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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110화 (1,110/1,497)

〈 1110화 〉 1110. 다크 문

굳어 있던 것도 잠시.

그들은 총을 들고 등을 맞댄 뒤 사방을 경계했다.

“누구냐!”

“당장 나와!!”

“씨발….”

올록 소위는 부하들의 소란을 한 귀로 흘리며 조용히 주위를 살폈다. 인기척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식물에 숨어 있는 벌레들의 규칙적인 소리가 마음을 안정시켰다.

“함부로 움직이지 마라. 이건 에어 트랩이다.”

“소대장님. 그, 그런 건 처음 들어봅니다. 무슨 함정입니까?”

“마법 함정이다. 군용 비전 마법으로 알고 있다. 나도 경험은 별로 없어. 빌어먹을. 그 여자, 전투 마법사라고 하더니 성가신 걸 익혔군.”

그는 에어 트랩에 대해 떠올리며 부하들에게 설명했다.

에어 트랩은 보이지 않는 함정이다. 일단 발동하면 충격파 또는 윈드 커터가 발생한다. 그랠튼 상병은 윈드 커터로 머리 윗부분이 갈라져 즉사했다.

‘에어 트랩은 발동 트리거가 빡세다고 들었는데… 빌어먹게도 잘 설치해놨군.’

중요한 건 에어 트랩의 대처법이다.

첫 번째는 마나 감지다. 마나를 이용하거나, 마나 감지 효과를 가진 물건이 있으면 편하다.

‘…우리에겐 둘 다 불가능하다.’

마나를 감지하려면 마나를 느껴야 한다.

즉, 마나 친화력이란 재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마나 친화력이 있다면 내가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지 않겠지.’

대부분의 사람은 마나를 느끼지 못한다. 그게 일반적이다.

‘다른 방법은… 에어 트랩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 에어 트랩은 매개체 없이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러나 여기서 1시간 동안 추격을 멈추게 되면 상대방을 놓치게 된다. 여긴 루멜 숲.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 아무리 이곳이 익숙한 그라도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

그의 눈앞에 돈과 여자가 아른거렸다. 둘 다 포기하기엔 그는 너무 굶주려 있었다.

‘…에어 트랩의 발동 트리거는 접촉. 몸에 닿는 순간 발동한다는 것. 마력이 무한하지 않은 이상 에어 트랩을 설치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을 테고…. 정방향으로 추격하지 않고 조금씩 방향을 바꾸며 추격하면 에어 트랩을 피할 수 있을 거다.’

올록 소위는 부하들을 이끌고 다시 추격을 시작했다. 그들의 입가에 그려졌던 미소는 사라진 지 오래다.

올록의 뒤를 따르던 부하 중 한 명은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땅을 밟았는데 부드러운 무언가가 뭉개지는 감촉이 발을 통해 느껴졌다.

퍼엉!

지면이 폭발했다. 불꽃은 일어나지 않았다. 공기가 터지며 충격파가 일어난 것이다.

“아아아아아악!”

두 다리가 날아간 부하가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올록은 차가운 눈으로 부하를 보다가 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탕. 부하가 그대로 절명했다.

“이미 살긴 그른 놈이었다. 나는 녀석의 고통을 덜어줬을 뿐이다.”

“…하지만 소대장님.”

“소령님을 생각해봐라. 우리가 다치면 병원에 보내줄 것 같나?”

“…….”

바그 소령이 어떤 인물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입을 다물었다.

“미적거릴 시간 없다. 너희는 내 뒤만 잘 따라와라. 에어 트랩은 몸에 안 닿기만 하면 된다. 내가 밟는 땅과 몸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보고 따라 해라. 알았나?”

“예. 소대장님.”

올록 소위는 신경이 곤두서는 걸 느꼈다. 에어 트랩은 땅뿐만이 아니라 허공에도 설치할 수 있었다. 즉, 재수 없으면 머리가 날아갈 수 있었다.

‘트랩을 설치할 법한 곳은 피하고 있으나, 완벽한 건 아니다. 젠장. 마음 같아선 부하를 앞에 내세우고 싶은데…. 충성심도 뭣도 없는 놈들이라….’

그랬다간 3명의 부하가 자신에게 총구를 겨눌 가능성이 있었다. 자신을 죽이고 뒤돌아서 도망가는 거다.

피잉.

섬뜩한 소리와 함께 에어 트랩이 발동했다. 이번에는 윈드 커터 쪽이다. 올록은 자신이 무사하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뒤로 돌렸다.

