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2화 〉 1062. 신위
광원교는 궤멸했다.
인신 공양이라는 전 세계가 경악할 만한 짓을 태연하게 저지른 사이비 종교다. 멀쩡히 활동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생포된 광신도들은 세뇌가 풀려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전부가 원래대로 돌아온 건 아니었다. 광신도 중에서 깊숙이 심취한 자들은 세뇌가 풀렸음에도 여전히 광신을 신앙했다. 그들의 끝은 대부분 자살 혹은 사형이었다.
수월 길드는 던전 공략에 실패하며 망신을 당했다.
회귀 전에는 2차 공략대를 파견했지만, 지금은 일본 정부와 협회가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2차 공략대는 파견하지 못했다.
일본은 자신들의 업적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일본의 자랑스러운 S급 헌터인 아마츠카 코요리가 사악한 광원교의 신전을 박살 내고 납치당한 일반인과 수월 길드 공략대를 구해냈다는 소식을 인터넷에 들어가기만 해도 접할 수 있었다.
수월 길드의 명성이 떨어졌다.
사람들은 수월 길드의 실패를 크게 비난하지 않았다. 비난하는 인물은 소수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 한 번 정도는 봐줄 수 있다. 다음에 더 잘하면 된다. 실패는 누구나가 겪는 일이다. 등등의 의견이 인터넷에 떠돌았다.
‘어디까지 여론이 그렇다는 거지. 수월 길드의 평가가 이번 실패로 떨어진 건 확실해.’
나는 여론도 바꿀 겸 수월 길드의 비리 중 하나를 폭로했다. 수월 길드가 협회 간부 중 한 명과 손을 잡고 던전 몇 개를 독식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큰 반향은 없었다. 글을 올리는 족족 수월 길드를 방어하는 댓글이 달렸다.
‘이거 해킹할 필요도 없어. 100% 댓글 알바네.’
기자도 매수했는지 인터넷 기사 하나 뜨지 않았다. 여론을 바꾸기 위해선 더 큰 비리를 폭로해야 했다.
‘지금은 아니야. 잠깐 이슈가 될 수 있지만, 수월 길드를 무너뜨리기엔 불가능하지.’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그래도 한 번씩 비리에 대해 알려야지. 이런 게 하나, 하나 쌓여야 나중에 터질 때 더 크게 터지는 법이니까.’
어쨌든 광원교와 관련된 일은 끝났다.
이번에 내가 얻은 건 일본에 대한 영향력이다. 나를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아마츠카 코요리의 입지가 상승했으며, 일본 정치가들은 풍신에 대해 믿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 총리가 풍신의 열렬한 신도가 되었다.
‘일본 총리는 내가 예언한 것들로 이득을 얻었으니까. 지지율도 올랐다지?’
언젠가 또 일본의 힘이 필요할 때가 오겠지. 그때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
6월 15일. 화요일.
나는 새벽부터 자동차를 끌고 강원도로 향했다. 본래라면 한하린과 함께 자고 있을 시간이지만… 오늘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꽤 중요한 일이었다.
‘가시 가면. 회귀 전에 날 고생시킨 그 새끼를 잡아야지.’
회귀 하기 전까지 한국 헌터 협회는 가시 가면을 붙잡기는커녕 정체를 알아내지도 못했었다.
‘그 새끼 때문에 고생한 게 좀 많았어야지.’
오늘 가시 가면은 강원도의 한 산골 마을에 나타나 학살을 일으킨다. 어린 여자아이 1명을 제외하고 마을 주민들을 모조리 죽이는 것이다. 여자아이의 눈앞에서 말이다.
나는 강원도로 향하는 도중에 백지은에게 연락했다.
“…여보세요. 유진아? 이 꼭두새벽부터 무슨 일이야? 이 누나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 저번에 도와달라 했을 땐 바쁘다면서 안 된다더니.”
방금까지 자고 있어서 그런지 백지은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그때는 진짜 바빠서 그래. 그래도 내가 준 정보가 도움은 됐잖아?”
