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2화 〉 1112. 다크 문
“레지스탕스가 아니라고?”
나는 묶여 있는 남자를 향해 재차 물었다.
내 앞에 무릎 꿇은 남자는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그 주위에는 3개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다. 한 시간 동안 어설프게 고문한 결과였다. 3명은 죽고 2명은 정보를 나불거렸다.
“아, 아닙니다! 몇 번을 말하지만, 저희는 결코 레지스탕스가 아닙니다!”
“그럼 뭔데?”
“저, 저희는 블레이그 조직 소속으로….”
나는 그의 말을 묵묵히 들었다.
사실 이번이 5번째 듣는 대답이었다. 남자들은 고문을 시작하고 5분 만에 입을 열었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 고문은 감내하겠다는 의지고 나발이고 없었다.
내가 1시간 동안 그들을 고문하고,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이유는 검증을 위해서였다. 적이 내뱉는 정보를 아무 이유 없이 덜컥 믿을 수는 없다.
‘블레이그. 105 부대의 바그 소령과 밀수를 진행하는 조직. 하페일 공화국에서 가져온 마약과 불법 물건을 프리셀 왕국에 판매…. 이런 짓거리를 하기엔 허술한 놈들인데…. 공화국 측이 묵인하고 있는 건가.’
프리셀 왕국에 마약이 퍼지는 일은 공화국 입장에선 나쁘지 않다. 적의 불행은 행복이니까.
나는 그들을 더 고문하려 했다. 레지스탕스는 끈끈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기로 유명했다. 정보를 얻어내려면 이 정도 고문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직.
내 손에서 스파크가 일어나자 남자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진다.
“제가 아는 모든 걸 말했습니다! 제, 제발 그만해주십시오!”
무시하고 놈의 머리로 손을 뻗으려 했는데, 렉시 교관이 내 어깨를 잡았다.
“211호. 이만하면 됐어. 이놈들은 레지스탕스가 아니야.”
“교관님. 확신하기엔 이르지 않습니까? 이놈들의 말대로라면 이곳에 밀수 품목이 있어야 하는데, 뒤져본 결과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 아직 물건이 오지 않았습니다! 물건은 다음 주 중에 옵니다!”
남자가 끼어들어 말했다. 나는 싸늘한 눈으로 남자를 보다가 렉시 교관을 바라봤다.
“좀 의심스럽긴 한데 다른 놈들도 같은 증언을 하고 있잖아. 여기서 끝내자.”
“알겠습니다.”
“너나 나나 심문은 잘 못 하는구나.”
“전 배운 대로 했습니다.”
“죽을 때까지 고문하라고? 비누스 교관이 가르쳤지?”
“네.”
“하여간 그 영감은….”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은 렉시가 권총을 꺼내 들었다. 탕. 탕. 총성이 울리고 살아 있던 남자 2명이 그대로 죽었다.
“이 오두막은 어떻게 할까요?”
“내버려 두자. 우리가 이용하기엔 영 별로야. 2층 가봤어? 땀 냄새랑 담배 냄새로 아주 지독하더라. 여기서 잠잘 바엔 그냥 땅바닥에서 자는 편이 더 나아.”
렉시 교관이 밖으로 빠져나갔다. 나는 시체들을 오두막에 버려두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렉시 교관님.”
“누나.”
“네. 렉시 누나. 제 생각에는… 바그 소령과 이놈들은 모종의 연락 수단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맞아. 우리에 대해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놈들은 연락 수단을 말하지 않았어. 나흘 전에 상부에서 지시받았다고 했지.”
“우리가 올 걸 미리 알고 있었지요. 그놈들은 말단 중의 말단이라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지만….”
“레지스탕스랑 바그 소령, 블레이그 조직. 어쩌면 전부 한통속일지도 모른다?”
“네. 누나도 그렇게 추측하셨군요.”
렉시 교관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리의 최대 목표는 생존이야. 임무는 후순위야. 잊지 마.”
“네. 알고 있습니다.”
•••
루멜 숲에 들어온지도 3일째가 되었다.
렉시 교관은 안 그래도 없던 임무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린 것 같았다. 원래 렉시 교관은 임무에 상당히 깐깐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임무 내용이 처음부터 잘못됐기 때문이겠지.’
바그 소령이 수작을 부려 보고한 정보를 바탕으로 짜인 임무. 의욕이 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문제는 임무에 흥미를 잃은 그녀가 날 놀리는 데 재미를 붙인 것이다.
야한 농담을 툭툭 내뱉거나, 풍만한 몸매로 은근슬쩍 야한 포즈를 취하며 내 반응을 떠본다. 내가 그녀를 의식하고 있다는 걸 들켜버린 것이다.
그만하라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차라리 극단적으로 그녀를 한 번 덮쳐버릴까 싶은 생각도 들었으나, 그녀와 나의 신분 차이를 떠올리고 관뒀다.
“크르르르.”
