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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092화 (1,092/1,497)

〈 1092화 〉 1092. 신의 아틀란티스

“…페데리카. 아까는 내가 실수했어. 약에 취해서 경황이 없었을 뿐이야. 네가 만든 약의 효과가 워낙 뛰어나잖아.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지금은 멀쩡해. 사고 같은 거야. 기분 상한 건 아니지?”

산타누의 목소리는 무척 조심스러웠다.

이 새끼가 이런 목소리를 할 줄 안다는 것이 놀랍고 역겨웠다.

“…변명을 쏟아 내는 것보다 내게 사과하는 게 먼저 아니니?”

“아, 미안해. 원래 사과하려고 했어. 페데리카. 날 용서해줄 거지?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거야. 맹세할게.”

“…….”

페데리카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찌그러져 있던 산타누의 얼굴이 활짝 펴진다.

“고마워, 페데리카!”

산타누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나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필사적으로 눌렀다. 산타누, 저 멍청이는 분위기 파악도 못 하고 있었다. 내가 봤을 때 지금 페데리카는 산타누에게 완전히 정나미가 떨어진 꼴이다.

“페데리카. 포션 좀 줘. 팔다리가 마음대로 안 움직이고, 어금니가 흔들려.”

“…팔다리는 조금 쉬면 움직일 거야. 어금니 쪽은… 알아서 버티렴. 치료해주고 싶어도 치료 포션이 없어.”

“치료 포션이 없다고? 그럼 어쩔 수 없지.”

산타누는 페데리카의 어깨에 손을 뻗었다. 은근한 눈길로 페데리카를 바라본다. 그게 무슨 신호인지 내가 모를 리 없었다. 나는 인상을 콱 썼다. 페데리카의 눈치고 나발이고 놈을 죽여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다행히 페데리카가 산타누의 손길을 쳐냈다.

“회복하는 일에 집중해. 걸을 수 있지? 빨리 움직여야 해. 네 잘린 팔을 치료하려면 말이야.”

“아, 팔. 그래. 빨리 치료해야지. 너무 늦으면 치료가 힘드니까. 근데 페데리카. 저 새끼는 언제까지 데리고 있을 거야? 어차피 도착까지 얼마 안 남았잖아. 죽여버리라고.”

산타누가 날 쏘아본다. 얌전한 척하더니 바로 본색을 드러냈다. 나는 페데리카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는 걸 봤다.

“…아직 이틀은 더 가야 해. 그리고 지금 그의 힘이 필요해. 네가 기절했을 때 나타난 몬스터를 처리한 것도 그야. 그의 힘이 쓸만하다는 건 알잖아.”

“쓸만한 건 둘째치고 생긴 것에서부터 태도도 마음에 안 들어. 무엇보다 저 새끼랑 네가 몸을 섞는다는 걸 아는데… 내가 가만히 있어야 해?”

“질투하지 마. 내가 그를 가지고 노는 거니까. 그의 목숨은 내가 꽉 쥐고 있어. 너도 알잖아.”

“…페데리카. 이건 아니지.”

“산타누. 나는 네가 다른 여자랑 놀고 있을 때 입을 다물었어. 어차피 가지고 노는 여자니까.”

“…아니. 그거랑 이건 다르지.”

“다르긴 하지. 그는 창녀 같은 게 아니니까. 그는 강력한 힘을 가졌어. 아쉬울 게 많은 지금 상황에선 그의 힘이 필요해.”

페데리카가 일어났다. 그녀가 다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산타누는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절뚝거리는 다리로 페데리카의 뒤를 쫓았다.

“페데리카! 페데리카! 저 새낀 위험함 놈이야! 여기서 당장 죽여야 해! 우리 뒤통수를 칠 놈이라고!”

“적당히 해. 산타누.”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은 나는 당당하게 페데리카의 옆을 걸었다.

“저리 꺼져! 네놈은 떨어져서 걸으라고!”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 페데리카를 지키려면 가까이 있는 편이 낫지. 내가 싫으면 네가 떨어져서 걸어라.”

“너 같은 거 없어도 페데리카는 내가 지킬 수 있으니 꺼져!”

대놓고 비웃었다. 놈이 이를 악물고 주먹을 치켜든다. 페데리카가 고개를 획 돌렸다. 산타누가 주먹을 아래로 내렸다.

그날 밤. 또 노숙하게 됐다.

페데리카는 언제나처럼 산타누에게 장미 마약 한 알을 건넸다. 나무에 등을 기대고 누워 마약을 입에 넣은 산타누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 새끼. 마약을 안 삼켰군, 아직 깨어 있어.’

이어서 산타누는 두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약에 취한 연기를 했다.

