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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070화 (1,070/1,497)

〈 1070화 〉 1070. 신의 아틀란티스

나무 문을 열었다.

수십 명의 무장한 남자들이 문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대부분이 검은색 머리이며, 일부는 치파오를 입었다. 그들의 중심에는 짧은 검은 머리에 눈이 찢어지고 검은색 치파오를 입은 중국인 남자가 있었다.

뱀처럼 생긴 남자였다. 남자는 내가 아닌 리 메이를 노려봤다.

“장 차오. 당신이 이렇게나 빨리 움직일 줄이야. 예상 밖이네요.”

리 메이의 목소리는 딱딱했다.

“돈줄 중 하나인 4,344 구역이 갑자기 공략당했어. 덕분에 지금 흑주맹은 난리가 났지.”

“아무튼 당신이 와서 잘됐네요. 흑주맹을 공략한 건 이 남자예요. 이 남자를 쓰러뜨리세요.”

리 메이가 바로 배신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입맛이 썼다. 그녀의 가슴을 쥔 손에 힘을 더 주었다.

“윽…! 이거 놔! 장 차오! 뭐 하세요! 어서 이 남자를 죽여요!”

“같잖아서 웃음이 다 나오네.”

장 차오가 피식 웃었다.

“리 메이. 나와 흑주맹을 너무 병신으로 보는 거 아니야? 4,344 구역은 얻는 이익이 많은 만큼 특수한 구역이야. 흑주맹도 한 번 공략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곳이지. 그런 곳이 뜬금없이 공략됐지. 관리자인 네가 생물의 숲에 들어가고 나서 말이야. 그리고 이럴 수가. 공략자와 사이좋게 밖으로 나왔네?”

리 메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가슴을 계속 주무르고 있는데도 반응이 없을 정도다. 그녀의 표정과 다르게 가슴은 무척 부드러웠다.

“4,344 구역의 공략법을 자세히 알고 있는 건 소수지. 너를 포함해 5명. 나머지 4명은 다른 업무를 하고 있으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갑자기 공략된 구역. 12시간 이상 사라진 관리자.”

“오해하고 계시네요. 전 흑주맹을 배신하지 않았어요. 상식적으로 생각해요. 제가 그럴 이유도 없고, 저랑 이 남자 둘이서 누더기 왕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잖아요.”

“근데 이겨냈지. 지배권도 저 남자가 가지고 있는 거겠지? 다른 놈들은 전투 중에 죽었거나, 죽였겠지. 더 많은 이득을 얻기 위해 토사구팽하는 일은 흔하잖아?”

장 차오가 이죽거렸다. 보고 있는 내가 다 짜증 날 정도로 재수 없는 웃음이었다.

“아니라고요! 이 남자가 혼자서 누더기 왕을 죽이고 지배권을 얻었어요! 제가 똑똑히 봤어요!”

“흑주맹이 오냐오냐 해줬더니 말도 안 되는 말을 우기기까지 하는군. 뭐, 좋아. 시간도 많고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니 대충 맞춰주지. 저 남자가 어떻게 혼자서 누더기 왕을 죽였지?”

“그건…. 누더기 왕이 갑자기 나타났고…. 누더기 왕은 자기 꼬리에 중독되어 약해진 상태였는데….”

말을 이어가는 리 메이의 목소리는 점점 힘이 빠졌다. 그녀도 아는 것이다. 직접 본 당사자조차 믿기 힘든 일인데, 듣고 있는 사람에겐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들릴지.

“…누더기 왕의 발이 꼬여서 그대로 넘어지고…. 또 중독되서…. 벼락이….”

“그 말을 믿으라고?”

“믿을 수 없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그게 진실이에요!”

“믿는다고 치지. 근데 네가 배신한 증거는 이미 명백하지 않나? 지금 네 꼴을 보면 누구나 배신했다고 생각할 거야.”

리 메이가 입술을 깨물었다. 가슴을 주무르는 내 손을 쳐내려고 한다. 나는 더욱 그녀에게 달라붙었다. 가슴뿐만이 아니라 허벅지와 엉덩이까지 쓰다듬었다.

“그 남자에게 귀여움을 받아서 좋겠어. 리 메이, 지금 너한테서 풍기는 냄새가 뭔지 알아? 창녀촌에 가면 느낄 수 있는 냄새야. 비릿한 액체들이 섞인 오묘한 냄새. 그리고 말이야. 네 머리카락, 허벅지, 팔뚝 등에 정액이 말라붙어 있잖아. 오우. 목덜미에는 빨간 키스 마크까지 있군? 아주 많이 즐기셨나 봐.”

“난 이 남자에게 강간당했어요! 강간당했다고!”

“12시간 넘게 강간당한 여자를 본 적 있는데, 처참했지. 너처럼 피부에 광택이 돌지 않았다고.”

“이, 이건 특성 때문에….”

