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098화 (1,098/1,497)

〈 1098화 〉 1098. 다크 문

‘다크 문’이란 게임 속에 들어오고 벌써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누군가가 인간은 적응의 생물이라고 했던가. 그 말은 맞았다. 나는 이 생활에 적응했다.

다 렉시 교관 덕분이다. 사격술의 천재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여러 가지로 대우를 받으며 생활이 편해졌다. 조금 실수하더라도 어느 정도 넘어 가준다.

‘내 가치가 오른 거지. 설령 내가 배틀메이지가 되지 못하더라도 저격수로서 활용할 수 있으니까.’

렉시 교관은 나를 볼 때마다 저격수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베테랑 저격수 한 명이 있으면 아군 1,000명이 편해진다. 라는 말은 좀 과장이 뒤섞인 것 같지만. 어쨌든 저격수의 가치가 높은 건 사실인 모양이다.

어제 31호가 경지가 올라 2급이 되었다는 말이 들렸다. 교관과 아이들은 역시 31호다. 라고 하나같이 반응했다.

31호가 2급이 되자 안 그래도 특혜를 받던 그녀는 더욱 좋은 대우를 받기 시작했다.

‘1급과 2급의 차이는 꽤 크니 이상한 일은 아니지.’

나는 격투술뿐만이 아니라 사격을 제외한 몸을 쓰는 행동 전반적으로 모두 재능이 없었다. 검술, 창술 등등.

충격적인 건 검술을 전혀 못 한다는 사실이었다.

‘지구에서는 그래도 검을 사용하는 F급 헌터였는데….’

211호는 나와 똑같은 얼굴을 가진 주제에 운동신경이 전혀 없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천장에서 싸구려 멜로디가 울렸다. 다음 일정을 알리는 멜로디였다. 내무실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복도로 나가 줄을 맞춰 섰다.

“마나 수련실로 이동하자.”

내무실장인 205호가 우리를 인솔했다. 복도를 걷는데 시선이 느껴진다. 슬쩍 시선을 돌리니 군복을 입고 손에 총을 든 병사 둘이 이쪽을 감시하듯 보고 있었다. 이 몸의 신분이 노예와 실험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마나 수련실에 들어가자마자 농도 짙은 마나가 느껴졌다. 자세한 원리는 모르겠지만, 마나 수련실은 다른 곳 보다 마나가 충만했다. 이름 그대로 마나 호흡법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211호는 여기서 마나 역류를 겪고 기절했지.’

그리고 내가 211호로 깨어났다.

나는 정해진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마나 호흡법의 가장 기본이 되는 자세가 가부좌였다.

두 눈을 감고 관조에 집중한다.

‘211호의 마나 역류 원인은 호흡이었다. 호흡을 특히 신경 쓰면서 아스트랄을 개방한다.’

아스트랄을 개방하자 마나의 존재감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5개의 마나 로드가 일하기 시작했다. 마법을 사용할 때와는 반대로 바깥의 마나를 내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렇게 빨아들인 마나의 99% 이상은 다시 밖으로 빠져나가지만, 극히 일부의 마나는 내 몸에 남아 쌓인다.

이 쌓인 마나가 내 자산이 되는 것이다.

“커억! 크어어억!”

집중력을 깨는 목소리에 감았던 눈을 슬쩍 떴다. 내게서 좀 떨어진 장소에 자리 잡은 한 남자가 가슴을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마나 역류였다. 병사들이 달려와 남자를 데리고 의무실로 떠났다.

‘일주일 동안 세 명이나 마나 역류를 당했군. 아무리 그래도 이상하지. 일부러 마나 역류를 일으켰나?’

나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마나 역류에 대한 인식이 조금 바뀌었다. 마나 역류를 통해 깨달음을 얻으면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갈 수 있다. 라는 헛소리였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마나 역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뿐이지. 그것도 성공 확률이 무척 낮은 계기.’

뭐, 요행을 바라며 일부러 마나 역류를 겪는 놈들이 이해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다.

‘우리 신분은 노예이며 실험체. 성적이 안 좋으면 바로 처분되지.’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일부러 마나 역류를 일으키든 말든 남의 일이었다. 남을 위해 오지랖을 부리는 성격도 아니고, 난 그럴 여유도 없었다.

•••

오후에는 검술을 훈련하는 대신 렉시 교관이 있는 사격장으로 향했다. 교관들이 내 재능을 알아보고는 사격술에 집중하도록 일정을 짠 것이다.

“안녕. 211호. 오늘 기분은 어때?”

