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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075화 (1,075/1,497)

〈 1075화 〉 1075. 신의 아틀란티스

“천마 씨! 아귀가 가까이 왔어요!!”

리 메이가 다급히 말했다.

아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가까이서 보니 더 끔찍한 외모였다. 부패한 냄새가 풀풀 났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다…. 배고프다….”

쿵쿵. 아귀가 다가올 때마다 지축이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나와 리 메이는 뒤로 물러났다. 아귀가 된 왕 쉬안은 지능이 떨어졌는지, 아니면 우리를 적으로 인식하는 게 아닌지 굳이 따라오지 않고 근처에 있는 시체부터 먹어 치운다.

왕 쉬안이 주위의 시체를 전부 먹어 치운다면 어떻게 나올지 뻔했다. 그러니 그 전에 놈을 해치우는 게 여러 가지로 편해질 것이다.

천마신공(天魔神功) 흑염마룡(黑炎魔龍).

내 손아귀에서 검은 불꽃이 회전했다. 마나를 모조리 쥐어 짜낸다. 흑염이 압축되어 용의 형태를 취했다. 흑염을 던졌다. 검은 용이 왕 쉬안을 향해 날아가 그 거대한 몸을 휘감고 타오른다.

“크어, 크아아아아아아! 뜨겁다아아아아!”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왕 쉬안과 다른 영혼의 비명이 겹쳐진다. 그의 몸에서 흑염이 계속 타오르며 희뿌연 연기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왕 쉬안을 대신해 다른 영혼이 죽어가고 있었다. 흑염은 계속해서 타오른다.

‘30번은 족히 죽였다. 근데 한계로는 보이지 않는군. 대체 몇 번을 죽여야 놈을 죽일 수 있는 거지?’

온몸을 휘감은 흑염의 고통에 익숙해진 것일까. 왕 쉬안은 어느 순간부터 비명도 지르지 않고 육중한 손으로 널브러진 시체 중 하나를 잡아 뜯어 먹었다.

“저걸 어떻게 해야 하죠?”

리 메이가 질린 듯이 물었다.

“글쎄.”

나라고 해서 뾰족한 수단이 있을 리 없었다. 그저 죽을 때까지 죽인다는 선택지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멍청한 것 같으니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아도…. 문제는 끝이 없다는 거지. 이렇게 상대하다간 내가 먼저 지치고 말거다.’

우리와 떨어진 곳에서 웃고 있는 칭 궈리가 눈에 들어온다. 놈을 죽이면 왕 쉬안도 멈추지 않을까.

‘쉬운 놈이 아니야. 숨기고 있는 힘이 몇 개 더 있겠지. 왕 쉬안을 무시하고 움직이기에는 리 메이 혼자서 왕 쉬안을 감당하지 못해.’

마나도 다 떨어졌다. 완전 회복을 사용하더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튀자.”

“네? 여기까지 와서요?”

“저 괴물은 지금 감당 못 해. 우리 목표는 저 괴물을 죽이는 게 아니야. 흑주맹주의 자리지.”

흑주맹주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왕 쉬안을 죽여야 했지만, 상황은 바뀌었다.

왕 쉬안은 이미 흑주맹주로서 끝났다. 현 상태를 흑주맹 간부들에게 알리기만 하면 된다. 저딴 괴물을 상관으로 두고 모시고 싶은 사람은 한 명도 없을 테니까.

“…그렇군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길게 말하지 않아도 리 메이는 알아서 이해했다. 나와 그녀는 품에서 공간 이동 주문서를 꺼내 동시에 찢었다. 우리의 몸은 그대로였다.

「공간 이동 주문서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하하하. 멋대로 들어오고, 멋대로 나가려고? 그렇게 내가 만만해 보였나?”

칭 궈리가 웃는다. 공간 이동을 막아 놓았다. 나와 리 메이는 눈빛을 교환하고는 문을 향해 내달렸다.

등 뒤에선 칭 궈리의 웃음소리만이 메아리치듯 울렸다.

복도를 내달렸다. 아까 까지만 해도 몇몇 보이던 사용인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궁궐 내에 나와 리 메이밖에 없는 것 같았다.

“일단 달려 나오긴 했는데… 어떻게 도망치죠?”

밖에 있는 흑주맹 일원들. 그들 모두 우리의 적이었다.

“대부분 약해 빠진 놈들이니 어떻게든 될 거야.”

나는 그것보다 칭 궈리의 여유로운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궁궐 밖으로 나온 우리는 경악했다. 눈앞에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죽이고 있다.

“이 괴물 새끼가!!”

“사, 살려줘!!”