나는 회귀 전의 정보 일부를 여러 핑계를 대며 백지은에게 넘겼다. 평소에 그녀에게 받는 정보들이 좀 있으니, 이번엔 내가 그녀에게 정보를 준 것이다.
“큰 도움이 됐지. 아직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범죄자들을 어떻게 알아낸 거야? 미래를 보는 능력이라도 있어? 스튜디오에서 조명이 떨어지는 사고까지 예견하는 걸 보니 100%인데….”
“그건 아니야. 다 방법이 있어. 스튜디오의 사고는 무당이 점쳐준 거야.”
“용한 무당이네. 어디 무당이야? 나도 한 번 가보자.”
“영업 비밀인데…. 사실 나 회귀했어.”
“아. 그렇구나. 로또 번호 좀 가르쳐줄래?”
“로또 그거 당첨금도 얼마 안 하잖아. 내 말 안 믿는 거지?”
A급 헌터쯤 되면 로또 당첨금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믿어. 그렇게 자세한 정보를 알려줬는데 어떻게 안 믿겠어.”
“다른 사람한텐 말하지 마.”
“안 말해.”
나는 백지은에게 30일 전으로 회귀했다는 사실을 쉽게 털어놓았다.
백지은은 믿을 수 있었다.
정확하게는 백지은에게 걸린 절대 최면을 믿는 거다. 절대 최면이 유지되는 동안 백지은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그래서. 새벽에 전화한 건 무슨 일이야?”
“가시 가면.”
“……!!”
백지은이 놀라는 기색이 통화를 통해 느껴졌다. 백지은은 지금도 각성 범죄자인 가시 가면을 뒤쫓고 있다.
“…가시 가면의 정체를 알고 있어? 빨리 말해봐!”
“정체는 몰라. 회귀 전까지도 안 잡힌 놈이니까. 그래서 지금 놈의 정체를 확인하러 가는 거야. 겸사겸사 붙잡으려고.”
“거기 어디야! 지금 갈게!”
“그러니까 장소가….”
나는 주저하지 않고 위치를 말했다. 그녀가 와도 상관없었다. 딱히 나를 방해할 일은 없으니까.
“지은아. 내가 준 정보들은 잘 활용하고 있지?”
“당연하지. 그 정보들 덕분에 최근 내 입지가 얼마나 높은지 알아? 간부들도 날 경계할 정도라니까. 가시 가면까지 붙잡으면… 더 빠르게 승진할 수 있을 거야. 네겐 감사하고 있어.”
백지은의 권력이 높아지는 건 내게 좋은 일이다. 그를 위해 그녀에게 회귀 전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난 수월 길드를 무너뜨릴 거야. 지은아, 네 도움이 필요해.”
“이게 미친 짓 하려고 하네. 수월 길드가 뉘집 개 이름이야?”
“언젠가 무너뜨릴 거야. 도와줄 거지?”
“…진심이구나. 뭐, 수월 길드가 뒤가 구리다는 건 알고 있어. 나도 수월 길드를 그리 좋아하는 건 아니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도와줄게.”
“고마워.”
•••
나는 나무 위에 앉아 산골 마을을 내려다봤다.
평화로운 마을. 하늘은 파랗고 사람들은 어제도 그랬던 것처럼 일한다.
참극이 일어나기 몇 시간 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로웠다.
나는 조용히 여자아이를 주시했다. 마을에 직접 들어가지 않는 것은 내 존재를 본 가시 가면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시 가면은 여자아이의 앞에 가장 먼저 나타난다. 여자아이를 제압하고 마을 주민을 학살하는 장면을 여자아이에게 보여주는 거지.’
그 장면에는 여자아이의 부모와 조부모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다른 마을 사람들 또한 여자아이에겐 모두 가족 같은 사람들일 것이다. 이런 산골 마을 특성이 그러하니까.
나는 여자아이를 바라봤다. 여자아이는 아침부터 마을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마주친 마을 주민들은 모두 웃으며 여자아이와 인사를 나눴다. 청력을 높여 여자아이의 이름도 알아냈다. 유채아였다.
시간은 정오에 가까워져 간다.
백지은은 나타나지 않았다. 도중에 길을 잃은 것이다. 면허는 있어도 직접 운전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그녀였기에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타났군.’
