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144화 (1,144/1,497)

〈 1144화 〉 1144. 아카데미의 구원자

“류하나. 자, 갖고 싶댔지? 가져.”

그녀에게 포장된 주작검을 내밀었다.

“받을 수 없어.”

“왜? 네가 가지고 싶었던 검이잖아.”

“…아무렇지 않게 선물 받기엔 너무 비싼 물건이야. 그리고 난 널 이해할 수 없어. 이 검은 아무리 생각해도 300억 정도의 가치는 없어. 100억도 비싸. 남의 일에 참견하기 싫어서 잠자코 있었지만… 넌 손해 본 거야.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환불받아.”

300억.

보통 사람에겐 말도 안 되는 큰돈을 마치 300만 원처럼 말하고 있다. 그녀의 금전 감각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긴 노스다이아 클랜의 힘을 빌리면 300억은 우습지.’

다만, 류하나는 노스다이아 클랜의 힘을 빌리려고 하지 않는다.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까지 쭉. 그녀는 혼자 힘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이 검이 평범한 검이라고 생각해?”

“아니. C랭크면 평범한 검은 아니니까. 명검 수준은 될 거야. 그래도 300억 정도의 가치는 아니야.”

“넌 이 검의 가치를 전혀 모르는구나. 검을 보는 안목이 없네.”

“…….”

류하나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누구보다 검에 관심 있고, 진지한 그녀는 내 약한 도발에 부모 욕이라도 들은 것처럼 반응했다.

“…다시. 다시 주작검 좀 보여줘.”

“뭐, 그건 어렵지 않지.”

주작검의 포장을 해제한다. 류하나는 집중해서 검을 살펴봤다.

류하나에겐 검을 보는 안목이 충분히 있었다. 애초에 이 검을 먼저 발견한 건 류하나였다. 쇼 윈도우 너머로 빤히 지켜보고 있었지 않나.

“들어봐도 돼.”

“…무기점 주인이 열기 때문에 만지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어?”

“넌 괜찮을 거야.”

“……”

류하나는 머뭇거리다가 검자루를 손에 쥐었다. 류하나가 눈을 부릅떴다. 입이 벌어지고 몸이 떨린다. 그녀는 허공을 멍하니 쳐다봤다. 나는 얌전히 그녀를 기다렸다.

‘류하나의 특성인 검의 무녀(SS)가 있는 이상 어떤 검도 류하나를 거부하지 못하지.’

그게 성검이든, 마검이든 상관없었다.

“……성유진. 넌 처음부터 알고 있었구나. 이 검은… 300억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어.”

“주작검의 진체를 드러나게 할 수 있겠어?”

“응. 하지만….”

“뭘 망설여. 지금 당장 시작해.”

“…이검은 네 거야. 그리고 네가 휘말리게 될 텐데?”

“너한테 선물로 준다니까. 그리고 어차피 만지지도 못해. 대신 네가 검에게 인정받는 과정을 지켜봐도 되지?”

류하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손에 쥔 검을 들어 올렸다. 그녀가 마나를 일으키자 주작검이 기다렸다는 듯이 반응한다. 화르르륵. 불꽃이 검신을 휘감으며 타오른다. 타오른 불꽃은 한순간 주작의 형상을 취했다가 원래의 불길로 돌아온다.

류하나의 앞 공간이 일그러진다. 일그러진 공간이 류하나를 빨아들인다. 나는 서둘러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나와 류하나는 공간에 빨려 들어갔다.

『특수 던전, ???에 입장했습니다.』

나는 떠오르는 알림창을 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다르다.’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

특수 던전 이름에 ???가 붙었다면 그 이유는 하나다. 원래 던전이 변질되었다는 것.

‘내가 같이 들어가서 변질된 건가? 골 때리네.’

•••

나와 류하나는 서울 빌딩 꼭대기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것과 조금 다른 서울의 야경이 보인다. 드높아야 할 건물은 낮았고, 도로 일부는 폐쇄되었다. 돌아다니는 사람이 적었다. 활기로 가득해야 할 서울이 왠지 모를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긴다.

“여긴… 과거?”

“맞아. 던전에 의해 구현된 과거지. 아마 대충 20년 전? 19년 전 일 수도 있고 21년 전 일 수도 있어.”

