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2화 〉 1082. 신의 아틀란티스
에이플랜 레기온은 내가 없는 동안에도 꾸준히 발전했다. 이런저런 물건들이 늘어나 있었고, 못 보던 사람들이 레기온 건물을 돌아다녔다.
“신입인 레인입니다. 성유진 씨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레인은 붉은 머리의 잘생긴 남자였다. 그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요청했다.
“성유진입니다. 같은 레기온의 동료로서 앞으로 잘 지내봅시다.”
악수했다.
레인.
원작에서도 나오는 인물이다. 그리고 까놓고 말해서 그는 볼텍스 레기온의 스파이였다.
볼텍스 레기온은 에이플랜 레기온 구역 근처에서 활동하는 중형 규모의 레기온이다. 최근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에이플랜 레기온이 무척 신경 쓰일 것이다.
‘에이플랜 레기온을 흡수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
강명진도 레인의 정체를 알고 있다. 강명진은 볼텍스에 의도적으로 정보를 흘리며 역으로 레인을 이용할 속셈이다.
“유진 씨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유진 씨가 돌아오니 레기온 분위기부터가 달라지더군요.”
“분위기가 달라져요?”
“네. 좀 더 삭막하고 우울한 분위기였지만… 유진 씨가 도착하기 며칠 전부터 분위기가 풀어지더니, 지금은 편안한 분위기가 레기온을 맴돌고 있습니다.”
“흐음. 그건 좀 의외군요.”
“그만큼 에이플랜 레기온에서 유진 씨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아, 혹시 이후에 시간 되십니까? 괜찮으면 제가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싶습니다. 유진 씨와 대화를 나누고 싶기도 하고요.”
레인이 나를 시작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그는 레기온의 일원들과 친분을 쌓아 올리고 어느 순간부터 볼텍스 레기온에 대한 장점을 늘어놓고, 일원들의 분열을 초래하며 회유하려 한다. 그게 레인이 맡은 스파이로서의 임무였다.
“죄송합니다. 이미 선약이 있어서요. 나중에 함께하죠.”
“아. 그렇군요.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선약의 상대가 서희 씨입니까?”
“…어떻게 아셨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만날 상대 중 한 명이 유서희다.
“지영빈 씨에게서 들은 게 몇 가지 있습니다. 유진 씨와 서희 씨는 평범한 관계가 아니라더군요. 그리고….”
그는 괜히 주위의 눈치를 살폈다.
“이건 제 생각에 불과합니다만, 영빈 씨는 서희 씨에게 관심을 많이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절반은 연기였고, 절반은 진심이었다. 지영빈은 정말로 유서희에게 관심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의 레인이 뻔히 수작을 부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제가 괜한 말을 한 것 같군요. 방금 했던 말은 잊어주십시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레인은 정중하게 인사를 한 뒤 떠났다. 분란의 씨앗을 던지고 떠나는 솜씨가 깔끔했다.
‘지영빈…. 거슬리는 놈이긴 하지. 기회를 봐서 죽여야 하는데… 그 기회가 잘 안 나온단 말이지.’
지영빈은 날 맞이할 때 없었던 것으로 보아 레기온 밖에 나가 있는 모양이다.
유서희의 방앞에 섰다.
“유진 씨죠? 들어오세요.”
노크를 하기도 전에 방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안은 끈적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살짝 어둡게 만든 조명, 야릇한 붉은 침대, 사람을 홀리는 듯한 붉은 향로.
화룡점정은 유서희였다. 서큐버스답게 음란한 검은색 란제리를 입고 침대에 반쯤 누운 자세로 날 기다리고 있었다. 허벅지까지 오는 검은색 스타킹, 중심 부분이 갈라져서 딱딱한 유두가 강조된 브래지어, 물이라도 쏟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푹 젖어 있는 팬티.
“유진 씨. 어서 오세요. 정말, 정말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어요.”
유서희가 양손을 벌린다. 나는 홀린 듯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침대 위로 올라가 그녀의 다리를 벌리게 했다. 끈적한 소리가 났다. 이제보니 팬티뿐만이 아니라 허벅지까지 젖어 있었다.
“내가 오기 전에 자위라도 했어?”
“오늘은 하지 않았어요.”
“하지 않았는데 이 상태라고?”
“유진 씨니까요.”
유서희의 숨소리가 아까보다 더 거칠어졌다. 그녀의 체향에 머리가 아찔해지고, 자지가 불끈불끈 섰다. 자지가 괴로워서 옷을 벗어 버렸다.
“하악…. 유진 씨의 자지….”
유서희가 내 자지를 보고 입맛을 다셨다. 그녀의 분홍빛 입술 사이로 침이 고이는 게 보였다.
