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133화 (1,133/1,497)

〈 1133화 〉 1133. 아카데미의 구원자

주물과 대표 교사인 김제오는 사무실에 앉아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오전에 학생들을 통해 하나의 정보를 얻었다.

1학년 학생 일부가 성하리와 함께 오염구역을 공략했다는 정보다. 그 중심에는 당연하다는 듯 성유진이 있었다.

‘갑자기 성하리와 함께 오염구역에 갔다? 그놈이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리고 성하리를 움직여 경고하는 것이다. 자신의 배경에는 성하리가 있다는 것을.

‘…빌어먹을 놈.’

일주일도 남지 않은 주물과와 정령과의 대련.

김제오는 주물과의 승리를 자신했다. 정령과는 1명이었고, 주물과는 7명이다. 수적인 차이면 7배다. 성유진의 강함이 1학년 최상위라고 해도 이번 대결의 룰은 주물과의 특성 덕분에 외부의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었다.

주물과는 엄선한 주물들을 가져가 사용할 것이다. 상대가 설령 A랭크 히어로라고 해도 주물의 힘을 빌리면 압도할 자신이 있었다. 거기에 주물과에는 신나리가 있다. 전력을 차고 넘친다. 주무과의 승리는 정해져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성하리의 이름을 듣기 전까지는.

‘…성하리가 이번에 개입했다면?’

성하리.

한국의 오천(五天)중 한 명이자, 한국 유일의 SS급 히어로. 최근 몇십 년 동안 활동이 뜸하지만, 한때 세계 최강의 히어로로 인정받았던 인물이다. 아카데미 학장인 강지영도 성하리에 비하면 한 수… 아니, 몇 수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다.

‘성하리가 가진 실력과 인맥, 아이템이 성유진의 손에 들어갔다면?’

주물과가 패배할지도 모른다.

김제오는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었다.

“김제오 선생. 있는가?”

허락도 없이 문이 열렸다. 김제오는 입을 꾹 다물고 들어온 이를 노려봤다.

“당신이 여긴 무슨 일입니까?”

“너무 쌀쌀하게 굴지 말게. 자네를 도우러 왔으니. 정령과의 존재가 거슬리는 건 나도 마찬가지네.”

“너무 쌀쌀하게 굴지 말게. 자네를 도우러 왔으니. 정령과의 존재가 거슬리는 건 나도 마찬가지네. 내가 자네를 도와줄 수 있네.”

캐리어를 한 손에 든 그가 다가온다.

“이건 주물과의 일입니다.”

“우리 사이에 그런 섭섭한 말을 하는가?”

“…주물과의 힘으로도 충분합니다.”

“거울을 한 번 봐보는 게 어떤가. 지금 자네 몰골은 꼭 공포 영화 주인공 같군.”

“…….”

“이번에 주물과가 패배하면 많은 것을 잃을 것이네. 안 그래도 몰락해가는 주물과의 평판이 땅에 떨어질 것이고 학생들에게 비웃음을 사겠지. 그리고 자네는… 부학장님의 신의를 잃을 것이고.”

부학장.

그 말이 나오자 김제오는 두 눈에 힘을 주었다.

“난 자네를 알고 있네. 목표했던 걸 얻기 위해선 악마와도 손을 잡을 수 있는 남자가 자네지.”

“당신 스스로가 악마라고 말하는 겁니까?”

“무슨 그런 살벌한 소리를 하나. 내가 했던 말은 비유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지 않나.”

그는 기어코 김제오의 책상 앞까지 다가왔다.

쿵.

캐리어가 책상 위에 놓인다. 그의 손바닥에서 마나가 진동한다. 마법적인 잠금이 풀리고 캐리어가 열렸다.

“……!!”

김제오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열린 캐리어에서 심도 깊은 저주가 느껴졌다. 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모두 주물이군요.”

“주물과의 교사인 자네라면 알겠지. 이것들이 얼마나 대단한 물건들인지.”

“돈으로만 따지면 수백억은 할 텐데…. 어디에서 구하셨습니까?”

“비밀이라네. 어쨌든 이것들이 있으면 대결은 문제없을 테지. 주물과의 기증하겠네. 알아서 사용하게.”

“…이것들을 사용하면 아카데미가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하하하.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

김제오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알고 있다.

