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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105화 (1,105/1,497)

〈 1105화 〉 1105. 다크 문

“홉고블린이 변이했다! 흩어져서 빙결계 마법을 사용해!!”

몸을 벌떡 일으키며 당황하는 분대원들에게 소리쳤다.

다행히도 분대원들은 어리바리하지 않았다. 내 명령을 듣자마자 바로 마나를 움직이며 마법을 준비한다.

가장 빠른 건 역시 31호였다. 그녀는 내 말이 떨어지기 전부터 이미 마법을 준비한 듯 가장 빨리 2급 마법인 아이스 애로우를 사용했다.

얼음 화살이 정확히 홉고블린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가 명중했다.

쩌엉!

홉고블린의 머리에 흐르는 빗물과 냉기가 만나 단숨에 얼어붙었다. 가고일을 단숨에 죽인 마법이지만, 홉고블린은 고개를 저으며 얼음을 털어냈다. 다크 문의 영향으로 ‘마법 저항’ 특성을 가졌다고 해도 효과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얼굴에 상처를 입어 피투성이다.

“키아아아아아아아아!”

홉고블린이 분노의 포효를 내지른다. 그 분노의 대상은 당연히 31호였다. 31호는 담담한 얼굴이었다. 놀라지도 않고, 물러나지도 않았다. 그게 마음에 안 들었을까. 홉고블린은 주위에 널브러진 목재를 잡고 31호를 향해 던졌다.

“배리어.”

31호의 몸을 감싸는 보호하는 배리어가 나타났다. 목재를 막아낸 배리어는 크게 요동친 게 전부였다.

“아이스!!”

홉고블린의 주위를 포위한 분대원들이 일제히 1급 마법인 아이스를 사용했다. 1급 마법인 아이스는 정확히 말하면 냉기를 이용해 얼음을 만들어내는 효과다. 수분이 없는 사막 지역에서는 효율이 떨어지고, 반대로 지금처럼 비가 내리는 상황에선 효과가 배로 상승한다.

쩌적, 쩌정.

홉고블린의 전신이 얼어붙는다. 홉고블린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러나 홉고블린이 죽은 건 아니었다. 얼음 속에서 홉고블린의 눈동자가 데굴데굴 움직이고 있었다.

‘빌어먹을 마법 저항.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놈을 죽여야 해.’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마법이 무엇인지 산출해낸다.

2급 마법, 에어 스트라이크.

2급 마법 중 물리적인 위력만 따지면 한 손가락 안에 드는 마법이다. 비록 이것도 마법이라 ‘마법 저항’의 영향을 받겠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다.

‘비 내리는 날씨 탓에 화염 마법의 위력은 떨어지고, 홉고블린의 얼어붙은 몸을 녹일 뿐이야. 대지 계열 마법도 비슷한 이유고.’

판단을 내렸으니 망설일 이유는 없다. 전투 중에 1초라도 망설이면 위험해진다.

12개의 마나 로드를 끌어 올리고 술식을 자아낸다.

“에어 스트라이크.”

“에어 스트라이크.”

31호와 영창이 겹쳤다.

허공이 일그러진다. 본래 에어 스트라이크는 바람이다. 육안으로 볼 수 없으나, 하늘에서 쉴 틈 없이 흐르는 장대비가 에어 스트라이크의 모습을 드러냈다.

일그러진 공간은 그대로 얼어붙은 홉고블린과 부딪쳤다.

콰아앙!

얼음이 부서지고 홉고블린의 붉은 피가 젖은 바닥에 떨어졌다.

“키아아아아아악!”

홉고블린이 포효를 지르며 다리를 움직인다.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아이스 마법을 사용해! 아까와 똑같이 간다! 2~3번 반복하면 놈을 죽일 수 있을 거다!”

나는 바닥에 구르는 작은 돌멩이를 발로 차 홉고블린의 머리를 맞혔다. 공격적인 의미는 없었다. 홉고블린의 입장에선 간지러운 수준 밖에 안 된다. 그러나 화가 잔뜩 난 상태에서 돌멩이를 머리에 맞는다면? 기분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더욱 짜증이 나겠지.

홉고블린의 이목이 내 쪽으로 향했다. 흉악한 표정을 짓더니 그대로 나를 향해 달려온다. 가장 가까이 있는 31호가 아닌 가장 멀리 있는 나를 노린다. 의도대로다.

“아이스 애로우.”

발동한 마법이 날아가 홉고블린의 왼쪽 다리에 명중해 얼어붙었다. 홉고블린의 몸이 기울어진다.

‘시간을 벌었다. 이제 분대원들이 아이스 마법으로 놈의 몸을 얼리고 나와 31호가 에어 스트라이크를 사용하면 돼.’

홉고블린의 어중간한 지능이 도움이 됐다. 게임 용어로 말하자면 어그로 관리가 쉬웠다.

