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1화 〉 1101. 다크 문
눈을 떠보니 병실 침대 위였다.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놀랍거나 당황스럽진 않았다. 내가 기절하듯 잠든 사이에 프리셀 왕국군이 날 수거해갔을 테니까.
상체를 일으키며 몸 상태를 확인한다. 조금 답답하다는 걸 제외하면 나쁘지 않았다. 오른손에는 링거 바늘이 꽂혀 있었고, 렉시 교관에게 받은 팔찌는 누가 가져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2급에 오른 아스트랄은 어떠한 문제 없이 완벽한 상태고, 12개 중 절반이 사용 불능 상태가 되었던 마나 로드도 어느 정도 회복되어 있다.
‘이거 수액이 아니라 회복 포션이군.’
수액 대신으로 이용되는 회복 포션이면 1급 정도겠지.
상황을 대충 파악한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네로스와의 전투 경험을 되새긴다. 이런 경험은 흔치 않았다. 훗날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새로운 이능인 찰나를 각성했고, 환경을 이용해 내 경지보다 급이 높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가장 큰 수확은 찰나였다.
찰나는 사고 속도를 극단적으로 높이는 이능이다. 본래 게임인 다크 문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능이다.
‘찰나를 사용할 때 시스템 창이 떴지. 이 세계에 오며 주어진 특전 같은 건가?’
찰나의 출처가 어찌 됐든 내게 도움이 되는 힘이었다.
‘찰나를 사용하고 마나 로드는 사용할 수 없게 되지만, 빨라진 사고 속도로 미리 계산하는 건 간단하다. 다행히 마나 로드와 달리 아스트랄은 개방해도 찰나의 시간이 유지되니까.’
마법사의 가장 큰 문제는 캐스팅 속도에 있다. 전투 중에 마법을 캐스팅하는 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직접 전투에 나서는 배틀 메이지의 수가 적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보통 마법사는 후방에서 화력 지원하는 역할이다.
‘게임에서는 단축키만 눌러도 마법이 발동되지만, 현실은 다르지.’
그런 의미에서 사고를 가속하는 찰나는 마법사에게 일종의 치트키라 봐도 될 정도다. 캐스팅 속도를 9할 이상 줄여주니까.
‘내게는 발전(發電) 이능도 있다. 네로스와 싸웠을 때처럼 5급 전격계 마법인 썬더 볼트를 사용하는 건 불가능해도, 3급 전격계 마법 몇 개는 지금도 어렵지 않게 가능하다.’
이 세계는 게임이 아닌 현실이다. 급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문제는 마나다. 지금 내 상태에서 3급 전격계 마법을 3번 이상 쓸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회의적이다. 강력한 화력이 필요한 상황이 아닌 이상, 2급 마법들을 사용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다.
‘그러기 위해선 2급 마법 지식이 필요하다.’
저벅.
문 너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상념을 털어내고 병실 문을 쳐다봤다.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마법 담당의 비누스 교관이다. 계급은 상사에 불과하지만, 군대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계급 하나만으로 위치가 정해지지 않는다. 비누스 교관은 교관 중에서 가장 짬이 많았다.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다. 몸은 괜찮나?”
병실 구석에 설치된 CCTV에 시선을 주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그에게 경례하고 대답했다.
“약간의 답답함을 제외하면 멀쩡합니다.”
“의사의 말로는 3일이면 된다더군. 3일 동안 병실에서 푹 쉬도록.”
비누스 교관은 침대 옆의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는 날카롭게 번뜩이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임무 이야기를 하지. 살아남은 게 너와 장갑차 조종수뿐이라 네 증언이 필요하다.”
나는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머리를 굴렸다. 장갑차 조종수는 임무 지역에서 2km 정도 떨어져 있었을 테니 살아 있는 건 당연했다. 중요한 건 그가 부대에 어떻게 보고했냐는 거다.
‘내가 썬더 볼트를 사용하는 걸 관측했나? 썬더 볼트는 위력만큼이나 화려해서 알아보기 쉽지. 되도록 내 재능을 숨기고 싶은데….’
너무 뛰어난 재능은 다른 사람의 시기를 살 수 있다.
