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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161화 (1,161/1,497)

〈 1161화 〉 1161. 아카데미의 구원자

성하리의 앞을 가로막았다.

성하리는 정령 포식자 특성을 사용하기 싫어한다. 내 여자가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시키고 싶지 않았다.

불어오던 바람은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방해할 거야?]

성하리와 생전 처음 보는 바람의 정령. 내가 누구 편에 붙을지는 당연했다. 대화가 통하면 좋겠지만... 바람의 정령은 이미 갈 데까지 가버렸다. 대화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칼을 들고 정령을 겨눈다. 정령의 코끼리 얼굴이 상처받은 듯 일그러진다.

[그래. 너도 결국은 인간이구나.]

바람이 사나워진다. 칼끝이 바람의 영향을 받아 좌우로 흔들린다.

"오빠. 여기선 내가..."

"하리야. 넌 그 스킬 쓰기 싫어하잖아? 내가 해결할 테니 가만히 있어."

말하는 와중에도 바람은 더 강해지고 있었다. 강력한 선풍기를 앞에 두고 말하는 기분이었다.

'접근해서 핵을 노리는 거야. 단번에 끝내자.'

정령을 향해 달려간다.

바람의 방향이 변했다. 느닷없이 상승 기류가 되어 내 몸을 하늘 위로 띄우는 것이다. 이러다가 저기 농락당하는 중국인 3명꼴이 될 것이다.

'스톰브레이커!'

내 앞에 나타난 스톰브레이커는 분해되어 내 몸에 달라붙어 갑옷이 되었다. 무게가 무거워지면서 몸이 아래로 내려간다. 정령의 코가 움직였다. 바람이 더 거세지며 내 몸을 위로 올린다.

'성하리는... 다행히 바람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군. 역시 감이 좋다니까.'

카앙! 캉! 카앙!

바람의 칼날이 갑옷을 때린다. 스톰브레이커를 뚫기에는 힘과 절삭력이 부족했다. 무엇보다 갑옷은 촘촘했다. 바람은 내 피부에 닿지 못했다.

그렇다고 내가 정령과의 전투에서 우위를 점했다는 건 아니다. 정령이 바람의 운용 방식을 바꿔버리면 난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다.

'마키나.'

내 옆에 영체화 상태의 마키나가 뿅 하고 나타난다. 마키나는 영체화 상태라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동시에 아무 힘도 쓸 수 없지만.

[벌써 부르는 거야? 그 대머리 노인을 감시하라면서?]

마키나에겐 양쯔신을 미행하고 감시하는 임무를 맡겼었다.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지금 긴박한 상황인 거 안 보여? 스톰브레이커에 빙의해.'

[알았어.]

마키나가 시원시원하게 대답하며 스톰브레이커에 빙의했다. 최근에 정령옥으로 기름칠을 한 효과였다.

'평소에도 지금과 같으면 얼마나 좋아.'

마키나가 빙의하며 갑옷의 디자인이 미래적인 슈트로 변한다. 특히 오른손은 동그란 원통형의 캐논으로 변했다. 캐논의 총구가 빛을 내며 빙글빙글 돌아간다. 주위의 바람을 빨아들여 동력으로 삼는다.

마키나의 능력은 범용성이 좋았다. 대신 그만큼 마나를 많이 소모하는 게 단점이긴 하지만.

[충전 완료야! 이제 쏘기만 하면 돼!]

문제는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조준이 쉽지 않다는 거다.

철컥.

등에서 강철 날개가 나온다. 날개는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마키나의 서포트가 있으니 여러모로 편했다.

팡!

캐논에서 에너지 덩어리가 정령에서 쏘아졌다. 정령이 급히 몸을 틀어 내 공격을 피한다. 그때, 정령의 뒤에서 나타난 중국인 3명이 정령에게 검을 휘둘렀다. A급 히어로답게 자력으로 바람 속에서 탈출해 정령을 공격한 것이다.

[아아아아악!]

정령핵에 타격을 입은 정령이 비명을 지른다. 나는 캐논을 정령에게 겨누었다. 아직 충전되지 않았으나, 내 마나를 사용해 순식간에 충전시키고 에너지탄을 쏘아냈다.

