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0화 〉 1150. 아카데미의 구원자
“도착했어!”
보트 조종석에 앉은 마키나가 발랄하게 외쳤다. 보트가 멈췄다. 그 옆에 20M에 달하는 거대 백상아리의 꼬리가 해수면을 팡팡 때렸다. 마키나가 상어를 원격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망망대해.
잔잔하게 파도치는 바다밖에 보이지 않았다.
‘맞나? …뭐, 맞겠지. 마키나는 저래 보여도 기계 정령이니까.’
성격은 지랄맞고, 먹는 걸 더럽게 밝히긴 해도 계산 능력은 슈퍼컴퓨터에 버금간다. 아니, 각 잡고 제대로 능력을 사용한다면 그 이상일 터다.
보트 난간으로 이동해 다이빙을 준비했다.
“나도 갈 거야!”
마키나는 상어 머리 안으로 쑥 들어갔다. 강철 덮개가 상어 머리를 감쌌다.
“제발 방해하지만 마라.”
풍덩!
바다에 뛰어든 나는 아래로 내려갔다. 거대한 상어 한 마리가 나를 앞질러 아래로 내려간다.
[내가 더 빠르지롱!]
‘돌겠네.’
마키나는 진지함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아마 지금도 노는 기분일 것이다.
더 아래로 내려갔다.
어느 순간부터 빛이 보이지 않았다. 시커멓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나 물의 차가움과 부유감은 느껴진다. 우주 한복판에 있는 기분이었다.
‘정령안, 천안.’
어둠을 꿰뚫어 본다. 내 주위에는 물고기들이 가득했다. 마치 경계하듯 나를 중심으로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며 헤엄치고 있다.
‘1회차 때랑 똑같군. 제대로 왔어.’
더욱 아래로 내려간다.
[아, 안 돼! 내 죠스가! 도와줘! 성유진!!]
마키나의 의념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나는 내려가던 걸 멈추고 딴청 피우듯 옆의 물고기를 쳐다봤다. 깊은 곳에 있어서 그런지 좀 괴상하게 생긴 물고기였다.
[안 돼애애애애!]
재차 울리는 마키나의 절규를 들으며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구덩이가 있었다. 시커먼 구덩이 속에서 핏물과 살 조각이 튀어나온다. 내 머리통보다 큰 상어 눈알이 내 옆을 지나갔다.
마키나가 구덩이 속에서 툭 튀어나왔다. 날 발견한 마키나가 어색하게 헤엄치며 다가왔다.
[유진아! 죠스가 죽었어…! 복수해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키나의 목을 잡았다.
[케엑?! 무, 무슨 짓이야…?!]
‘복수해달라며. 상어를 죽인 건 너잖아.’
[아, 아니야! 죠스를 죽인 건 저놈이라구! 이거 놔!]
마키나가 내 손을 깨물었다. 힘이 상당히 들어가서 놔줄 수밖에 없었다. 나는 혀를 차고 구덩이 쪽을 바라봤다.
구덩이 속에서 킹크랩이 튀어나왔다. 컸다. 20m에 달하는 괴물 상어를 찢어발기고도 남을 정도로. 뾰족한 갑각을 가진 괴물 게는 나와 마키나를 보며 입에서 거품을 내뿜었다.
[히익!]
마키나가 내 등 뒤로 숨었다.
나는 스톰브레이커를 소환해 거대한 작살로 형태를 변화시켰다.
‘마키나.’
마키나에게 내 의지를 보낸다.
[아, 알았어. 이렇게 하면 되지?]
마키나의 힘이 작살에 실린다. 작살의 형태가 조금씩 바뀌어 작살총이 되었다. 나는 작살총에 뇌전을 일으켰다. 전기는 동력이 되었다. 방아쇠를 당겨 작살총을 쏘아낸다. 작살은 어뢰처럼 쏘아졌다.
작살은 게의 오른쪽 눈에 정확히 박혔다. 작살이 폭발을 일으켰다. 전류가 사방으로 퍼지며 어두운 바닷속을 환하게 밝혔다.
[해치웠나?!]
내 왼쪽 어깨에 턱을 올린 마키나의 의념이 전해진다. 인터넷에 푹 빠져 있는 마키나다. 그 드립의 뜻을 모를 리 없으니 일부러 지껄인 게 분명했다.
‘이번엔 아예 심해 바닥에 파묻어 버릴까.’
물론 그러려면 눈앞에 있는 거대 게부터 없애야 했다.
한쪽 눈알을 잃은 게는 분노하며 구덩이 밖으로 기어 나왔다. 빌딩에 맞먹는 크기였다.