나는 원작의 내용을 떠올리며 모호하게 말했다.

“류하나. 주작의 시련을 받았지? 그 내용이 뭐야?”

“…적을 찾아서 쓰러뜨리는 것.”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적도 널 찾고 있을 테니까.”

“넌 왜 그렇게 잘 알아?”

“비슷한 걸 한 번 겪어 봤거든.”

원작 게임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1회차 때 주작검, 청룡창, 현무갑, 백호도를 전부 빼앗아 억지로 각성시켜 사용해봤기 때문이다. 뭐, 오래 사용하지는 않았다. 유독 나한테 까다롭게 굴어서 파멸(S)의 제물로 사용했다.

이 공간에 다른 누군가와 함께 올 수 있다는 것도 1회차 때 알아낸 것이다.

“성가시더라도 어렵진 않을 거야.”

“…어디 가?”

“잠깐 확인할 게 있어서. 아, 맞다.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데 던전은 현실이 아니야. 현실을 바탕으로 구성된 것도 아니고. 평행 세계 중 하나가 구현된 거야. 평행이론은 알지?”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를 가능성의 세계.”

“간단히 말해서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되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고, 죽었던 사람이 이 세계에 살아 있을 수도 있다는 거지. 뭐가 됐든 우리랑 관계없는 일이니 흔들리지 마.”

류하나에게 조언을 끝낸 나는 옥상 벽을 타고 지상으로 내달렸다. 가뿐히 지상에 착지한 나는 도로로 걸어갔다.

끼이이이이익!

달리던 자동차 한 대가 나를 보고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나는 멈춘 자동차를 향해 다가갔다.

주먹으로 운전석 창문을 박살 내고 강제로 문을 열었다.

“으아아아아악! 당신 뭐야!!”

얼굴에 피로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사회인이 비명을 내지른다. 나는 그를 붙잡아 끄집어내 도로에 내다 버렸다.

“이 차는 이제부터 내 거다.”

운전석 문을 닫는다. 남자는 두려움에 떨며 눈동자만 굴렸다. 그런 그를 무시하고 액셀을 밟았다. 신호등을 무시하고 내달린다. 도로가 나 하나 때문에 어지러워지고, 교통사고가 일어났지만 알게 뭔가. 어차피 여긴 현실이 아닌 던전이다.

삐용삐용삐용.

“크크. 빌어먹을 짭새 새끼들.”

오랜만의 도심 속 추격전이라 그런지 흥분되기 시작했다.

핸들을 확 꺾으며 화려한 드리프트를 경찰들에게 보여주려다가 전봇대에 차를 박아 버렸다.

“하하. 마이 미스테이크.”

괜찮다. 차는 많다. 주행하는 차를 멈춰 세우고 탈취한다. 그대로 다시 액셀을 밟아 추격전을 이어간다.

경찰의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다.

“죽기 싫으면 당장 내려!!”

저 앞에. 도로 중심을 가로막은 남자가 외쳤다. 히어로다. 이 세계는 히어로가 있는 세계였다.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으셈.”

콰콰콰콰쾅!

앞길을 막아선 히어로에게 번개가 떨어진다. 히어로는 번개를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맞았다. 죽지는 않았는데 비틀거린다. 나는 액셀을 있는 힘껏 밟아 자동차로 히어로를 쳤다. 히어로가 저 멀리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하하! 멍청한 자식!”

나는 폭탄을 소환해 뒤로 내던졌다. 나를 추격하던 경찰차가 하늘을 나는 것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오늘이 바로 서울 불바다 데이다!”

•••

나는 차에서 내렸다. 주택이 가득한 골목길이었는데 열린 창문을 통해 라디오 소리가 들렸다.

-긴급 속보입니다! 남산 타워가 폭탄 테러를 당했습니다! 남산 타워가 무너집니다! 경찰들이 우왕좌왕 거립니다! 또 속보가 왔습니다! 경찰청이 테러당했습니다! 하늘에서 폭탄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스트레스 확 풀리네.’

피식 웃으며 골목길을 걷는다.

화끈한 추격전에서 히어로와 경찰들을 따돌리는 건 쉬웠다. 공간 이동 주문서를 사용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음?’

내가 찾은 곳은 성하리의 집이다. 정확하게는 내가 아카데미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까지 성하리와 내가 함께 지냈던 집.

