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4화 〉 1134. 아카데미의 구원자
상급 번개의 정령이 된 천둥부엉이 모카가 마른하늘을 날았다. 모카의 시선은 정령안을 개안한 나와 공유되었다.
‘4번째를 찾았다. 돌을 주워서 제단을 만들었군.’
제단을 이용해 주물의 저주를 증폭시킬 노림수다. 나쁘지 않다. 내게 정령안이 없었다면 꽤 고생했을지도 모른다.
‘모카. 저 새끼한테 벼락 맛을 보여주자.’
-꾸욱!
맡겨만 달라고 말하는 모카의 의사가 전해져 온다.
콰콰콰쾅!
커다란 벼락이 지상으로 떨어졌다. 제단을 만들고 저주를 하려던 놈이 리타이어 되어 사라진다.
‘남은 건 3명. 신나리는 발견하지 못했고… 2명도 내 눈을 피해 잘 숨었군. 주술을 사용했거나, 동굴 같은 곳에 몸을 숨긴 거겠지.’
짐작가는 곳은 몇 군데 있었다.
망설이지 않고 발을 떼는 순간이었다.
키이이이이잉.
날카로운 소리가 귓가에서 울린다. 기분 나쁜 무언가가 내 몸을 뚫고 지나간다. 저주였다.
‘시발. 4번째도 범인이 아니었나.’
『신목의 새끼줄
랭크: S
저주에 면역된다.
내구도 27/50』
내구도가 2 깎였다.
내 얼굴은 사정없이 구겨졌다.
10분마다 어딘가에서 저주가 날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망할 저주에 총 10의 내구도가 깎였다.
‘신목의 새끼줄의 내구도가 한 번에 2씩 깎일 정도면… 대체 얼마나 강력한 저주를 사용하는 거야? 빌어먹을. 신목의 새끼줄이 없었다면 큰일 날 뻔했어.’
더 짜증 나는 건 내 눈으로도 저주의 흔적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초조함을 애써 숨기며 발을 뗐다.
•••
“크어어억!”
다섯 명째가 언덕 위에서 나가떨어졌다.
남은 건 신나리와 다른 한 명.
『신목의 새끼줄
랭크: S
저주에 면역된다.
내구도 22/50』
내구도를 확인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창백한 백발, 자그마한 체구, 교복 아래 새하얀 피부를 가리는 붕대, 동태 눈깔 같은 죽은 붉은색 눈동자.
신나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양손은 클로(Claw)를 착용했다. 검은색 장갑 손등에 3개의 블레이드가 손톱처럼 뻗은 무기. 무엇보다 위력적인 건 그녀에게 붙어 있는 악령이다. 긴 머리에 눈 파인 여자 귀신의 머리는 나를 향하고 있다. 악령의 존재하지 않는 눈동자가 날 노려보는 것 같다.
“선배. 근처에 있었죠? 왜 이제야 나타났어요?”
“선생님이 그렇게 하라고 했어.”
그녀는 어떠한 감정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내 질문에 답했다.
김제오.
그놈의 작전이다. 내가 지쳤을 때 비장의 카드인 신나리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근데 어쩌나. 난 안 지쳤어. 체력, 마나. 완벽하게 관리한 상태지.’
신목의 새끼줄 덕분에 성가신 저주술사들은 날 어찌하지 못했다.
“선배. 제안 하나 하죠.”
“……?”
“주물과를 버리고 정령과로 와요.”
“싫어.”
“주물과에 있는 이유를 알아요. 그 악령 때문이죠? 악령의 정체와 다루는 방법을 알려줄게요.”
악령의 정체.
그 단어에 신나리가 반응했다. 눈이 조금 더 커진 것이다.
“…그래도 안 돼. 선생님에게 받은 은혜를 갚아야 해.”
“그냥 여기서 포기하면 돼요. 그럼 제가 도와드린다니까요?”
“안 돼.”
“…그거 알아요?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그냥 안 도와줍니다. 확실하게 대가를 받을 거라고요. 그리고 그 대가는 꽤 비쌀 거예요.”
“그래도 안 돼.”
신나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더는 나와 대화하지 않겠다는 듯 손을 들어 올린다. 강철 손톱이 날카롭게 빛난다.
“난 기회를 줬어요, 선배.”
마음속으로 모카를 부른다.
나와 계약한 정령인 모카가 내 의지에 답한다. 천둥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우고 벼락이 된 모카가 신나리에게 쇄도했다.
신나리의 몸이 기이하게 흔들렸다. 아마추어 괴뢰사가 다루는 꼭두각시의 움직임과 흡사했다. 번개가 떨어졌다. 신나리는 아슬아슬하게 모카를 피했다.
