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3화 〉 1073. 신의 아틀란티스
「제 5,845 구역, 세 개의 벽에 입장했습니다.」
흑주맹의 본거지인 제 5,845 구역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구역의 이름대로 세 개의 벽이 존재하는 구역이었다. 커다란 세 개의 벽이 중심을 지키듯이 동그랗게 솟아 있다.
나는 5,845 구역에 대해서 잘 모른다. [신의 아틀란티스] 원작은 물론이고 설정집에도 나와 있지 않은 구역이었기 때문이다. 나름의 조사는 했으나 이렇다 할 정보는 얻지 못했다.
리 메이도 이 구역에 관해선 잘 모른다.
“초창기에 흑주맹주와 함께 여길 공략했던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그리 어려운 공략은 아니었대요.”
“아틀란티스 초창기에는 거저먹는 구역이 몇 개 있었다지. 여기가 그런 구역이었던 모양이군.”
아틀란티스의 구역 공략 난이도는 천차만별이다. 그저 입장하는 것만으로도 공략의 절반 이상을 성공한 구역이 있고, 반대로 입장도 하기 힘들 정도로 난이도 높은 구역이 존재한다.
“네. 이 구역의 공략 방법은… 세 개의 벽을 넘어 중심에 도착하면 되는 일이었대요.”
“벽의 높이는 대략 50M군. 문 같은 게 있나?”
“서쪽과 동쪽에 각각 하나씩 있어요. 근데 공략할 때는 문을 이용하지 않고 날아서 갔다 나봐요. 그게 또 공략으로 인정받았고요.”
“구역 하나를 날로 먹었잖아. 부럽군.”
나와 리 메이는 준비한 물건을 입에 넣어 씹었다.
「바람의 나뭇잎
10분 동안 하늘을 날 수 있다.
종류: 소모품
랭크: B」
초록색 나뭇잎이었다. 질길 것 같은 외형과 다르게 고소한 과자처럼 바삭하며 고소했다.
우리의 몸은 하늘로 두둥실 떠올랐다. 50M의 벽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 중심으로 향한다. 힐끗 아래로 내려다보자 첫 번째 벽 안쪽은 아무것도 없이 비어있었다.
“아무것도 없네. 마을 같은 게 있을 줄 알았는데.”
“초창기에는 몬스터가 있었다고 해요. 지금은 전부 토벌된 상태라 안전해졌지만요. 그리고 흑주맹주는 유진 씨의 말대로 벽 안쪽에 마을을 만들려고 했대요. 정확하게는 요새화하려고 했죠.”
나는 다시 아래를 살펴봤다. 사람의 흔적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데?”
“보급이 문제였죠. 구역의 위치가 산골 중의 산골에 있고, 자급자족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크지도 않고, 다른 쪽의 메리트도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두 번째 벽을 넘었다. 두 번째 벽 안쪽에는 그래도 사람이 산 흔적이 있었다. 조잡해 보이는 나무집과 한쪽에 쌓여 있는 쓰레기들.
“그래도 초창기에는 아지트로 이용했다고 해요. 흑주맹의 세력이 커지면서 굳이 이곳에 머물 이유는 없어졌지만요.”
세 번째 벽을 넘었다. 구역 중심에는 5층짜리의 커다란 건물이 있었다. 중국식으로 지어진 궁궐이다. 겉모습은 꽤 장엄했다. 거기에 첫 번째, 두 번째 벽 안쪽과 달리 사람들의 인기척이 느껴진다.
“근데 흑주맹은 왜 굳이 이 구역을 고집하는 거지? 본거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도 될 텐데.”
흑주맹이 지배하는 구역은 여기 말고도 많았다.
“글쎄요. 거기 까진 저도 잘 몰라요. 흑주맹주가 처음으로 지배한 곳이라 집착이 있는 게 아닐까요?”
“뭐, 그럴 수도 있겠지.”
나와 리 메이는 땅으로 내려섰다. 무기를 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우리를 감쌌다.
“리 메이다!”
“배신했다고 들었는데 당당히 나타날 줄이야.”
“맹주님께 사과하고 용서를 빌려고 돌아왔나?”
“오랜만에 보는데도 미모가 여전하군. 아무리 리 메이라도 이번엔 맹주님께 몸을 바치겠지.”
“저 광대 가면을 쓴 놈…. 최근에 서쪽에서 유명하다는 천마가 아닌가?”
중국인들이 몰려들었다. 저들끼리 시끄럽게 떠들 뿐이지 나서는 자는 없다. 책임자가 없는 것이다.
나는 리 메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리 메이. 인기 좋은데?”
“저로선 딱히 원하는 일은 아니지만요….”