렉시가 생긋 웃으며 말한다. 그녀의 옆에 있는 책상에는 권총을 시작으로 10개가 넘는 총기가 있었다.

“평범합니다.”

“컨디션이 나쁜 건 아니지?”

“네.”

“오늘은 다른 총기들을 한 번씩 사용해볼 거야. 신기하게도 사람마다 선호하는 총기가 다 다르거든. 뭐, 너 정도 실력이면 어떤 총기라고 상관없겠지만.”

나는 잠자코 그녀의 지시에 따라 권총부터 사격을 시작했다. 사격을 할 때마다 자신에게 감탄한다. 가까운 거리라면 바람을 계산하지도 않고 대충 감각적으로 방아쇠를 당겨도 목표물에 명중한다.

‘이게 재능이란 건가.’

재능은 효율이라 생각했다.

천재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보는 자들이다. 라고.

‘근데 천재가 되고 보니 알겠군. 최소한의 노력이고 뭐고 없군. 천재란 불가해다.’

도움 안 되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전부 지웠다. 그저 지금 이 재능에 충실하게 임했다.

“그거 알아? 마법사에겐 사격 실력이 높을수록 좋아.”

“…마법사가 총기를 자주 씁니까?”

“응? 그게 아니라 마법도 결국은 원거리 공격이잖아. 맞히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거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원거리 공격 마법만 있는 건 아니지만, 마법사의 이미지 자체가 후방에서 마법으로 공격하는 이미지다. 실제로 별반 다를 것 없고.

‘배틀 메이지는 좀 예외이긴 한데. 마법사의 전투 방식은 원거리가 기본이지.’

이 세계의 마법사들은 굳이 전투를 하려 하지 않는다. 3급 이상의 마법 실력을 갖추기만 하면 엘리트의 삶을 누릴 수 있는데 위험한 일을 하고 싶겠는가.

타앙. 탕. 탕.

방아쇠를 당기며 총성을 음미한다. 300발 이상 쐈지만, 쏘는 족족 표적을 맞혀서 그런지 전혀 지겹지 않았다.

“저번에 내가 했던 말 기억나?”

“…상을 주시겠다고 하신 말씀 말입니까?”

“맞아. 혹시나 해서 묻는데 어떤 상을 받고 싶어? 솔직하게 말해봐. 내가 누군가에게 상을 주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고?”

“…….”

솔직하게 말하라고 해서 멍청하게 진짜 속내를 밝힐 생각은 없었다. 상대방이 내게 잘해준다고 해서 지금 내 입장을 착각해선 안 된다.

“주시는 대로 받겠습니다.”

“재미없는 대답이네. 밖으로 한번 나가보고 싶지 않아?”

“……나가게 해주실 겁니까?”

“미안. 나한테 그럴 권한은 없어. 그래도 바깥으로 나갈 기회는 다음 주에 생길 거야.”

“다음 주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너희들의 첫 임무야. 아니지. 실습이라 하는 편이 좋으려나. 너희는 아직 훈련병이니까.”

“실습의 내용을 알고 싶습니다.”

“기밀이라 알려줄 수 없어. 사실 실습이 있다는 것도 발설하면 안 됐는데… 무심코 말해버렸네. 다른 사람들에겐 비밀이야.”

정말로 무심코 말한 건 아닐 것이다. 실습이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해라. 뭐, 그런 뜻이겠지. 나는 다시 총기를 들고 사격에 집중하려고 했는데, 그녀의 손이 내 팔목을 잡아 내렸다.

그녀는 내 손에 팔찌 하나를 올려주었다. 투박한 금속 팔찌였다.

“내가 주는 상이야. 4급 배리어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야. 내 목숨을 10번 이상 구해준 귀염둥이지.”

아티팩트.

마법이 걸린 물건을 칭하는 단어다.

“감사합니다.”

거부하지 않고 아티팩트를 받아들였다. 4급 배리어라면 내 목숨줄이 될 수 있었다.

“넌 이번 실습에서 실패해도 돼. 네 사격 실력은 이미 모두가 확인했어. 실패해도 처분되진 않을 거야.”

“…그렇군요.”

“아, 참. 비누스 교관이 널 눈독 들이고 있더라. 마법 발현이 무척 깔끔하다면서 말이야. 하지만 네 사격 실력은 마법보다 더 뛰어나. 넌 저격수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는 걸 잊지 마.”

“…네. 감사합니다.”

나는 속내를 보이지 않으며 렉시를 대했다.

