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090화 (1,090/1,497)

〈 1090화 〉 1090. 신의 아틀란티스

“성유진! 주서현! 가시 장미 레기온 마스터를 제압해라!!”

주서현이 먼저 움직였다. 바닥을 박차고 널브러진 소파를 뛰어넘어 페데리카의 목을 노렸다.

“성유진, 막아!!”

페데리카가 나를 보며 외쳤다. 심장이 아려온다.

「장미의 종속이 당신을 재촉합니다.」

‘안 그래도 나서려고 했어. 여기서 페데리카를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 찰나.’

뒤늦게 움직였다. 그러나 주서현 보다 먼저 페데리카의 앞에 나타나 화련비도로 그녀의 검을 튕겨냈다. 주서현의 몸이 뒤로 밀려난다.

“…너, 이게 무슨 짓이야.”

주서현이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요동친다.

“여기엔 사정이 있어.”

쓰게 웃으며 칼을 들어 올렸다. 어쩔 수 없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연기였다. 머릿속으로는 어떻게 페데리카를 살려서 데려갈지 궁리하고 있었다.

“종속 스킬이다! 주서현, 무리하지 말고 시간만 끌어라!”

강명진이 바로 내 상태를 알아봤다. 용안(S)을 가지고 있으니 알아보지 못하는 게 더 이상했다.

주서현은 순식간에 냉정함을 되찾고 내게 쇄도한다. 왼쪽으로 날카롭게 들어오는 그녀의 검을 쳐내며 뇌전을 일으켰다. 주서현은 백덤블링으로 뇌전을 피했다. 그 가벼운 몸놀림에 헛웃음이 나왔다.

‘좀 더 빨라진 것 같은데? 그새 성장했나.’

검 한 자루가 허공에서 날아온다. 주서현의 이기어검이다. 노리는 건 내가 아니라 페데리카였다. 나는 다급히 움직여 검을 쳐냈다.

‘페데리카까지 지키면서 싸워야 하니 배로 힘들군.’

가장 우선시해야 할 건 페데리카의 생존이다. 그러기 위해선 이기어검을 막을 필요가 있었다. 나는 주서현이 이기어검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뇌전을 계속 흩뿌렸다.

“크아아아아악! 이 빌어먹을 놈이!!”

산타누가 비명을 질렀다. 그의 오른팔이 잘린 걸 확인했다. 분노한 산타누가 강명진을 향해 저돌적으로 돌진한다. 얼핏 보면 강명진이 밀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산타누의 공격을 모두 막아내고 있다.

‘산타누가 이기는 건 물 건너 갔군.’

페데리카도 나와 같은 판단을 내린 건지 얼굴이 어두웠다.

“성유진! 이걸 먹으렴!”

페데리카가 내게 약병을 던졌다. 반짝이는 무언가가 포함된 푸른색 약이 들어 있었다.

「마나 과부하 포션

10분 동안 마나 능력치가 2배 상승한다.

효과 종료 후 3시간 동안 마나를 사용할 수 없다.

랭크: A」

극단적인 포션이었다.

효과는 쓸만하긴 해도 부작용이 너무 심했다. 평소였다면 이딴 건 포션 취급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서현과 강명진을 압도하려면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해야지.’

꿀꺽꿀꺽.

포션을 마셨다. 아무 맛도 없었다. 목을 넘어갈 때 무언가가 걸리는 느낌이 영 별로였다.

그래도 효과는 뛰어났다.

지금 내 마나는 121. 포션의 효과로 242까지 올랐다.

파지지지직.

마나를 사방으로 퍼뜨렸다. 공간이 내 마나로 가득하다. 강명진과 주서현이 숨을 삼키며 뒤로 물러났다.

“아스트라페.”

퍼졌던 마나가 뇌전이 되어 내 손아귀에 뭉치며 창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다. 번개의 창을 쥔 나는 주서현을 향해 한 차례 휘둘렀다. 충격파가 발생하며 사방을 박살 낸다.

“크읏…!”

주서현의 몸도 뒤로 날아갔다. 강명진이 앞으로 나섰다. 바닥에 창을 박으며 충격파를 버텨냈다. 나는 강명진을 향해 전류를 흘려보냈다. 강명진은 전류를 막느라고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뭐하는 거냐! 당장 저 새끼들을 죽여버려!!”

산타누가 나를 보며 소리쳤다. 나는 그를 무시하고 페데리카를 바라봤다. 페데리카가 표독한 표정을 짓고 있다.

“뭐해, 성유진. 저들을 죽여. 그게 아니면 네가 대신 죽고 싶은 거야?”

심장이 압박당한다. 가시에 찔리는 것처럼 따끔하다. 나는 심장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떨쳐내듯 긴 숨을 토하며 말했다.

