 족발 시킬까? 아니면 설마... 엄마를 먹고 싶니?"
"엄마. 오늘은 날 오빠라고 불러."
"유진 오빠?"
나는 성하리를 덮쳤다. 도중에 마키나가 나타나 방해하려고 했지만 정령옥을 주니 알아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유희를 종료하고 현실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