아카데미는 주물과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을.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 아카데미 관계자들은 주물과에 어떤 주물이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않다. 서류는 있어도 정작 그 서류를 보는 자들은 없다. 왜냐? 주물과는 몰락해가고 있으니까.

“이번 대결에 걸려있는 건 주물과의 미래뿐만이 아니네. 자네의 미래도 함께 걸려있지.”

“……저와 주물과는 당신에게 줄 대가가 없습니다.”

“대가는 하나면 되네. 정령과의 해체.”

그는 캐리어를 두고 몸을 돌렸다.

“기대하겠네.”

그가 사라졌다.

김제오는 숨을 토했다. 그의 눈동자가 기이하게 일렁인다. 두 손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캐리어에 향했다. 주물을 하나, 하나 확인하는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반드시 이겨서 주물과의 가치를 증명하겠다.’

•••

대결 당일이 되었다.

나는 인공 던전에 들어가기 전 주위를 둘러보았다.

구경꾼들이 많았다. 아카데미 교사 대부분이 참석했고, 소문을 들은 아카데미 학생들까지 모여들었다. 2학년은 적었다. 지금이 실습 시즌이라 그렇다.

담담하게 모인 1학년을 훑어봤다. 대부분이 정령과가 패배할 거라 예측한다. 아무리 나라도 혼자서 7명을 상대는 불가능하다. 라는 이유다.

‘이시은은 날 응원하고 있고…. 류하나까지 왔군. 이건 의외인데.’

김천우와 마진배는 그냥 넘긴다. 남정네들 따위 관심 없다.

이어 내 시선이 멈춘 곳은 최다연이다. 최다연과 시선이 마주쳤다. 팔짱을 낀 최다연은 도도했다. 그 일이 있었는데도 내 시선을 피하지도 않는다. 최다연답다면 최다연다웠다.

시선을 뗐다. 주물과 7명을 바라본다. 신나리를 제외한 6명이 적대적이다. 신나리는 담담했다. 해야 하니까 한다. 그런 느낌이다.

“승리 조건은 설명하지.”

마루한 아카데미 학장인 강지영이 말했다.

“먼저 던전을 공략하거나, 상대를 전투 불가 상태로 빠뜨리면 승리한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어깨를 풀었다. 아카데미 인공 던전의 좋은 점은 치명적인 피해를 받아도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손대중할 필요는 없다.

“먼저 정령과인 성유진이 입장하고 10분 뒤에 주물과가 입장한다.”

10분.

내게 주어진 단 하나의 어드밴티지.

‘별로 필요 없는데.’

던전 공략으로 승리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주물과 7명을 쓰러뜨린다. 그게 내 목표였다.

“시작하도록.”

강지영의 말이 끝나자마자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풍경이 바뀌었다.

마른하늘과 4개의 언덕이 날 반겼다. 난 그 자리에서 팔짱을 낀 채로 주물과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10분이 지났는데도 주물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던전 중에는 간혹 시간 흐름이 이상한 던전이 있지. 하지만 여긴 인공 던전이니 그럴 일은 없을 테고….’

답은 하나다. 제각각 시작 지점이 다르다. 던전 정보는 사전에 공개되지 않아 몰랐다.

‘쯧. 주물과 놈들을 찾아다녀야 한다는 거군. 귀찮게 됐어.’

느긋하게 움직였다.

주물과의 저주는 몬스터를 상대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저주 자체가 기본적으로 대인 특화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던전은 대량의 몬스터를 상대해야 하지. 주물과는 던전 공략보다 날 상대하는 게 몇 배는 더 편해.’

급한 것은 내가 아니라 주물과 놈들이다.

“찾았다!! 성유진!!”

주물과 3학년이 외쳤다. 적의가 담긴 목소리였으나, 내겐 우습게만 느껴졌다.

3학년 남자는 온몸에 주물을 주렁주렁 달았다. 머리에는 낡은 삿갓, 허리춤에는 시커먼 사과, 손에는 시커먼 기운이 흐르는 빗자루를 들고 있다. 나는 로켓런처를 그에게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로켓이 그를 향해 날아간다.

다짜고짜 로켓을 날리는 선공.