리 메이가 멈칫했다.

뭐라고 말해도 소용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흑주맹은 이미 절 처리하라고 당신에게 명령했군요.”

“흑주맹을 배신한 자의 최후는 비참하지만, 넌 특히나 더 비참할 거야. 앞으로 창녀로서 살아가야 할 테니까 말이지. 그리고 앞으로 한 달간. 넌 내 장난감이 될 거야. 정말이지. 내가 널 한 번 안아보려고 얼마나 잘 대해줬었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네가 나한테 몸만 대줬어도 창녀로 살 일은 없었을 거야.”

리 메이가 장 차오를 노려봤다.

“이 미친 새끼. 죽더라도 너한테 몸 대줄 생각은 없어. 그거 알아? 네가 실좆이라는 소문은 이미 흑주맹에 다 퍼졌어.”

순간적으로 장 차오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 하하. 재밌는 소문이네.”

어색하게 웃는 걸 보니 진짜 실좆인 모양이다. 그때, 갑자기 장 차오의 찢어진 눈이 커졌다.

“오, 매료를 걸었네? 이건 배신 확정이지.”

“…어떻게 매료에 안 걸린 거야?!”

“네 능력을 아는데 대비를 안 했을까? 흑주맹에선 이미 네 배신을 염려해두고 있었지. 그거 알고 있어? 흑주맹에서 널 노리는 남자는 많아. 어떤 남자라도 널 품에 안는 상상은 한 번쯤 해봤을 거야.”

장 차오가 실실 웃으며 다가온다. 검은색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손톱 부위에 날카로운 칼날이 달려 있었다.

“…유진 씨. 문을 닫아요.”

리 메이가 작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적대감은 없었다.

“왜 갑자기 고분고분해진 거야?”

“전 처음부터 고분고분했어요. 전 유진 씨의 좆집이잖아요.”

리 메이가 날 보며 방긋 웃는다. 나 또한 마주 웃어줬다.

“빨리 문 닫아요. 이 문은 지배자나, 지배자의 선택을 받은 관리자가 아니면 쉽게 열지 못해요. 나름의 조건이 있죠. 문을 닫으면 시간을 벌 수 있어요.”

그 벌 수 있는 시간은 하루도 안 될 것이다. 장 차오의 여유로운 태도를 보면 확신할 수 있다.

‘일이 잘 풀리는군.’

흑주맹과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잘 풀린 건 리 메이와의 관계다. 리 메이는 흑주맹에게 버려졌다. 아니지, 흑주맹은 그녀를 배신자라고 오해했다. 오해는 쉽게 만들어지지만, 그 해명이 배 이상 어렵다. 특히, 상대는 오해를 풀 생각조차 없으니 해명은 불가능하다.

‘리 메이는 갈 곳이 없다. 설령 믿을 수 있는 동료가 있더라도 흑주맹에 대항하는 건 힘들겠지.’

즉, 그녀가 믿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뭐해요! 빨리! 빨리 문 닫아요!”

“네가 닫으면 되잖아!”

“당신이 지배자가 되고 나서 전 관리자 권한을 잃었어요. 전 문을 닫지도 못한다고요!”

나는 리 메이를 안은 상태로 뒤로 물러났다. 장 차오를 비롯한 흑주맹 남자들이 생물의 숲 안으로 들어온다.

“리 메이는 살려둬라. 저 남자는 반드시 죽이고.”

장 차오의 살기 담긴 말에 분위기가 차가워진다. 전투를 앞둔 이 분위기. 익숙했다.

“…망했어.”

절망한 리 메이가 중얼거렸다.

상대는 50명이 넘었는데 모두 하나 같이 전투에 익숙한 자들이었다. 전투 전문 부대라 할 수 있다. 특히 장 차오는 나도 쉽게 볼 수 없는 강자다. 기세를 통해 알 수 있다.

“…유진 씨. 단검 하나 줄 수 있나요?”

“너도 싸우게?”

“아니요. 자결하게요. 앞으로 제 인생은 흑주맹의 성노예로 살아가는 선택지밖에 없어요.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하하. 자결? 그럼 그 시체를 범해주지. 너 정도면 시간 할 가치가 있지.”

장 차오가 리 메이를 비웃었다. 리 메이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피가 흐른다. 나는 그녀의 입술에 흐르는 피를 엄지로 닦아냈다.

“입술 깨물지 마. 혀 깨물 생각도 하지 말고.”

“…유진 씨는 절 버리고 도망칠 수도 있는데… 안 그러시네요. 사실 유진 씨는 절 사랑하셨군요.”

“그 입술이랑 혀는 내 자지를 빨아야지.”

“그럼 그렇지.”

장 차오의 표정이 뒤틀어진다. 내가 리 메이와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니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계획 변경이다. 저 새끼를 쉽게 죽이지 마. 우리 흑주맹을 건드렸으니 그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지.”