특히 나는 이능을 두 개나 각성했다. 마법 재능과 자연 각성 이능. 이것만으로도 또 다른 실험의 모르모트가 될 이유로 충분했다.
“…벨하가 교관이 카메라로 임무지를 녹화하고 있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카메라는 박살 났다. 무전기의 통신 기록은 중간부터 끊겼지. 네로스. 그 도적놈이 하필이면 뇌룡으로 각성하는 바람에 주변 일대 전자기기는 먹통이 되었다. 널 발견한 것도 통신이 끊기고 3시간 뒤였다.”
예측했던 일이다. 네로스가 사방에 흩뿌린 번개의 마나는 일종의 EMP 효과를 냈을 테니까.
신경 쓰이는 건 역시 장갑차 조종수다.
“장갑차 조종수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무사합니까?”
비누스 교관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우묵한 눈으로 날 빤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조종수는 구속 중이다.”
“예?”
“탈영을 시도하다가 잡혔다.”
비누스 교관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혀를 강하게 찼다.
단서는 모두 갖춰졌다. 상황을 추리했다.
‘나를 발견한 건 통신이 끊기고 3시간 뒤…. 장갑차 조종수는 아마 썬더 볼트가 떨어지기 전에… 무전기가 끊겼을 때 도망쳤다. 도망치느라 썬더 볼트를 보지 못했을 확률이 높고…. 설령 봤더라도 확인하지 않았다.’
장갑차 조종수는 나를 회수하지 않았다. 그는 자세한 내막을 모른다.
‘설령 나와 조종수의 증언이 다르더라도… 내 말을 믿겠지. 조종수는 탈영을 시도한 범죄자니까.’
탈영을 시도한 조종수의 미래는 뻔했다.
처형.
그게 아니면 노예로 평생을 살아가겠지. 나처럼 어딘가의 실험체가 될 수도 있고.
“제가 임무지에서 겪은 일들을 모두 말해드리겠습니다.”
나는 잠들기 직전에 보았던 흔적들을 떠올렸다.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211호가 된 나는 한 번 본 것들을 잊지 않고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네로스가 나타나기 전까지 임무는 순조로웠습니다. …저는 네로스가 나타났을 때 그를 저격했고, 그는 총알을 반사했습니다. 저격총이 부서졌기에 바로 합류하러 갔습니다.”
“벨하가 교관이 나설 때까지는 통신 기록이 남아 있다. 그 이후는?”
진실을 말했다. 비누스 교관은 이미 정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 전투와 관련된 전문가들이 득실거리는 곳이 군대다. 전투 흔적만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70% 이상은 파악했겠지.
내가 할 증언은 거짓을 말하는 게 아니라, 진실을 덜어내는 것.
내 공적을 없애고 벨하가 교관의 공적을 치켜세운다. 썬더 볼트의 흔적은 네로스의 짓으로 얼버무릴 수 있다. 다행히 놈은 뇌룡으로 각성했으니까.
“…제가 살아남은 건 순전히 운이 좋았습니다.”
“이거 말이군.”
비누스 교관이 품에서 팔찌를 꺼냈다. 렉시 교관에게서 받은 아티팩트다. 그는 내게 아티팩트를 돌려주었다.
“렉시 교관이 네게 준 것이라지. 상당한 물건이다. 잘 간수하도록.”
“…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급이 된 건 언제지?”
“기절하기 직전에 아스트랄이 확장되는 걸 느꼈습니다.”
“간혹 있지. 전투 중에 성장하는 병사들이. 너는 마나 역류를 겪을 때도 무사히 넘길 뿐만이 아니라 이득을 취하더니… 이번에도 살아남고 2급이 되었군.”
“…….”
“너 같은 녀석들을 보통 악운이 강하다고 하지. 뭐, 그 운이 끝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만은. 어쨌든 살아남은 것과 2급에 오른 걸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허나 네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는 걸 잊지 마라. 알겠나, 211호 이등병.”
“이등병…. 제게 계급이 생긴 겁니까?”
“임무에 성공한 녀석들에겐 모두 계급이 생겼다.”
“…실패한 자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죽었지.”
