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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096화 (1,096/1,497)

〈 1096화 〉 1096. 다크 문

새벽 6시에 기상하고 아침 점호를 한다.

교관의 구령에 맞춰 구보를 뛰고 씻은 뒤에 아침 식사를 한다. 아침 식사는 노예가 먹는 식단치고는 풍족했다. 노예인 동시에 군인이기도 해서다.

아침 식사 후에는 정신 교육을 받는다. 프리셀 군대의 뛰어난 점, 프리셀 군대에서 일하며 얻을 수 있는 이득, 언젠간 노예를 벗어나 고위 간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다.

‘성공적으로 탄생한 배틀 메이지를 좀 더 수월하게 부리기 위한 수작이지.’

그다음은 마법 수련이었다. 현직에서 일하는 배틀 메이지로부터 기초적인 마법을 배운다.

211호는 이 시간을 싫어했다.

마나 진액을 몸에 투입하는 것으로 강제로 마법에 입문하긴 했으나, 마법에 대한 재능은 없었기 때문이다.

기본 마법 몇 개를 배웠으나 성공한 마법은 하나도 없었다.

“오늘은 시험을 치르겠다. 마법 발현에 실패한 놈들은 그에 따른 조치를 받을 것이다. 너희 자신도 잘 알겠지만, 너희는 마법을 익히기엔 늦어도 너무 늦었다. 그러니 필사적으로 임해라.”

보통 마법은 늦어도 10세 전후의 나이에 익힌다. 5~7세부터 마법적인 재능이 있는 아이는 표가 나고, 어릴수록 마나를 잘 받아들이며 아스트랄 형성도 쉽기 때문이다.

“31호. 네가 첫 번째다. 앞으로 나와서 마법을 사용해라.”

“네. 비누스 교관님.”

보라색 머리카락의 여자가 앞으로 걸어간다. 하얀 피부와 붉은 눈동자. 생긴 것부터가 평범한 여자가 아니었다. 미모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다. 그녀의 걸음걸이에는 귀족의 품격 같은 것이 스며들어 있다.

31호를 보는 교관의 눈은 복잡하면서도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31호에게서 정돈된 마나가 느껴졌다. 여기까지는 문제없었다. 1급 마법사인 내가 같은 1급 마법사의 마나를 느끼는 건 당연하니까.

‘…마나만 느껴지는 게 아니야. 마나가 품은 술식의 일부가 보인다. 아니, 느껴진다.’

뭐라고 말하기 힘든 감각이었다. 보이지 않는데 보이고, 느껴지지 않는 데 느껴진다.

나는 31호의 술식에 집중했다. 분석한다. 기초 마법의 술식이 떠오른다. 31호가 보여주는 술식 중 삼할 이상은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 마법은… 돌풍(突風).’

31호가 입을 열었다. 술식은 완성되었다. 그 술식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 마지막 영창을 내뱉는다.

“돌풍.”

강렬한 바람이 불었다.

나를 비롯한 몇몇 아이들이 바람에 밀려 몸을 휘청였다. 나는 쓰러지기 직전에 겨우 몸을 바로 세웠다. 이곳에 있는 인원수만 총 50명이 넘었는데 10명 정도가 바닥에 넘어졌다. 31호와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던 아이들이었다.

“훌륭하다, 31호. 넌 네가 원하는 수련을 해라.”

여느 때처럼 31호에겐 특혜가 주어졌다.

“감사합니다. 교관님.”

31호는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구석에서 마법서를 읽기 시작했다.

“다음 36호.”

비누스 교관이 다음 아이를 불렀다.

잔뜩 긴장한 남자가 교관의 앞으로 나섰다. 주근깨 가득한 남자는 교관의 턱짓에 바로 마법 술식을 구성한다.

‘실패군. 31호에 비해 마나의 움직임이 굉장히 불안정해.’

술식부터가 불안정한데 마법이 구현될 리가 없었다.

“파, 파이어!”

피슉.

불꽃이 한 번 타올랐다가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1초 만에 사그라들었다. 36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형편없군. 밖에 있는 병사를 따라 조치를 받아라.”

비누스 교관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네. 교관님.”

36호는 힘없이 밖으로 걸어 나갔다.

비누스 교관이 말하는 조치는 마나 진액 투입이다.

‘이름만 마나 진액이지. 실제로는 농축한 마나와 약물을 혼합한 액체지.’

