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117화 (1,117/1,497)

〈 1117화 〉 1117. 극기

[유희를 종료합니다.]

[다크 문] 세계에서 돌아온 나는 바닥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다크 문]의 기억과 경험이 몰려와서 그런 건 아니다. 기억과 경험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부작용도 없었다.

단지, 조금 허탈함을 느꼈다. 정력이 낮을 때 섹스를 하고 난 뒤 느꼈던 현자 타임과 비슷하다. 그렇다고 성욕에 관한 건 아니다.

‘재능….’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단어였다.

‘유희 생활 능력을 각성하기 전에는 재능 때문에 좆같았지.’

[다크 문] 세상의 내 재능은 압도적이다. 마법을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 마법을 이해하고 펼칠 수 있다. 마법을 원하는 대로 개조하는 것도 손쉬운 일이다. [다크 문] 속의 나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마나를 다루는 감각은 이미 현실의 나를 넘어섰어.’

기분이 확 가라앉았다.

움직이기 싫고 모든 일이 귀찮아진다.

‘유희 생활이라는 엄청난 능력을 각성한 내가 재능을 운운하는 것도 좀 그렇긴 하지만….’

생각하고 만다.

내게 재능이 있었다면, 지금 보다 얼마나 더 강해졌을까.

‘……결국 의미 없는 상상이지.’

나는 자리에서 비적이며 일어났다. 유희 생활을 각성하기 이전에 이런 기분을 자주 느꼈고, 그때마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퍼질러 잤다.

‘유리아가 만들어준 도시락을 먹고 자자. 자고 일어나면 이 기분도 나아지겠지.’

식탁에 앉아 인벤토리에 넣어둔 도시락을 꺼낸다. 도시락 뚜껑을 열자 뜨거운 스테이크가 나를 반겼다. 포크와 나이프를 준비한 나는 식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적적함을 약간이나마 없앨 겸 TV를 켰다.

연예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영화배우 강나미 씨가 3개월 뒤에 한 남자의 아내가 된다고 환하게 웃으며 발표했습니다.

“…뭐?”

스테이크의 육즙을 즐기던 나는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강나미. 내가 고등학교 시절 때부터 좋아했던 영화배우다.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연기 실력과 한복이 잘 어울리는 청순함. 한때 내 가슴에 불을 질렀던 여인이었다. 그녀의 합성 사진으로 딸친 적도 있을 정도다.

강나미는 TV 화면 속에서는 강나미가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리포터와 인터뷰를 진행 중이다.

-강나미 씨의 그분은 어떤 분인가요?

-다정한 사람이에요. 항상 절 챙겨주더라고요.

-예비 신랑분이 재벌가 일원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가요?

-죄송해요. 그이의 신상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 않아요.

-3개월 뒤엔 알려질 텐데요?

-그때까지 준비해야 할 게 많아요. 조금 힘들지만, 일생에 한 번밖에 누리지 못할 행복한 시간이죠. 전 이 행복한 시간을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아요.

-제가 결혼해봐서 아는데 꼭 행복한 시간만은 아니에요.

-전 행복하던걸요.

-개인차가 있기 마련이죠. 여하튼, 강나미 씨의 남성 팬분들이 많이 실망하겠어요.

-저도 이제 30대예요. 결혼은 해야죠. 노처녀로 늙어 죽고 싶지 않아요.

리포터는 능숙하게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강나미의 근황, 차기 작품 등등.

나는 스테이크가 전부 식을 때까지 TV를 바라봤다.

강나미는 오늘도 아름다웠다. 바닐라 색의 우아한 원피스가 그녀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강나미 씨의 반려가 될 행운의 남자는 대체 누구인가! 3개월 뒤에 공개됩니다!

강나미가 화면에서 사라졌다.

“아아아아아악!”

괴성을 지른 나는 본능적으로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절대 최면 스티커.

스티커에 최면 내용을 적고 상대방의 피부 위에 붙이면 절대 최면에 걸립니다.

가격: 3,000 포인트

※주의

대상의 정신력에 따라 최면이 걸리지 않습니다. 한 번 최면에 걸리면 ‘절대 최면 해제 스티커’를 제외하곤 최면을 풀 수 없습니다.

최면 내용을 꼭 하나만 적어야 하는 법은 없습니다. 다만, 모순되는 내용이 2개라면 2개 모두 적용되지 않습니다.]