부하 2명의 몸이 베여 땅에 쓰러졌다. 그 깔끔한 단면으로 피와 내장이 쏟아져 나온다.

“히이이이이익!”

올록 소위의 마지막 남은 부하 1명이 새된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무너졌다. 부하들 중에 가장 소심한 부하다.

“…어떻게 된 거지?”

“그, 그게 병장님이 살짝 비틀거렸는데 바람 소리가 들리더니….”

“과연. 재수가 오지게 없었군.”

올록 소위는 식은땀을 흘리며 입가를 끌어올렸다. 그는 오히려 잘 됐다고 느꼈다. 그는 부하에게 소총을 겨눴다.

“지금부터 네가 앞장서라.”

“소, 소위님?”

“죽고 싶지 않다면 내 명령에 따라라.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 지금까지는 내가 리스크를 감당했잖나. 이번엔 네 차례일 뿐이지.”

“사, 살려주십시오.”

“멍청하게 굴지 마라. 움직여.”

부하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앞으로 향했다. 올록 소위는 부하의 등을 보며 머릿속으로 큰 그림을 그렸다.

‘놈들을 발견하면 바로 마탄을 난사해 제압한다. 남자 놈은 죽이고 여자는 몸통만 멀쩡하면 돼. 그리고 이놈도 죽인다. 장비는 값비싼 것만 골라서 튀자. 이제 군 생활은 지긋지긋하다. 이참에 공화국으로 망명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

나와 렉시 교관은 커다란 나무에 등을 기대고 휴식을 취했다. 우리의 시선은 뒤쪽으로 향했다. 누군가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하, 하하. 드디어 찾았다.”

목에 소위 계급장을 붙인 남자였다. 그의 군복은 피투성이였다. 오른팔은 잘려있었고, 가슴과 하체 부분에 내장 조각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아마도 내장은 다른 이의 것이다.

‘맛이 갔군.’

눈동자는 돌아가 있었고, 입가에는 침이 흐르며, 머리는 식은땀 범벅이다.

보이지 않는 에어 트랩이 선사하는 죽음의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에는 미쳐버린 것이다.

‘모든 군인이 정신력이 약한 건 아니지. 나처럼 어쩔 수 없이 군인이 된 경우도 있을 테고….’

동정하지 않는다.

놈은 나를 죽이고 장비를 빼앗으려 했다. 거기에 렉시 교관을 범하려 했겠지.

남자가 한 손으로 소총을 들었다. 총구는 정확히 내게 향했다.

찰나를 쓸 필요도 없었다.

이미 마법을 발동했다.

콰아앙!

설치해둔 에어 트랩이 내 의지에 반응하며 충격파를 일으켰다. 남자의 상체가 터지며 그 잔해가 바닥에 뿌려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의 장비를 확인했다.

대부분이 충격파에 휘말렸지만, 내 목적은 총알이었다.

“…어. 이놈 마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40발이나.”

“응. 싸구려네. 그래도 도움은 될 거야. 챙길 건 챙기자.”

배낭이 묵직해졌다.

•••

나는 이번 임무에서 변수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원했고, 하늘은 내 바람을 들어주었다.

“…망했네. 정보가 틀려.”

루멜 숲에 들어오고 12시간.

텅텅 비어있는 적진을 본 렉시 교관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나는 상황을 보자마자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했지만, 일부러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정보가 새어 나간 겁니까?”

“그건 아니야. 주위를 둘러봐. 사람이 머문 흔적이 흐릿하잖아. 최소 한 달은 방치되어 있었을 거야. 처음부터 정보가 조작됐던 거야.”

“정보를 조작한 건… 105 부대의 바그 소령이군요.”

“상부에 무능해 보이기 싫었겠지. 우리를 죽이려 한 이유 중 하나도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고. 답답하네. 무전기라도 사용할 수 있으면 일이 편해졌을 텐데….”

루멜 숲에는 특수한 파장이 흘러서 무전기가 먹통이 된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바깥과 통화할 수 없다. 딱히 신비한 일은 아니었다. 루멜 숲 말고도 전파가 통하지 않는 지역은 많으니까.

“임무를 포기하고 돌아갑니까?”

“보통은 그렇지. 이번 임무의 경우 상부의 실수라 할 수 있으니까. 임무를 포기해도 질책은 받지 않을 거야.”

“…바그 소령이 문제군요.”

