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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091화 (1,091/1,497)

〈 1091화 〉 1091. 신의 아틀란티스

도망자 신세는 썩 유쾌하지 않았다.

추격자는 계속 쫓아오고 마을이나 도시에 들려도 편히 쉬기 힘들었다.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자신을 쫓는 추격자가 아닌지 의심부터 들었다.

그나마 나는 낫다.

강명진을 비롯한 에이플랜 레기온은 내가 종속 스킬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니까.

오늘은 도망 5일째.

마을을 발견했으나, 마을 안에 용병이 득실거리는 걸 보고는 바로 노숙을 결정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추격자의 실력이 뛰어나. 우리 위치를 알고 있는 것 같아.”

페데리카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피로로 가득하다.

나는 짐작 가는 게 있었다.

‘주서현이군. 주서현의 스킬 중 복수의 낙인이 추적에 특화되어 있지.’

주서현의 스킬을 이용해 추적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이럴 때는 공간 이동 주문서를 사용하는 게 최선이긴 한데.’

「특수한 파장이 방해하고 있습니다.」

「공간 이동 계열 스킬과 아이템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강명진이 그렇게 허술할 리가 없지. 우리가 도망가자마자 바로 조치했어.’

이 술래잡기도 곧 끝날 것이다. 하필이면 상대가 강명진이니까. 철저한 강명진이 쉽게 놓아줄 리 없었다.

“페데리카. 약을 줘.”

노숙 준비를 끝마치자마자 산타누가 말했다. 또 약 타령이었다. 지금까지는 아무렇지 않게 마약을 건네주던 페데리카가 입술을 깨물었다.

“산타누. 적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야. 꼭 약을 해야겠어? 앞으로 사흘 정도만 약을 끊어주면 안 돼?”

페데리카의 목소리에 짜증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산타누는 페데리카의 기분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중독증으로 덜덜 떨리는 손을 내밀며 화를 내듯 말했다.

“페데리카. 난 이미 버티고 있어. 도망가는 내내 약을 하는 것도 아니고, 수면 시간에 약을 할 뿐이잖냐. 이 정도는 허락해달라고. 약을 줘, 페데리카.”

페데리카는 한숨을 내쉬며 산타누에게 마약을 건넸다. 약을 주지 않으면 어떤 일이라도 저지를 기세였기 때문이다.

“좋아…. 바로 이거야….”

산타누는 곧바로 약을 복용 했다. 약에 취한 그는 눈동자가 맛이 갔다.

나와 페데리카는 산타누를 뒤로하고 잠에 들 준비를 했다. 모피를 바닥에 깔고 누웠다. 그게 전부였다. 텐트를 치거나, 불을 일으키면 추적자들의 시선을 끌 가능성이 있었다. 사실 이렇게 노숙하는 것도 꽤 위험한 일이었다.

페데리카는 주위에 노란 포션을 뿌렸다. 벌레가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 포션이었다. 내일 아침까지는 벌레 걱정 없이 쾌적하게 잘 수 있다.

모피 위에 잠자코 누웠다. 원래라면 페데리카에게 치근덕거렸겠지만… 지금 페데리카는 심기가 많이 불편해 보였다. 이럴 때 치근덕거렸다가 역풍을 받는다. 까탈스러운 한하린과 함께 지내며 늘어난 눈치였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잘못 생각한 모양이었다.

페데리카는 내 옆에 아니라 내 몸 위에 몸을 눕혔다. 장미 향과 함께 그녀의 숨결이 느껴졌다. 그녀가 팔로 내 목을 감싸며 애정을 갈구하는 고양이 같은 눈으로 날 바라봤다.

“오늘은 얌전하네. 너도 내가 질렸니?”

“기분 안 좋아 보여서 나름 분위기를 살핀 건데.”

“기분 안 좋은 거 맞아. 그래서… 오늘 밤은 네 위로가 필요한 것 같아. 싫니?”

“싫을 리가.”

페데리카의 허리를 잡았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내 몸에 눌린다. 페데리카는 두 눈을 감고 내게 입을 맞추었다.

“하응, 음….”

오늘따라 적극적이었다. 나는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키스에 열중했다.

•••

아침 해가 뜨기 직전까지 페데리카와 몸을 섞었다. 우리는 평소와 같이 산타누가 제정신을 차리기 전에 주변 정리를 했다. 준비한 물로 몸을 씻고, 포션을 뿌려 오묘한 냄새를 제거한다. 오래 걸리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이게 무슨 개짓거리야!!”

