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9화 〉 1109. 다크 문
나와 렉시 교관은 루멜 숲에 들어가기 전에 105 부대에 들어가 장비를 비롯한 비상식량 등을 지원받았다.
105 부대는 국경지대 중 하나인 루멜 숲을 경계하는 부대다.
대대 수준의 부대로 규모가 큰 부대는 아니다. 루멜 숲은 국경지대 중에서도 후미진 곳이며, 여러 이유로 거의 방치되어있는 곳이었다.
나는 조용히 눈만 굴려 105 부대를 살펴봤다. 내가 속해 있는 667 부대와는 달랐다. 겉모습은 그럴싸한 막사로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낙후된 것들이 여러 가지 보였다.
‘…667부대가 유독 최신 장비가 많긴 하지. 부대에 투입된 자금력부터가 다르니 당연한 거겠지만.’
667부대는 ‘배틀 메이지 프로젝트’를 위해 만들어진 부대다. 프로젝트는 이미 성공 궤도에 올랐으니 높으신 분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거기에 거대 기업도 관련되어 있어 자금이 부족해지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군기도 개판이군.’
부대에 사람이 왔는데도 105 부대의 군인들은 설렁설렁 돌아다니며 일하고 있었다. 얼굴에는 내리쬐는 햇빛에 대한 짜증과 일과의 귀찮음이 가득하다.
‘임무 때문에 이런 분위기의 부대를 몇 번 들린 적 있지.’
이런 경우 십중팔구 좌천 부대다.
군 생활을 하다가 사고 쳐서 좌천되어 내려온 부대. 비록 여기가 전방이긴 해도, 전방도 전방 나름이다. 설령 이곳이 적의 폭격을 맞아 초토화되어도 몇 시간 되지 않는 거리에 후방부대가 있으니 바로 복구할 수 있고, 이 근처에는 중요한 도시나 시설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부대원들도 알고 있으니 군기도, 의욕도 없는 것이다.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나와 렉시 교관은 지원받은 장비를 점검했다. 장비 상태는 모두 뛰어났다. 어떠한 문제점도 없었다.
우리는 장비를 확인하고 바로 떠날 준비를 했다. 분위기가 꺼림칙한 부대였다. 사고치고 좌천된 놈들이니, 또 사고를 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오래 있어 봤자 좋을 것 없었다.
“장비는 마음에 드나? 부대에 있는 것 중에서 A급만을 골랐지.”
오른팔이 기계로 된 중년 남자가 다가왔다. 기계 의수. 이 세계에선 신체 일부를 기계로 개조하는 일은 흔했기에 놀라운 것도 없다.
중년 남자는 105부대의 책임자인 바그 소령이다. 그가 직접 나와서 배웅하는 것에 어떠한 의도가 느껴졌다.
“네. 잘 관리되어 있어서 좋네요. 좋은 장비를 받았다고 상부에 잘 말해드릴게요.”
렉시 교관은 바그 소령의 의도를 꿰뚫어 보고 말했다. 바그 소령은 입가에 미소를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유명한 로스 부대의 암표범에게 도움이 되어 다행이군.”
로스 부대의 암표범.
렉시 교관의 별명이었다. 그 이름에 대해선 잘은 모르지만, 로스 부대가 제법 유명한 특수 부대라는 걸 잘 안다. 그리고 본래 렉시 교관의 계급이 중위였다가 강등되었다는 것도 안다.
렉시 교관의 표정이 한순간 굳어졌다. 그녀는 옛날 일을 입 밖으로 내는 걸 썩 좋아하지 않았다.
“…소령님이 절 알고 있을 줄 몰랐네요. 제 소문이 여기까지 돌았나요?”
“구석 변방에 처박혀 있다고 해서 귀까지 닫힌 건 아니라네. 좀 의외인 건 자네가 아직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다는 거지. 상관을 죽였으면 못해도 군교도소에 있어야 하지 않나?”
바그 소령이 히죽 웃으며 말한다.
렉시 교관이 사고를 쳐서 계급이 강등된 건 알고 있었는데… 설마 상관을 죽인 건가. 의외의 사실에 약간 놀랐다.
렉시 교관은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누구와는 다르게 능력이 있어서요.”
바그 소령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마른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내 씨익 웃는다.
“…자네의 이번 임무. 건투를 빌지.”
“네. 감사합니다. 조만간 임무를 끝내고 다시 뵙겠습니다.”
“조심하게. 루멜 숲은 쉬운 곳이 아니니.”
그는 몸을 돌려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렉시 교관이 얼굴을 확 일그러뜨렸다.