지금쯤이면 자기 부하들이 역으로 당해 죽었다는 걸 알아차리고도 남는다.

바그 소령이 이대로 물러날까? 그랬을 거면 처음부터 시작도 하지 않았을 거다.

“저희 전력이라면 105 부대 정도는 상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바그 소령이 멍청이도 아니고 105 부대만 동원할 리 없어. 밀수를 함께해 온 동업자가 있겠지. 아마 조직 규모일 거야. 그들의 전력은 미지수야. 모르긴 몰라도 우리끼리 상대하긴 힘들어.”

“몰래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겠군요. 눈에 불을 켜고 경계를 할 테니.”

바그 소령은 좌천되어 105 부대에 부임 되었다. 무슨 사고를 저지른 지는 몰라도 105 부대에 좌천되었다. 그에겐 이게 마지막 기회다. 우리가 살아서 숲을 빠져나가는 순간 그의 군인 인생은 끝장난다. 바로 군사법원에 끌려가 사형을 선고받겠지.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 네 의견은 어때?”

렉시 교관은 자주 내 의견을 물었다. 이것도 교육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내 능력을 감추려고 일부러 틀리거나, 20% 부족한 대답을 내놓곤 한다.

“버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략사령부는 저희의 가치를 105 부대 보다 높게 치고 있습니다. 실종된다면 저희를 찾으러 올 겁니다.”

‘배틀 메이지 프로젝트’에서 나는 가장 성공한 케이스 중 하나다. 내 존재가 프로젝트의 성과다. 그 성과를 전략사령부가 쉽게 포기할 리 없다.

무엇보다 내 오른 팔뚝에는 노예 인장이 있다. 내가 버젓이 살아 있다는 걸 알 테니, 전략사령부는 어떻게든 날 추적할 것이다.

“정확한 판단이야. 전략사령부 입장에서 너와 난 버리기엔 아까운 패니까.”

“전략사령부와 667 부대에서 나서기까지 며칠 정도 예상하십니까?”

“열흘 정도?”

“생각보다 늦군요.”

“그동안 임무를 수행하며 쌓아온 것들이 있으니까. 전략사령부는 일단 우리를 믿을 거야. 그러다 이상함을 느끼고 조사에 나설 테고. 그때쯤 되면 바그 소령도 끝이야. 우린 그동안 느긋하게 임무를 수행하면 돼. 아마 다른 곳에 레지스탕스들이 숨어 있을 거야.”

“열흘이나 이 숲에 있어야 한다니… 최악이군요.”

짝!

나는 내 목을 손바닥으로 때렸다. 손바닥을 내리니 모기의 사체가 묻어 있었다. 1급 마법인 워터를 사용했다. 인상을 쓰며 마법으로 만든 물로 손을 씻었다.

기분 나쁜 척은 다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어떻게 루멜 숲에 더 머물까 고민했는데 알아서 일이 터져주는군. 운이 좋아.’

렉시 교관은 지도를 꺼냈다. 그녀는 볼펜으로 지도에 표시했다.

“레지스탕스의 기지로 추정되는 곳은 총 여섯 곳이야. 가까운 곳부터 천천히 확인해보자.”

“지금 당장 말입니까?”

주변은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상태였다. 렉시 교관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피곤했다. 다리가 쑤시고 눈꺼풀도 무겁다. 마나를 다루는 영향으로 육체는 일반인보다 뛰어나지만, 동급의 전사들에 비하면 여전히 뒤떨어지는 육체였다.

“느긋하게 하자니까. 밤에는 자고 낮에 움직이자.”

다행히 렉시 교관은 여러모로 융통성이 있었다.

잠자리를 준비했다. 비교적 식물이 적은 곳을 찾아 바람 마법으로 땅을 평평하게 만들고 마법 모포를 깔았다. 보급품이 아니라 렉시 교관이 준비한 모포다. 물에 젖지 않고 작은 벌레를 몰아내는 등의 마법이 걸려 있다. 그 위로는 나무 막대를 세워 천을 덮었다. 간단한 타프가 만들어졌다. 비가 와도 몸이 홀딱 젖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잠자리를 준비하는 동안 렉시 교관은 알람 마법을 주변에 설치했다. 사람이나 몬스터가 다가오면 알람이 울리며 알려주는 종류의 마법이었다.

나와 그녀는 동시에 모포에 몸을 눕혔다. 마법이 걸린 모포라 그런지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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