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099화 (1,099/1,497)

〈 1099화 〉 1099. 다크 문

덜컹덜컹덜컹.

장갑차가 임무지로 향했다.

최신형 장갑차라고 하는데 소음을 제외한 탑승감은 제법 괜찮았다.

장갑차 탑승석에는 나를 비롯한 총 6명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격투술 교관인 벨하가를 제외하고 긴장으로 굳어있었다.

앞으로 몇 시간 뒤에 도적단과 실전을 치르게 된다. 죽고 죽이는 전투가 기다리고 있다.

나는 긴장했으나 두려움은 없었다. 몬스터가 아닌 인간을 상대하는 건 헌터로서도 처음 있는 일이지만, 헌터가 되기 전부터 각오해온 일이었다.

“긴장하지 마라, 애송이들. 너희는 1급이다. 반면 네로스 도적단은 두목인 네로스를 제외하고 무급이다. 약간의 실전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이지. 너희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무급.

마나를 사용할 줄도, 느낄 줄도 모르는 일반인.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그들이 들고 있을 총은 만인에게 평등한 무기니까.

“배리어 마법을 사용할 줄은 알겠지? 1급 배리어라도 평범한 총알 몇십 발은 쉽게 막아줄 거다. 허나, 배리어를 맹신하지 마라. 간혹 평범한 탄환이 아닌 마탄을 쓰는 놈들도 있다.”

벨하가의 말에도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배리어.

무속성 마법이다.

술식 자체가 복잡하지 않아 어떤 마법사라도 간단하게 배우고 사용한다. 마법에 입문하고 가장 먼저 배우는 마법 중 하나가 배리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술식의 영향을 받는 마법 중 하나다. 술식이 복잡하고 세밀할수록 배리어의 강도는 올라간다. 또한 무속성이라 아스트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간단히 말해서 정신이 불안정하면 배리어의 강도가 내려간다는 뜻이다.

“…후. 너희들 꼬라지를 보니 미덥지 못하군. 다시 한번 브리핑해주마.”

벨하가는 품에서 카메라와 닮은 무언가를 꺼내더니 바닥을 가리키며 전원을 눌렀다. 임무 지역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라즈만 도시. 70년 전의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지. 도시의 95%는 폭격으로 사라지고 지금 남아 있는 건 도시의 5%밖에 되지 않는다. 조금 큰 마을 수준이다.”

홀로그램이 보여주는 건물들은 2~3층짜리 건물들이었다. 빌딩처럼 생긴 건물도 있었는데 윗부분이 박살 나거나 사라졌다.

“너희들의 임무는 섬멸이다. 한 사람도 살려 보내지 마라. 특히 네로스는 반드시 죽여라.”

벨하가가 짐승이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그의 살벌한 목소리에 아이들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는 이어서 네로스에 대해 브리핑했다.

“이놈은 간 크게도 수도로 운송 중이던 용의 인자(因子)를 강탈했다. 암시장에 내다 판 정황은 없으니 아마 본인이 사용했을 거다. 조심하도록. 뭐, 그래봤자 적응도 안 끝났을 테니 기껏 해봐야 2급 정도다.”

벨하가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으나, 1급인 우리들은 2급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만약, 정말로 네로스가 2급이라면 못해도 3명이 함께 덤벼들어야 한다. 최선은 5명 전원이 함께하는 거고.

벨하가는 이번으로 여섯 번째 반복하는 브리핑을 끝마치고 우리에게 말했다.

“장비를 점검해라. 임무 중에 장비에 문제 생겼다고 징징거리면 내가 직접 죽여버린다.”

나를 비롯한 아이들이 장비를 점검했다. 아이들과 달리 내 장비는 조금 달랐다. 입고 있는 제복은 똑같지만, 무기가 다르다. 그들의 총은 돌격소총이고 나는 저격소총이다.

우리 중에서 사격 실력이 가장 좋은 나는 저격수 임무를 받았다. 후방에서 저격 지원만 한다고 안전할 거라는 생각은 버렸다.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 세상인지는 잘 안다. 방심은 갖다 버린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내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그래야 돌아갔을 때도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장비를 모두 점검한 나는 숨을 고르며 함께 임무에 투입된 아이들을 바라봤다. 나와 비슷한 또래. 모두 15~17살 사이로 보인다. 다섯 명 모두 남자다. 모두 일면식 정도는 있었다.

“도착했다. 임무 시작이다. 나는 너희가 전멸하기 전까지 임무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 점 유의하고 임무를 수행해라.”