“페데리카. 냉정하게 생각해. 지금 한순간은 압도해도 결국 이대로면 네가 죽는 걸로 끝날 거야.”

내가 강명진과 주서현을 압도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 밖에 없었다. 강명진이 데리고 온 레기온과 용병들을 10분 만에 몰살하는 건 마나 242의 나라도 불가능했다.

결국 페데리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은 하나다.

“…성유진. 길을 열어. 저택을 버려야겠어.”

“어디로 갈 거지?”

“…저쪽이야. 네가 길을 열어줘야겠어.”

페데리카가 벽을 가리켰다.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차린 나는 아스트라페를 벽을 향해 던졌다. 벽이 무너지고 장미 정원이 보였다. 장미 정원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페데리카! 이대로 물러난다고?! 저놈들은 여기서 죽여야 해!!”

“냉정하게 생각해, 산타누! 이대로 모두 잃을 수는 없어. 당장 장미의 도시가 강제 점령당하더라도… 살아 있으면 되찾을 수 있어. 지금은 일단 물러나는 게 맞아.”

산타누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강명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니. 이 새끼는 여기서 죽여야 해.”

“산타누!!”

강명진이 일시적으로 기세를 폭발시켰다. 드래곤 헤드 실루엣이 그의 몸 주위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짧은 충격파에 얻어맞은 산타누가 뒷걸음질 쳤다. 그의 눈빛에 잠깐의 공포심이 들었다.

‘드래곤 로어군. 늑대 인간 상태인 산타누가 제대로 겁을 먹었군. 고유 특성이 야성이라 효과가 더 좋았던 거겠지.’

강명진을 보며 벌벌 떨던 산타누는 그대로 뚫린 벽 밖으로 뛰쳐나갔다.

“산타누! 냉정하게 행동해, 제발…! 성유진 너도 어서 따라와!”

페데리카가 산타누의 뒤를 따라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나가기 전에 강명진과 주서현을 바라봤다.

“미안한데. 이건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일이 이렇게 됐으니… 배신으로 치부하고 날 죽이겠다고 해도 상관없어.”

“책임은 네가 아니라 페데리카에게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종속 스킬은 대게 그런 거지. 종속 스킬을 풀 방법은 있다. 그러니 죽지만 말고 버텨라.”

“……다음 대련까지 얼마 안 남았어. 대련에서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

“그 말들은 고마운데… 천천히 해. 천천히.”

나는 진심을 담아 말한 뒤에 페데리카의 뒤를 따라갔다.

웬 용병이 페데리카를 노리고 달려든다. 아스트라페를 던졌다. 번개가 번쩍이고 용병의 머리가 꿰뚫렸다. 달려드는 놈들을 죽이며 저택 밖으로 도망쳤다.

강명진이 명령을 내린 건지 추적자는 붙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기에 산타누와 페데리카는 도시를 벗어났음에도 계속해서 달렸다.

「마나 능력치 상승 효과가 사라집니다.」

「3시간 동안 마나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마나가 없어도 다른 능력치가 있었다.

“페데리카. 괜찮아?”

“허억, 헉…. 안 괜찮아. 포션으로 능력치를 강화하긴 했는데… 슬슬 뛰는 것도 한계야.”

“내 도움이 필요하겠네.”

페데리카를 공주님 안듯이 안았다. 땀에 젖은 그녀가 놀란 듯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뒤로하고 정면을 보며 달렸다.

원래의 인간 모습으로 돌아온 산타누가 나를 보며 인상을 썼다.

“남의 여자를 안고 잘도 달리는군. 누가 보면 네가 페데리카의 애인인 줄 알겠어.”

“왜 갑자기 시비야?”

“당장 페데리카를 내려놔라.”

“페데리카는 지쳤어.”

“내가 페데리카를 안고 갈 테니 내려놓으라고.”

산타누가 으르렁거렸다. 페데리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려줘, 유진.”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내려놓았다. 산타누는 당연하다는 듯이 페데리카를 안았다. 산타누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그는 한쪽 팔이 없었고, 늑대 인간으로 변했던 부작용인지 몰라도 땀을 지나칠 정도로 많이 흘리고 있었다.

“산티누. 무리하지 마.”

“시, 시끄러, 페데리카.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

산타누가 페데리카를 들고 뛰었다. 흔들리는 그의 몸을 보니 불안 불안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그는 3분도 지나지 않아 페데리카를 들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꺄아아아악!”

“씨발…!!”