연기가 무척 뛰어났다. 놈을 주시하고 있던 나마저 약을 삼켰는지 긴가민가할 정도였다. 결국, 천안을 발동해 놈의 입 안에 있는 마약을 확인했다.

‘약쟁이라 그런지 약에 취한 연기는 기가 막히게 잘하는군.’

놈이 무슨 속셈인지는 짐작이 갔다. 자신이 약에 취한 동안 페데리카가 어떻게 할지 궁금한 거겠지. 페데리카가 자신을 버리지 않을까 하는 의심도 있을 것이다.

페데리카는 산타누의 연기를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나는 일부러 페데리카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어깨를 주무르면서 치근덕거렸다.

“페데리카. 드디어 우리의 시간이 왔네.”

“잠깐. 계속 이러고 싶어? 넌 피곤하지도 않니?”

“피곤하니까 피로를 풀어야지. 뭐, 네가 싫다면 그만둘게.”

“…싫다는 건 아니야. 네 괴물 같은 체력에 좀 놀란 것뿐이지.”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장미처럼 선명한 붉은 머리카락은 볼 때마다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페데리카는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이 스트레스 넘치는 도망자 생활에서 섹스의 쾌락은 마약에 버금갈 정도로 뛰어나다. 더군다나 오늘은 산타누 탓에 상당히 스트레스가 쌓였을 것이다.

스르륵.

그녀의 검은 드레스가 아래로 내려갔다. 그녀의 부드럽고 풍만한 몸매가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아응… 아….”

쾌락섞인 신음은 매혹적이었다. 그녀는 내 애무를 받으면서, 손을 움직여 내 옷까지 착실하게 벗겼다. 알몸이 된 우리는 땅바닥에 깔아둔 모피에 함께 쓰러졌다. 그녀가 내 밑에 깔리고, 그녀의 새하얀 다리가 내 허리를 감쌌다.

찌걱.

그동안 매일 밤 쑤셨던 보지가 오늘 밤에도 내 자지를 반겼다. 귀두는 그녀의 자궁구와 포옹했고, 그녀의 도톰한 연분홍색 소음순이 내 자지 기둥을 포근하게 감쌌다.

나는 허리를 앞뒤로 움직였다.

찌걱찌걱찌걱.

“앙! 아응! 아아앙!”

페데리카의 붉은 입술 사이로 쾌락에 찬 교성이 끊임없이 새어 나왔다. 출렁출렁 흔들리는 젖가슴이 무척 음탕하다.

“페데리카.”

“흐응…. 뭐니? 설마 벌써 쌀 것 같다는 말은 아니지?”

“그건 절대 아니지. 오늘은 대답해줬으면 좋겠는데.”

“…뭘?”

“내 자지가 좋은지, 저 약쟁이 자지가 좋은지 말이야. 네 질척이는 보지 상태를 보면 답은 이미 나왔다고 생각하지만… 직접 듣는 거랑은 좀 다르거든.”

“…….”

페데리카가 힐끔 산타누를 살펴봤다. 산타누는 여전히 약에 취한 연기 중이었다.

“그게 중요하니?”

“나한테는 중요해.”

지금까지 대답하지 않던 질문이었다.

“…네 자지가 더 대단해. 길이도, 두께도 모두 네가 압승이야. 테크닉도 네가 더 뛰어나. 솔직히 지금까지 섹스가 이렇게나 기분 좋은 행위인 줄 몰랐어. 널 만나고 알았지.”

“마약 따위 보다 더 좋지?”

“…맞아. 마약 따위보다 훨씬 기분 좋아.”

“오오. 보지가 꾹 조여오네? 갈 것 같아?”

“응… 하읏… 앙. 갈 것 같아…! 아아아아앙!”

페데리카의 허리가 휘어졌다. 나는 그녀의 젖꼭지를 입으로 깨물면서 산타누를 살폈다. 산타누의 성격이라면 당장 일어나서 나를 공격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공격할 생각은 없나? 얌전하군.’

놈의 목울대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입에 머금고 있던 마약을 삼킨 모양이다. 주먹을 쥐고 있던 놈의 손이 힘없이 펼쳐진다.

“하아앙, 아아아아아앙!”

페데리카의 보지는 쫀득쫀득했다.

•••

다음 날.

산타누는 평소와 달리 묵묵하게 걸었다. 페데리카는 약간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굳이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나는 무표정을 유지한 채로 페데리카의 옆을 지켰다. 마음속으로는 웃음이 계속 나왔다. 페데리카와 산타누의 관계는 이미 깨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남은 건 어떻게 결과가 나오냐는 것이지.

오후가 되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제 1,471 구역, 회풍의 도시에 입장했습니다.」

1,471 구역은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었다. 장미의 도시에 비해 크기는 작지만, 나름 잘 발달한 도시였다.