“……?!”

갑자기 오한을 느꼈다. 온몸의 세포 하나, 하나가 놀라고 머리카락이 삐죽 서는 불쾌한 느낌.

‘대기의 마나가 변했다. 안 그래도 다크 문의 영향으로 사납던 마나가 더 격렬해졌다.’

홉고블린이 얼어붙은 한쪽 다리를 절뚝이며 억지로 다가오는 걸 알면서도 시선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31호였다.

그녀는 붉은색 두 눈을 번뜩이며 격렬한 마나의 중심에서 마법을 그린다.

‘2급은 절대 아니다. 3급…? 아니. 이건 비누스 교관이 마법을 사용할 때와 비슷한….’

31호의 우의가 펄럭인다. 보라색 머리카락이 위로 나부낀다. 지금 바람은 불지 않고 있다. 지금 그녀 주위의 바람은 마나의 움직임이다.

“31호! 멈춰!!”

뱃심까지 끌어당겨 소리쳤다.

소용없었다. 31호의 붉은 눈은 홉고블린에게 고정되어 있다. 내게 시선조차 주지 않는다.

‘뭐지? 31호가 왜 폭주하는 거지?’

31호의 마법이 발현된다. 31호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나는 섬뜩함을 느끼며 다급히 홉고블린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바람이 불었다.

땅에 발톱 자국을 새기듯이 흔적을 그리며 홉고블린에게 모여들었다.

홉고블린은 형체 없는 바람을 향해 주먹과 발을 휘둘렀다. 당연한 말이지만 겨우 그걸로 바람을 멈출 수 없었다.

바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많아지고 홉고블린을 중심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4급 마법. 토네이도.

‘평범한 토네이도가 아니다. 그 크기는 작아도, 바람 하나, 하나에 물리성을 부여했다. 즉, 바람 하나, 하나에 윈드 커터를 응용한 토네이도야.’

홉고블린의 몸이 바람에 썰린다. 토네이도에 붉은색이 입혀지기 시작했다. 홉고블린의 핏물이다.

토네이도는 약 30초 정도 지속되다가 사라졌다.

홉고블린은 핏물과 살덩이, 뼛조각으로 변해 있었다.

“아하하, 아하하하하.”

31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등에 식은땀이 나는 것을 느끼며 31호를 바라봤다. 검은 달을 보며 웃고 있는 그녀는 평소와 명백히 달랐다.

“…….”

나를 비롯해 분대원들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31호에게서 강렬한 위화감을 느끼고 언제든지 전투를 벌일 준비를 했다.

치직. 칙.

무전기에서 소리가 났다. 나는 재빨리 무전기를 들었다.

“211호. 들리나?”

“…비누스 교관님. 들립니다.”

“상황은 보고 있다. 지금 가고 있으니 분대원들과 함께 뒤로 물러나라! 어서!”

평소 항상 여유롭게 말하던 비누스 교관의 말투에 다급함이 느껴졌다. 지금 이 상황은 그에게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31호에게서 물러서! 빨리!”

분대원들의 행동은 빨랐다. 바로 31호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아하하하하.”

31호는 계속 웃고 있었다.

그녀 주위로 마나가 모여들며 요동친다. 땅바닥의 진흙이 들썩이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오직 그녀만을 피해 간다.

나는 식은땀을 흘릴 정도로 긴장하면서도, 머리 한편으로는 차분하게 31호의 정체를 추측한다.

몇 가지가 떠올랐다. 여러 가지를 대조한 결과 가장 가능성 큰 추측은 하나다.

‘마녀 인자. 다크 문이 떴을 때 기분이 좋아 보였고, 흑마법사가 아닌데도 마법 능력이 상승했지.’

31호가 마녀 인자를 가졌다면 모두 설명된다.

교관들의 반응을 떠올리면 아마 선천적으로 마녀 인자를 타고났을 거다.

‘정확히 어떤 출신인지는 몰라도 특별한 혈통이란 건 100% 확실하군.’

그녀의 앞에 마나가 모여든다.

나는 정신을 집중해 술식을 해석했다.

3급 마법, 에어 붐.

4급 마법, 레비테이션.

31호의 몸이 하늘로 떠오른다. 4급 마법인 레비테이션의 효과다.

문제는 3급 마법인 에어 붐이다. 술식과 마나를 계산한 결과 말이 3급 마법이지, 위력은 5급 마법에 달할 정도로 강력하다.

‘이 주변 일대를 에어 붐으로 쓸어버릴 생각인가.’

나 혼자라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 배리어를 중첩해서 발동하고, 렉시 교관에게 받은 아티팩트를 사용하면 된다. 그러나 다른 분대원들은 달랐다. 그들은 나처럼 빠르게 마법을 발동할 수 없다.

나는 하늘을 힐끗거렸다.