나는 페데리카를 일으켜 세웠다. 살펴보니 어깨 피부가 약간 쓸린 것 말고는 괜찮았다. 산타누의 경우 뛰지도 못할 정도로 지쳤다. 잘린 팔에선 피가 뚝뚝 흐른다. 페데리카가 산타누에게 포션을 부었다.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지만, 얼굴은 아까보다 편안해졌다.

“페데리카는 내가 안고 가지. 넌 알아서 뒤따라와라.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이 새끼가…. 네가 뭔데 페데리카를 안고 가?”

“상황 파악은 제대로 해라. 지금 페데리카의 발목을 잡는 건 너다. 네 하찮은 질투심 때문에 상황은 더 최악으로 변하고 있지.”

“빌어먹을….”

나는 다시 페데리카를 안았다. 페데리카가 산타누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내려줘. 나도 이제 뛸 수 있어.”

“가만히 있어. 지금은 이게 최선이야. 네 체력으로는 얼마 안 가 퍼지고 말걸. 산타누, 저놈은 혼자 달리는 거라면 아슬아슬하게 버틸 수 있어. 근데 이대로 도망쳐봤자 의미 없다는 건 알고 있지? 계획은 있어?”

“……동맹을 맺은 레기온이 있어. 그들과 힘을 합쳐서 기반을 만들 거야.”

페데리카가 침울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그러려니 하고 고개를 끄덕여줬다. 나는 그녀의 동료라고 하기엔 좀 그런 입장이었다.

나는 페데리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달렸고, 산타누가 헉헉거리며 따라왔다.

달리기는 해가 떠오를 무렵에 멈췄다. 근처 동굴에 자리 잡았다. 산타누는 동굴 바닥에 앉자마자 페데리카에게 손을 내밀었다.

“페, 페데리카. 야, 약을 줘.”

“산타누. 지금은 푹 쉬는 게 좋아. 일단 그 팔부터 제대로 치료하자.”

“약, 약! 약 달라고!! 팔 따윈 나중에 치료해도 돼! 지금 중요한 건 약이야! 약!”

페데리카가 고개를 내저으며 장미 마약을 산타누에게 건넸다. 산타누의 얼굴이 확 밝아지더니 그대로 약을 먹었다. 그의 입이 헤벌쭉 벌어진다. 산타누는 마약에 취해 꼼지락 거렸다.

페데리카는 산타누의 잘린 팔을 살폈다. 잘린 단면에 포션 몇 개를 붓고는 붕대를 감았다. 나는 그녀가 들고 있는 주머니를 흥미 깊게 쳐다봤다. 공간 확장 마법이 걸린 주머니인 모양이다.

“…후우.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서 다행이야. 전문 치료사에게 가면 팔은 나을 수 있을 거야.”

“팔을 재생시키려면 돈 좀 깨지겠는데.”

“그래도 팔 병신으로 사는 것보다는 낫잖아.”

뛰어난 연금술사인 그녀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실력 없는 추방자들은 팔이 잘리면 그대로 팔 병신으로 살아간다. 팔을 치료할 돈이 없기 때문이다. 잘린 팔을 이어붙이는 것도 아닌 재생시키려면 최소 15만 AP는 깨질 각오를 해야 한다.

나는 페데리카에게 다가가 뒤에서 껴안았다. 약간의 땀냄새가 났는데 그것마저도 향기롭게 느껴졌다. 붉은 머리에 얼굴을 파묻고 손으로는 젖가슴을 주물렀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러고 싶어?”

“난 너 때문에 레기온을 배신했어. 이 정도는 괜찮잖아. 날 가지기로 했으면 책임져야지.”

“…앞에 산타누도 있는데 간도 크네.”

“약쟁이 놈은 약에 취해 있을 뿐인데 뭐가 무섭겠어.”

산타누는 두 눈을 뜨고 있었다. 허나 우리를 보는 게 아니다. 약에 취해 다른 무언가를 보고 있다.

스르륵. 그녀의 드레스가 내려가고 풍만한 나신이 드러났다. 나는 그녀의 젖가슴을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아윽…. 정말 이렇게 굴 거야? 네 목숨이 내 뜻에 달렸다는 걸 잊은 건 아니지?”

심장이 쿡쿡 쑤셔온다. 그에 나는 그녀의 가슴을 더 강하게 쥐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삐져나온 유방이 터질 듯이 탱탱해졌다.

“죽이려면 죽여. 내 인생은 이미 누구 때문에 끝장이니까.”

“……하아. 책임지면 되잖아.”

페데리카가 팔을 들어 올려 내 목을 끌어안고 고개를 틀어 입을 맞춰왔다. 뜨겁고 끈적한 키스가 이어졌다. 푸욱. 내 자지가 그녀의 보지 안에 들어갔다.

“흐응, 하아앙….”

동굴 속의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