마나 진액은 마나 친화력을 올려준다. 얼핏 보면 좋을지 몰라도 부작용이 있다. 내장의 노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수명이 깎인다. 거기에 마나 진액이 육체에 투입되는 순간 어마어마한 고통이 덮쳐온다. 고통을 버티지 못하면 아스트랄이 붕괴하여 죽거나 병신이 된다.

나를 비롯해 이곳의 노예들은 주기적으로 마나 진액을 투입받고 있다.

당장은 마나 친화력이 오르니 좋을 것 같아도 장기적으로 봤을 땐 좋지 않았다. 실패한 36호처럼 자주 마나 진액을 투입받는 건 한계만 앞당길 뿐이다.

“다음 37호.”

비누스 교관은 시험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211호. 나와라.”

20분 만에 내 차례가 다가왔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지금껏 마법 발현에 한 번도 성공한 적 없었다.

“어물쩍거리지 말고 바로 시작해라.”

비누스 교관은 귀찮음이 담긴 어조로 말했다. 날 보는 눈은 무감정하다. 1%의 기대감도 담겨있지 않았다.

나는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아스트랄이 내 의지에 반응하며, 마나가 다섯 개의 마나 로드를 질주한다. 마나 로드가 마나에 술식을 구축한다. 술식은 하나로 뭉쳐 합쳐진다. 아스트랄을 통해 구축된 술식이 완벽하다는 걸 한 번 더 확인했다.

남은 것은 마법의 구현.

나는 긴장감을 담아 영창을 읊었다.

“라이트.”

새하얀 빛의 구체가 나타났다. 빛이 사방으로 퍼지며 주위를 밝힌다.

비누스 교관의 눈이 잠시 커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깔끔한 마법 발현이다. 지난번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실력이 향상됐군. 어제 마나 역류를 겪었다던데…. 깨달음이라도 얻었나?”

“잘 모르겠습니다만, 뭔가 편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나는 어물쩍 대답했다. 솔직히 나도 이렇게 쉽게 성공하리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다.

“무의식적으로 깨달음을 얻은 건가. 가끔 그럴 때가 있긴 하지. 211호. 다른 마법은 사용할 수 있나?”

문득 떠오른 건 31호가 사용했던 돌풍 마법이다. 돌풍 마법의 술식은 방금 처음 본거지만, 같은 1급 마법이라 그런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려고 한다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여기서 주목을 받을 필요는 없지. 실패하면 그만큼의 개쪽도 없고.’

특별 대우를 받는 31호다. 그녀와 마찰을 일으켜선 좋을 것 하나도 없었다.

“…파이어 마법이라면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봐라.”

라이트와 파이어는 1급 마법 중에서도 기본이라 칭해진다. 그래서인지 술식의 8할 이상이 흡사하다.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발현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파이어.”

술식을 형성하고 영창을 외웠다.

화르르륵.

빛의 구체가 있던 곳에 주황색 불꽃이 타올랐다.

가연물 없이 공중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그야말로 마법이었다.

“됐다. 꺼라.”

비누스 교관의 명령이 떨어졌다.

불꽃은 내 의지를 받아 픽 꺼졌다.

교관이 만족스럽게 웃는다.

“컨트롤까지 완벽하군. 211호. 너는 다른 마법을 익혀라. 개인적으로 아이스를 추천하지. 혹시 아이스를 익혔나?”

“아뇨. 익히지 않았습니다.”

“아이스를 익히며 파이어와 비교해라. 어느 쪽이 더 편한지 알아내면 네 속성을 알 수 있을 거다. 넌 2급으로 무난하게 오를 것 같으니… 지금부터 특화 속성에 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감사합니다.”

나는 교관에게 경례를 올렸다.

좀 얼떨떨했다. 비누스 교관은 칭찬이 인색하기로 유명한 교관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그에게서 칭찬받은 아이는 31호와 내가 전부였다.

“다음 212호!”

212호는 마법 발현에는 성공했으나, 비누스 교관으로부터 정진하라는 말만 들었다.

•••

점심 식사 후에는 군대 훈련을 받는다. 제식, 격투술, 사격술, 작전술 등등.

배틀 메이지 프로젝트는 이름 그대로 군대에서 활용할 전투 마법사를 만들어내는 프로젝트. 군대의 제식과 전투술을 배우는 건 당연했다.

오늘은 사격술이었다.

211호는 제식과 작전술은 자신 있었으나, 격투술과 사격술에는 자신감이 없었다. 아주 못하지는 않았으나, 평균 수준도 되지 못했다.

사격술 담당 교관은 렉시. 분홍색 단발머리 여성이었다.