솔직히 말해서 난 저격수보다 마법사가 되고 싶었다. 이 몸은 사격 재능만큼이나 마법 재능도 뛰어났다.

•••

실습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화장실 변기 위에 털썩 앉았다.

이곳은 어딜 가든 타인의 시선이 따라붙는다. 내무실에는 다른 아이들이 있고, 복도에는 병사들이 감시한다. 샤워실도 마찬가지다. 관리자가 한 명 꼭 있었다. 그나마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화장실 정도가 전부였다.

‘이마저도 15분 정도가 한계다. 그 이상 여기에 있으면 들이닥치겠지.’

자살은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었다. 오른쪽 팔뚝에 새겨진 노예 인장이 자살을 허락하지 않는다. 자살을 생각하는 것까지는 괜찮으나 행동으로 옮기려고 하면 인장이 빛나며 고통을 준다. 고통을 무시하면 기절하게 되는 방식이다.

내가 화장실에 들어온 건 자살이 아니라 마법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라이트.’

무영창으로 마법을 발현한다. 손바닥 위에 나타난 빛의 구체가 화장실을 환하게 밝혔다.

‘파이어.’

빛의 구체가 있던 장소에 불꽃이 타올랐다.

‘아이스.’

불꽃이 사라지고 냉기가 모이더니 얼음이 생성되었다. 주먹만 한 얼음을 손에 쥔 나는 그 차가움에 눈살을 찌푸리며 얼음을 변기통에 떨어뜨렸다.

풍덩.

얼음은 빠르게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윈드.’

바람이 불었다.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대지 속성의 마법은 넘어갔다. 술식은 알고 있으나 여기서 사용하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워터.’

손바닥 위에 물이 고였다가 아래로 떨어졌다. 물과 얼음 마법은 비슷하지만 달랐다.

‘…스파크.’

파지지직.

손바닥 위로 시퍼런 전류가 튀었다.

나는 멍하니 전류를 바라봤다. 다른 속성의 마법인 라이트나 파이어보다 전격계 마법인 스파크가 훨씬 편했다. 아니, 익숙하게 느껴진다고 할까.

‘나는 전격계 속성에 특화됐나? 그런 것 치고는 다른 마법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는데.’

손바닥을 오므렸다. 전류가 사라졌다.

나는 그 상태에서 두 눈을 감고 마법과 속성에 대해 정리했다. 내가 느낀 속성의 특징은 이랬다.

빛의 마나는 사방으로 퍼지고, 불의 마나는 뜨겁고, 얼음의 마나는 차갑다. 물의 마나는 흐르고, 바람의 마나는 가볍다. 땅의 마나는 단단하고, 어둠의 마나는 무겁다.

‘그리고 번개의 마나는… 순수하다.’

속성에 대해 정립한 순간이었다. 마법사의 정신이라 불리는 아스트랄이 반응했다. 아스트랄이 급격히 확장하려고 한다. 내 경지가 2급으로 올라가려는 것임을 알았다.

‘아직 아니야.’

의지로 아스트랄의 확장을 억지로 막았다.

‘지금 2급으로 올라가면 너무 눈에 띄어. 못해도 한 달 뒤에 올라가야지.’

경지의 상승을 억지로 막았다. 보통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내가 가진 마법 재능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쯤 되면 마법에 문외한인 나도 알 수밖에 없다. 내 마법 재능은 사격 이상이라는 걸.

‘2급으로 올라가는 길이 막힌 건 아니야. 내가 원할 때 언제든 올라갈 수 있어.’

나는 손바닥에 시선을 주었다.

내가 가장 편한 속성. 그건 전격이 확실했다.

파지직.

‘음?’

손바닥에서 전류가 튀었다. 나는 당황했다. 전류를 떠올리긴 했으나, 술식을 발동하지 않았다. 지금 전류는 술식 없이 오직 마나와 의지만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이건… 이능(異能)?’

이 능력을 마법에 활용할 방법 몇 가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그 방법을 계속 떠올리면서 화장실을 나갔다.

•••

“211호, 72호, 54호. 105호, 14호.”

비누스 교관이 나를 비롯해 다섯을 불렀다.

“너희는 11번 임무다. 벨하가 교관의 인솔을 받아 네로스 단을 처리해라. 작전의 내용은 벨하가 교관에게 듣도록.”

우리는 벨하가 교관에게 향했다. 벨하가 교관은 사무적으로 작전을 브리핑했다.

임무의 핵심은 하나였다.

폐허 도시에 숨은 네로스라는 도적단을 처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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