에너지탄이 정령에게 닿기 직전, 거대한 바람이 일어나 장막이 되어 하늘로 솟구쳤다. 정령에게 접근했던 중국인 3명도 밀려 나간다.

[용서 못 해! 용서 못 해! 용서 못 해!!!]

정령이 폭주한다. 그에 감응하듯 정령핵이 번쩍번쩍 빛난다.

'존재력까지 사용해서 힘을 쓰려는 건가. 이건... 진짜 위험하군.'

상대는 상급 정령이다. 폭주한 힘은 이 주변 일대를 소멸시키기도 남을 것이다.

정령이 힘을 쓰기 전에 끝내야 한다.

'방법이...'

[아줌마가 움직이는데?]

"뭐?"

고개를 떨궈 성하리를 보았다.

성하리는 입술을 꾹 깨물고 정령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날카로운 바람이 그녀를 막아서지만, 그녀는 한 걸음씩 전진했다.

성하리도 무사하지 않았다. 그녀가 정령에거 접근할 때마다 바람이 그녀의 몸을 상처입힌다. 핏방울이 바람에 실려 위로 솟구치고, 검은색 머리카락이 사정없이 나부끼었다.

"성하리! 물러나!!"

있는 힘껏 소리쳤다. 그러나 강대한 바람에 묻혔는지 성하리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안 들린다면 직접 가는 수밖에.'

나는 바람을 이용해 부유하고 있던 몸의 중심을 아래로 기울었다. 이러면 아래로 떨어져야 정상이지만... 강력한 바람 때문에 떨어지는 속도가 무척 느렸다. 거기에 바람의 힘이 더 강해지고 있다.

"마키나! 방법 없어?!"

[안 돼. 늦어. 추진기를 이용해도 저 안쪽은 바람이 더 강해! 에너지탄을 막아내는 거 봤잖아!]

"......"

천심을 사용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데 아줌마는 어떻게 버티는 거야? 보통이면 아까 그 사람들처럼 바람에 날아가버릴 텐데.]

나도 뒤늦게 의문을 느꼈다. 성하리는 저 바람 속에서 어떻게 전진하는 거지? 뛰어난 신체 능력 때문에? 그럴리가. 지금 성하리의 신체 능력은 그렇게 뛰어난 편이 아니다. 아까 날아간 중국인 3명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럼 의지가 강력해서? 세상에는 의지로 되는 게 있고, 안 되는게 있다. 그리고 안 되는 쪽이 더 많다.

'정령 포식자(S) 특성이야.'

정령 포식자(S)가 정령으로부터 받은 피해를 줄여주는 게 확실하다.

[유진아. 가만히 있을 거야?]

"......"

성하리를 바라봤다. 성하리는 자기 의지로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그걸 내가 막아도 되는가? 성하리가 진정 그걸 바라고 있는가?

"...나는 성하리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래도 성하리를 지켜봤다. 무슨 일이 생기면 성하리에게 달려갈 거다.

[아줌마가 너무 아플 것 같아! 어떡해!]

마키나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그녀가 걱정할 정도로 성하리의 상태는 심각했다. 바람에 옷이 너덜너덜해지고, 그녀가 걸을 때마다 피 발자국이 땅에 새겨진다.

그리고 성하리는 마침내 정령의 앞에 당도했다.

[저, 저리가!!]

정령의 고함에는 두려움이 담겨있었다. 성하리는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정령은 공포를 느끼면서도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대신 성하리를 향해 공격했다. 주변 일대를 순식간에 초토화할 정도로 강력한 회오리바람이 성하리를 덮친다.

성하리가 창을 휘둘렀다.

바람이 그대로 베어지며 사라진다. 성하리는 이어서 정령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창이 정령핵을 정확히 꿰뚫는다.

[아... 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악!]

정령이 처절한 비명을 내지른다. 정령이 마지막 발악으로 바람을 움직이는 게 내 눈에 보였다. 허공 한 점에 뭉쳐지는 바람을 보니 폭탄처럼 터트릴 셈이다. 그러나 바람은 모이다 말고 사라졌다.

정확하게는 정령의 힘이 성하리에게 흡수된 것이다.

[...아줌마가 정령을 먹어버렸어.]

