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1화 〉 1141. 아카데미의 구원자
“모카.”
파지지지직.
상급 정령 모카가 날개를 펼치며 내 앞에 나타났다.
대량의 마나가 한순간에 빠져나가고 모카가 실체화한다.
“꾸우욱.”
모카가 날개를 펼쳤다. 반짝반짝 빛나는 날개에서 수십 다발의 번개가 번뜩이며 해골에게 날아갔다.
번개에 맞은 해골이 주춤거린다. 해골 여기저기에 구멍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저주가 다시 해골에게 모여들었다. 해골의 구멍 난 부위가 재생한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모카의 화력으로 단번에 죽이지 못한 건 둘째치고…. 저 빌어먹을 정도로 막대한 저주가 문제군.’
“유진. 저주의 매개체를 찾아서 없애야 해.”
신나리가 말했다. 단번에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이 아카데미 어딘가에 숨어 있는 김제오를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선배는 그놈이 어디에 있는지 알겠어요?”
“나는 모르지만… 이모는 알고 있을지도 몰라.”
제법 가능성은 있다. 살아있는 나나 신나리 보다 악령이 저주에 더 민감할 테니까.
재생을 끝낸 해골이 심상치 않다. 입을 쩌억 벌리더니 저주를 쏟아낸다. 모카가 앞으로 나서서 파도처럼 밀고 들어오는 저주를 막아낸다.
“꾸욱….”
오래 버티지 못한다. 내게 전해진 모카의 의지다. 모카가 흘린 저주가 내 몸에 닿았다. 피부가 푸석푸석해진다.
‘마키나를 소환해도 뾰족한 수는 없을 테고… 그걸 하는 수밖에 없겠군.’
나는 고개를 획 돌려 신나리와 칼레스를 바라봤다. 신나리는 모카 이상으로 저주를 버텨내고 있고, 칼레스는 그 뒤에서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어둠의 상급 정령과 계약이 끊어진 지금 상태의 칼레스는 저 해골과 상성이 좋지 않았다.
“나리 선배. 잠시만 저놈을 막아줄 수 있어요? 5초면 돼요.”
“할 수 있어.”
“부탁하죠.”
신나리는 내가 준 새끼줄에 축적한 저주를 해방했다. 그 저주는 한순간이나마 해골의 저주를 압도하고 역으로 공격하는 듯하더니 밀리기 시작했다. 해골의 저주는 거의 바다처럼 무한했기 때문이다.
“모카. 오랜만에 정령강령(精靈降靈)이다.”
“꾹!”
모카가 날아와 내 몸에 스며든다. 신체가 변한다. 머리카락과 피부가 새하얗게 변하고, 등에는 전류로 이루어진 천둥 날개가 솟았다. 이질적인 감각이었으나,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리로 알고 있다.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천둥 날개를 펄럭이며 가속한다. 해골이 내게 새하얀 손을 뻗는다. 해골의 커다란 손을 발로 찼다. 산산조각 난 손이 사방에 흩어진다. 해골이 휘두르는 반대 손을 피하면서 접근했다.
꽈악. 주먹을 강하게 쥔다. 파즈즈즈즈즛. 주먹에 전류가 모여 뭉쳤다. 나는 해골의 머리에 주먹을 후려쳤다.
바닥에 떨어진 유리처럼 해골이 부서진다. 저주가 모여들어 다시 해골을 재생시키려 한다. 나는 저주를 향해 계속 주먹을 휘둘렀다.
파지지직, 파지지지직!
주먹에서 발생한 전류가 저주를 태운다. 바다처럼 끝없던 저주는 해골을 포기한 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바닥에 내려서서 정령강령을 해제했다. 정령강령은 다 좋은데 체력 소모가 너무 크다.
“…정령을 빙의시켰구나. 그런 정령술은 들어본 적 없어. 진령성가의 비술이니?”
“맞아요. 웬만하면 비밀로 해주세요.”
“당연하지. 제자의 기술을 떠벌리고 다닐 정도로 멍청한 선생님은 아니야.”
힐끗.
신나리를 바라봤다. 그녀는 내가 정령과 합체하든 말든 관심 없는 듯했다.
“선배. 뭐가 보여요?”
“이 공간에서 저주가 빠져나가면서… 이모가 휩쓸렸어.”
그러고 보니 신나리에게 붙어 있던 악령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정령안으로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저주의 흐름을 살펴봤다. 보인다. 문제는 저주의 흐름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것.
