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4화 〉 1074. 신의 아틀란티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4]
리 메이를 노리는 암살자의 머리를 베어냈다.
“어리석군. 그깟 여자가 뭐가 중요한 거지?”
내 뒤를 점한 살온대주로부터 응축된 살기와 힘이 느껴졌다.
‘등이 완전히 비었다. 이건 대처가 불가능해. 한 번 죽어 주고 놈의 목숨을 취한다.’
완전 회복을 사용할 각오를 끝마쳤다.
팔문금쇄진의 효과에 고통스러워하던 리 메이가 느닷없이 치마를 들썩였다. 도끼 자국이 선명한 하얀색 팬티가 드러났다. 살온대주의 기세가 끊긴다. 리 메이에게 매료가 걸린 것이다. 그도 남자였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3]
뒤로 돌면서 검을 휘둘러 공격했다. 살온대주가 다급히 백 스텝을 밟았지만, 검 끝은 그의 옆구리를 훑고 지나갔다. 비릿한 피 냄새가 났다.
“빌어먹을…. 저 여자부터 제압해라!”
욕설을 지껄인 살온대주가 소리쳤다. 숨어 있던 암살자들이 일부러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리 메이를 지키려는 것을 보고 노골적으로 리 메이를 노리며 내 집중력을 분산시키려는 목적이다. 복면을 쓴 암살자 중 절반은 여성이다. 매료 고유 특성을 가진 리 메이를 상대하기 위해서다.
“천마 씨. 절 신경 쓰실 필요는 없어요.”
리 메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기엔 방금은 꽤 위험했는데?”
“머리가 아파서 그랬어요. 그리고 지금은… 익숙해졌어요.”
리 메이를 믿기로 했다. 리 메이는 흑주맹의 간부다. 평범한 여자가 아니다. 민첩 능력치 하나만큼은 내게 버금갈 정도다. 평범한 암살자 따위에게 당할 정도로 약하지 않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검(天魔劍) 마풍(魔風).
검은 바람이 살온대주에게 날아간다. 검은 바람은 그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이다.
“크아아아아아악!”
살온대주가 고함쳤다. 검은 바람이 사라지고, 귀가 먹먹해진다. 평범한 고함이 아니다. 목소리에 마나를 실었다.
살온대주에게 접근한 나는 검을 휘둘렀다. 옆구리를 다친 살온대주의 움직임은 아까보다 둔해졌다. 이대로 밀어붙이면 무난하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접전 끝에 살온대주의 틈이 벌어졌다.
‘이겼다.’
승리를 확신하며 검을 휘두른다. 암살자가 옆에서 뛰쳐나와 방해했다. 양손에 쥔 단검으로 내 검을 막고 뒤로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팔이 180도 꺾인 암살자가 쓰러져 신음을 흘렸다.
짜증이 난 나는 쓰러진 암살자를 향해 검을 던졌다. 검은 암살자의 몸을 꿰뚫었다.
“아까 리 메이 때도 그랬지만… 너는 감정적이군. 전투에 불필요한 감정이다.”
살온대주가 돌진해온다.
“여유가 되니까 한 거다.”
암살자의 몸에 박힌 검을 역소환하고 다시 손아귀에 소환해 살온대주에게 대응했다.
“지금이다!”
암살자 둘이 내 등을 노렸다. 나는 왼손에 스톰브레이커의 분신을 만들어 몸을 회전시켰다. 검날이 암살자들의 몸을 가르고 살온대주의 언월도를 쳐낸다.
“아주 자신만만하게 나오더니 비겁하게 구는군.”
“전투에 비겁함이고 뭐고 없다. 이기면 그만이다. 이기면.”
살온대주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린다.
나는 조용히 흑주맹주를 살폈다.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다. 어떤 목적인지 몰라도 당장 움직일 생각은 없어 보였다. 리 메이는 잘해주고 있다. 암살자들에게 도망치는 척하다가 반격하며, 매료도 시기적절하게 잘 사용한다. 내 도움은 필요 없어 보였다.
천마신공(天魔神功) 흑염마룡(黑炎魔龍).
검 끝에서 검은 불꽃이 치솟는다.
‘마나 소모가 심하긴 해도 전투를 빨리 끝내는 편이 좋겠지.’
살온대주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살온대주의 팔뚝이 꿈틀거린다. 그의 전력이 담긴 언월도가 내 검을 쳐냈다. 암살자 셋이 시기적절하게 달려들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흑염마룡(黑炎魔龍) 폭(爆).
콰앙!
흑염이 내 앞에서 폭발했다. 암살자들의 몸이 터졌다. 흩날리는 핏물과 살덩어리 사이로 살온대주가 접근해온다. 진지하던 그의 입가에 비틀어진 미소가 그려진다.
