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9화 〉 1119. 극기
[성유진
레벨: 80
근력: 100 체력: 100 민첩: 100 지능: 100 정력: 100 마나: 100]
[사용 가능 포인트: 16,575]
모은 포인트를 확인했다.
16,575 포인트.
가슴이 웅장해지는 양의 포인트였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모은 포인트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디에 포인트를 사용할지도 이미 정했다.
[영천류(影天流) Lv.13
영천류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2,000포인트를 사용해 영천류(影天流) Lv.13의 레벨을 상승시키겠습니까?]
오늘 낮에 진세영에게서 영천류의 극기(極技)를 배웠다. 솔직하게 말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진세영은 내가 금방 익힐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내 의견은 다르다. 난 내 재능에 대해 알고 있다.
‘아마 한 달 내내 매달려도 진전이 없을걸? 어쩌면 1년이 지나도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어.’
영천류의 극기에 시간을 버려가며 매달릴 생각은 없었다.
가까운 길이 있는데도 빙 둘러서 먼 길로 걸어가는 미련한 짓을 할 이유도 없다.
그리고 착각해선 안 된다.
내가 익힌 영천류의 근원은 유희 생활 어플이다.
이제 와서 영천류의 극기를 내 실력만으로 익히겠다는 건 웃기지도 않는 오만이다.
‘영천류의 레벨을 올린다. 이게 내 능력이고, 내 방식이야.’
[3,000포인트를 사용해 영천류(影天流) Lv.14의 레벨을 상승시키겠습니까?]
계속해서 레벨을 올린다. 포인트는 아직 남아 있다.
[3,500포인트를 사용해 영천류(影天流) Lv.15의 레벨을 상승시키겠습니까?]
[5,000포인트를 사용해 영천류(影天流) Lv.16의 레벨을 상승시키겠습니까?]
[특성 영천류가 Lv. Master에 도달했습니다.]
[영천류(影天流) Lv. Master
영천류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17 레벨이 영천류의 끝이었다.
나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내 안으로 영천류의 정보가 들어온다. 영천류의 정수가 세포 하나, 하나까지 스며들고 있다.
영천류의 17개의 극기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진세영이 말한 실전된 극기도 아무렇지 않게 알아냈다. 17개의 극기 중에는 진세영이 만든 산뢰(散雷) 또한 포함되어 있다. 거기에 진세영이 사용했던 것보다 훨씬 완성되어 있었다.
머릿속의 정리를 어느 정도 끝낸 나는 눈을 뜨고 손바닥을 펼쳤다.
손바닥에서 시커먼 기운이 흘러나왔다.
영천류의 암영(暗影)이다. 영천류를 마스터하면서 유리아처럼 암영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파지직. 파직.
어두운 기운 위로 뇌광이 모습을 드러냈다. 뇌광이 암영에 반발한다.
‘유리아처럼 뇌광과 암영을 합치는 건… 영천류 자체의 기술이 아니라… 일종의 다른 영역이군.’
영천류를 마스터하며 새삼스럽게 유리아의 재능이 얼마나 괴물 같은지 알았다.
허공에 손을 털었다. 암영이 떨어져 나가고 뇌광이 내 손바닥을 타고 회전했다.
‘뇌전 특성을 가진 내겐 암영은 맞지 않아.’
뇌광을 사용할 때 필요한 집중력이 1이면 암영의 경우에는 최소 5다. 나는 암영을 깨끗하게 포기했다.
[성유진
레벨: 80
근력: 100 체력: 100 민첩: 100 지능: 100 정력: 100 마나: 100]
[사용 가능 포인트: 3,075]
포인트가 남았다. 나는 고민하다가 능력치를 올리기로 했다.
[성유진
레벨: 80
근력: 100 체력: 100 민첩: 100 지능: 100 정력: 105 마나: 103]
[사용 가능 포인트: 275]
‘역시 남자는 정력이 높아야지.’
정력 능력치를 확인하고 흐뭇하게 웃은 나는 몸이 근질거리는 걸 느꼈다. 이번에 알게 된 영천류의 극기들. 그것들을 모두 사용해보고 싶었다.