“선배. 악령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겠어요?”
“응. 이모의 존재가 느껴져.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지금은 뭔가 이모와 깊게 느낌이야.”
신나리에게 항상 붙어 있던 악령이다. 갑자기 저주의 흐름에 휩쓸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어쩌면 저주의 근원으로 이동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선배. 악령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세요.”
“응.”
신나리는 망설임 없이 오른쪽 복도를 내달렸다. 그리고 복도 끝의 외부 문을 열어젖히고 밖으로 나간다.
“이, 이게 무슨…?!”
“…….”
칼레스가 경악한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살폈다.
하늘은 붉게 물들어 있고, 땅에는 시커먼 손들이 꽃처럼 심겨 있다. 손은 꾸물거리며 무언가를 잡으려 애쓰고 있다.
“아카데미의 결계가 저주로 인해 변했다…? 이건 말도 안 돼. 아카데미의 결계는 대한민국에서도 손꼽히는 결계일 텐데…! 아무리 저주가 활개 친다고 해서 결계가 변질되는 일은 있을 수 없어. …설마. 다른 누군가가….”
“칼레스 선생님. 이미 일어난 일이에요. 원인은 나중에 따지고… 지금은 신나리 선배부터 뒤쫓죠.”
“아…? 나, 나리야! 우리랑 같이 가야지!”
앞장서서 달려 나가던 신나리의 속도가 줄어들었다. 나와 칼레스는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주위를 살폈다. 칼레스의 말대로 결계가 변질되어 그런지 이것저것 왜곡되어 보인다.
조금 떨어진 곳에 나무 괴물과 싸우고 있는 교사들이 보인다. 나는 일부러 기척을 냈으나, 교사들은 이쪽을 보지 못했다. 칼레스도 교사들을 인식하지 못했다.
‘변질된 결계로 인해 왜곡되어있는 거겠지. 내가 저들을 볼 수 있는 건 정령안 때문이고.’
교사를 도울 필요는 없다.
아카데미의 교사다. 전공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그 전투력은 최소 B급 히어로 이상이다.
신나리의 다리는 멈추지 않고 달려 나갔다. 항상 무표정하고 담담했던 그녀의 얼굴에 초조함과 조바심이 엿보였다. 악령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런 불길한 생각이 신나리를 초조하게 만드는 것이다. 악령은 그녀의 가족이니까.
신나리가 도착한 곳은 쓰레기장이었다. 그 크기가 남달랐다. 여기저기 쓰레기들이 널브러져 있다. 악취가 코를 찌른다. 자세히 보면 몬스터 시체같은 것들도 있다.
이곳은 쓰레기장인 동시에 소각장이다.
한 달에 한 번 실습을 명목으로 마법과 학생들이 마법으로 쓰레기를 소각한다. 마법과 학생들은 소각의 날을 기대한다. 왜냐고? 마법으로 쓰레기들을 불태우면 스트레스가 풀리기 때문이다. 합법적인 방화, 합법적인 파괴다.
“뭔가… 으스스하네.”
칼레스가 말했다. 기분 탓이 아니다. 이 쓰레기장에는 저주가 고여있다. 고인 저주는 넘쳐서 아카데미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다시 말해 여기가 저주의 근원지다.
“김제오… 이 새끼. 쓰레기장에 숨어 있었군. 이런 곳에 숨다니… 비위도 좋아.”
“뭐…. 김제오가 여기에 숨어 있다고? 어디에 있어?”
“아직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여기에 있는 건 확실해요. 생각해봐요. 여기만큼 숨기 좋은 곳은 없잖아요?”
“그렇긴 해. 쓰레기장에는 관리자는 없고, 소각 날이 아니면 잘 찾지 않는 곳이니까. 누군가가 오더라도 쓰레기에 파묻혀 있으면 찾기 힘들고….”
칼레스가 납득했다.
신나리가 허공을 바라봤다. 악령이 흐느적거리며 날아와 신나리의 등에 달라붙었다. 나와 신나리의 시선은 악령이 가리키는 어느 한 곳에 향했다.
마나를 끌어올리며 진각을 밟았다. 쓰레기들이 허공으로 솟구치며 날아간다. 쓰레기들이 사라지자 바닥에 누워 몸을 숨기고 있던 김제오가 보였다.