썬더 볼트는 불가능하더라도 먹구름을 이용하면 4급 마법인 라이트닝 스트라이크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

‘아니, 라이트닝 스트라이크는 사용하지 않는다.’

뒤쪽에서 비누스 교관이 오고 있다. 여기서 내 전력과 재능을 선보일 수 없다. 나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분대원들이 죽더라도 미래를 위해 실력을 숨긴다.

배리어의 술식을 자아낼 때였다. 비누스 교관이 나타났다. 그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기합을 터트리며 마법을 사용했다.

“물러나라!!”

그에게서 뻗어 나온 보이지 않는 마나의 벽이 31호 주위를 감싼다. 에어 붐이 일어났지만, 마나의 벽에 막혔다. 분대원들 모두 무사했다.

나는 일종의 결계 마법임을 알았다.

‘급하게 발동하느라 술식이 허술한데도 31호의 에어 붐을 아슬아슬하게 막아냈군. 저게 5급 마법사의 수준인가.’

비누스 교관이 31호를 향해 뛰어오른다. 그의 발아래로 마법이 반짝였다.

‘발판이 되는 마법은… 배리어의 응용인가.’

술식으로 따지면 1급 마법보다 간단하다. 그러나 캐스팅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허공에 떠오르는 발판 특성상 조금만 삐끗해도 넘어져서 치명상을 입는 걸 생각하면 타이밍도 잘 맞춰야 한다.

마법 자체는 쉽게 따라 해도 비누스 교관처럼 응용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나는 분대원들과 함께 뒤로 물러나면서 31호와 비누스 교관의 전투를 지켜봤다.

‘비누스 교관은 31호를 제압하려 하는군. 31호도 크게 밀리지 않아.’

비누스 교관은 효율적으로 마법을 사용했다. 타이밍에 맞게 적절한 마법을 사용한다. 가령, 31호가 2급 마법인 아이스 애로우를 사용하면 1급 마법인 파이어로 막아낸다.

‘그냥 막아서 상쇄하는 게 아니라 아이스 애로우의 냉기를 파이어로 중화시키는 방식이군.’

속성의 상성 차이를 극한으로 이용한다고 보면 된다.

‘보는 것만으로 도움이 되는군.’

전투가 계속되었다. 비누스 교관의 손날이 31호의 목을 스쳤다. 깜짝 놀란 31호가 하늘로 솟구쳤다. 먹구름을 배경으로 선 31호의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31호의 마나가 하늘로 치솟는다.

쿠르르릉.

먹구름이 번쩍거렸다.

‘라이트닝 스파이크다…!’

비누스 교관을 향해 낙뢰가 떨어졌다.

“돔 그라운드.”

비누스 교관의 옅은 목소리가 들렸다. 직후, 그의 주위에 흙이 하늘로 치솟더니 돔(DOME)을 형성했다.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땅의 건축물은 라이트닝 스파이크를 쉽게 막아냈다.

역할을 다한 돔은 그대로 허물어지지 않고 위로 솟구쳐 31호를 향해 날아갔다.

이마에 흙더미를 맞은 31호의 레비테이션이 흔들렸다. 그녀의 몸이 아래로 내려가다가 도중에 멈춰 섰다. 가까스로 마법을 유지한 31호는 비누스 교관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마나를 일으켰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마나가 31호에게서 느껴졌다.

“그만! 그만하고 정신 차려라, 31호!”

비누스 교관이 소리쳤다.

폭주 상태인 31호가 그 말을 들을 리 없었다. 비누스 교관이 다시 한번 돔 그라운드를 발동했다.

쾅.

콰콰쾅. 쾅.

폭음이 울렸다.

3급 마법인 에어 붐이 무차별적으로 일어났다.

10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10번이 넘는 에어 붐이 일어나 지면을 초토화한다. 비누스 교관의 돔 그라운드도 박살 났다. 비누스 교관은 배리어를 몸에 둘러 몸을 보호하려 했으나, 그조차도 쉽지 않았다. 그의 몸이 에어 붐의 여파로 여기저기 날아다닌다. 다만 그의 배리어는 깨지지 않고 계속 유지되었다.

“안 돼…!”

비누스 교관이 소리쳤다.

정작 마법을 사용한 31호는 자신의 몸을 보호하지 못하고 에어 붐의 여파에 휘말려 허공에 이리저리 날아다녔기 때문이다. 거기에 31호는 도중에 기절했는지 레비테이션이 풀려 아래로 추락한다. 하필이면 아래쪽이 폭포다.

“211호!!! 31호를 구해라!!”

31호에게서 가장 가까이 있는 내게 비누스 교관이 소리쳤다.

나는 이를 악물고 31호를 향해 뛰었다.

여기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비누스 교관이 내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날 죽일 것이다. 안 봐도 뻔하다.

‘내가 살려면 31호를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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