마키나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그럴 만도 했다. 마키나의 입장에선 동족이 먹히는 장면일 테니까.

'내 눈에는 생각보다 그로테스크하지는 않은데.'

바람이 사라진다.

내 몸이 아래로 추락한다. 마키나가 도중에 추진기를 사용한 덕분에 안전하게 지상으로 내려왔다.

나는 멍한 얼굴로 서 있는 성하리에게 다가갔다.

"하리야. 괜찮아?"

성하리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아."

가까이서 보니 몸이 엉망이었다. 찢어진 옷과 피에 젖은 몸. 다행히 치명상은 없었다. 포션을 꺼내 그녀의 머리에 뿌렸다.

그녀의 몸에 묻은 피가 포션에 씻겨 내려간다. 상처투성이의 피부도 최상급 포션에 회복되어 매끈하게 변했다.

"비싼 포션을 이렇게 막 써도 되는 거야?"

그녀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전환하듯 장난스럽게 말했다.

"포션보다 네가 더 중요해."

"...고마워, 오빠."

새로운 옷도 소환해서 그녀에게 주었다. 성하리는 바로 옷을 갈아입으려다 멈칫했다. 저 멀리서 3명의 중국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상처투성이였다.

"포션이 있었나."

"우리에게도 포션을 줬으면 좋겠군."

"포션 값은 나중에 갚겠습니다."

포션을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한다.

'마키나.'

[오케이!]

위이이이잉.

하늘에서 드론이 나타나더니 중국인들에게 날아갔다. 중국인들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드론을 처음 보는 것이라 바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이내 그들은 드론을 피하려고 했으나, 드론에서 뿜어져 나온 자기장이 그들의 행동을 제약했다.

[하핫! 자폭이다!]

마키나가 유쾌하게 외쳤다.

결과는 유쾌하지 않았다.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 주변 일대를 싸그리 날려 먹었다. 땅바닥에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크레이터가 생긴 건 당연한 결과였다.

중국인 세 명은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하하하! 이게 내 힘이다! 인간 놈들아!"

실체화한 마키나가 팔짱을 끼며 웃었다.

본래 마키나 혼자서 이 정도의 힘을 발휘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지난 시간 동안 섭취한 정령옥과 정령계로 변질된 특수한 환경이 마키나에게 힘을 주었다.

마키나가 천천히 우리 쪽으로 날아온다.

성하리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중국인 3명이 죽어서가 아니라 마키나의 반응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마키나는 정령이고, 성하리는 마키나의 앞에서 정령을 말 그대로 먹었다. 마키나가 자신을 두려워하거나 혐오하는 걸 두려워하고 있을 것이다.

"하리야. 죽는 거 아니지?"

"괘, 괜찮아."

"다행이다!"

마키나가 평소 그랬던 것처럼 성하리의 품에 안겨들었다. 성하리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이내 안심한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마키나를 안았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마키나."

마키나가 평범한 정령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상급 정령인 모카도 성하리를 알게 모르게 꺼리는 것에 비해 마키나는 성하리를 전혀 꺼리지 않는다.

이후, 성하리는 나무 쪽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몰래 훔쳐봤다. 보이지 않는 부위에도 상처가 있을지 모르니까.

도중에 성욕이 치솟아 그녀를 덮치려고 했지만, 진지한 얼굴을 한 성하리였기에 참기로 했다.

"하리야. 그냥 도망치는 게 어떄? 내가 볼 땐 지금 이 상황은 구린내가 너무 나."

중국 히어로 협회 측이 제공한 무전기를 박살 냈다. 그것만으로 중국 히어로 협회를 적으로 만들기에 충분한데 중국 히어로 3명을 죽이기까지 했다. 중국 히어로 협회와 사이는 이미 틀어질 대로 틀어졌다. 도망치는 게 이득이다.

"우리가 도망치면 이 섬에 있는 수백만 명이 죽을 거야."

"난 얼굴도 모르는 수백만 명보다 네가 더 중요해."

"오빠..."

성하리의 얼굴이 붉어졌다.

핑크빛 분위기가 우리를 감싼다.

이대로 해피 타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콰앙!

폭발음이 울리고 성하리는 퍼뜩 표정을 갈무리했다.

"가자,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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