“왜 이러는 거야? 불만 있으면 말로 하라고! 말로!”

“언데드다! 죽으면 언데드로 변한다!”

“크크. 흑주맹의 진정한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머저리들.”

“죽어라. 너희가 그분께 도움이 되는 유일한 방법이다.”

내분이 일어났다.

죽이는 자, 맞서는 자, 도망치는 자. 상황은 혼돈 그 자체다. 최악인 것은 죽은 자들이 언데드 몬스터가 되어 다시 일어나 살아있는 자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50M에 달하는 벽은 감옥이 되었다. 하늘로 날아서 도망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결계가 막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거대한 검은 기둥을 발견했다. 족히 100M가 넘을 듯한 검은 기둥이다. 분명 궁궐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없었었다.

리 메이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쩐지 채집 당한 곤충이 된 느낌이에요. 언제부터…. 흑주맹은 언제부터 칭 궈리의 손에서 놀아난 걸까요?”

“모르긴 몰라도 꽤 됐을걸. 그리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어떻게 튀냐는 거지.”

나는 벽을 바라봤다. 바깥과 통하는 문이 있다. 날아서 가는 게 불가능하면 문을 통해 나갈 수밖에 없다.

‘나가지 못하게 문을 지키고 있군. 살온대주 수준은 아니어도 꽤 강한 놈들이다.’

문은 총 4개. 동서남북에 각각 하나씩 있다. 나는 리 메이를 데리고 서쪽 문으로 향했다. 가장 만만해 보였다.

우리는 서쪽 문을 향해 내달렸다. 리 메이를 지켜줄 필요는 없었다. 어중이떠중이에게 당할 정도로 리 메이는 약하지 않았다.

콰콰쾅!

궁궐의 문이 화려하게 부서지고 왕 쉬안이 나타났다. 아귀 상태인 왕 쉬안은 언데드든, 인간이든 가리지 않고 잡아서 입안에 욱여넣어 씹는다.

“끄아아아아아악…!”

“괴물이다!!”

“저 얼굴은 맹주님?!”

“맹주님까지 괴물이 된 건가?!”

혼란이 가중된다.

우리에겐 나쁘지 않았다. 혼란스러울수록 도망치기엔 딱 좋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서쪽으로 향하는 우리를 뒤따르는 자들이 있었다.

“리 메이 님!!”

“저도, 저도 같이 데려가 주십시오!”

“제 충성을 리 메이 님께 바치겠습니다!”

눈치 빠른 놈들은 우리 뒤를 따라왔다. 나와 리 메이는 굳이 그들을 떨쳐내려 하지 않았다. 그럴 여유도 없고, 운이 좋아 살아남는다면 그럭저럭 쓸만한 증인이 되어 줄 테니까.

“하하하하! 꽁지 빠지게 도망치는 모습이 웃기는군! 헬텐으로서 창피하지도 않나?!”

칭 궈리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의미 없는 도발이었다.

서쪽 문은 4명의 남자가 지키고 있었다. 창백하다 못해 시퍼런 피부를 가진 남자들이었다.

“천마 씨. 놈들은 인간이 아니라 강시예요.”

리 메이가 말했다. 확실히 인간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 놈들이다.

“잘 아나 봐?”

“흑주맹에서 진행하는 극비 프로젝트 중 하나였어요. 강시 부대를 만들어 운용하는 거죠. 강시 부대의 대장은 장 차오였고요. 실패한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성공은 했었던 모양이네요.”

“강시에 대해 잘 알겠네? 약점같은 건 없어?”

“모르겠어요. 칭 궈리가 만들고 제어하는 강시는 충실한 살인 인형일 뿐이에요. 언데드이니 성스러운 힘에 약하지 않을까요?”

신성력 하니 ‘이단 심문관의 가죽 장갑’이 떠오른다. 그러나 떠올리기만 할 뿐 꺼내지는 않았다. 셀브레티나의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장갑이다. 시스템이나 다른 신좌들의 의심을 살 수 있다.

‘여기서 써야겠군. 완전 회복.’

[완전 회복을 사용합니다.]

몸의 피로가 사라지고 체력이 회복되며 마나가 차올랐다. 나는 입가에 지어지는 미소를 애써 억눌렀다. 지쳤을 때 사용하는 완전 회복은 특별했다. 조금 과장해서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죽으면 기분은 더럽지만.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검(天魔劍).

정련된 마기가 검에 흐른다. 새까만 검강(劍罡). 달리 오러 블레이드라고 불리는 그것을 강시들을 향해 휘둘렀다.

검은 강시의 육체 일부를 베어내다가 멈췄다.

“쯧.”