모카가 성질을 부리듯 사방에 번개를 내뿜었다. 전류가 땅을 타고 퍼진다. 신나리는 몸에 닿는 전류를 무시했다. 그녀는 남들보다 촉각과 통각이 희미하다. 아마 전류에 의한 고통도 따끔한 수준일 것이다. 움직일 수 있는 건 저주의 힘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가오는 그녀를 향해 창을 투창했다.
3개의 창이 연달아 그녀에게 날아간다. 신나리는 무대 위에서 춤추는 발레리나처럼 우아하게 창을 피했다.
‘종잡을 수 없는 움직임이군.’
헛웃음을 흘릴 틈은 없었다. 그녀는 어느새 내 앞에 나타났으니까.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그녀의 클로를 막는다.
까앙! 깡!
신나리의 공격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왼쪽, 오른쪽, 왼쪽, 왼쪽, 오른쪽.
질서 따윈 찾아볼 수 없는 공격의 향연은 본능 그 자체였다.
‘사람이 아니라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 같군.’
보법을 밟으며 뒤로 밀려나면서 그녀의 공격을 받아낸다. 최대한 그녀의 힘을 분산하기 위해서다.
‘영천류 레벨을 끝까지 올린 보람이 있어. 뒤로 빠르게 움직이는데 발이 전혀 꼬이지 않아.’
신나리는 떨어지면 끈질기게 따라왔다. 나무를 엄폐물 삼아 뒤로 이동한다. 신나리의 손톱에 붉은 저주가 검기처럼 맺혔다. 나무가 4등분 나서 쓰러진다. 나 또한 푸른 검기를 일으켜 그녀의 공격을 막았다.
공격이 이어질수록 날 향한 신나리의 집중력이 올라갔다.
‘모카, 썬더 볼트 할 수 있지?’
다크 문에서 사용했던 썬더 볼트. 상급 정령인 모카라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꾹!
모카의 자신만만한 의사가 전해왔다. 내 마나가 훅 빠져나간다. 모카가 제대로 할 모양이다.
정령안을 통해 모카의 시선이 내게 보인다. 하늘에 떠 있는 모카를 중심으로 번개가 모여 압축된다.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하군.’
여기서 내 기량을 좀 더 선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마나를 오른발에 모아 진각을 밟았다. 후우웅.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나무통들이 일제히 위로 솟았다. 신나리가 벤 나무들이다.
‘가속, 찰나.’
영천류(影天流) 뇌음보(雷音步).
파직.
내 다리는 뇌음을 흘리며 번개처럼 움직였다. 솟아오른 통나무를 밟는다. 신나리의 붉은 눈이 내 잔상을 쫓는다. 그녀가 내 움직임을 완전히 놓쳤을 때를 노려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피할 수 없는 완벽한 기습이다.
허나 신나리는 피했다.
누군가가 잡아끄는 것처럼 기이하게 그녀의 몸이 옆으로 움직여 내 일격을 피한 것이다. 원인은 뻔하다.
‘…빌어먹을 악령 새끼.’
신나리의 당혹감 서린 눈동자가 내게 향한다. 허나 그것도 잠시, 곧 그녀의 손톱이 반격해온다. 나는 억지로 어깨를 비틀어 칼을 세워 방어했다.
까앙!
몸이 뒤로 날아간다. 나는 공중에서도 균형을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바닥에 착지했다.
“썬더 볼트.”
한번 말해 봤다.
신나리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녀는 감각이 옅었다. 그렇기에 하늘에서 준비된 공격을 끝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수백 년 묵은 나무처럼 굵은 번개가 그녀에게 떨어졌다. 파멸의 빛은 짧았다. 허나 주위를 불태우고 땅바닥에 크레이터라는 흔적을 남겼다.
그 중심에서 신나리가 하늘을 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상처는 없다. 옷도 멀쩡하다. 그러나 그녀의 몸을 감고 있던 붕대가 검게 물들어 있었다. 붕대가 천천히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제마의 붕대.
김제오가 신나리에게 선물한 붕대.
김제오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신나리가 김제오의 말을 거부하지 않는 이유였다.
“……여긴 던전이니 상관없으려나.”
그녀가 중얼거렸다. 먼지가 된 붕대는 바람을 타고 꽃잎처럼 흩날렸다. 악령의 입가가 찢어진다. 악령의 손이 창백한 신나리의 피부를 꽉 끌어안는다. 악령이 그녀의 몸에 스며든다. 빙의다.
신나리의 하얀 머리카락이 검게 변하고 피부는 피처럼 붉게 물든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요사스럽게 빛난다. 제마의 붕대로 인해 그녀 안에 차곡차곡 쌓인 저주가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숨이 턱 막히는군. 생각 이상인데….’