“내가 이겼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들어올 줄 알았다. 살온대주에게 있어 암살자들은 소모품이다. 처음부터 노렸던 것은 한순간의 기회였겠지.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2]
목을 노리는 언월도를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목의 피부가 베이며 핏방울이 튀었다. 찰나를 썼는데도 이렇다. 찰나가 없었다면, 이번 공격에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내가 살았지.’
카운터는 곧바로 들어갔다. 검이 살온대주의 목을 훑고 지나갔다. 살온대주의 머리가 떨어진다.
죽을 각오를 한 암살자 여섯이 전방위에서 달려든다.
‘스톰브레이커.’
검이 분해되며 순식간에 전신 갑옷으로 변했다.
깡! 까앙! 카카캉! 키깅!
암살자들의 공격은 갑옷을 뚫지 못했다. 그러기엔 공격력이 부족했다.
텁.
오른편에 있는 암살자의 머리를 잡아 터트리고, 발을 움직여 다른 암살자의 다리를 박살 냈다.
‘잡것들. 내버려 두면 또 귀찮게 하겠지. 모조리 죽인다.’
손과 발로 암살자들을 죽였다. 암살자들이 독연을 뿜으며 거리를 벌렸다. 투구가 변형됐다. 입과 눈까지 완벽히 막혀 독연이 몸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차단했다. 물론, 눈부분은 투명했기에 바깥을 볼 수 있었다.
내게서 도망치는 암살자에게 스톰브레이커의 분신검과 분신창을 만들어 투척했다. 암살자들이 죽어갔다. 리 메이를 노리던 암살자들도 죽였다.
“리 메이. 괜찮아?”
“괜찮아요. 다친 곳은 없어요. 전투 회복이 있으니 이 정도 독연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전투 회복에 그런 능력도 있었나. 나는 스톰브레이커 갑옷을 벗어 검의 형태로 바꿨다. 스톰브레이커의 동력은 내 마나와 체력이다. 변화를 계속 유지하면 마나가 계속 소모된다.
“헐레벌떡 도망치던데.”
“…도망만 친 건 아니에요.”
리 메이가 벽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 벽에 박혀 있던 구슬이 부서진다.
「팔문금쇄진의 영향이 사라졌습니다.」
디버프가 사라졌다. 등에 달고 있던 짐덩어리가 떨어져 나간 기분이었다.
“잘했어.”
그녀를 칭찬하고 흑주맹주 왕 쉬안을 바라봤다. 왕 쉬안은 지금까지도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놀랍군.”
“살온대주인가? 그놈은 꽤 쓸만하긴 했어.”
“이런, 오해한 모양이군. 난 그대에게 말한 것이 아니오.”
그의 시선이 옆으로 향한다. 왕 쉬안의 옆 공간이 일렁거리더니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앞머리를 밀고 뒷머리를 땋은 변발을 했다. 얼굴은 족제비 상이다. 음흉하고 비열한 느낌이 물씬 풍긴다. 두 눈을 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실눈을 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그가 부맹주이자, 왕 쉬안의 오른팔인 칭 궈리임을 알았다.
‘…공간 이동 마법은 아니야. 원래부터 있었나?’
마법, 결계, 스킬, 물건 등 어떤 방법으로든 기척을 숨겼다. 만만히 볼 놈은 아니었다.
“궈리. 이번에도 역시 그대의 말대로 이루어졌다.”
“당연하지요. 리 메이는 똑똑한 여자입니다. 승산이 없다면 시작조차 안 했고, 그 승산은 헬텐의 조력으로 확신했겠지요.”
“헬텐의 움직임까지 예측하다니… 네 지략이 하늘에까지 닿았구나.”
“과찬이십니다. 자, 맹주님. 남은 일을 하시지요.”
“그러지.”
왕 쉬안이 거구를 일으켰다.
나는 리 메이를 바라봤다.
“어때?”
“…두 사람 모두 매료가 안 통해요. 아예 성욕이 없는 것 같아요.”
리 메이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원래 계획은 왕 쉬안에게 매료를 걸어 얻을 수 있는 걸 얻어낸 뒤 죽여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야 최대한 이득을 얻어낼 수 있으니까.
“당황하지 마. 저번의 그 짱깨한테도 매료가 안 통했잖아.”
“…저도 중국인이에요. 잊은 거 아니시죠?”
“짱깨와 중국인은 달라.”
왕 쉬안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피부가 붉게 변하고, 입이 찢어지고, 커다란 배가 더욱 커진다. 살덩어리가 된 놈은 입을 쩌억 벌렸다.
「마천의 왕이 피식 웃습니다.」
“언제봐도 멋진 모습입니다. 맹주님.”
칭 궈리가 감탄했다. 조롱과 비아냥이 섞인 목소리다.
“배고프다… 배고파….”
왕 쉬안이 중얼거렸다. 괴물로 변한 왕 쉬안은 뒤뚱거리며 암살자의 시체에 다가갔다. 그리고 그대로 씹는다. 우그적, 우그적. 갑작스러운 식인에 나와 리 메이가 깜짝 놀랐다.