리 메이에게 집착하는 걸 보니 평소에 리 메이를 짝사랑하기라도 했나 보다.

‘내 여자에게 눈독 들였으니 반드시 죽여야지.’

도망은 치지 않는다.

허나 혼자서 저들 모두를 상대하는 건 힘들다. 완전 회복이 있다고 해도 수적인 차이가 있다. 특히 리 메이가 다치지 않게 보호해야 하니 난이도가 올라간다.

“천공의 주인이시여. 좀 도와주시죠.”

「천공의 주인이 시큰둥하게 당신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나올 거라는 건 예상했다.

계약자가 위기에 처했다고 바로 도와주는 친절한 신좌가 아니고, 모든 신좌는 시스템에 의해 대가 없이 쉽게 개입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경우엔 신좌가 지불해야 할 대가가 천문학적으로 상승한다.

허나 정당하게 도움을 구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보유 AP: 844,480」

“30만 AP를 천공의 주인께 공양하겠습니다.”

AP.

여긴 신전이 아니라서 효율은 좀 떨어져도 신좌의 도움을 합법적으로 바랄 수 있다.

신좌에게서 스킬 혹은 물건을 받을 수 있고, 힘의 일부를 빌릴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선 후자 쪽이 가성비 좋다.

「천공의 주인이 공양을 받아들입니다.」

「천공의 주인의 힘 일부가 당신에게 스며듭니다.」

「30초 동안 천공의 주인의 힘 일부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힘이 차오른다.

압도적인 힘에 정신이 고양되는 걸 느꼈다. 나는 힘의 일부를 대기에 흘렸다. 대기에 뇌전이 스며들었다. 육안으로 볼 수는 없으나, 내 주위는 뇌전으로 가득했다.

“천공의 주인…?! 이런 미친! 제우스의 계약자였나! 놈을 죽여라! 당장!!”

경악한 장 차오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그들이 나를 향해 달려온다. 그러나 너무 느렸다. 하품이 나올 정도다.

‘…찰나나 섬뢰를 사용한 적도 없는데…. 이게 최상위 신의 힘의 일부인가.’

30초.

처음에는 너무 짧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대만족이다. 여전히 1초에 1만 AP는 선 넘은 것 같긴 하지만.

나는 주위 대기에 있는 뇌전을 공명시켰다.

번개의 폭풍이 일어났다. 나를 중심으로 거대한 바람과 푸른 뇌전이 회전하며 주위를 모조리 치워버린다. 이곳에서 멀쩡한 건 나와 내 품에 안긴 리 메이뿐이다. 입과 눈을 벌리며 경악한 그녀의 얼굴은 꽤 귀여웠다.

폭풍은 주위 100M를 5초 만에 초토화하고 사라졌다.

놀라운 건 장 차오가 번개 폭풍을 견뎠다는 것이다. 놈의 다른 부하들은 형체도 남기지 못했다. 물론 장 차오도 멀쩡하지 않았다. 온몸이 새카맣게 탔고, 의식도 온전해 보이지 않았다. 서 있는 게 고작인 것처럼 보인다.

「600 AP를 획득합니다.」

「1,200 AP를 획득합니다.」

「843 AP를 획득합니다.」

…….

지금은 도전 시간이 아니라 그런지 생명 포인트가 아닌 AP를 얻었다. 다 합치면 대충 3만 AP 정도 된다.

“장 차오. 저건 왜 안 죽어?”

“…장 차오의 고유 특성은 반인반시(半人半尸)예요.”

“반인반시?”

“활강시(活僵尸)요. 살아 있는 강시. 한 번 죽으면 강시로 부활하는 특성이죠. 강시로 100일을 보내면 다시 사람으로 돌아와요.”

“강시 상태에서 한 번 더 죽이면 된다는 거군.”

장 차오는 정신을 차렸는지 몸을 꿈틀대기 시작했다.

“쉽지 않을걸요? 강시가 되면 능력치가 50% 상승한다고 들었거든요. 지능이 좀 낮아지는 게 문제지만요.”

“보고 있어. 아스트라페.”

쾅!

하늘에서 번개 하나가 장 차오에게 떨어졌다. 장 차오의 몸을 그대로 반으로 가르는 것뿐만이 아니라 땅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갔다. 지진이 일어나며, 땅이 갈라진다. 갈라진 틈으로 번개가 하늘로 솟구친다.

아스트라페가 땅속에서 번개를 방출한 것이다. 범위는 30M 정도에 불과하지만, 위력만 따지면 번개 폭풍보다 더 강렬했다. 번개 방출은 연달아 5번이나 일어났다. 땅은 마치 번개를 품은 먹구름 같았다.

리 메이는 갈라진 땅속에 흐르는 푸른 뇌전을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나를 보며 애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유진 씨. 전 영원히 유진 씨의 좆집이에요.”

마주 보며 웃어주었다.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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