김제오의 상태는 한눈에 보기에도 좋지 않았다. 미역 같은 머리카락은 푸석하고, 몸은 허수아비처럼 비쩍 말랐다. 옷 밖에 드러난 피부에는 붉은 반점이 자리 잡았다. 김제오의 주위에는 괴상한 물건들이 늘어서 있다. 주물들이다.
‘죽이자.’
망설일 이유는 없다. 김제오는 이미 범죄자로 수배되었다. 죽이더라도 내게 오는 책임은 없다.
파지지직.
정면에 생성해낸 뇌전을 붙잡아 김제오를 향해 던졌다. 허나 번개는 김제오의 몸에 닿지 못했다. 시커먼 저주가 번개를 튕겨낸 것이다.
김제오가 눈을 떴다. 그 동공에는 주황빛이 꾸물거렸다. 이어 김제오가 팔다리를 휘적이며 몸을 일으킨다. 어딘가 인간의 움직임과 동떨어져 있다.
“김제오는 죽었어. 죽었지만… 살아 있어.”
신나리가 말했다.
모순적인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대충 이해된다. 저주로 인해 악령 비슷한 존재가 되었다는 뜻이겠지. 영혼의 존재가 증명된 세상이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김제오가 일어난다.
까악까악까악.
쓰레기장 주위에 처진 울타리 위에는 수십 마리의 까마귀가 앉아서 울어댔다.
저주의 흐름이 역으로 바뀌었다. 김제오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저주가 이번엔 반대로 김제오에게 모여든다.
“성, 유진…!!”
김제오의 긁는 듯한 목소리는 내 이름을 불렀다.
주술계에서 이름은 특별하다. 이름이야말로 존재를 증명하는 어쩌고라고 한다.
“성유진!!!”
그의 목소리에 저주가 달라붙는다. 저주의 대상은 나다.
핏.
손등에 상처가 생겼다. 피가 튀어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상처는 저주에 의해 더 벌어진다.
나는 마나로 저주를 털어내며 말했다.
“칼레스 선생님, 나리 선배, 좀 도와주세요.”
“지원군을 부르기엔… 상황이 많이 안 좋네. 하아. 너무 성급했어.”
“응. 난 뭘 하면 돼?”
“선배. 악령이랑 빙의할 수 있어요? 강제로 하는 거 말고요. 폭주하면 곤란해요.”
“할 수 있어. 난 이제… 이모를 믿으니까.”
“그럼 좀 낫겠네요.”
김제오의 몸이 부풀어 오른다. 근육이 미친 듯이 꾸물거리고, 다리가 터지고 재생하기를 반복한다. 그의 몸통에선 내장이 끊임없이 흘렀다.
“성유진…! 죽여버리겠다…!”
3m 넘게 커진 김제오가 쓰레기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몬스터 시체, 음식물 찌꺼기 등이 김제오의 몸에 달라붙어 갑옷이 된다.
“이모.”
악령이 신나리에게 빙의한다. 신나리의 백발이 검게 물들고, 피부는 붉어진다. 그녀의 동태 같던 두 눈동자는 반짝반짝 보석처럼 빛난다.
입가에 미소지은 신나리가 김제오에게 살의를 내비치며 혀로 입술을 할짝였다.
“모카.”
모카가 내 몸에 스며들었다. 정령강령에 성공한 나는 천둥 날개를 펼쳐 하늘 위로 올라갔다.
오직 나만을 노려보고 있는 김제오의 등에서 뼈 날개가 튀어나왔다. 뼈 날개가 한 번 퍼덕이자, 김제오도 하늘로 올라갔다.
“건방지게 나랑 같이 하늘을 날려고 하는군.”
천둥 날개를 움직였다. 천둥소리가 울리고, 벼락으로 이루어진 날개 깃털 수십 개가 김제오에게 쇄도한다. 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김제오는 깃털을 피하지 못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육중한 비명이 울리며 김제오의 몸이 쓰레기장으로 추락한다.
신나리가 김제오에게 달려들었다. 그녀의 손톱이 김제오의 살과 내장을 파낸다.
“힛, 히히히히힛!”
신나리가 웃었다. 김제오는 막대한 저주로 그녀를 밀쳐내려고 했으나, 주물 자체인 육체와 악령의 힘을 가진 신나리는 도리어 저주를 흡수했다. 흡수한 저주로 손톱을 강화해서 공격한다.
저주를 흡수하고 강화해서 공격. 간단하지만, 김제오에겐 치명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