렉시 교관이 나를 향해 손톱을 세우며 으르렁거렸다. 방금 처리한 재규어를 따라 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녀의 목 아래쪽으로 향하는 동공을 필사적으로 제어했다. 그녀의 티셔츠는 땀으로 젖어 몸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렉시 누나. 지겹지도 않습니까?”
“왜. 재밌는데. 내 몸 보고 싶으면 봐도 돼.”
“…….”
렉시 교관이 일부러 상체를 흔들었다. 그에 따라 풍만한 가슴이 출렁인다. 나는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킥킥 웃었다.
저녁이 되기 전에 냇가를 발견했다.
투명하고 깨끗한 물이 숲 사이를 졸졸 흘렀다. 우리는 냇가를 따라 위로 올라갔다. 시원하게 내려오는 작은 폭포를 발견했다.
‘찾았다. 게임 속의 풍경과 별반 다를 것 없군.’
마침 시간도 나를 도와준다.
“렉시 누나. 오늘은 여기서 야영하면 될 것 같습니다. 폭포는 시끄러우니 좀 떨어진 곳에 자리 잡죠.”
“찬성이야. 3일 동안 샤워하지 못해서 찝찝해서 죽는 줄 알았는데 때마침 좋은 곳이 나왔잖아. 샤워할 거야. 말리지 마.”
“네. 그동안 전 저녁을 준비하겠습니다. 천천히 즐기십시오.”
이 폭포에는 나도 볼 일이 있었지만, 그건 나중으로 미뤘다.
내가 몸을 돌리고 식량을 가지러 가려는 순간이었다. 렉시 교관이 사악하게 웃더니 내 몸을 잡아 냇가에 던졌다.
뒤늦게 반응하려다가 그만뒀다. 렉시 교관의 장난임을 깨달은 것이다.
풍덩.
몸이 빠졌다. 폭포 아래쪽 냇가는 아슬아슬하게 발이 닿을 정도의 깊이였다. 정신까지 번쩍 들 정도의 차갑고 깨끗한 물에 찝찝함이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곳에선 물놀이를 하는 게 약속이야.”
마나를 사용해 일시적으로 신체 능력을 올린 그녀가 높이 도약해 다이빙했다. 내 앞에서 커다란 물보라가 일어난다. 나는 팔목으로 얼굴에 튀는 물방울들을 막았다.
수면 위에 목만 둥둥 뜬 렉시가 깔깔 웃었다. 그녀에게서 마나의 유동이 느껴진다. 마나는 곧 마법이 되었다.
‘윈드… 인가.’
물과 바람이 섞였다. 사방으로 물이 치솟았다가 내게 떨어진다. 물살까지 영향을 받았다. 냇물이 내 몸을 이리저리 밀어댄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렉시 교관의 물놀이는 꽤 과격했다.
‘배리어를 쓰는 건 낭만이 없는 거겠지. 윈드.’
똑같이 바람 마법으로 대응했다. 그녀의 웃음이 짙어진다.
“오오. 제법 강하게 나오는걸?”
그녀가 버블 마법을 사용했다. 주위에 수십 개의 수박만 한 물방울이 일어나더니 나를 노렸다. 위력을 최대한 낮췄다고 해도 물방울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진짜 이렇게 나오실 겁니까?”
“괜찮아. 너라면 버틸 수 있을 거야.”
물방울이 쏟아진다. 나는 그대로 잠수했다. 물의 이능을 가진 나는 물속에서 숨을 쉬며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
투명한 물속에서 렉시 교관의 몸이 보였다. 물에 흠뻑 젖어 몸매가 훤히 드러났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 찰나, 아래쪽에서 술식이 느껴졌다.
‘워터월인가.’
위험한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이건 장난의 범주에 들어가니까. 나는 방어를 포기하고 물에 몸을 맡겼다. 물기둥이 치솟으며 몸이 위로 치솟았다.
“아하하하하하하!”
[렉시의 성감대: 등, 클리토리스]
눈앞에 떠오른 정보는 애써 무시했다.
•••
렉시 교관과의 물놀이를 끝내고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채취하고 재규어 고기를 굽는다. 요리를 못하는 나이기에 맛은 보장할 수 없지만, 굶지 않는 것이 어디인가.
2인분 준비를 끝낸 나는 렉시 교관을 기다렸다. 해는 지고 달이 떠올라 있었다.
‘…안 오는군. 무슨 일 있나?’
폭포가 흐르는 쪽으로 고함쳤다.
“렉시 누나! 식사 준비 끝났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기척은 느껴지는군. 아직도 물놀이 중인가.’
렉시 교관은 군인이며 4급 전투 마법사이지만, 23살밖에 되지 않는 젊은 나이다.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15살에 군에 입대하고 재능을 인정받아 여러 지원을 받았다는 건 안다.
‘23살. 놀고 싶은 나이이긴 하지.’
이해하면서도 식어가는 음식들을 보니 가만히 있기 힘들었다. 맛은 없지만, 기껏 내가 준비한 요리들이다. 기왕이면 따뜻할 때 먹어줬으면 한다.
‘이게 셰프의 마음인가.’