“리 메이. 저 돼지 놈의 능력은 몸의 일부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아니었어?”
“마, 맞아요. 괴물로도 변할 수 있는지는… 저도 처음 알았어요.”
“아니. 저건 아무리 봐도 변화를 사용한 게 아니라 본모습을 드러낸 쪽이잖아. 저건 처음부터 괴물이었어.”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시커먼 마기가 검날을 타고 치솟았다. 그대로 왕 쉬안을 향해 휘둘렀다. 검기가 날아가 왕 쉬안의 몸을 베고 지나갔다. 허나 왕 쉬안의 몸에선 피 한방울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희끄무레한 유령이 나타났다. 유령은 끼아아아아아아악! 하는 비명을 지르더니 사라졌다.
“하하. 불쌍한 영혼 하나가 영멸했군. 천마라고 했나? 그 이름 그대로 잔혹하군. 너는 지금 인간의 영혼을 소멸시킨 거다.”
칭 궈리의 말을 무시하고 시체를 뜯어 먹는 왕 쉬안을 향해 검기를 날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유령이 비명을 지르며 사라졌다. 몇 번 더 반복해서 검을 휘둘렀다. 결과는 똑같았다.
왕 쉬안은 가까운 곳의 시체를 먹으면서 점점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배고프다… 배고파…. 갈증이난다. 이 배고픔은 언제 사라지는 거지…?”
왕 쉬안이 중얼중얼거렸다. 그의 입 주위에는 피와 살점이 묻어 있고, 이빨에는 뼛조각이 끼어있다.
“저건 마치… 아귀(餓鬼)같네요.”
“아귀?”
“아귀, 모르세요?”
“알고 있어. 지옥에 있다는 괴물이잖아. 먹어도 먹어도 계속 굶주리는 괴물.”
“네. 그렇죠.”
타악.
칭 궈리가 부채를 접었다. 그의 얇은 입술이 호선을 그린다.
“역시 리 메이. 바로 정체를 알아보는군. 뭐, 저걸 못 알아보는 놈이 등신이라고 생각한다만.”
“이 새끼. 지금 날 등신이라고 까는 거냐? 뒤져라.”
칭 궈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검은 검기가 날아간다. 칭 궈리는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를 감싸는 배리어가 검기를 막아냈다.
“술법사가 아니라 마법사였군.”
“유감스럽게도 내겐 술법의 재능이 없었지.”
“그것도 흑마법사. 네크로맨서 계열이겠지.”
“시체를 보고 유추했나? 나름 머리를 굴릴 줄 아는군.”
칭 궈리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나는 아귀로 변한 왕 시안을 힐끗거렸다.
“네가 저렇게 만들었나?”
“그래. 맹주님은 힘을 원하셨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맹주님께 힘을 줬지.”
“지랄하네. 실험용 쥐로 이용한 거겠지.”
“프흐크크.”
창 궈리가 괴상하게 웃는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고트월이군.”
창 궈리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진다. 그는 부채를 펼쳐 다시 입가를 가리고는 내게 물었다.
“…우리에 대해 알고 있군. 아니, 헬텐이니 당연한가. 어디까지 알고 있지?”
“알고 있는 데까지 알고 있지.”
고트월.
원작 후반부에 나오는 세력이다. 그들의 목적은 헬텐과 상반된다.
헬텐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틀란티스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게 끝내는 것. 다시 말해 신을 죽이는 것이다. 신이 존재하는 한 아틀란티스는 계속 될 테니까.
고트월은 신이 되려는 자들이다. 아틀란티스를 전부 공략해 소원으로 신이 된다. 라는 비현실적인 방법을 뒤로하고 다른 힘과 방식으로 신이 되기를 추구하는 자들이다.
‘아틀란티스 전체 공략은 기여도가 중요하지. 기여도에 따라 이룰 수 있는 소원이 달라지니까. 무엇보다 전체 공략에 실패할 가능성이 더 크고.’
그러니 다른 방식으로 신이 되려는 거다.
아귀로 변한 왕 쉬안은 실험체에 불과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시스템과 신들은 감히 신이 되려는 인간을 왜 내버려 두는가.
‘오만해서 그렇지. 할 테면 해보라는 거지.’
헬텐은 고트월의 존재를 모를까? 다른 간부는 몰라도 헬텐의 보스인 사무엘은 고트월의 존재를 알고 있다. 알면서도 내버려 두는 거다.
‘놈들을 이용해 신을 죽일 방법을 찾을지도 모른다. 라는 희미한 기대를 걸고 있는 거겠지.’
나는 속으로 그들을 비웃었다. 신이 되는 것, 신을 죽이는 것. 둘 다 의외로 간단한데 말이다.
“천마 씨! 아귀가 가까이 왔어요!!”
리 메이가 다급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