[절대 최면 스티커를 구매하시겠습니까?]

‘할까, 말까, 할까, 말까, 해버려? 해버릴까?’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절대 최면을 사용하면 뒤탈 없이 강나미를 따먹을 수 있다. 그런데 그건 너무 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강간하고 최면 스티커를 써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인데….’

다른 방법도 있다. 강나미가 출연한 창작물을 봐두고 나중에 들어가는 거다. 뒤탈은 전혀 없고 포인트도 아낄 수 있다. 새로운 창작물에 들어가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는 걸 제외하면.

-화제의 신인 여배우! 오아람 씨가 나와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오아람 입니다!

맹렬히 고민하던 나는 TV로 시선을 돌렸다. 젊고 생기 넘치는 여배우가 상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처음 보는 여배우였으나, 내 가슴을 뛰게 만드는 미녀였다.

‘…강나미는 퇴물 끼가 좀 있어. 나이는 30대에 3개월 뒤에는 결혼까지 하니… 이미 보지가 닳고 닳은 상태겠지. 물론 그렇다고 포기하는 건 아니고. 강나미는 후순위로 미뤄두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번엔 아이돌입니다! 저번 주 차트를 뒤집어 놓은 걸그룹이죠! 자본주의 아이돌! ATM!!

-안녕하세요! ATM 입니다! 돈이 최고야!

5명의 미녀들이 섹시한 옷을 입고 웃고 있었다.

나는 집중해서 TV를 시청했다.

어느새 1시간이 지나 있었다.

‘…잠깐 TV를 멀리한 사이에 내가 모르는 신인들이 늘어났군.’

미녀들이었다.

그러나 어딘가 아쉬움이 있었다.

‘하린이가 더 낫다.’

날고 기는 연예계에서도 한하린 급의 외모를 가진 미녀는 무척 드물었다.

‘하린이 만나러 가야지.’

•••

오랜만에 영천검관에 들렸다.

예전에는 육체 단련을 위해 자주 찾았던 곳이다. 그러나 영천검관의 관장대리인 진세영이 바빠지고, 평범한 신체 단련보다 유희 생활 포인트를 사용하는 편이 더 효율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며 찾지 않게 되었다.

‘오늘은 진세영이 쉬는 날이니까.’

까놓고 말해서 진세영과 오랜만에 섹스하러 왔다.

‘겸사겸사 내 실력도 확인하고.’

오랜만에 들린 영천검관은 변한 게 없었다.

“왔어?”

진세영도 변하지 않았다. 검은색 포니테일, C컵의 탱탱한 가슴과 한껏 업된 엉덩이. 그녀의 탄탄한 몸매는 여전했다. 얼굴도 마찬가지다.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서 강한 인상을 주지만, 화장기 없는 얼굴은 전반적으로 청순했다.

“누나는….”

피부에 밀착한 검은색 탱크탑과 레깅스는 몇 번을 봐도 꼴렸다. 나는 그녀의 몸을 노골적으로 훑어보며 은근한 신호를 보냈다.

“잘 지냈지? 한 번 확인해봐야겠는데….”

“여전하구나. 그건 나중에 확인하고….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어.”

진세영은 진지했다. 덩달아 나도 진지해졌다. 이럴 땐 괜히 까불거려선 안 된다. 그녀가 진지할 땐 나도 진지해야 한다. 그게 진세영을 대하는 방법이다.

“중요한 일?”

“극기(極技). 알지?”

“알지. 영천류의 궁극기 같은 기술이잖아.”

“그거랑 비슷하면서도 좀 달라. 영천류의 좀 특별하고 위험한 기술이라고 할까. 다르게 오의(奧義)나 비기(秘技)라고 할 수 있겠네. 뭐, 우리는 영천류의 극에 달해야만 쓸 수 있다 해서 극기라 부르지만.”

“…설마. 극기를 내게 가르쳐주려는 거야?”

진세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기쁨과 의문을 동시에 느꼈다.

“난 아직 영천류의 극에 달하진 않았는데?”

“대신에 네 각성 능력은 뇌전이잖아. 영천류 자체의 숙련도는 극에 달하지 못했어도, 뇌광(雷光)을 다루는 솜씨만큼은 나나, 우리 아빠 이상이잖아. 그렇지?”

“꼭 그렇지는….”