‘수련장에 가서 허공에 쓰는 건 재미 없지. 적당한 던전이나 가볼까.’
•••
뚝딱뚝딱뚝딱.
나는 영천검관을 개조하는 전문가들을 일 처리 속도를 보며 감탄했다. 한 분야에 숙련된 그들은 장인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진짜 일주일만에 영천검관의 수련장 개조를 끝내버리겠군.’
뒤쪽에서 익숙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진세영이 다가온 것이다.
“유진아. 손님이야.”
“손님?”
영천검관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진세영이었다. 손님을 맞이하는 일은 그녀의 몫이다.
“정확히 네 이름을 부르며 지목했어. 널 찾아온 손님이야.”
진세영의 목소리는 다소 경직되어 있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나를 만나러 왔다면 미리 연락해야 정상이었다. 그게 기본적인 매너니까.
‘집을 찾아온 게 아니라 영천검관을 찾아왔다는 건….’
상대는 이미 내 동선을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내가 쫓아낼까?”
“아냐, 누나. 여기까지 왔으니 정체는 알아내야지. 지금 그 손님은 1층에 있는 거지?”
“응. 일단 1층에서 기다리라고 말했어.”
“헌터야?”
“그게… 좀 애매해. 각성자인 건 확실한데 헌터 특유의 느낌은 없거든.”
능력을 각성했다고 해서 헌터가 되라는 법은 없었다. 단지, 헌터가 되는 편이 명예와 돈을 쉽게 얻을 수 있으니 대부분의 각성자가 헌터로 진로를 정하는 편이다.
“이상하긴 한데 만나보면 알겠지.”
“조심해. 헌터는 아니어도 호락호락한 인간은 결코 아니야.”
진세영의 걱정을 뒤로하고 1층으로 향했다. 그녀가 진지하게 그리 말했으니 평범한 인간은 결코 아닐 것이다.
1층 응접실로 들어섰다. 깔끔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방의 중심에 검은 정장을 입고 소파에 앉아 있던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르마로 정리한 검은색 머리카락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멀끔한 인상의 남자였다.
나도 모르게 긴장시켰다. 유희 세계의 경험을 통해 본능적으로 알았다. 남자는 남들 위에 서는 자다. 귀족 혹은 정치가 등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안녕하십니까, 성유진 씨. 다짜고짜 찾아온 것에 대해선 사과드리겠습니다. 제게 나름의 사정이 있는지라….”
그가 품에 손을 넣었다. 무기를 꺼내려는 건 줄 알고 나도 모르게 몸을 긴장시켰으나, 그의 손에 들린 건 고급스러움이 물씬 느껴지는 명함이었다.
“이 건물의 주인인 여성분에게는 제 정체를 밝히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소란스러운 건 딱 질색입니다. 기자가 냄새를 맡기라도 하면… 후우. 상상만으로 끔찍하군요.”
“뭐, 연예인이라도 됩니까?”
“연예인은 아닙니다만, 저를 주시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요즘은 골치가 아플 정도입니다.”
받은 명함을 뒤집어 그 정체를 확인했다.
세진 건설 사장. 하준수.
나도 모르게 고개가 위로 올라가려는 것을 참았다. 지금 영천검관의 건물을 개조하는 전문가들이 세진 건설 소속이기 때문이다.
세진 건설은 누구나가 인정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건설사다.
‘…하준수는 그 신분이 전부가 아니야. 세진 그룹의 오너 일가. 세진 그룹 회장의 첫째 손자이자, 그룹 후계자에 가장 가깝다는 남자.’
언론에 제법 노출되었다고 하는데, 남자 얼굴에 관심 없어서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그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날 찾아온 건… 여동생인 하승희 때문이겠지. 하승희와 내 관계를 눈치채고 결혼을 강요하러 온 건가. 승희가 보지랑 똥구멍이 맛있긴 한데… 진지하게 결혼을 고민할 정도는 아니야.’
나와 하준수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준수는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를 원하는 모양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입을 다물고 분위기를 잡을 필요가 있다. 상대가 재벌 3세라 해서 세진 그룹에서 일하는 것도 아닌 내가 꿇리는 일은 없다.