아직 경험이 쌓이지 못한 1학년생이라면 대처도 하지 못하고 리타이어 될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3학년. 아카데미를 폼으로 다닌 건 아니지 주술을 이용해 방벽을 만들었다. 로켓이 폭발을 일으켰으나 땅의 방벽을 부수진 못했다.

“그딴 무기를 던전에 들고 와? 지금 장난 하는 거냐?”

3학년이 으르렁거렸다. 아카데미. 아니, 히어로들은 현대 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멸시하는 수준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현대 무기, 화기가 가진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새로운 로켓을 런처에 꽂았다.

RPG-7의 손맛을 느낄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절로 그려졌다.

연기와 함께 로켓이 날아간다. 놈은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방벽을 믿고 있는 것이다. 그게 패착이었다.

콰아아앙!

일반 로켓보다 3배는 더 강한 폭발력이 일어났다. 방벽이 부서지고 놈의 몸이 땅바닥을 데구르르 굴렀다.

‘담임인 윤희정에게 인챈트를 부탁했지.’

원래는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던전에서는 예외다.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주물과 뿐만이 아니다.

“크어어, 어억….”

나는 그에게 저벅저벅 걸어갔다.

“첫 번째 공격이 평범했다고 두 번째 공격까지 평범한 로켓이라 생각했나? 너무 멍청해서 코미디인 줄 알겠어.”

놈의 결계옷이 반짝반짝 빛났다. 리타이어 직전이라는 것이다.

“음?”

놈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원래라면 피를 흘리는 일이 없어야 했다.

“…일부러 결계옷을 조정한 건가?”

왜?

그 물음에 대답은 바로 나왔다.

“걸렸구나…!!”

놈의 낡은 삿갓이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다.

놈이 의기양양하게 웃는 얼굴을 보며 알아차렸다. 시전자의 고통과 피로 발동하는 저주라는 것을.

질척한 저주가 내 몸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사라졌다.

파스슷!

주물인 낡은 삿갓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저주가 실패한 대가였다.

“무, 무슨?!”

나는 씨익 웃으며 손목을 들었다. 하얀 새끼줄이 손목을 감싸고 있었다.

“그 물건은 설마…?!”

저주에 대항하는 물건. 찾아보면 꽤 많다. 주물과가 몰락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 때문이기도 하고. 까놓고 말해 성수만 있어도 하급 저주는 효력을 발휘하지도 못한다.

“너희가 주물 수십 개를 가져올 게 뻔한데, 내가 아무 대비를 안 할까 봐?”

“그, 그렇다 해도 한계는 있을 거다…!”

놈이 시커먼 사과를 내게 던지고, 빗자루로 땅바닥을 쓸었다. 저주가 덮쳐온다. 나는 담담하게 맞섰다. 저주는 내 털끝 하나 건들지 못했다.

“말도 안 돼…. 대체 그 물건은 정체가 뭐냐! 설마… 성물…?”

“병신아. 성물을 내가 어떻게 가지고 있겠냐.”

나는 놈의 머리를 발로 찼다. 무기를 쓰기도 아까웠다. 놈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의 육체가 사라진다. 리타이어다. 놈은 던전 밖에서 적절한 조치를 받을 것이다.

‘남은 건 여섯이군.’

나는 움직이기 전에 새끼줄을 확인했다.

『신목의 새끼줄

랭크: S

저주에 면역된다.

내구도 43/50』

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내구도 7이 한 번에 줄어들었다.

‘겨우 저주 3개를 막아냈을 뿐인데 내구도가 뭉텅 사라졌잖아!’

잘못본 게 아닐까. 두 눈을 비비며 다시 내구도를 확인했다. 그대로였다.

‘…돌겠네. 주물과 이 새끼들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왔어. 이럴 줄 알았으면 잘난 척 하지 말고 바로 리타이어 시킬걸.’

깎인 내구도가 아까웠다.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주물과에 이 정도로 위험한 주물들이 있었다니…. 내가 주물과를 너무 무시했었군.’

주물과에서 조심해야 할 건 신나리뿐이다. 라는 생각을 고치며 다른 놈들을 찾아 움직인다.

[천안(天眼)을 개안합니다.]

정령안과 천안을 동시에 개안했다.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변한다. 주물과 놈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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