평범한 판타지 소설에서는 최고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힘이지만, 이 세계에선 조금 더 강한 힘에 불과했다.

‘아니지. 이 강시가 특별한 거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검(天魔劍) 마풍(魔風).

강시들의 육체를 끊임없이 베어냈다. 팔을 베고, 발목을 베어도 비명 한 번 지르지 않고 반격한다. 살인 인형. 놈들에 대한 리 메이의 평가는 정확했다.

투툭, 툭.

토막 난 강시의 육체가 바닥에 떨어졌다. 뻐근해진 어깨를 돌리면서 문으로 향했다.

문이 열렸다. 조용했다. 움직이는 시체도 없고 고함치는 인간도 없었다. 나와 리 메이는 두 번째 벽을 향해 내달렸다.

“문이 열렸다!”

“가자!”

“리 메이 님! 당신께 제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살려줘!!”

우리의 뒤를 많은 사람이 뒤따랐다.

•••

의외로 간단하게 밖으로 나왔다.

칭 궈리가 보낸 추적자도 없었다. 칭 궈리는 우리를 잡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나는 우리를 쫓아온 흑주맹 일원들을 바라봤다. 대략 300명. 살아남은 건 이들이 전부다. 그 외의 사람들은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었다. 리 메이의 말에 따르면 희생자는 대략 1,500명이 넘을 것이다.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칭 궈리는 왜 우릴 추격하지 않는 거죠?”

“추측하기로는 애초부터 우리를 죽이는 게 놈의 목적이 아니었거나, 우리 정도는 언제든지 죽일 수 있는 자신이 있거나…. 정확한 이유는 그놈만이 알고 있겠지.”

우리는 제 5,845 구역, 세 개의 벽에서 완전히 빠져나가기 위해 밖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멈칫. 걸음이 멈췄다. 내 의지가 아니었다. 바로 앞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이 막아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역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투명한 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시커먼 검강을 휘감은 검이 바로 뒤로 튕겨 나갔다. 투명한 벽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리 메이를 비롯한 사람들의 얼굴이 창백 해진다. 그들은 벽에 달라붙었다. 주먹으로 벽을 치며 소리 질렀다.

“이런 망할!”

“시스템! 이게 뭔 개짓거리야!”

“당장 밖으로 나가게 해줘!”

칭 궈리는 처음부터 우리가 벗어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천마 씨. 뒤쪽을 봐요.”

리 메이가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개를 뒤로 돌렸다. 궁궐 앞에 있던 커다란 검은색 기둥이 더 커지고 있었다. 이미 150M를 넘어 200M… 300M까지 쭉쭉 커졌다.

검은 기둥에서 시커먼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파동에 닿은 벽이 변이한다. 뒤틀리고 부서지고 꾸물거린다. 하늘이 점점 새까맣게 변한다.

「구역 침식이 시작됩니다.」

일이 좆됐음을 깨달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전부 죽는다. 힐끗. 리 메이를 바라봤다.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나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다. 그럴 만한 힘이 있었다. 그러나 리 메이는 아니었다. 이대로 있으면 리 메이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으리라.

‘시스템 AP를 사용한다. 신의 힘을 빌리고 싶다.’

「최소 130만 AP가 필요합니다.」

신의 힘을 빌려 이 상황을 타파하는 건 불가능했다. 필요한 AP가 100만이 넘어가는 건, 지금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리 메이. 중요한 이야기가 있으니 이쪽으로 와라.”

“네. 방법이 있나요?”

“…….”

리 메이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나는 검을 들어 벽에 찔렀다. 검 끝이 파고들지도 못한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검(天魔劍).

천마기를 검 끝에 집중한다.

평소라면 시스템의 방벽은 절대 뚫지 못한다. 그러나 구역 침식에 의해 구역이 변이되는 지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키잉.

검이 벽을 뚫었다. 나는 숨을 들이켜며 보다 집중하기 시작했다. 천마신공(SSS)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검을 내린다.

투명한 벽이 갈라지고 바깥과 이어졌다.

“리 메이! 나가!”

“제, 제가 나가면 천마 씨는요?”

“난 알아서 할 테니 나가! 그리고 발데르트 공작가를 찾아가! 알았지?”

리 메이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가 밖으로 나갔다.

키잉!

투명한 벽이 요동친다. 검이 밖으로 튕겨 나갔다. 내가 직접 나갈 수는 없었다. 나는 벽의 틈을 여는 것만으로도 고작이니까.

벽 밖에서 리 메이가 벽을 두들기며 입을 벌리고 닫기를 반복했다. 뭐라 소리치는 것 같은데 전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향해 씩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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