결국, 먼저 입을 연 건 하준수 쪽이었다.
“성유진 씨. 전 유진 씨가 제 여동생, 승희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으음.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만나는 사이이긴 한데… 긴밀한 관계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군요.”
그러고 보니 내일이 하승희와 만나기로 한 날이다. 하승희의 쫄깃한 보지와 똥구멍이 떠오른다.
“쉽게 인정해주시다니… 의외로군요.”
“나는 한다면 하는 남자입니다. 이까짓 일 정도는 몇 번이고 인정해드리죠.”
“이야기가 빨라서 좋군요.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승희와 유진 씨 사이의 일을 전부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하준수를 바라봤다. 하준수는 내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웃더니 테이블 위에 USB 하나를 올렸다.
“맨입으로 알려달라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정보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길 마련이고, 승희와 관련된 일인 만큼 확실한 보상을 준비해왔습니다. 이 USB 안에는 제 용돈을 모아 놓은 장소가 들어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터계의 슈퍼 루키인 성유진 씨라도 만족할만한 액수일 겁니다. 장담하죠.”
“후우. 그렇게까지 저와 승희 사이의 일을 알고 싶으십니까?”
“물론입니다. 혹시 돈이 아닌 다른 물건을 원하십니까? 원하시는 물건이 있으시다면 준비하겠습니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여동생의 섹스 라이프를 그렇게까지 알고 싶은 건가? 나는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근친충이 내 여자를 노린다? 상대가 누구든 내 여자를 노린다면 가만히 있을 생각이 없었다.
“조부께서 승희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저는 몇 번이나 조부께 승희가 무엇을 하는지 물었으나… 가르쳐주지 않더군요. 그러니 개인적으로 알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
내 눈동자는 깊이 가라앉았다.
‘승희의 할아버지는 이미 나와의 관계를 알고 있는 건가? 뭔가 돌아가는 꼬라지가 드라마 속의 재벌 가문보다 더 막장스럽군.’
검지를 튕겨 USB를 밀었다. USB가 테이블에서 미끄러지며 하준수의 품속에 들어갔다. USB를 낚아챈 하준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승희와는 따로 약속한 게 있어서 말입니다. 우리 사이의 일은 알려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시 생각해보시지요. 승희가 약속했던 것. 전부 제가 제공해드릴 수 있습니다.”
하준수의 말에 내 얼굴이 일그러졌다.
씨발. 나한테 똥구멍이라도 바치겠다는 말인가? 이건 나에 대한 모욕이었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함께 살의가 피어오른다. 하준수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린다. 그러나 내 살의를 정면에서 받으면서도 도망치지 않는다.
“…승희는 뛰어난 재능을 가졌습니다. 조부께서도 승희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기회를 주려 하시죠. 허나, 우리 가문의 장남은 저입니다. 세진 그룹에 이변이 일어날 일은 없습니다. 성유진 씨. 당신께 마지막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제 사람이 되어주십시오. 승희가 약속했던 것들, 전부 제가 드릴 수 있습니다.”
“아니, 당신은 못 합니다. 줘도 제 쪽에서 거절하죠.”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군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하준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희 곁에 좋은 사람이 있었군요.”
나는 그가 나가자마자 바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혹시 모르니 도청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하승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시죠, 선배? 약속한 날은 내일 일텐데요.”
“방금 네 오빠가 왔다 갔어.”
“네?”
“너의 섹스 라이프를 알고 싶어 하더라고. 심각한 근친충이야. 돈을 준다고 해도 입을 다물었으니 걱정하지 마. 그래도 좀 불안하니 조만간 담판을 보는 게 좋겠어.”
“무슨 개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큰오빠가 선배를 찾아갔다는 거죠? 생각보다 빠르게 냄새를 맡았네요.”
하승희의 목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꼴렸다.
“승희야. 오늘 저녁에 만나서 진솔한 대화를 나눌까?”
“오늘은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약속대로 내일 만나죠.”
뚝.
전화는 바로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