키이이이잉.

장갑차의 문이 천천히 열린다.

“혹시나 해서 말한다만, 밖으로 나왔다고 해서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마라. 너희는 우리에게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반사적으로 오른쪽 팔뚝에 시선을 줬다. 제복 아래에 있을 노예 인장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밖으로 나왔다고 해서 탈출할 기회가 있는 건 아니야. 이 망할 곳에서 탈출하려면 가장 먼저 노예 인장부터 어떻게 해야 한다.’

지금으로선 탈출은 먼 훗날이다. 나는 자유에 대한 미련을 접어두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장갑차 밖으로 나갔다.

70년이 지나도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황갈색 땅은 딱딱하게 굳어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모래 먼지가 일어났다.

“작전대로 하자. 211호. 저격 잘 부탁해.”

14호가 말했다.

“최선을 다하지.”

나는 형식적으로 대답했다. 그 이후 우리는 헤어졌다. 72호, 54호. 105호, 14호는 폐허 도시를 향해 바로 직진했고, 나는 저격 포인트로 숨 가쁘게 움직였다.

저격 포인트는 기둥 위쪽이었다. 사방이 뻥 뚫려 있어서 역으로 저격을 당하기 쉬워 보이는 곳이지만, 네로스 도적단에는 저격수가 없다.

나는 기둥 위에 쪼그려 앉아 저격총을 들었다. 엎드리기에는 기둥 위의 면적이 좁았다.

스코프에 오른 눈을 가져갔다. 텔레스코프 마법이 걸린 스코프는 1KM 가량 떨어져 있는 폐허 도시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4명의 동료를 찾는 일이었다. 그들의 경로는 이미 숙지했기에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무전기를 두들겼다.

“여긴 211호. 저격 포인트에 도달했다.”

“여긴 14호. 적들은?”

“알아보겠다.”

스코프를 이용해 적들의 동향을 살펴보는 것도 내 역할이었다.

“…14호. 너희 기준으로 1시 부근에 있는 건물에 최소 3명 이상이 대기 중이다. 시시덕거리며 카드 게임을 하고 있군. 아직 우리에 대해선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하다.”

“최소 3명인가. 저격 가능한가?”

“1명을 제외하곤 각이 안 나오는군.”

“알았다. 우리가 처리하지. 다른 적들의 위치를 파악해라.”

14호 일행이 은밀히 건물에 침투했다.

“사일런스.”

무전기를 통해 14호의 목소리가 들린다.

사일런스. 주변 공간의 소리를 없애는 1급 무속성 마법이다. 배리어와 함께 1급 마법 중 유독 효율이 좋은 마법이다.

단점이 있다면 연결된 무전기를 통해서도 어떠한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스코프를 움직였다. 적들이 총탄에 꿰뚫려 절명했다. 전투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략 6초.

“클리어. 다음은?”

“거기를 기준으로 7시 방향. 건물 입구 쪽에 2명이 경계 중이다.”

“확인했다. 우리가 처리하기엔 위치가 안 좋군. 211호. 처리할 수 있겠나?”

“처리하지.”

호흡을 멈추고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총기의 미세한 흔들림이 사라져있었다. 준비가 끝나자마자 방아쇠를 당기고 총구를 살짝 옆으로 조준한 뒤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두 개의 탄피가 땅에 떨어졌다. 경계를 서던 적 2명의 머리에서 피와 뇌수의 꽃이 피었다.

“…….”

지구의 삶과 211호의 삶을 통틀어 처음으로 하는 살인이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떨림을 털어냈다. 그게 끝이었다. 생각보다 더 무덤덤하게 느껴져서 놀라웠다.

잡념은 없애고 작전에 집중했다.

14호와 일행은 쓰러진 적의 시체를 짓밟으며 건물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10명을 죽일 때까지 작전은 거의 완벽했다.

“…들켰다. 지금부터 교전에 들어간다. 211호. 엄호를 부탁한다.”

“알겠다.”

이 상황도 충분히 상정했다. 총알은 많다. 나는 적을 죽이는 것보다 아군을 구하기 위해 방아쇠를 당겼다. 도적단의 두목인 네로스를 죽이려면 14호를 비롯해 모두가 살아 있어야 한다.