나는 그녀의 팬티를 잡고 아래로 당겼다. 푹 젖은 보지가 드러났다. 보지털이 흠뻑 젖어 늘어져 있고, 분홍색 보지가 애액을 토해내며 벌렁벌렁 거린다. 나는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손가락으로 보지를 벌렸다.
“흐읏, 하으아아아아…!”
단지 그것만으로 유서희는 쾌락에 함락되어 허리를 들썩였다. 보지에선 애액이 물총처럼 발사된다.
나는 그녀의 치태를 보면서 헛웃음을 흘렸다.
‘뭐,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야.’
손가락으로 축축한 보지를 조심히 쓰다듬었다. 소음순을 훑는다. 그녀의 다리 끝에 힘이 빡 들어간다. 클리토리스를 건들자 보지가 수축하더니 또 절정에 치달았다.
유서희는 내가 없는 동안 욕구불만에 시달렸을 것이다. 평범한 여자라면 모를까. 그녀는 서큐버스였다. 남자의 정기로 배를 채우는 서큐버스.
‘나한테 귀속된 서큐버스지.’
유서희는 나를 제외한 다른 남자에게 안기지 않는다. 내가 내린 명령이다. 유서희는 그 명령을 아주 잘 지킨 덕분에 성욕이 쌓여 있다. 그리고 보통 인간 여자의 성욕이 아닌 서큐버스의 성욕이란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쾌락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유서희의 사타구니 사이에 다가갔다. 애무는 필요 없었다. 바로 질척한 보지 구멍에 자지를 찔러 넣었다.
푸욱.
질벽이 탐욕스럽게 자지를 휘감는다. 보지가 경련한다. 질주름 하나, 하나가 자지를 맛보는 것 같다.
“아아앙! 앙! 좋아요, 좋아요. 유진 씨…!”
유서희는 침대 끝을 잡고 머리를 미친 듯이 흔들었다. 그녀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
유서희와 짧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오랫동안 굶주렸던 유서희는 몰아치는 쾌락의 폭풍을 견디지 못하고 실신했다. 나는 유서희를 뒤로한 채 릴스네를 만났다.
릴스네가 내게 차를 대접했다.
“녹차?”
“세계수의 잎으로 만든 차입니다. 녹차와는 다릅니다.”
이곳은 아틀란티스. AP만 충분히 있다면 세계수의 잎이든, 열매든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세계수의 잎이면 비싸지 않아?”
릴스네는 수전노였다. 미친 듯이 돈을 모으고, 한 푼도 없는 것마냥 쓰지 않는다. 보통 정승처럼 모으고 개처럼 쓴다고 하는데, 릴스네는 반대였다. 개처럼 모으고 정승처럼 쓴다.
“네. 비쌉니다. 하지만 유진 씨에겐 꼭 대접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세계수의 잎을 우려낸 차를 드신 적 있으세요?”
“아니. 이번이 처음이야.”
“드셔보세요. 마음에 드실 겁니다.”
찻잔을 들어 입술에 가져갔다. 한 모금 마신다. 뜨끈한 액체가 깔끔하게 목구멍을 넘어갔다. 내가 알고 있는 고급 녹차보다 몇 배나 풍미가 깊다. 거기에 마시자마자 몸에 활력이 돋는다.
「앞으로 3시간 동안 신진대사가 150% 활성화됩니다.」
「세계수의 잎을 처음으로 복용했습니다. 마나가 영구적으로 1 상승합니다.」
예상 밖의 효과에 두 눈이 커졌다.
“이건…. 능력치가 상승했잖아?”
“세계수의 잎 중에서도 특수한 잎이라 그렇습니다.”
릴스네가 환하게 웃는다. 그녀가 예뻐 보였다. 나는 차를 남기지 않고 전부 마신 뒤 릴스네에게 다가갔다. 릴스네가 턱을 살짝 들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무엇을 원하는지는 뻔했다.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손은 능숙하게 움직였다. 우리는 알몸이 되어 겹쳐졌다.
•••
늦은 밤.
나는 에이플랜 레기온의 지하 수련장으로 향했다.
수련장의 중심에 주서현이 검을 들고 서 있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운동복을 입고 있었는데, 엉덩이 부위에 정조대의 형태 일부가 툭 튀어나왔다.
“기다리고 있었어, 성유진.”
주서현이 두 눈을 번뜩인다. 살의와 적의를 내비친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그녀의 살기가 반갑게 느껴졌다.
“정조대를 계속 차고 있는 건 의외네. 지금 네 실력이면 정조대 정도는 쉽게 부술 수 있을 텐데.”