“나랑 아빠는 하늘에서 벼락을 떨어뜨리는 짓은 못 해. 그리고 오늘 널 보고 확신했어. 네 신체 능력과 마나를 다루는 실력은 A급 실력이란 걸. 네겐 영천류의 극기를 익힐 자격이 있어.”

살짝 몸을 떨었다. 그녀에게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상당히 기뻤다. 내색은 안 하지만, 그녀는 첫 스승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누나. 보여줘, 영천류의 극기.”

“보여주기 앞서서 극기의 형태에 고집하지 마. 영천류의 정수로 만든 기술. 그게 극기니까. 다시 말해 너도 너만의 극기를 만들 수 있는 거야.”

“나만의 극기…. 그럼 누나는 누나만의 극기를 만들었다는 거네?”

“맞아. 자신만의 새로운 극기를 만드는 것. 그게 종주(宗主)의 자격 중 하나야.”

A급이 되고 나서 헌터일에 집중하던 진세영은 새로운 경지에 올라선 모양이다.

‘얼마나 강해졌는지 몰라도 나보다 강한 건 확실하겠지.’

진세영은 극기에 대해서 설명했다.

영천류의 현재 종주인 진우성은 11대다. 다시 말해 최소 11개의 극기가 존재한다. 허나, 몇 개는 실전되어 기록에만 간간이 존재하고, 검술과 관련된 극기는 나와 진세영은 사용할 수 없다. 그것들은 말 그대로 검술이 극에 달해야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니까.

“내가 네게 보여줄 극기는 세 개야. 3대 종주의 폭진뢰(爆震雷), 7대 종주의 봉뢰(封雷)와 내가 만든 산뢰(散雷).”

“모두 뇌광과 관련된 기술이구나.”

“번개를 다루는 능력이 있는 네게 가장 어울리는 기술이니까. 라고 말하고 싶지만, 지금 내가 익힌 극기가 이 3개 밖에 없어.”

그녀는 멋쩍게 웃으며 내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잘 봐. 우선 폭진뢰(爆震雷).”

파지직.

진세영의 손바닥 위에서 새파란 전류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기 충격기 수준의 작은 전류였다. 그리고 전류가 폭발했다. 작은 폭발이었다. 위협은 하나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확실하게 물리적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과 함께 발생한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게 규모가 작아서 그렇지. 벼락 수준만 되어도… 건물 하나는 우습게 날려버리겠군.’

진세영은 괜히 손바닥을 털었다.

“폭진뢰(爆震雷). 이름 그대로 폭발하는 번개야.”

“어떻게 한 거야?”

“영천기공의 구결을 일부 바꾸고, 뇌광에 의지를 담아야 해. 후자 쪽이 문제이긴 하지만… 너라면 쉽게 할 수 있을 거야.”

날 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는다. 정말로 내가 쉽게 해낼 것이라 믿는 것이다. 날 세기의 천재쯤으로 알고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다. 정작 나는 감도 잡지 못하고 있지만.

“다음은 봉뢰(封雷). 유진아. 왼손에 마나를 집중시켜 봐.”

“이렇게?”

파지지직.

왼손에서 뇌전이 튀었다.

“아니. 마나만 집중시키라니까. 마나로 신체 강화할 때처럼 말이야.”

“…이렇게?”

“응. 그렇게. …잠시만 기다려. 봉뢰는 집중할 시간이 필요해.”

30초가 지났을까. 그녀의 검지에서 전기 한 줄기가 번뜩이며 내 왼손바닥 중심을 꿰뚫었다.

“윽!”

나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왼손을 강화하던 마나가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마나가 무언가에 짓눌렸다. 아니, 마비되었다.

‘…손 자체는 움직인다. 마나만 사용할 수 없을 뿐이군.’

3초가 지나자 다시 마나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봉뢰의 효과를 알겠지?”

“일시적인 마나 봉인…. 엄청난데?”

3초.

극히 짧은 순간이라도 A급 이상의 세계에선 1초 단위로 목숨이 오간다. 3초면 충분히 길다.

‘문제는… 봉뢰를 쓰기 위해선 준비 시간이 필요해.’

“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봉뢰를 사용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걸린다고 생각한 거지? 이건 숙련도 문제야. 숙련도만 높다면 봉뢰의 준비 시간도 줄일 수 있을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누나. 누나가 만든 극기인 산뢰는 뭐야? 빨리 보고 싶어.”

“잠깐만. 산뢰는 만든 지 얼마 안 된 기술이라 준비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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