스코프를 이리저리 옮기며 아군을 엄호하던 나는 묘한 존재감을 느끼고 스코프를 위로 올렸다. 건물 위에 한 남자가 서서 아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2M에 달하는 큰 키와 호리호리한 체격의 남자였다. 입은 옷은 검은색으로 거적때기나 다름없고, 아무렇게나 자란 하얀 머리카락 사이로 비취색 나뭇가지처럼 생긴 뿔이 툭 튀어나와 있다.

벨하가 교관의 말대로다. 네로스는 용의 인자(因子)를 흡수하고 용인(龍人)이 되었다.

“…네로스 확인. 지금부터 저격에 들어가겠다.”

“우리도 확인했다. 용인이라 그런지 존재감부터가 다르군. 저격 가능하겠나?”

“해봐야지.”

이 세계는 인자(因子)란게 있었다. 용의 인자, 괴물의 인자, 영웅의 인자, 동물의 인자 등등. 조상 중 특별한 인간이 있을 경우 그 영향을 받아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경우가 있고, 인자를 몸에 투여해 후천적으로 능력을 각성하는 경우가 있다.

네로스는 후자 쪽이었다. 그리고 용의 인자는 인자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하는 인자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인자를 몸에 투여하고 적응까지의 시간이 얼마 없었다는 점이다. 아마 일주일만 더 늦게 왔어도 작전 성공 가능성은 0%에 달했겠지.

‘한 방에 끝내야 한다.’

호흡을 멈춘다.

부족하다. 더욱 완벽한 저격을 위해 마나로 심장을 구속했다. 심장 박동이 멈추고 흔들림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때, 돌연 네로스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의 두 눈은 정확히 나를 보고 있다. 나는 집중력으로 동요를 억누르고 놈의 미간을 조준했다. 다소 굳은 검지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총알이 뻗어나간다. 그 순간의 감각은 완벽했다. 총알은 정확히 놈의 미간을 꿰뚫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확신은 떨어진 유리병처럼 산산이 조각났다.

네로스의 나뭇가지같은 비취색 뿔에 시퍼런 전류가 번뜩이는가 싶더니, 탄환이 미간 앞에서 멈추고 역으로 나를 향해 날아왔다. 전류를 품은 탄환이 파직거린다.

저격총을 버리고 옆으로 굴렀다. 반응은 군더더기 없이 빨랐다. 그러나 놈이 반사해낸 총알이 예상보다 더 빨랐다. 총알은 저격총을 박살 내고 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기둥 아래로 떨어졌다.

‘0.1초만 늦었어도 어깨가 박살 났겠군.’

식은땀을 흘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211호! 무슨 일이지?!”

“…총알이 반사됐다. 1km 떨어진 나를 완벽히 인식하고 저격을 반사한 놈이다. 방심하지 마라. 저격총은 부서졌다. 저격은 불가능하다. 나는 그쪽으로 합류하겠다.”

권총을 들고 격전지로 뛰었다.

두렵다는 이유로 도망치는 것보다 14호 일행과 합류해서 싸우는 쪽이 낫다.

무전기를 통해 전투 소리가 들렸다. 쾅쾅. 수류탄이라도 사용했는지 폭발음이 계속 들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악!”

“2급이라더니! 이놈은 완전 3급 이상의 실력이잖아!”

“사, 살려줘. 팔이, 팔이 잘렸어!”

“끄어어어어….”

처절한 비명이 들렸다.

그래도 아직 14호 일행은 싸우고 있다. 500M를 전력으로 질주한 나는 숨을 헐떡였다. 이 망할 놈의 육체는 단련해온 것에 비해 체력이 지나치게 낮았다.

치지직. 치직.

무전기에서 노이즈가 들렸다. 14호나 다른 이들의 무전기가 박살 났을 가능성이 컸다. 그게 아니면 네로스 놈이 수작을 부렸거나.

콰콰쾅!

구름 한 점 없는 마른하늘에서 시퍼런 벼락이 아래로 떨어졌다.

“…….”

다리가 멈췄다.

지금 저 격전지로 향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죽는 것보다 임무 실패 불명예가 더 낫다. 따지고 보면 네로스는 나 같은 초짜놈들이 상대할 놈이 아니다.

“빌어먹을. 벌써 3급이라고? 적합률이 못해도 70%는 되는 놈이었군. 211호, 14호. 살아 있는 아군을 데리고 후퇴할 준비를 해라. 내가 놈을 처리하겠다.”

벨하가 교관의 명령이 떨어졌다. 뒤로 빠져 상황을 관망하려는 계획은 바로 먼지가 되었다.

‘명령 불복종은 심각하니… 어쩔 수 없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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