이 정도면 아카데미 교사 중에서도 그녀를 감당할 수 있는 인물은 몇 없을 것이다.
신나리의 입이 벌어졌다.
형언할 수 없는 목소리가 공간에 울린다.
직후, 그녀의 발이 땅을 박찼다. 그것만으로 충격파가 일어난다.
‘찰나.’
주시하고 있었기에 늦지 않았다. 내게 다가오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손목에 찬 새끼줄이 강렬하게 빛난다.
신나리의 빙의가 풀린다. 악령이 새끼줄의 신성함을 견디다 못해 튕겨 나갔다. 원래의 형태로 돌아온 신나리가 눈동자를 끔뻑이며 날 바라봤다.
“아….”
“모카, 번개.”
콰르르르릉!
나와 신나리에게 번개가 떨어졌다. 신나리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리타이어 된 그녀가 내 앞에서 사라졌다. 떨어져 나간 악령도 마찬가지다.
‘일시적으로 떨어졌을 뿐이니 당연한가….’
감전의 영향으로 짜릿한 몸을 무시하고 나는 새끼줄을 바라봤다. 하얀 새끼줄은 검게 물들어 있었다.
『신목의 새끼줄
랭크: S
저주에 면역된다.
내구도 0/50』
알림창의 내용이 꿈틀거리더니 변형되었다.
『저주받은 신목의 새끼줄
랭크: S
저주를 흡수한다.
흡수한 저주 0/100』
‘공략대로군.’
키이이이이이잉.
내게 저주가 날아왔다. 저주는 내 몸에 해를 끼치는 대신 새끼줄에 빨려 들어갔다.
『저주받은 신목의 새끼줄
랭크: S
저주를 흡수한다.
흡수한 저주 7/100』
‘저주가 7이나 흡수됐나. 역시 이건 평범한 저주가 아니군.’
혀를 찼다.
저주받은 신목의 새끼줄은 소유주의 저주를 대신 흡수한다. 마냥 좋은 게 아니다. 저주가 가득 차면 재앙이 되어 소유주를 덮치니까. 이 물건은 저주를 다룰 수 있는 이가 아니면 소용없는 물건이다.
‘최상급 주물이지. 근데 나한테는 필요 없어.’
이걸 적절히 다룰 수 있는 건 신나리다. 그리고 이걸 신나리에게 선물하면 호감도가 급상승한다.
•••
『저주받은 신목의 새끼줄
랭크: S
저주를 흡수한다.
흡수한 저주 21/100』
“찾았다.”
동굴 속에 숨어 있는 나머지 한 명을 찾아냈다.
동굴에 들어간 나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동굴바닥이 피로 잠겨 있었다. 피 웅덩이는 무려 발목 깊이였다. 피의 근원지는 천장이었다. 천장에 달린 작은 해골의 입에서 핏물이 끊임없이 흘렀다.
그리고 그 아래 한 남자가 무릎 꿇은 채로 핏물을 맞고 있었다. 고개 숙인 놈은 의미 모를 말을 계속 중얼거렸다.
‘이 새끼 뭐지. 당장 몸에 장식한 주물만 10개가 넘잖아.’
그 주물들 공통점은 모두 무언가의 시체라는 것이다. 사람의 손, 몬스터 이빨, 생물의 내장…. 하나같이 역겨운 것들이다.
『저주받은 신목의 새끼줄
랭크: S
저주를 흡수한다
흡수한 저주 24/100』
단지 이곳에 있을 뿐인데 저주가 흡수된다. 나는 혀를 차며 칼을 들었다.
‘뭐, 됐어. 빨리 끝내자고.’
첨벙첨범.
끝을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갈 때였다. 뿌드드드득. 놈의 목이 180도 돌아가더니 나를 바라봤다. 텅 빈 눈두덩이에선 피눈물이 줄줄 흐르고, 입가는 기괴하게 찢어져 웃고 있다.
“너는….”
주물과 1학년. 김제오에게 내기를 신청할 때 내게 잔뜩 쫄았던 그 1학년이다.
“키히, 키히히히히히!”
놈이 웃음을 흘린다. 목이 고무처럼 늘어나더니 동굴 천장에 닿았다. 놈의 텅 빈 눈은 정확히 날 보고 있다.
쨍그랑!!
공간이 거울처럼 부서진다. 부서진 공간의 틈에서 나온 건 강지영이다. 그녀의 등 뒤로 당황하는 아카데미 교사와 학생들이 엿보였다.
강지영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빠드득. 꽉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흐른다.
“당장 김제오를 잡아!!”
그녀의 분노가 담긴 일갈은 공간마저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