[저, 저 집게를 조심해! 죠스가 저 집게에 당했어!]
거대 게가 내 쪽으로 다가온다. 그 커다란 다리가 땅을 짚을 때마다 흙먼지가 율리고 해류가 요동친다.
게는 나를 향해 집게를 내밀었다. 그 속도는 의외로 아주 느렸다.
[피해!!]
‘시끄러워. 의념이 너무 크잖아. 일부러 날 엿먹이는 거냐?’
[아니라구! 저건 진짜 위험해! 저 게의 능력은…!]
‘알고 있어.’
거대 게가 움직이며 발생한 해류가 정돈되어 간다. 해류는 마치 감옥처럼 내 주위를 막아섰다. 강렬히 움직이는 해류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게 쉽지 않다.
[나도 저거에 당했어! 저건 반칙이잖아!]
해류가 조여들며 내 몸을 구속한다. 거대 집게가 천천히 다가와 내 허리를 자르려 한다.
‘천심.’
[천심(天心)을 발동합니다. 1분 동안 지속됩니다.]
해류는 날 속박하지 못했다. 나는 거대 게에게 다가갔다. 스톰브레이커는 역소환했다가 다시 내 손에 소환한다.
‘마키나. 빙의다.’
[오케이!]
마키나가 스톰브레이커에 빙의한다. 스톰브레이커의 형태가 드릴로 바뀌었다. 드릴은 내 오른손에 달라붙었다. 드릴은 내 마나를 동력으로 회전했다.
드릴이 놈의 배를 꿰뚫는다.
[뚫어버려!!]
게는 이리저리 움직였다. 해류가 나를 붙잡으려고 하나, 천심의 효과로 어쩌지 못한다.
‘20초 남았나?’
나는 드릴로 만든 구멍에 들어갔다. 기분 나빠도 어쩔 수 없었다. 이게 확실한 방법이다. 오른손에 달라붙은 드릴이 빠져나갔다.
‘스톰브레이커 분열.’
스톰브레이커의 고유 능력이 발동되며 드릴이 6개로 분열되었다.
‘마키나 조종할 수 있지?’
[몸이 6개로 늘어난 기분이야! 근데 난 100개로 늘어나도 모두 조종할 수 있어!]
‘뭘 해야 하는지도 설명해줘야 해?’
[아니! 나도 눈치가 있거든요! 자, 간다! 죠스의 복수다!!]
6개의 드릴이 게의 내장을 파헤친다. 움직이던 게가 멈춰 섰다. 나는 머릿속에 울리는 드릴 소리를 들으면서 가만히 있었다.
게의 내장은 곤죽이 되었다. 게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밖으로 나왔다. 내장 속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니 기분이 상쾌했다. 바다 밖으로 나가면 더 상쾌해지겠지.
[드릴 맛이 어떠냐!! 이 죠스의 원수!!]
거대 게의 시체를 농락하는 마키나는 내버려두고 구덩이로 들어갔다.
거대 게의 보금자리인 구덩이는 무척 컸고, 더러웠다. 괴물의 뼈와 살점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어느 한 곳으로 움직였다.
거대 바다뱀 해골 중심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파란색 창 한 자루가 박혀있었다. 나는 창을 잡아 해골에서 뺐다.
『청룡창
랭크: C
물을 일으킨다.
단단하다.』
주작검과 비슷했다. 청룡창을 이용하면 다시 시련 던전으로 들어갈 수 있다.
‘류하나와 함께 들어가면 돼. 주작의 낙인은 가진 류하나의 앞에 적은 알아서 나타날 테니까.’
문제는 청룡창에게 인정받거나, 강제로 각성시켜야 던전을 열 수 있다는 것이다.
‘강제로 각성시키는 걸 생각하니… 후우. 귀찮아 죽겠군.’
나를 중심으로 모여드는 기척이 느껴진다. 나는 정령안을 빛내며 주위를 둘러봤다. 투구게 비슷하게 생긴 벌레들이 내 주위에 모여든다. 아마도 이곳에 널린 시체의 살점을 훔쳐먹고 있떤 놈들이리라.
‘내가 만만해 보이는 모양이군. 괴물 게에 비하면 크기가 많이 작긴 하지.’
청룡창에 마나를 담아 주위에 휘두른다. 거대한 해류가 일어나 벌레들을 깔아뭉갰다. 벌레들의 시체로 인해 수질은 더욱 안 좋아졌다.
‘빨리 여기서 벗어나고 싶군. …으음?’
눈앞에 예상치도 못한 알림창이 떠올랐다.
『당신에겐 시련을 도전할 자격이 있습니다. 청룡의 시련을 시작하겠습니까?』
1회차 때는 본 적 없었던 알림창이었다. 그래서 강제로 각성시켜서 사용했었고.