마약에 취해 있어야 할 산타누가 평소보다 컨디션이 좋았는지 더 일찍 깨어난 것이다.

알몸으로 서로 껴안고 섹스의 여운을 즐기고 있던 나와 페데리카가 깜짝 놀라 상체를 일으켰다. 페데리카가 반사적으로 출렁이는 가슴을 팔로 가렸다. 땀투성이의 몸과 그녀의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내 정액. 빼도 박도 못한다.

“사, 산타누. 이건… 그러니까….”

당황한 페데리카가 말을 더듬었다. 뭐라 변명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다. 아주 대놓고 걸렸는데 변명이 통할지도 의문이다.

“좀 이상하다고 느끼긴 했는데…. 페데리카, 네가 이러면 안 되지. 역시 그 새끼는 죽였어야 했어.”

산타누가 살기를 흘리며 내게 다가온다. 하나밖에 없는 주먹을 꽉 쥔 그의 눈에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오른다.

“산타누! 진정해!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야! 내가 전부 설명할게!”

“싸울 때가 아니지. 근데 떡칠 때도 아니지 않나?”

페데리카라도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산타누를 말릴 순 없었다. 페데리카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산타누를 말리려고 했다. 산타누가 페데리카를 밀쳤다.

“꺄악.”

“넌 가만히 있어, 페데리카. 이참에 네 보지에 흐르는 망할 정액이나 좀 빼내. 아주 씨발, 존나게 싸질러났군.”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만히 당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 기회에 산타누를 죽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산타누가 마나를 일으켰다. 그의 근육이 꿈틀거리고 주먹에 푸른 기운이 맺힌다.

나 또한 마나를 일으켰다. 파지지직. 양 주먹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존나 당당하시구만. 누가 보면 내가 나쁜 놈인 줄 알겠어?”

“약에나 취해 있을 것이지. 왜 일어난 거야?”

“코앞에서 내 여자를 건드리고 있는데 가만히 있겠냐. 네놈은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곱게 죽을 생각은 마라.”

“역시 넌 페데리카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아니야. 페데리카는 내가 잘 보살펴주지.”

“이 새끼가… 반성의 기색도 없군.”

산타누의 주먹이 머리로 날아온다. 예상했던 공격에 머리를 까딱이며 여유롭게 피했다. 동시에 찰나를 사용했다.

‘속도가 느리군. 해가 떠오르고 있어서 고유 특성인 야성의 효과를 받지 않는다고 해도… 느려. 이 새끼. 눈의 초점이 흔들리는 걸 보니 아직 마약에 취해 있군.’

놈의 턱에 어퍼컷을 날렸다. 놈의 얼굴이 찌그러지며 허공으로 약간 붕 떴다가 뒤로 넘어졌다.

“이, 이 새끼가!!”

산타누가 벌떡 일어났다. 동시에 놈의 하나밖에 없는 손에서 모래가 뿌려진다. 나는 왼팔을 들어 눈을 보호했다.

“병신!”

산타누가 킬킬 웃는다. 내 시선을 완벽히 차단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천안(天眼) 발동.’

팔과 눈꺼풀이 투시되고 내 명치를 노리고 날아오는 주먹이 보였다. 나는 몸을 비스듬히 비틀어 주먹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놈의 얼굴에 카운터를 날렸다.

빡!

놈의 입에서 피와 이빨이 우수수 떨어진다. 나는 이빨 몇 개로 끝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바로 연격을 이어간다. 놈의 몸을 난타한다. 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피를 흘리며 비틀거렸다.

“끄억, 악! 끄으윽….”

땅바닥에 쓰러진 놈의 머리를 발로 짓밟으려 할 때였다. 페데리카가 뛰어나와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을 느끼면서 피투성이의 주먹을 내렸다.

“그만! 그만둬!”

심장이 아팠다. 장미의 종속(S)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이대로 페데리카를 무시하고 산타누를 공격하면, 죽는 건 내가 될 것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페데리카가 산타누에 대한 어떤 마음도 없이 산타누를 이용한다고만 생각했다. 허나 실제로는 산타누에게 어느 정도 마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끄으으윽….”

바닥에 쓰러져 몸부림치는 산타누를 보니 짜증이 확 밀려왔다. 이대로 끝내기엔 아쉬웠다. 놈에게 엿을 먹일 방법이 떠올랐다. 의외로 간단했다. 나는 내 허리를 잡고 있는 페데리카의 몸을 역으로 잡아 품 안에 끌어당겼다. 산타누가 보는 앞에서 페데리카와 입을 맞췄다.