“무능한 노인네. 쓸데없이 신경을 긁고 있어.”
그녀는 바닥에 침을 뱉고는 내 어깨를 잡아끌었다.
“가자. 아마 시작부터 총질을 해야 할 거야.”
렉시 교관의 말 뜻을 이해하기까지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루멜 숲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누군가가 우리 뒤에 따라붙었다. 나와 렉시 교관은 당황하지 않았다. 미행자들을 끌어들이듯 숲의 안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
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루멜 숲은 이름만 숲이지 실제로는 정글이었다. 뜨거운 햇빛과 답답할 정도로 가득한 수분, 조금만 시선을 돌려도 보이는 벌레와 시야를 방해하는 식물들. 예상은 했지만, 정말 짜증 나는 환경이다.
“렉시 누나. 뒤에서 따라오는 놈들… 105 부대 놈들이죠?”
“맞아. 짬이 차니 내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잘 아네?”
“숲에 들어온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미행이 붙는다면 당연히 그놈들밖에 없죠. 놈들의 목적은….”
“나겠지.”
그녀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두 눈은 전혀 담담하지 않았다. 절제된 살의가 그 동공에 깃들어 있다.
새삼 그녀를 바라봤다. 분홍색의 단발 머리카락, 베테랑 군인 치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하얗고 부드러운 피부,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좀처럼 볼 수 없는 뛰어난 미모였다.
“시선이 음흉한 걸.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
“이상한 생각은 누나가 하는 거겠죠.”
“놈들이 날 노리는 건 당연해. 군대에서 일하며 몇 번 있던 일이야. 물론 그놈들은 모두 저세상에 보내줬지만.”
“…그놈들이 누나의 몸도 노리겠지만, 1순위는 우리가 가진 장비겠죠.”
우리가 105 부대에서 지원받은 장비는 모두 A급이다. 그중에는 값비싼 최신형 장비도 있었다.
놈들은 우리를 죽이고 이 장비를 가져갈 생각이겠지. 우리가 놈들에게 죽으면 임무 실패로 인한 실종 처리가 될 테고, 장비는 공식적으로 루멜 숲에서 잃어버린 게 된다. 돈을 벌기에 딱 좋다.
“그것뿐만이 아니야. 바그 소령. 그놈에게서 구린 냄새가 풀풀 나더라고. 그놈은 만일을 대비해서 우릴 없애버리고 싶은 걸 거야.”
“…만일이란 건?”
“우리가 이 숲에서 놈의 비리 증거를 찾아서 상부에 보고해버리는 일? 이건 아직 증거도 없는 의심에 불과하지만…, 놈은 아마 밀수에 손을 댔을 거야. 이런 곳에서 돈을 벌수 있는 방법은 그 정도뿐이니까.”
뒤가 구린 바그 소령에겐 우리가 루멜 숲에서 죽어 임무에 실패하는 게 최고의 시나리오다.
“…우릴 미행하는 놈들은 어떻게 할까요? 슬슬 가까워지고 있는데.”
“설마 몰라서 묻는 거니?”
“그런 게 아니라 결정권은 누나가 가지고 있잖아요.”
렉시 교관이 내게 잘해준다고 해서 그녀와 나의 신분 차이를 착각하면 안 된다.
“그렇네. 뭐, 임무에 방해되는 것들은 치워야지. 사고를 당할 수 있는 건 우리뿐만이 아니라 놈들도 마찬가지야.”
“방법은요?”
“네가 알아서 해. 이 정도는 쉽지?”
렉시 교관은 본인이 움직이지 않고 내게 맡기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경험을 이유로 종종 내게 일을 맡겼기에 익숙한 상황이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우선 저격은 불가능하다. 거치적거리는 요소가 너무 많다. 빼곡한 나무와 이름 모를 식물이 시야를 막고 있다.
직접 놈들을 맞이해서 싸운다? 나쁘진 않지만 비효율적이다.
“트랩 마법을 사용하겠습니다.”
“트랩 마법? 혹시 내가 아는 군용 비전 마법이야?”
“네. 에어 트랩입니다.”
2급 비전 마법인 에어 트랩은 프리셀 군대의 군용 비전 마법이다. 일전에 비누스 교관이 내게 알려준 군용 비전 마법 중 하나다.
에어 트랩은 쉽게 말해 보이지 않는 마법 함정이다. 허공이나, 벽, 땅에 조건을 걸고 설치하는 마법.
‘지금 내 수준으로 매개체 없이 에어 트랩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3시간 정도. 그 정도면 시간은 충분하지.’