익숙하다는 듯이 말한 그는 병실을 떠났다.
•••
비누스 교관의 말대로였다. 이등병이 되었어도 내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노예이며, 실험체였다.
병실을 퇴원하기 전에 끔찍한 시간이 찾아왔다.
마나 진액이 몸에 투여되는 시간이었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더라도 ‘배틀 메이지 프로젝트’의 실험체인 이상 주기적으로 마나 진액을 투여받는다.
나는 사지가 구속당한 채로 수술대 위에 누웠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고, 가슴과 어깨, 목을 비롯한 여러 부위에 전극들이 타닥타닥 붙어 있다.
뚜벅. 뚜벅.
수술 모자와 마스크를 낀 남자가 무미건조한 눈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의 손은 푸른색 액체가 담긴 주사기를 쥐고 있었다. 그는 마나 진액을 투여하기 전에 재갈을 내 입에 물렸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211호의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재갈을 부술 기세로 이를 악물었다.
주사기가 목에 닿는다. 낯설고 서늘한 금속 바늘의 감각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남자가 피스톤을 밀어냈다. 차갑고 무거운 마나 진액이 정맥을 타고 흐른다.
마나 진액은 정맥을 타고 흐르면서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아스트랄과 마나 로드가 반응한다.
“……!!”
그 과정에서 고통이 발생했다.
몸속에서부터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것 같은 통증이었다. 그 통증은 마나 진액이 육체에 오로지 흡수될 때까지 지속된다.
12개의 마나 로드가 마나 진액에 의해 활성화된다. 나는 고통 속에서 마나 로드를 최대한 활성화했다. 고통이 더 심해졌지만, 조금이라도 더 이득을 얻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마음속으로 비명을 내지른다. 사지가 구속된 상태가 아니었다면 바닥에 떨어져 짓밟힌 벌레처럼 추잡하게 꿈틀거렸을 것이다.
고통의 시간은 길었다. 찰나를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느낌이다.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것이 이토록 저주스러울 수가 없었다.
“저번에 비해 아스트랄이 안정되어있군. 2급이 되면서 효율이 올랐나? 추가로 20%를 투여한다.”
남자는 새로운 주사기를 가져오더니 내 목에 꽂았다.
‘씨바아아아아아알!!!!’
진정되어가는 고통이란 불길에 휘발유를 들이붓는 행위였다. 나는 뒤집히려는 눈에 힘을 빡 주었다. 여기서 기절했다간 최악에는 죽을 수도 있었다. 최대한 정신을 붙잡아야 한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남자의 목깃에 달린 배지가 눈에 들어왔다. 붉은 눈물 모양의 배지. ‘다크 문’의 게임 지식이 떠오른다. 저 배지는 알파 티어(Alpha Tear) 제약 회사를 뜻하는 배지다.
‘죽여 버린다!! 이 일과 관련된 놈들 다 죽여 버릴 거라고!!!’
나는 활활 타오르는 고통 위로 분노와 증오를 올렸다. 세 가지는 연기가 되어 뒤섞여 복수심이 되어 뇌리에 새겨졌다.
•••
마나 진액을 투여받는 것이 끝이 아니었다.
실험 결과를 위해 내 피를 채혈하고, 지구에서는 들어보지도 못한 기계들로 내 몸을 검사했다. 알파 티어 소속 놈들은 결과를 보고 저들끼리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치솟는 살의를 필사적으로 참아야 했다.
나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뗐다. 계속 보고 있어봤자 분노만 일어난다.
아스트랄을 통해 몸을 관조했다.
마나 진액이 투여된 효과는 있었다. 마나가 늘어나고 마나 로드의 질이 조금 더 좋아졌다. 마나가 늘어난 건 기쁜 소식이다. 안 그래도 마나가 부족해서 고민이었으니까.
‘내 수명과 맞바꿨다고 생각하면 더 빡치는군.’
아직은 큰 부작용이 없지만, 그게 언제까지 갈지 장담할 수 없었다. 이 육체는 마법 재능에 비해 육체적인 재능이 거의 없으니까.
‘적어도 여기서 탈출할 때까지는 멀쩡했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