리 메이가 혀를 찼다. 그녀는 무수히 많은 남자의 시선에도 주눅 들지 않았다. 나는 리 메이의 어깨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여차할 때 내가 그녀를 지켜야 했다. 그리고 남자들에게 리 메이를 과시하는 것도 꽤 재밌다. 내를 향한 질투 어린 시선 일부에는 살기까지 담겨있다.
책임자가 나타났다. 검은색 갑옷을 입고 커다란 언월도를 장비한 남자였다. 한쪽 귀가 없는 그 남자는 우리의 앞길을 당당하게 막아섰다.
“살온대주님이시네요. 오랜만이에요. 저희는 맹주님을 뵈러 왔어요. 비켜주실래요?”
살온대. 흑주맹주의 친위부대다.
“그건 안 되겠군. 맹주님으로부터 어떤 언질도 받지 못했다. 방금 맹주님께 사람을 보냈으니 잠시 기다리도록. 그런데 옆에 있는 가면 쓴 남자는 누구지. 애인인가?”
“애인이면 어쩔 건가요?”
“예민하게 굴지 마라. 리 메이. 넌 똑똑한 여자다. 난 네가 흑주맹을 배신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절 믿어주는 건 고맙네요. 손에 쥔 무기만 없었어도 저도 살온대주님을 믿었을 거예요. 그리고 제 옆에 계신 분은… 짐작 하시고 계실 텐데요? 가면을 쓴 자들. 충분히 유명하지 않나요?”
“흐으음….”
살온대주는 나를 보며 침음을 흘렸다. 천마의 명성은 둘째치고 흑주맹의 간부 쯤 되면 헬텐에 대해서 들어봤겠지. 헬텐의 간부는 기본적으로 가면을 쓰고 활동하니까.
살온대주는 입을 다물었다. 조용한 대치가 이루어졌다.
‘10분 내로 안 비키면 억지로 들어가야겠군. 저 살온대주라는 놈은 보통이 아니고, 잡졸들도 많긴 한데… 내가 질 것 같진 않아.’
10분이 지나기 전에 살온대주의 부하가 나타났다. 부하는 살온대주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인다.
“맹주님께서 너희의 입궐을 허락하셨다. 내가 직접 안내하지. 따라와라.”
살온대주가 몸을 돌렸다. 우리를 포위하고 있던 자들이 무기를 내렸다. 나와 리 메이는 살온대주의 뒤를 따라 궁 안으로 들어갔다.
“입궐이라…. 흑주맹주는 자신이 왕이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
“왕까지는 아니어도 귀족은 된다고 생각할걸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실제 [백환] 세계의 귀족인 내 눈을 속일 순 없다. 궁의 내부는 미흡했다.
‘외형은 꽤 볼만하지만, 내부는 관리가 미흡하군. 사용인이 몇 명 돌아다니긴 하는데 어설프다. 교육이 안 되어있다는 증거지.’
이 궁은 겉만 그럴싸한 허세다.
넓은 공간에 도착했다. 분위기로 보아 알현실 같았다.
커다란 의자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130kg은 가볍게 넘을 것 같은 고도 비만의 남자다. 짧은 검은색 머리카락이 볼살 위로 늘어져 있다. 입가에 미소를 띄고 있어서 그런지 의외로 인상은 꽤 좋은 편이다.
그가 바로 흑주맹주 왕 쉬안이다.
“어서 오시오, 천마. 설마 서쪽의 천마가 헬텐 소속일 줄은 몰랐소.”
“나를 알고 있나?”
“그대는 꽤 유명한 편이오.”
서쪽 사막 일부를 지배하고 꽤 시간이 지났으니, 이곳까지 소문이 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특히 흑주맹주처럼 한 단체의 수장은 정보에 민감한 법이니까.
“그대를 위해 만찬을 준비했소.”
“내가 만찬 따위를 즐기려 여기에 찾아온 줄 아나?”
“…중식의 정수를 그대에게 알려주고 싶었소만…. 아쉽게 됐구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지금부터 흑주맹주의 자리는 리 메이의 것이다. 너는 그 자리에서 내려와 곱게 꺼져라.”
살온대주의 몸이 움찔거린다. 나는 그에게서 경계를 풀지 않고 왕 쉬안의 대답을 기다렸다.
“내가 그 말에 따라야 하는 이유가 있소?”
“쉽게쉽게 가지. 너도 죽고 싶지는 않을 텐데.”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대가 정녕 헬텐에 속한 간부인지 의심스럽소.”
“흑주맹을 담당했던 건 원래 거울이었지.”
“…그렇소. 거울 가면.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여자는 어디 가고 당신이 온 거요?”
“흑주맹은 내가 담당하기로 했다. 의심하지 마라. 헬텐을 사칭하는 자들의 최후가 어떤지는 너도 잘 알고 있을 거다.”
“…….”