교관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장교복을 입었다. 검은색이 어우러진 디자인이 멋진 제복이었다.

렉시 교관은 털털하게 웃으며 우리를 반겼다. 그녀는 고의로 그런 것인지 몰라도 제복 상의 윗부분을 풀어 헤쳐 풍만한 가슴을 드러냈다. 나는 그녀의 하얀 가슴 계곡에 자꾸만 눈이 가려는 걸 애써 참았다.

“자, 애송이들. 즐거운 사격 시간이야. 총의 중요성은 말하지 않아도 알지? 마나가 떨어졌을 때 믿을 수 있는 건 총밖에 없어. 총이 없다고? 그때는 하늘에 기도하는 수밖에 없지.”

렉시 교관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제 딴에는 농담이라고 하는 말인데, 우리 중에서 그 농담을 이해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렉시 교관은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31호부터 40호까지. 사격로에 서서 자세 잡아. 나머지는 총기의 분해와 조립을 반복 숙달!”

바닥에 천을 펼치고 라이플을 올렸다. FS66이란 모델의 어썰트 라이플이다. 프리셀 왕국군 정예들이 사용하는 총기라고 하는데 성능이 좋은지 안 좋은지 모르겠다.

나는 211호의 기억을 되짚으며 라이플을 분해했다. 방법은 알겠는데 요령이 없어서 그런지 몇 번 막혔다.

‘무작정 힘을 주는 게 아니라 당기 듯이 힘을 줘야하는군.’

열 번 정도 분해와 조립을 반복하자 요령이 생겼다. 처음에는 50초 정도 걸렸던 분해가 지금은 30초 정도로 줄었다. 조립은 분해보다 10초 정도 더 걸렸다.

“다음. 211호부터 220호까지. 사격로에 서.”

첫 번째 사격로에 들어갔다. 나는 자세를 잡으며 표적을 확인했다. 표적은 50M 떨어져 있다. 탄환이 명중하면 표적이 뒤로 밀려나는 방식이다. 다재다능한 31호가 신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최대 720M 거리의 표적까지 명중시켰다고 한다. 물론 스코프 없이.

211호의 최고 기록은 310M였다.

“사격 개시!”

탕탕탕.

다른 사격로에서 총성이 울렸다.

‘…뭔가 이 느낌이 아닌데. 자세를 좀 바꿔도 되나?’

렉시 교관의 눈치를 봤다. 사격에 있어 진심인 여자다. 멋대로 자세를 바꾸면 화를 낼 수 있었다.

‘바꾸자. 뭐라 하면 실수인 척하면 되지. 설마 한 번 실수했다고 마나 진액을 투입하겠어?’

어깨와 허리를 좀 더 편하게 두었다. 몸이 살짝 왼쪽으로 치우쳐진다. 이 사격로의 균형이 조금 기울어지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편하군.’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총알은 정확히 표적의 중심을 꿰뚫었다.

표적이 50M 뒤로 이동한다.

총구를 약간 조정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번에도 중심을 맞췄다. 나는 살짝 놀랐다.

‘211호는 이렇게 잘 쏘지 못했는데…. 211호가 아닌 성유진의 실력인가? …내가 이렇게 사격에 재능이 있었다고?’

긴가민가하며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200M 표적에도 명중했다. 이번에도 관중이다.

‘음. 뭔가 감이 잡히는데? 바람이 조금 강해지고 있군.’

바람을 계산한다. 마법 술식을 구축하는 것보다 더 어렵게 느껴졌다. 내 계산이 정확한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머지는 감으로 때우자.’

타앙.

총알은 표적의 중심을 꿰뚫었다.

500M의 표적을 꿰뚫었을 무렵 렉시의 시선을 포함한 아이들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나는 잠깐 멈칫했으나, 다시 표적에 집중했다.

명중.

명중.

또 명중.

어느새 31호의 최고 기록이었던 720M를 표적으로 두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표적이 보이는군.’

여기선 나도 자신감이 떨어졌다. 표적이 잘 보이지 않으니 계산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반쯤 감각에 맡기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표적이 더 뒤로 밀려난다. 명중했다는 뜻이었다. 심장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필사적으로 흥분된 기분을 가라앉혔다. 지금은 사격 중이다. 흥분은 좋지 않았다.

내 최고 기록은 850M에서 끝났다.

표적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맞출 수 없었다. 표적이 눈에 보이기만 했어도 맞췄을 것이다. 그런 기분이 든다.

나는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뒤로하고 총기를 내렸다. 뒤를 돌아보니 렉시가 이상야릇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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