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093화 (1,093/1,497)

〈 1093화 〉 1093. 80 레벨

“강명진. 페데리카의 처분은 나한테 맡겨줬으면 해.”

“…….”

강명진이 입을 다물었다. 그는 미간을 좁히며 무언가를 고심하는 듯했다.

강명진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짐작 간다. 뭐가 더 이득이 될지 이것저것 재고 있겠지.

“가시 장미 레기온의 마스터인 페데리카를 살려두면 여기저기서 반발이 나올 수 있다. 당장 이곳에 모인 용병들부터 페데리카의 죽음을 바라고 있다.”

“용병일 뿐이잖아. 무시해. 아니면 용병을 고용할 때 계약서에 페데리카의 목을 베겠다는 조건이라도 걸었어?”

용병은 말 그대로 고용된 병사일 뿐이다. 이 세계에서 용병이 우리를 배척하며 적대할 일은 없다. 용병의 영향력은 적은 편이고, 결국 돈의 논리로 움직이는 게 용병이니까. 용병이 레기온을 비난한다고 해서 망하는 경우는 없다.

“용병 계약의 경우 평범한 계약이다. 중요한 건 용병이 아니라 우리에게 협력한 레기온들이지. 레기온은 총 3곳. 그들은 어쩔 셈이지?”

“그것들은 용병들보다 더 쉽잖아. 가시 장미 레기온이 지배하던 구역을 나눠주면 알아서 입 닥칠 거야.”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용병이 대부분이다. 강명진이 말한 3곳의 레기온은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가시 장미 레기온을 습격할 때 도움을 줬겠지만, 완벽에 가까운 기습이었다. 페데리카와 산타누는 제대로 된 저항조차 못 하고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손해가 없으니 적당히 먹이만 주면 알아서 입을 닥칠 것이다. 이미 끝난 일을 들먹이며 굳이 에이플랜 레기온과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 않을 테니까.

“에이플랜 레기온의 명성이 떨어진다.”

“언제부터 명성에 신경 썼다고 그래?”

강명진은 착한 놈이 아니었다. 좋은 일이라서, 정의로운 일이기에 움직이지 않는다. 그게 나쁜 짓이라도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이득이 되면 움직인다. 에이플랜 레기온의 명성이 떨어지는 일? 강명진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종속에 당해 고초를 겪었을 텐데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군.”

강명진이 감탄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나는 고초를 당한 적 없다. 오히려 페데리카와 섹스를 하면서 즐거운 느낌도 들었다.

“페데리카의 처분을 네게 맡기는 것으로 우리가 얻는 구체적인 이득은 뭐지.”

“페데리카의 연금술. 너도 저번에 봤잖아. 그녀가 만든 포션들을. 사람을 잠시나마 늑대인간으로 만들고, 일시적으로 능력치를 뻥튀기해주는 강화 포션도 있어. 그 가치가 어마어마하다는 건 너도 알잖아.”

강명진은 페데리카를 바라봤다. 페데리카의 능력치와 스킬들을 천천히 훑어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 오전에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의 고유 특성과 연금술 스킬 랭크를 알아냈다.

연금술(S)에 고유 특성은 정밀(S).

정밀(S)은 온갖 행동에 추가 보정이 붙는 상위급 고유 특성이다. 특히 제작계와 찰떡이다. 그녀가 뛰어난 연금술사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고유특성 덕분이다.

“…네 의견은 어떻지?”

강명진이 페데리카에게 물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페데리카는 몸을 일으켰다.

“난 이미 끝났어. 그냥 깔끔하게 죽는다는 선택을 하기엔… 아직 세상에 남은 미련이 많네. 시키는 대로 할 테니 살려줘.”

중간에 날 힐끔거린 페데리카가 당당하게 목숨을 구걸했다.

강명진이 팔짱을 끼고 고민하자 용병들로부터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뭐야. 진짜 저년을 살려주려는 건 아니겠지?”

“시발. 장난해? 난 저년이 죽는 걸 보려고 이 일에 참가 한 거야. 당장 저년을 죽여버리라고, 에이플랜 레기온 마스터!”

“아무래도 좋으니 빨리 끝냈으면 좋겠군.”

“그냥 닥치고 있어. 우리가 고용주에게 이래라저래라할 처지냐? 약속한 돈만 받으면 돼. 돈만.”

“이런 시발. 너 같은 놈 때문에 용병이 돈만 쫓는다고 욕먹는 거다. 알아?”

“결국, 돈이 없었으면 모이지도 않았을 새끼가 고상한 척하지 마라. 막말로 고용주가 저년을 죽이는 대신 고용비를 지급하지 않는다고 하면 납득할 거냐?”

용병들이 하나둘씩 지껄이며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강명진은 용병들을 무시했다. 그들의 목소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약간의 침묵 끝에 판단을 내린 그는 나를 바라봤다.