왕 쉬안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주위를 한 차례 둘러봤다.
“…흑주맹은 헬텐의 도움을 받아 성장했소. 흑주맹의 빠른 성장과 안정화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유일한 오점이기도 했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그 오점을 바로 잡을 것이오. 흑주맹은 오로지 흑주맹으로서 남을 것이오.”
나는 실소를 흘렸다.
“헬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군.”
헬텐이 왜 전설이라고까지 불리는가. 그건 이 아틀란티스에서 헬텐을 감당할 수 있는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유스티아 제국조차 헬텐을 소탕하려다가 실패했다.
“그 말을 돌려주겠소. 그대들은 흑주맹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오.”
끼이이이이이이이잉!
쇠를 긁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꺄아아아아악!”
곁에 있던 리 메이가 머리를 붙잡고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팔문금쇄진(八門金鎖陳)이 발동되었습니다.」
「뛰어난 정신력으로 팔문금쇄진의 효과 일부를 저항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20% 하락합니다.」
「스킬과 특성의 효율이 15% 하락합니다.」
「받는 피해가 10% 상승합니다.」
디버프의 향연이었다. 바닥에 쓰러져 고통을 호소하는 리 메이를 보니 정신적인 공격까지 하는 모양이다.
끼이이이이이잉. 끼이이이이잉.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천장, 바닥, 기둥 등에 박혀있는 무언가에서 파동이 일어나고 있다. 아마도 그게 팔문금쇄진의 정체이리라.
“과연 대단하시오. 꼼짝도 하지 않는구려. 허나 그대는 이미 팔문금쇄진의 중심에 있소. 살온대주. 그를 죽이시오. 리 메이는 내버려 두시오. 그녀는 따로 배신의 대가를 치러야 하니.”
“존명.”
살온대주가 달려든다. 나는 검의 형태의 스톰브레이커를 소환해 그의 언월도를 막았다. 카앙. 어마어마한 그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뒤로 밀려났다.
‘…내가 순수한 힘에서 밀린다고?’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지금 천마 상태다. 천마지체, 천마신공 등으로 신체 능력에 보정이 붙는다. 이렇게 쉽게 밀려나는 건 말이 안 된다.
“놀란 모양이구려. 하나 알려주자면, 살온대주의 계약 신좌는 서초패왕이오.”
서초패왕이면 항우를 말한다. 아틀란티스에서 항우의 계약자들은 꽤 유명하다. 항우는 계약자들에게 딱 하나의 스킬만을 전수해준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근력 능력치가 2배로 적용되고 전투 시에 추가로 근력이 일부가 상승하는 사기 스킬.’
단점도 있다. 전투 시에 다른 능력치가 하락한다는 점이다.
‘그런 페널티가 있더라도 전사들에겐 최고의 스킬이지.’
힘으로 살온대주를 압도하는 건 포기하고 기술에 집중하기로 했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파형(波形).
진각을 밟는다.
보이지 않는 기파가 사방으로 퍼져갔다. 진법이 흔들렸다.
「팔문금쇄진(八門金鎖陳)의 효과가 일시적으로 줄어듭니다.」
움찔.
살온대주의 기세가 약간 꺾였다. 팔문금쇄진은 내게 디버프를 주는 것과 달리, 그에겐 버프를 준 것이 확실했다.
나는 그에게 달려들어 검에 회전력을 담아 휘둘렀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검(天魔劍) 회천(回天).
살온대주가 뒤로 밀려난다. 그의 뺨을 타고 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크흠. 대단한 힘과 검이군. 근력 능력치가 어느 정도지?”
“알려줄 것 같나.”
“못 알려줄 이유도 없지 않나? 어차피 싸움은 수치 놀음이 아니라 강한 놈이 이기는 거다. 나는 근력이 135다. 스킬의 효과를 받아 상승한 근력이지.”
“맞는 말이군. 106.”
“…괴물이군.”
그가 탄식을 흘렸다.
능력치 30.
그 차이는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었다. 어린아이와 어른의 차이에 가까우니까. 그러나 나는 30의 능력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 밀리지 않는다. 팔문금쇄진의 영향까지 생각하면 그가 경악하는 것도 당연했다.
언월도가 머리 위로 떨어진다. 검을 옆으로 세워 막으며, 검을 회전시켰다. 언월도가 옆으로 튕겨 나갔다. 살온대주에게서 빈틈이 생겼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검을 휘두르려다가, 천장에서 떨어지는 기척을 느꼈다.
‘암살자다. 노리는 건… 내가 아니라 리 메이!’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4]
리 메이를 노리는 암살자의 머리를 베어냈다.
“어리석군. 그깟 여자가 뭐가 중요한 거지?”
내 뒤를 점한 살온대주로부터 응축된 살기와 힘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