마을 입구에 계절에 맞지 않은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얼굴에 쓴 하얀 가면.
가시 가면이 맞았다.
나는 놈을 보자마자 움직였고, 놈은 마을 입구 근처에서 곤충을 관찰하고 있는 유채아에게 다가갔다.
“꼬마야.”
가시 가면이 유채아를 불렀다.
“네? 아저씨는 누구세요? 왜 가면을 쓰고 있어요?”
“그냥 지나가는 아저씨야. 이 가면은 멋지지 않니? 이 아저씨가 재밌는 걸 보여줄까?”
“재밌는 걸요? 네! 보여주세요!”
유채아가 방긋방긋 웃고 가시 가면은 낮은 웃음을 흘리며 유채아에게 손을 뻗었다.
턱.
나는 왼손으로 가시 가면의 손을 낚아챘다. 갑자기 나타난 나에게 가시 가면의 머리가 향한다. 가면 틈으로 보이는 놈의 눈동자가 커졌다.
“성유진…?!”
“날 알아? 뭐, 내가 헌터계에선 좀 유명하긴 하지.”
푸욱.
가시 가면의 옆구리에 나이프를 찔러 넣었다. 그가 상체를 반사적으로 앞으로 숙였다. 나는 놈의 가면을 잡아당겼다. 쉽게 벗겨지지 않았다. 아마도 특수한 효과를 가진 가면인 모양이다. 손가락에 힘을 주어 가면을 부러뜨렸다.
일그러진 남자 얼굴이 드러났다. 나는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어디서 본 얼굴인데?’
잘 기억 나지 않았다. 나는 남자 따위의 얼굴을 애써 기억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모르겠다. 일단 패자. 나중에 알게 되겠지.’
오른 주먹으로 놈의 머리를 후려치려는 순간이었다. 땅에서 가시덩굴이 치솟아 내 왼팔을 타고 올라온다. 놈의 손을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휘감겨 오는 가시덩굴에 왼팔을 잃을 수 있었으니까. 완전 회복이 있다곤 해도 쉽게 왼팔을 내주고 싶진 않았다.
내 손아귀에서 벗어난 놈은 나와 거리를 벌렸다.
“빌어먹을! 성유진! 네놈이 왜 여기에 있는 거냐?!”
“넌 왜 여기에 있는데?”
“말해줄 생각이 없다… 이건가. 협회가 알았다면 너 혼자 오지 않았겠지. 여기서 네놈을 죽이고 목격자들도 전부 죽여버리겠다.”
“…야. 우리 어디서 본 적 있냐?”
“내 정체를 캐내려는 수작인가? 크크. 유감스럽게도 너와 난 초면이다. 넌 내 정체를 모르고 여기서 죽을 거다.”
놈이 가시덩굴을 마치 채찍처럼 손에 쥐었다.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놈이 거짓말을 지껄이는 게 아니라면 지금의 나와 만난 적 없다. 근데 난 놈을 어디서 본 것 같다.
‘회귀 전에 본거군. 일본인이나 광원교는 아닐 테고…. 그 이전에 백지은과 같이 돌아다녔을 테니….’
백지은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어쩌면 가시 가면은 협회의 인물일지도 모른다고.
“아.”
탄식을 흘렸다. 떠올렸다.
“너 조진성이지?”
“…….”
조진성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졌다. 정답을 말한 모양이다.
“협회 특수 사건부 소속. B급 헌터인 조진성. 백지은을 따라다니다 몇 번 부딪혔지. 이제야 기억나네. 네가 가시 가면의 정체였나? 이야 놀랍네. 이렇게 가까운 곳에 범인이 있었을 줄이야. 협회는 네 능력을 모르지? 2차 각성이라도 했나.”
역시 회귀가 짱이다.
온갖 좆같은 사건이 일어나도 회귀 한 번이면 다 해결할 수 있다.
“설마… 날 알고 있을 줄이야. 넌 여기서 죽어야겠군.”
조진성이 가시덩굴을 휘두른다. 10M가 넘는 가시덩굴을 제법 잘 휘두른다. 하지만 내 눈엔 느리게 보였다. A급 각성 범죄자지만, 실질적인 실력은 B급에 가깝다.