식으면 더 맛없어진다. 그리고 렉시 교관은 맛없다고 한 소리 하겠지. 나는 그녀를 직접 부르러 움직였다.
렉시 교관은 냇가 근처에 서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그녀의 새하얀 피부가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나도 모르게 두 눈을 부릅뜨고 그녀의 몸을 살폈다. 발목과 종아리는 수면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대신 하얀 허벅지가 보이고, 그 위에 여성기가 있다. 31호의 것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털을 밀어 보지의 형태가 고스란히 보인다. 일자로 다물린 분홍색 보지.
‘31호의 것보다 좀 더 크다….’
비교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직접 본 보지는 31호의 것과 렉시의 것이 전부니까.
시선은 더 위로 올라갔다. 매끈한 아랫배와 움푹 파인 배꼽이 보인다. 잘 잡힌 근육 덕분에 조각품처럼 느껴졌다. 그 위로 31호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풍만한 가슴이 있었다. 분홍색 유륜과 젖꼭지는 31호의 것보다 훨씬 크고 발기해 있었다.
물방울이 그녀의 가슴 위로 떨어졌다. 비라도 오는가 싶었는데 젖은 분홍색 단발머리에서 떨어진 물방울이었다.
“211호. 너무 빤히 쳐다보잖아.”
“죄, 죄송합니다!”
황급히 몸을 돌렸다.
“괜찮아. 이해해. 따지고 보면 대답 안 한 내 잘못도 있으니까.”
렉시 교관은 전혀 당황하지 않은 목소리였다.
“마침 잘 됐어. 이쪽으로 와서 내 등 좀 닦아줘. 혼자서 등을 닦는 건 힘든 일이더라고.”
“마, 마법을 사용하시면….”
“등을 닦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잖아. 아니면 내 몸엔 손이 닿기도 싫으시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다시 몸을 돌리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알몸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내 하반신을 보고 씨익 웃는 걸 보니 발기한 걸 들킨 모양이다.
렉시 교관이 내게 수건을 주고 몸을 뒤로 돌렸다. 팔뚝 옆으로 살짝 삐져나온 가슴 형태가 보였다. 그녀의 가슴이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나는 젖은 수건을 한번 짜내고 그녀의 등에 가져다 댔다. 등의 부드러움과 매끈함이 수건 너머로도 느껴진다.
“으음…. 수건이 거칠어서 역시 좀 별로네. 맨손으로 해.”
내가 뭐라 해도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 없을 게 뻔하기에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하얀 등에 손을 뻗었다. 매끄러운 살결이 느껴진다.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너라면 괜찮아.”
“…….”
그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했다. 내가 노예이자, 실험체이기 때문에 괜찮은 건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건가.
나는 조용히 그녀의 등을 매만졌다. 아까 본 알림창이 떠오른다.
‘성감대가 등이었지?’
[성감 고조를 사용합니다. 활력을 소모합니다.]
‘……성감대를 알아내는 게 효과의 전부가 아니었나?’
렉시 교관의 몸이 바로 반응했다. 몸을 움찔거리더니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흐으응. 제법 잘하네? 기분 좋아.”
“기분 좋으시다니 다행입니다.”
나는 10초가 지나자 땀을 뻘뻘 흘렸다. 원인은 뻔했다. 활력 소모. 성감 고조를 발동하고 있으니 전력으로 달리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이래서는 1분 정도 간신히 버틸까.
40초 부근에서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나는 그녀의 등에서 손을 뗐다.
“으읏? 벌써 끝이야? 조금 더 해줘. 뭣하면 앞쪽도 부탁하고 싶은데.”
“힘듭니다.”
“그거 조금 했다고 힘들어? 하기 싫다면 싫다고 말하지. 너무하네.”
“진짜 힘듭니다.”
중간에 성감 고조를 해제할 수 있었는데 새로운 이능을 실험해 본다고 너무 열중했다.
성감 고조는 이름 그대로 성감을 고조시키는 것. 대충 감각의 민감도를 올리는 종류의 이능이라고 생각된다. 렉시 교관의 담담한 반응을 보자면 큰 효과는 없는 것 같았다.
“…렉시 누나? 그대로 계실 겁니까?”
“아직 덜 씻었어. 먼저 가서 저녁 먹고 있어.”
렉시 교관은 가만히 서서 뒤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역시 내게 알몸을 보이는 건 그녀도 부끄러운 모양이다.
나는 식은 음식을 입에 넣었다. 맛없었다. 20분 후에 나타난 렉시 교관은 어딘가 후련해 보이는 얼굴로 내 앞에 앉았다. 생각보다 늦었으나 묻지 않았다. 경험상 여자의 샤워는 꽤 오래 걸린다는 걸 알고 있다.
그녀는 고기를 입에 넣자마자 얼굴을 찌푸렸다.
“맛없어.”
“어쩔 수 없습니다. 조미료 같은 것도 없으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맛없잖아. 차라리 비상식량이 더 맛있을 지경이야. 내일 아침은 비상식량으로 하자.”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