‘…이게 뜬다고? 1회차 때와 지금은 뭐가 다르지?’
미간을 찌푸렸다.
다른 게 너무 많았다.
특성의 영향은 아닐 것이다. 정령안은 정령에게 큰 영향을 끼칠 뿐이다. 청룡창은 정령과 아무 관련 없다.
청룡창과 관련된 스킬이나 특성은 하나도 없었다.
『이름: 성유진
근력: B- 체력: B 민첩: B- 내구: C+ 마나: A
특성: 정령안(S) 악마 사냥꾼(S)
스킬: 정령계약(A) 정령강령(A) 역장(C+) 검술(B+)
카르마: 선(善) 26』
‘…카르마. 짐작 가는 건 이것밖에 없다. 1회차 때는 카르마가 악(惡)이라 반응하지 않은 거겠지.’
대충 납득한 나는 구덩이 밖으로 빠져나갔다.
거대 게 시체에 구멍을 내며 화풀이하던 마키나가 빙의를 해제하고 내 뒤를 따라온다.
[그 파란 창 얻으러 여기까지 온 거야? 아! 아줌마한테 줄 선물이구나?!]
‘아닌데.’
[아니야? 아줌마가 섭섭해하겠다. 아줌마 생일이 언제인지는 알고 있지?]
‘…….’
마키나는 쫑알쫑알 시끄러웠다.
•••
스르릉.
칼을 뽑았다.
나와 대치한 류하나가 서늘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그날, 류하나가 던전에서 자기 자신과 싸워 패배하고 2주가 지났다. 나는 지금까지 그녀와 100번 이상 대련했으며 모두 승리했다. 신체 능력과 경험. 그 두 가지 요소가 앞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은 시련을 앞둔 날이었다. 나는 이 대련에서 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특수한 물건이나 천심 같은 스킬을 사용하면 이기겠지만…. 순수기량만 따진다면… 쉽게 이길 수 없겠지.’
설마 류하나가 이렇게나 빨리 성장할 줄은 나도 몰랐다.
“…시작할게.”
류하나가 중얼거렸다. 양손에 검을 쥔 그녀가 내게 달려들었다. 빠르지 않았다. 그러나 발걸음에 현묘함이 있었다.
‘일부러 대련을 질질 끌 필요는 없지. 빠르게 끝내자.’
영천류(影天流) 뇌광(雷光).
뇌기를 품은 참격이 류하나의 팔을 노린다. 류하나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쌍검을 교차시켜 참격을 막았다. 류하나는 힘에 밀려 뒤로 물러났다. 현묘한 보법이 힘을 흘려보낸다. 그녀는 지난 시간 동안 나와 대련하며 유(流)의 이치를 깨달았다.
영천류(影天流) 벽계(碧溪).
류하나로부터 30번이 넘는 승리를 따냈던 기술을 사용했다. 보법을 이용해 류하나의 거리감을 속인다.
류하나의 벽계 파훼법은 간단했다. 양손에 쥔 검을 뻗으며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가까이 가지 못했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회전이 멈추는 순간을 노려 칼을 찔렀다.
영천류(影天流) 뇌사(雷蛇).
칼이 배처럼 휘어져 류하나의 목을 노렸다. 류하나가 기다렸다는 듯이 반응한다. 오른쪽 검으로 내 칼을 쳐내고, 왼쪽 검을 내 어깨에 휘두른다.
찰나를 사용해 검격을 피했다. 류하나는 당황하지 않고 다음 공격을 이어갔다.
3개의 칼이 허공에서 아우러진다. 나는 그녀의 검을 아슬아슬하게 막으면서 기회를 기다렸다.
기회는 왔다. 지친 그녀가 숨을 내쉬는 순간, 팔이 벌어졌다. 쌍검의 사이가 벌어지는 그 짧은 황금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칼을 밀어 넣었다. 칼은 그녀의 명치를 찔렀다. 허나, 결계 운동복에 막혀 칼날이 몸에 파고드는 일은 없었다.
류하나는 한숨을 내쉬며 검을 내렸다.
“또 졌네.”
“이번엔 운이 좋았어.”
“……언제쯤 되면 널 이길 수 있을까?”
“글쎄. 조만간 네가 날 이기지 않을까.”
류하나는 자기를 놀린다고 생각했는지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날 째려봤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벌써? 아직 10시도 안 됐어.”
“내일 시련에 도전할 거니까 컨디션 조절해야지.”
류하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진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두들겼다.
“괜찮아. 넌 이길 수 있어.”
“…….”
류하나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