발끝으로 채찍을 쳐냈다. 조진성이 이를 꽉 물었다.
“이것도 쳐내 봐라!!”
정면에서 7개. 오른쪽과 왼쪽에서 각각 3개의 가시덩굴이 땅에서 치솟아 내게 날아온다.
“촉수 같아서 기분 더럽네.”
내가 피하면 뒤에 유채아가 가시덩굴에 맞아 죽는다. 검을 소환해 쳐내기에도 약간 늦다. 그래서 그냥 맞아주기로 했다. 마나로 몸을 강화하고 가시덩굴들을 맞이했다.
가시덩굴은 내 몸을 두들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뱀처럼 몸을 휘감는다. 피부가 따끔거렸다. 마나로 강화했는데도 가시가 피부에 파고든다. 가시덩굴에도 마나가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 하하하하! 멍청하긴 쳐내지도, 피하지도 않는다고? 네 오만함이 널 죽인 것이다! 하하하하하하! 설마 그 성유진이 내 손에 죽을 줄이야! 오늘은 아주 운이 좋아!! 하하하하하!”
조진성이 웃으며 나를 향해 다가왔다. 가시 가면은 사람을 잔혹하게 죽이기로 유명했다. 나 또한 고문하다 죽일 생각이겠지.
“마나로 피부를 강화했나? 언제까지 버티나 한 번 볼까. 10분을 버티면 살려주지.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할 테니 믿어도 좋아.”
“그걸 누가 믿겠나. 멍청아.”
“넌 믿을 거야. 믿는 방법밖에 없거든. 자, 꼬마야. 잘 보고 있어라. 널 구하려고 한 멍청한 놈이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하하하하하!”
“으, 으으….”
유채아는 뒤로 넘어져 몸을 덜덜 떨었다. 두 눈에 눈물이 가득하다. 나는 다시 정면을 바라봤다. 조진성이 의기양양하게 내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5M. 4M. 3M. 충분한 거리다.
‘천심.’
[천심(天心)을 발동합니다. 1분 동안 지속됩니다.]
내 몸을 구속하던 가시덩굴들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풀어졌다. 나는 앞으로 뛰쳐나가며 주먹으로 놈의 얼굴을 후려쳤다. 놈의 입에서 피와 함께 옥수수가 흩날렸다. 이번엔 복부로 왼주먹을 올려쳤다. 조진성의 몸이 5M 정도 붕뜨더니 바닥에 떨어진다.
“크아아아악!”
놈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반격했다. 가시덩굴 한 줄기가 내 목을 노린다. 느렸다. 텁하고 가시덩굴을 붙잡았다.
파지지직.
뇌전이 튀며 가시덩굴을 불태웠다.
나는 발로 놈의 몸을 밟았다. 우선 다리를 밟았다. 종아리를 차고, 무릎을 짓밟아 부러뜨렸다.
“아아악! 아아아아아악!”
팔도 부러뜨렸다. 손가락은 하나, 하나 짓밟아주고 어깨는 함몰시켰다. 몸통은 밟지 않았다. 잘못하면 쉽게 죽는다. 대신에 뇌전을 이용했다. 전기 고문 시간이다.
파지지지직.
“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 그만!! 잘못했습니다! 그만해주십시오! 아아아아아악!”
“내가! 너 때문에! 새벽에 잠도 잘 못 자고! 시도 때도 없이 불려가서!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
백지은이 이 새끼의 흔적을 쫓겠답시고 나를 엄청 부려 먹었다. 이 새끼만 없었다면 백지은과 섹스를 7번은 더 했을 것이다.
파지지지직! 파지지직!
“그만! 그만둬! 성유진!! 그만하라고!! 이 새끼야!!”
저 멀리서 백지은이 소리치며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앙!”
유채아가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백지은과의 거리를 계산했다. 전기 고문을 2번 정도 더 할 수 있을것 같다. 서둘러 전류를 일으켰다.
“끄어어어어어어억!”
놈의 비명이 산골 마을에 쩌렁쩌렁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