여유롭게 도시를 구경할 시간은 없었다. 도시에 들어서자마자 병사들이 우리를 반겼기 때문이다.

도시를 발견했을 때만 해도 환한 표정을 짓고 있던 페데리카가 절망에 찬 얼굴로 정면을 바라봤다.

“드레미…! 우리를 배신하는 거야?!”

병사의 중심, 갑옷을 걸쳐 입은 중년 남자가 차분한 시선으로 페데리카를 바라봤다.

“배신? 우리 관계에 언제 신뢰 관계가 있었나? 우린 그저 한때 함께 일했던 옛 동료에 불과하지. 추억이라 말할 수 없는 기억이고, 그 기억마저 흐릿해지고 있지.”

“…드레미. 네 힘이 필요해. 내가 어떤 여자인지는 너도 잘 알잖아.”

“잘 안다. 내가 아는 연금술사 중에서 너만큼 뛰어난 연금술사는 만나 보지 못했을 정도다. 조금의 기반이 있다면 금세 세력을 구축하겠지.”

“나는 받은 빚을 잊지 않는 여자야.”

“그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드레미의 시선이 우리의 뒤쪽으로 향했다. 우리도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했다.

에이플랜 레기온의 마스터인 강명진을 중심으로 전투 인원들이 있었다. 지영빈, 릴스네, 주서현 등등. 그리고 수 십명이 넘는 용병 대부분이 페데리카를 향해 노골적인 살의를 내비친다.

“나는 그들과 손을 잡기로 했다.”

“…….”

털썩.

페데리카가 주저앉았다.

끝났다. 더는 방법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페데리카의 뒤로 갔다. 머릿속으로 앞으로의 일을 계획한다.

‘페데리카를 흑주맹이나 천마신교에 데려가는 건 포기한다. 강명진이 쉽게 놓아 줄 리 없어. 그렇다면 차라리….’

내가 결론을 내렸을 때였다. 산타누가 돌발행동을 저질렀다. 갑자기 뛰어와 페데리카의 포션 주머니를 낚아챈 것이다.

“산타누?!”

“페데리카. 이 망할 년아. 우린 이미 끝이야. 그 빌어먹을 새끼랑 붙어먹든, 빌어먹든 마음대로 해. 난 여기서 빠져나갈 테니까.”

그는 주머니에서 포션을 꺼내 바로 복용했다.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삼킨다.

“미, 미쳤어. 아무리 몸에 좋은 포션이라도 과도하면 부작용이 생겨! 당장 멈춰!”

“페데리카. 넌 약을 만드는 실력 하나 만큼은 뛰어났어. 난 네 연금술 실력만큼은 믿는다고. 하하하. 힘이 넘쳐나잖아!!”

기뻐하며 웃던 산타누의 얼굴이 곧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으… 씨발. 배가 아파. 눈이 터질 것 같아…. 약… 약이 필요해.”

그는 포션 주머니를 거꾸로 뒤집었다. 포션병이 떨어져 부서지고, 장미 마약이 우루루 쏟아진다. 그는 장미 마약을 한 움큼 쥐어 삼켰다.

“이제야 좀 낫군…. …음? …어? 몸, 몸이… 악, 아아아아악!”

산타누의 몸이 방사능에 오염된 것처럼 빠르게 부풀어 올랐다. 인간의 형상을 벗어난 살덩어리 괴물이 되기까지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산타누. 넌 마지막까지 멍청하게 구는구나.”

페데리카가 치를 떨었다. 어떤 미련도, 안타까움도 느껴지지 않는 싸늘한 어조였다.

“단순히 살덩어리일 뿐이다. 겁먹지 말고 공격해라!”

강명진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가 창을 던지는 것을 시작으로 산타누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화살과 마법이 산타누에게 퍼부어진다. 나는 페데리카를 안아 들고 뒤로 물러났다.

보스 몬스터같은 모습과 다르게 산타누는 손쉽게 처리되었다. 강명진의 말대로 단순히 살덩어리였을 뿐인 모양이다.

“…끝났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줄이야.”

페데리카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그녀의 앞으로 나섰다.

강명진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나를 향해 내던졌다. 구슬이었는데 내 몸에 닿자마자 새하얀 안개로 변했다.

「가장 깨끗한 새벽의 안개가 당신의 몸을 훑고 지나갑니다.」

「장미의 종속(S)이 해제됩니다.」

새벽의 안개는 저주 해제의 특효다. 장미의 종속(S)은 저주 계열에 속하는 모양이다. 처음 알았다.

나는 몸을 돌려 페데리카를 바라봤다. 페데리카가 처연하게 웃는다.

“이제 날 죽일 거니?”

다시 고개를 돌려 강명진을 바라봤다.

“강명진. 페데리카의 처분은 나한테 맡겨줬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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