‘이렇게 낡은 집이 아니었는데.’

집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은 잠겨 있었다. 힘으로 문고리를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다.

“……?”

“누, 누구쇼?”

TV를 보고 있던 중년 남녀가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기억에 없다. 성하리와 관련 없는 인물이다. 주위를 둘러본다. 낯선 집안이었다.

-…테러리스트를 수배합니다! 아직 정확한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이 얼굴을 보신 분들은 바로 경찰로 신고해주십시오!

TV에 내 얼굴이 나온다.

중년인들은 TV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순식간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나는 뒤돌아서서 현관 밖으로 나갔다.

“꺄아아아아아악!”

“겨, 경찰! 경찰!!!”

허둥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머리를 긁적였다.

‘성하리는 내가 태어나고 그 집을 구했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내가 태어나지 않은 시대인가?’

평행 세계 중 하나이니 아예 내 존재가 없는 세계일지도 모른다.

‘아, 맞다. 연도를 확인해보면 성하리가 지금 뭐 하고 있는지 대충 계산할 수 있잖아.’

나는 다시 몸을 돌려 집안에 들어갔다. 중년 부부를 협박해서 시간대를 알아냈다.

‘하. 설마 성하리가 아카데미를 다닐 때도 아닌 시기일 줄이야.’

가야 할 곳은 정해졌다.

•••

진령성가(眞靈成家).

나는 저 앞에 있는 진령성가를 보며 멈춰 섰다. 진령성가는 대한민국의 유서 깊은 명문 가문 중 하나다. 지금 내 실력으로 쳐들어갔다간 역으로 내가 제압당한다.

이 던전은 평행세계를 구현한 가짜 던전이지만, 내 목숨은 가짜가 아니었다.

정령안과 천안을 동시에 발동한다.

진령성가의 내부를 꿰뚫어 본다. 결계? 직접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 상관없다. 정령안과 천안을 막아낼 정도로 엄청난 결계도 아니고.

‘여전히 정령들이 많군. 성한구와 성명생은… 나란히 앉아 TV를 보고 있군.’

성하리는 보이지 않았다. 집에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근처 벤치에 앉았다.

내가 성하리를 찾는 이유는 내 출생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서다. 이 던전의 배경이 평행 세계라고 하더라도 운이 좋으면 성하리와 관련된 것들은 바뀌지 않았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연도를 알게 된 순간부터 의미 없는 짓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 과거야. 내가 태어나기는커녕 성하리가 아카데미에 입학하기도 전이잖아.’

그럼에도 진령성가에 찾아온 건 그냥 한 번 성하리를 보고 싶었다. 결국엔 그 성하리도 만나보지 못했지만.

‘다른 곳에 있거나…. 아니면, 이 세계는 성하리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거나. 류하나는 잘하고 있겠지?’

원작대로라면 류하나는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이길 것이다. 원작에서도 난이도는 꽤 쉬운 편이었다.

나는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급 정령들이 내 주위에 모여들었다.

‘진령성가 근처라서 정령이 많군.’

내가 가진 높은 정령 친화력에 이끌려 온 것이다.

쫓아낼까 하다가 내게 해코지하려는 것도 아니니 내버려 두기로 했다.

모카와 마키나가 생각났다. 이 던전은 좀 특수해서 모카와 마키나를 부를 수 없었다.

‘아마 던전 밖 시간은 멈춰있겠지. 정확하게 말하면 멈춰있는 것처럼 느리게 흐르는 거지만.’

시공간의 축이 다를 만큼 이 던전은 특수했다.

‘좀 쉬다가 한 번 더 날뛸까. 아니면 미녀를 찾아 따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고.’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들어 인기척이 느껴지는 쪽을 바라봤다. 가로등 아래에서 한 여자가 이쪽으로 걸어온다. 아카데미와는 다른 검은색 교복, 어깨에 아슬아슬하게 닿는 검은색 단발머리. 등 뒤에는 2m가 넘는 길쭉한 무언가가 비스듬히 걸려 있다.

“와. 애들이 엄청 모여 있네. 오빠도 정령사예요?”

키가 작다. 가슴은 봉긋한 수준이다. 얼굴에는 젖살이 빠지지 않고 남아 있다.

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알았다.

그녀는 중학생 시절의 성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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