“페데리카를 에이플랜 레기온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이해해. 레기온 일원들부터 시작해서 다른 이들이 태클 걸기 딱 좋은 주제니까.”

“네 개인적인 노예로서 그녀를 책임지겠다면… 나로서는 허락해줄 수밖에 없겠군. 지금껏 네가 에이플랜 레기온을 위해 해온 공로들이 많으니.”

“개처럼 부려 먹히며 일을 해온 보람이 있군.”

강명진이 피식 웃었다. 분위기가 풀어졌다. 페데리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죽는 것보다는 내 노예가 되는 편이 몇백 배는 낫지.

일부 용병들이 불만을 터트렸으나, 강명진은 묵살했다. 용병들이 할 수 있는 건 구시렁거리는 것뿐이었다.

“성유진이라고 했나? 주제넘지만 한 가지 충고해주지.”

드레미. 페데리카의 엣 동료이자, 제 1,471 구역의 지배자인 그가 내게 다가왔다.

“꼭 들어야 합니까?”

“페데리카에 관한 충고다. 그녀를 너무 믿지 마라. 무시하지도 마라. 아름다운 외모와 달리 독한 여자다.”

“당신 눈에는 독해 보이는 여자겠죠. 그녀가 어떤 여자인지는 제가 판단합니다.”

“오만한 말이군. 후회할 걸세.”

나는 조용히 그를 비웃었다. 점잖은 척하고 있지만, 페데리카를 향한 탐욕과 음심이 느껴졌다.

“알아서 할 겁니다.”

일은 정리되었다.

가시 장미 레기온이 가지고 있던 구역은 총 4개.

에이플랜 레기온은 제 2,910 구역, 기계 공원을 얻었다. 무려 장미의 도시를 포기하고 얻은 구역이다. 남들이 보기엔 미친 짓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선택을 한 건 강명진이었다.

분명 나중에 도움이 될 것이다.

페데리카는 에이플랜 레기온의 성 밖에서 살게 됐다. 나는 그녀가 성 내부에서 살기를 원했지만… 강명진을 비롯한 레기온 일원들의 반대가 있었다.

페데리카의 집은 생활하는 곳이자 연금술을 위한 공방이기도 했다. 그녀는 매달 양질의 포션을 에이플랜 레기온에 납품해야 했다.

나는 심심할 때마다 그녀의 집에 놀러 갔다. 그녀는 항상 웃으며 나를 반겼다.

“안색이 좋아 보이네.”

“생각했던 것보다 느긋한 생활이 나쁘지 않아. 되돌아보면 너무 바쁘게 움직였던 것 같기도 해.”

공방을 둘러봤다. 여러 물건이 널려 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붉은 포션이 반짝였다.

「수명의 포션

일시적으로 수명을 늘려준다.

미완성.

랭크: F」

“성공한 건 아닌 것 같네.”

“개량이 필요해. 지금부터가 시작이라 할 수 있지. 솔직히 꽤 힘들어. 수명이란 건 추상적이니까. 여기가 아틀란티스가 아니었다면 만들지도 못했을 거야. 근데 이게 꼭 필요해? 수명이 걱정이라면 영약을 찾아 먹는 편이 훨씬 더 효과적일 텐데.”

“내가 필요해서 하는 게 아니야.”

엘레나.

수명을 사용해 환술을 쓰는 엘레나에게 필요한 포션이다. 수명을 회복하는 게 아니라 수명의 총량을 늘려주는 포션.

‘완전 회복이 있다고 해도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힘은 정해져 있지. 엘레나가 강해지려면 수명을 늘리는 수밖에 없어.’

포션을 확인한 나는 페데리카에게 다가갔다. 페데리카가 양팔을 벌린다. 나는 그녀를 안아 들고 익숙한 걸음으로 침실로 향했다.

“수명의 포션을 완성하는 일에 힘써.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바로 말하고. 수명의 포션만 완성되면… 넌 귀족이 될 수 있어.”

“그 유명한 환상공님께서 수명에 집착하실 줄은 몰랐는데.”

“집착까지는 아니야.”

페데리카를 침대에 던졌다.

“꺄악.”

페데리카가 작은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입가에 그려진 미소는 여전하다. 그녀의 흐트러진 옷 사이로 새하얀 살결이 보인다. 나는 그녀를 향해 다이빙했다.

•••

[유희를 종료합니다.]

[경험치 정산을 시작합니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레벨 80을 달성합니다.]

[레벨 80달성으로 진행 가능한 유희 슬롯이 하나 증가합니다.]

[레벨 80달성으로 소지품 슬롯이 하나 증가합니다.]

[레벨 80달성으로 스킬, 천심(天心) Lv.1이 천심(天心) Lv.3으로 상승합니다.]

[레벨 80달성으로 스킬, 가속 Lv. Master의 스택의 최대한도가 2 증가합니다.]