에어 트랩의 단점은 마나에 민감한 자에겐 쉽게 걸린다는 것이다.
‘지난 시간 동안 에어 트랩을 연구하며 개조했으니 2급 마법사 수준이 아니면 눈치채지 못할 거다. 우리 뒤를 추격하는 놈 중에 2급 마법사는 없어.’
마법사라는 고급 인력이 좌천 부대에서 썩을 이유가 없었다.
‘놈들이 우리 뒤를 쫓는 방식은 마법적인 방식이 아니야. 땅바닥에 남은 흔적을 쫓는 방식이다. 그럭저럭 괜찮은 실력의 레인저가 있군.’
따로 놈들의 경로를 예측할 필요 없다는 건 편했다.
아스트랄을 개방하고 마나 로드를 활성화한다. 18개의 마나 로드를 타고 마나가 흐르며 술식으로 변한다. 나는 막힘 없이 흐르는 마나를 느끼며 씩 웃었다.
‘지난 5개월 동안 바쁘게 보냈지. 마법을 연구하고, 마나 진액을 버티고….’
마나 진액이 몸에 투여되는 건 최악이지만, 그 덕분에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지금 내 마나량으로는 에어 트랩 17개가 한계군. …10개 정도면 충분하겠지.’
나는 렉시 교관과 함께 움직이면서 에어 트랩을 설치했다.
•••
105 부대의 1소대장인 올록 소위는 낄낄거리는 부하들의 웃음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좀 닥쳐봐라. 지금 내가 눈알 빠지도록 흔적을 찾는 게 안 보이나?”
5명의 부하는 올록 소위의 핀잔에 웃음소리를 죽였다. 그러나 입가에 걸린 미소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직 못 찾았습니까?”
“저격수라 그런지 흔적을 최대한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방향은… 이쪽이군.”
“하하. 역시 소대장입니다. 저격수라도 소대장님의 추격은 피하지 못하는군요.”
“그만 좀 웃으라고 했잖냐.”
“소대장님도 웃고 있지 말입니다.”
“…….”
올록 소위는 반박하지 못했다. 실제로 그의 입가에도 미소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가라앉히려 하지만, 그의 육체와 정신은 흥분으로 한껏 달아오른 상태였다.
오랜만에 찾아온 큰돈을 벌 기회.
그리고 이 빌어먹을 변방에서 찾아볼 수 없는 미녀.
굶주린 탐욕과 성욕을 해소할 시간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근데 소령님의 말로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라던데. 이러다 역으로 저희가 당하는 게 아닙니까?”
유독 잔걱정이 많은 부하가 말했다.
“여긴 루멜 숲이다. 뭐가 걱정이냐.”
그들은 루멜 숲을 지긋지긋할 정도로 돌아다녔다. 훈련이라는 명목 아래에 루멜 숲에서 밀수를 진행해왔다. 뿐만이 아니라 가끔 고기가 먹고 싶어지면 루멜 숲에서 사냥하던 그들이다. 루멜 숲은 그들의 홈그라운드였다.
“이 숲에서 유리한 건 우리다. 덤으로 소령님에게서 마탄까지 받았지. 빠지고 싶으면 빠져라. 단, 네가 얻는 건 없을 거다.”
“아, 아뇨. 빠지겠다는 건 아닙니다.”
소심한 부하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부하가 입을 열었다.
“근데 소대장님. 그 여자 말입니다. 한 번 먹고 죽이기엔 아깝지 않습니까? 제압해서 막사에 데려가면 안 됩니까? 제가 잘 키우겠습니다.”
“지랄. 감사관이 가끔 찾아 오는거 모르나?”
“루멜 숲에 두는 것도 한 방법이지 말입니다.”
“소령님이 살려두지 말라 하셨다. 나도 그런 여자는 두고두고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만…. 소령님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다.”
“그럼 이번엔 제가 처음으로 하면….”
“그랠튼 상병.”
“…네. 소위님.”
“선은 넘지 마라.”
“…죄송합니다, 소위님.”
그들은 수다를 나누는 도중에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익숙한 식물을 옆으로 헤치고 미약한 흔적을 쫓는다.
피잉!
낯설고 이질적인 소리에 올록 소위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는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가는 강렬한 바람을 느꼈다.
‘바람? 이 정글 같은 숲에서?’
반사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돌린 올록 소위의 두 눈이 커졌다. 머리 윗부분이 갈라진 그랠튼 상병이 바닥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털썩.
“…….”
모두가 충격으로 온몸이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