“흐읍?! 읍, 으읍!”

한 손으로 그녀의 풍만한 가슴까지 주물렀다. 딱딱하게 선 선홍색 젖꼭지가 내 손가락 사이에서 희롱당한다.

“아아아아아아악!! 죽어!! 이 망할 새끼야!!”

산타누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놈의 무릎을 발로차서 고꾸라뜨렸다. 무릎이 부서진 놈은 쉽게 일어나지 못하고 충혈된 눈으로 날 노려봤다.

내 손이 그녀의 엉덩이로 향한다. 자지를 세워 페데리카의 보지에 넣으려고 했다. 그의 눈앞에서 쾌락에 헐떡이며 앙앙 거리는 페데리카의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페데리카가 거부했다. 내 어깨를 두들기며 날 밀쳐냈다. 장미의 종속(S)까지 발동했는지 심장이 미친 듯이 아파 온다. 그녀를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산타누! 괜찮니?! 지금 바로 응급처치 해줄게!”

페데리카가 바닥에 무릎 꿇고 엎드리며 산타누의 상태를 살폈다.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늘어지는 G컵 가슴, 하얗고 커다란 엉덩이. 다시 생각해봐도 산타누에겐 아까운 여자였다.

“약, 약을 줘…!”

“포션은 충분해. 이 포션이면 괜찮아질 거야. 통증도 가라앉을 거고.”

“그 약 말고…! 마약을 달라고! 페데리카!”

산타누를 걱정하던 페데리카의 얼굴이 싸늘해진다.

“…산타누. 여기까지 와서도 마약 타령이니? 예전에 네가 내게 말했었지. 너한테는 마약은 단순히 담배 같은 것일 뿐이라고. 마약에 중독되어도 언제든지 벗어날 수 있다고. 이제 그때 했던 말을 지켜주지 않겠니?”

페데리카의 포션으로 기력을 약간이나마 되찾은 산타누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페데리카의 목에 손을 뻗었다.

“닥쳐! 페데리카!”

“끄윽?!”

“너도 저놈이랑 똑같잖아! 저놈의 좆에 박혀 기분 좋았지? 씨발. 내가 널 죽이지 않는 건 약 때문이야. 약을 내놔!!”

“악, 끄윽… 억….”

페데리카가 버둥거렸다. 위험해 보였다. 나는 당장 움직였다. 놈의 팔을 잡아 비틀어 꺾었다. 산타누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몸부림쳤다. 그를 무시하고 페데리카의 상태를 살폈다. 목에 선명한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약! 약을 달라고! 페데리카!!”

“……그래. 약은 여깄어.”

페데리카는 허탈한 눈으로 그에게 마약을 던졌다. 산타누는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며 땅에 떨어진 마약을 먹었다.

그녀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내가 뒤에서 그녀를 잡아 지탱했다. 페데리카는 잠자코 내 몸에 기댔다.

“괜찮아?”

“하아.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어. 다 싫증이 날 것 같아. 전부 포기해버릴까?”

“…아직. 그러기엔 이르지.”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지금 내가 네게 얼마나 위안받는지 모를 거야. ……내게서 벗어나고 싶니?”

“벗어나게는 해줄 거고?”

“……미안.”

페데리카가 어리광을 부리듯 내 품 안으로 파고 들어왔다. 그녀가 내게 입을 맞춰온다. 나는 키스하며 그녀의 등허리를 쓰다듬었다. 시간적 여유는 있었기에 우리는 그대로 몸을 섞었다.

땅바닥에 엎드린 그녀의 하얀 등 위에 놓인 붉은 머리칼이 무척 아름다웠다.

이후에는 옷을 입고 기절한 산타누의 목덜미를 쥐고 목적지로 움직였다. 나는 이놈을 당장 버리고 싶었지만, 페데리카는 아직 미련이 있는 듯했다. 그게 아니면 이용가치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거나.

어쨌든 마음 한편으로는 이놈이 기꺼웠다. 이 팔 병신 약쟁이는 제 무덤을 완벽하게 팠으니까.

산타누는 정오 무렵에 깨어났다. 하나 남은 팔까지 부서지고, 무릎까지 상태가 좋지 않아서 절뚝이며 걸었다. 그는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으나, 페데리카의 눈치를 살피며 애써 나를 무시했다.

“…페데리가. 아까는 내가 실수했어. 약에 취해서 경황이 없었을 뿐이야. 네가 만든 약의 효과가 워낙 뛰어나잖아.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지금은 멀쩡해. 사고 같은 거야. 기분 상한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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