[레벨 80달성으로 가장 낮은 능력치가 8 상승합니다.]

[레벨 80달성으로 피그말리온의 사랑을 획득합니다.]

[레벨 80달성으로 유희 시작 시 페널티와 어드밴티지를 조율할 수 있습니다.]

“흐, 흐흐흐.”

푼수 같은 웃음을 흘렸다. 스스로가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이 무수히 떠오르는 알림창을 보고도 어떻게 웃음을 흘리지 않을 수가 있을까.

“예상했던 대로 얻은 게 많아. 하나부터 천천히 살펴볼까.”

[현재 진행 중인 유희]

1. 뱀파이어 형사

2. 백작가에 환생한 매화검수

3. 신의 아틀란티스

4. 광명승천도

5. 아카데미의 구원자

6.

현재 내 유희 슬롯이었다. 이것으로 총 6개의 유희슬롯이 되었으며 새로운 유희 세계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세계를 선택할지는 아직 고민 중이었다.

소지품. 달리 인벤토리라고도 불리는 그것은 총 8칸이 되었다. 유희 세계를 왔다 갔다 하면 인벤토리의 칸은 큰 의미가 없지만, 칸 하나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편의성이 오른다. 귀찮은 일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다음은… 천심 레벨이 올랐군. 대량의 포인트를 잡아 먹는 뇌전 레벨이 올랐으면 더 좋았을 텐데.’

나는 아쉬움에 혀를 쯧쯧 차면서도 천심의 효과를 확인했다.

[천심(天心) Lv.3

‣천심(天心)

1분 동안 신체 능력이 상승하며, 상태 이상 면역 상태가 됩니다.

쿨타임: 24 시간

‣천안(天眼)

감각이 날카로워진다.

마나와 정신력을 소모해 천안을 발동하고 유지한다.

천안 개안 시 효과 상승.

‣천운(天運)

포인트를 소모해 확률을 상승시킨다.]

천운(天運)이라는 새로운 효과가 생겼다. 무려 포인트를 소모하는 스킬이었다.

‘확률을 올린다고? 진짜 확률을 조작할 수 있다고?’

엄청난 능력이 생긴 것 같았다.

‘이건 못 참지. 바로 시험해보자.’

나는 허공에 팔을 뻗었다.

‘내가 주먹을 아래로 내리지 않고 올릴 확률!’

[천운(天運)의 발동 조건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확률이거늘. 근데 이거 혹시 랜덤 뽑기에도 적용되나? 랜덤 뽑기에서 엘릭서가 나올 확률을 조작한다!’

[천운(天運)의 발동 조건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쓰읍….’

나는 인상을 쓰며 몇 번 더 천운을 사용했다.

[천운(天運)의 발동 조건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알아차렸다.

랜덤 뽑기라면 확률이 조작되지 않을 리가 없다. 가능성이 있는 건….

‘천운(天運) 스킬이 거짓말일 리가 없고…. 유희 생활 어플에는 통하지 않는 건가?’

저번에 얻었던 전지의 조각도 그렇다. 유희 생활 어플과 관련된 질문은 할 수 없었다.

‘다른 방식으로 확인해보자.’

요즘 즐기고 있는 스마트폰 게임을 켰다. 가챠로 미소녀 캐릭터를 수집하는 게임이었다. 며칠 안 들어갔었는데 마침 오늘 한정판매를 한다. 판매하는 캐릭터는 일본도를 든 하늘색 머리 여자. 얼굴에 점이 있어서 내 취향은 아니지만…. 여자 캐릭터니 일단 뽑는다.

‘평소라면 돈을 퍼부어서 뽑았겠지만… 오늘은 다르지.’

캐릭터를 뽑을 확률은 0.7%.

해볼 만한 확률이었다.

‘천운을 사용하면 더 해볼 만 하지.’

진짜 돈 없이 뽑으려고 하면 해킹 스킬을 쓰면 되지만, 그래선 재미도 낭만도 없었다.

[천운(天運)을 사용합니다. 10%의 확률을 상승시키는데 1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1 포인트? 싸군. 못해도 10 포인트를 예상했는데.’

[사용 가능 포인트: 7,159]

지금 내가 가진 포인트였다.

나는 기꺼이 1포인트를 사용했다.

[천운(天運)을 발동합니다. 현재 확률은 10.7%입니다.]

‘100%까지 되나 시험해볼까.’

추가로 포인트를 사용했다.

[천운(天運)을 발동합니다. 현재 확률은 100%입니다.]

뽑기를 눌렀다.

스마트폰 화면이 찬란하게 빛났다.

단 한 번의 뽑기로 원하는 캐릭터를 손에 넣었다.

‘돈으로 몇 십 만원이면 얻을 수 있는 캐릭터지. …음. 따지고 보면 10 포인트를 사용한 내가 손해를 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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