“하. 너를 쓰러뜨리고 벗겨내지 않는 한, 의미 없는 짓이야.”
나는 피식 웃었다. 주서현이 그 정도로 정조대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나라면 내가 죽은 줄 알고 정조대를 없앴을 텐데…. 넌 내가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기다렸구나.”
“너 같은 질긴 남자가 지옥에 떨어졌다고 해서 쉽게 죽을 리 없지. 실제로 당당하게 지옥을 탈출해서 내 앞에 서 있잖아.”
“진짜 그것뿐이야?”
“무슨 말이지? 그것 말고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나?”
“아님 말고.”
“……검을 들어, 성유진. 오늘이야말로 널 쓰러뜨리고 이 지긋지긋한 정조대를 벗어 던지겠어.”
주서현이 검 끝으로 날 가리켰다. 나는 화련비도를 소환해 손에 쥐었다. 주서현이 어느 정도로 강해졌는지 꽤 기대되었다.
「당신에게 걸려 있는 복수의 낙인이 활성화됩니다.」
「복수의 시간이 활성화된 동안 도망칠 수 없습니다.」
주서현의 주위로 검은색 기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마구잡이로 흘러나오는 기운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련된 기운이란 걸 알 수 있다.
주서현이 보법을 밟아 거리를 좁혔다. 순식간에 내 앞에 나타난 그녀가 검을 휘두른다. 다급히 화련비도를 들어 올려 그녀의 검격을 받아냈다.
콰앙.
충격파에 머리카락이 나부꼈다. 주서현의 검이 쉬지 않고 움직인다. 그 움직임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빠르게 검을 세워 그녀의 검격을 막아냈다. 검기 조각이 흩어졌다. 뺨이 살짝 베였다.
검격은 계속 이어졌다. 나는 그녀의 검을 막는 데 급급했다.
힘이나 속도는 내가 우위에 있는데, 반격의 틈이 보이지 않는다.
‘검술도 특별한 건 없어 보이는데… 틈이 안 보여.’
기본적인 검술이다. 그러나 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기초 검술이 이렇게 완전무결할 수 있나…?’
수련장 구석에 정리되어 있던 검 다섯 자루가 허공에 두둥실 떠오르더니 나를 향해 날아온다. 이기어검이다. 나는 안색을 바꾸고 뇌전을 일으켰다. 주서현이 기다렸다는 듯이 뒤로 물러났다. 나를 포위한 다섯 자루의 검이 동시에 움직인다.
‘젠장. 이기어검으로 검술을 펼치고 있잖아.’
뒤로 물러나면서 이기어검으로 움직이는 검들을 쳐냈다. 검술은 뛰어나지만 무게가 없었다. 쳐내는 건 어렵지 않다.
“성유진!!”
주서현이 달려들어 쉬지 않고 몰아친다. 어떻게든 받아내고 있긴 한데 몸 곳곳에 잔 상처가 늘어난다.
‘인정할 수밖에. 검술 수준만 따지면 주서현은 이미 내 실력을 뛰어넘었어.’
하지만 그건 순수하게 검술만 따졌을 경우다.
‘아스트라페!’
붉은 뇌전이 칼날을 타고 흐른다. 주서현이 기다렸다는 듯이 마나를 끌어올렸다. 검은색 검강(劍罡)이 그녀의 검에 서렸다.
“크읏?!”
주서현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그녀의 검강이 흔들린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를 몰아쳤다.
‘이건 힘의 차이만이 아니야. 상성. 보지 자리가 빛을 발하고 있군.’
보지 자리의 힘이 날 도와주고 있었다.
「여성을 상대할 때 상성에서 우위를 점한다.」
보지 자리의 효과 중 하나다. 모호한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직접 상대해보니 알겠다. 여러 분야에서 내 쪽이 더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주서현이 먼저 승부수를 던졌다. 다섯 자루의 검과 함께 내게 돌진해왔다. 빈틈없는 공격이다. 하나씩 쳐내는 건 불가능하다. 동시에 검을 쳐내면 주서현의 다음 공격을 대비할 수 없다.
‘찰나, 전광석화.’
내 육체가 뇌전으로 변했다. 이기어검이 내 몸에 닿았으나, 어떤 피해도 주지 못했다. 조심해야 할 건 주서현의 검강이다.
‘찰나.’
찰나를 이용해 검강을 피하고 주서현의 뒤를 점했다. 주서현의 목을 잡고 뇌전을 일으켰다.
“꺄아아아악!”
감전당한 주서현이 바닥에 떨어졌다. 하늘에 떠 있던 다섯 개의 검도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내가 이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