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9화 〉 1059. 신위
일단 한국 광원교는 끝났다.
섹스 파티. 제물 의식. 불법 몬스터 포획, 세뇌. 까발려진 것만 해도 이 정도다. 협회와 경찰이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강지우는 생중계되는 와중에 광기를 내비치며 죽었다. 사람들도 광원교의 무서움을 알았겠지.’
죽는 것만으로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다.
[뱀파이어 형사] 세계와 다르게 현실은 나름 죽음과 가깝다. 게이트, 몬스터, 각성 범죄자 등. 인터넷에 들어가면 몬스터를 사냥하는 영상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사람이 죽는 영상은 찾기 힘들지만.
‘광원교에 대한 건 금방 꺼질 거야. 일이 빠르게 마무리됐으니까.’
내가 할 일은 장작을 더 넣어 불길을 더 키우는 것이다. 이번엔 한국이 아니라 세계가 뒤집힐 차례다.
‘전 세계에서 실종된 인간이 광원교의 제물로 바쳐진다. 인신 공양을 하는 사이비 종교. 전 세계가 뒤집히기 충분하지.’
증거 자료는 충분히 있었다.
나는 해킹을 이용해 해외 커뮤니티 사이트에 자료들을 뿌리기 시작했다. 광원교는 전 세계의 적이 될 것이다.
‘세계에 퍼져 있는 광원교는 각국의 헌터 협회와 경찰들이 처리할 거야. 하지만 중요한 건 광원교의 교주지. 교주놈을 죽여야 광원교를 완전히 없앴다고 할 수 있어.’
컴퓨터 앞에 앉은 나는 한국 커뮤니티를 확인했다. 광원교에 대한 이야기로 시끌시끌하다. 그 와중에 박수호의 이름이 보였다.
‘박수호는 공개적으로 나서서 협회에 신고했지. 포상금도 받고 명성까지 얻었군.’
포상금을 받고 협회장과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았다.
박수호는 앞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현재 인터넷에 나돌고 있는 광원교 섹스 파티 영상에 박수호가 나오니까. 박수호는 그 영상이 광원교가 악의를 가지고 합성한 영상이라고 필사적으로 해명해야 했다. 얼굴이 모자이크되어 있다곤 하나 요즘은 모자이크제거 프로그램 같은 것도 있으니까.
‘광원교도 그 영상을 봤다면… 박수호가 셀브레티나의 용사라는 걸 알아차렸겠지. 영상 속에는 움직이는 문신이 빼도 박도 못하게 나왔으니까.’
놈들이 못 알아차릴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니 놈들은 박수호에게 시선을 집중할 것이다. 당장 손을 쓰진 않겠지만, 언젠간 행동할 것이다.
‘다음은… 전 세계에 있는 광원교 지부 건물에 설치해둔 폭탄들을 터트려 볼까.’
쾅쾅쾅.
머릿속에서 폭발음이 울렸다.
즐거운 작업이 될 것이다.
•••
6월 9일.
일본 협회 홋카이도 지부장과 수월 길드의 간부가 일본에서 비공식으로 만나기로 했다. 어제저녁 홋카이도에 나타난 침식 던전 공략을 수월 길드에 의뢰하기 위해서다.
수월 길드의 간부를 기다리는 지부장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이곳에 오기 전에 일본의 S급 헌터이자 무녀인 아마츠카 코요리와 안도 타카오 총리를 만나고 왔다.
현재 일본에서 내로라하는 권력자들이다. 특히 코요리는 신탁을 받아 미래를 예언했다는 말이 은밀히 나돌고 있었다.
‘홋카이도 침식 던전이 출몰하리라는 것도 예언했다지? 일본 협회에서 직접 침식 던전을 처리하라고 하는 줄 알았지만…. 원래 계획대로 수월 길드에 넘기라고 했지. 대체 무슨 꿍꿍이지?’
지부장은 머리를 굴렸다. 홋카이도 헌터 협회 지부장이라는 자리는 결코 낮은 자리는 아니었으나, 총리와 무녀에 비해선 손색이 있었다.
‘일단 수월 길드와의 유착 관계를 탓하려는 건 아니다. 수월 길드를… 이용하려는 속셈인가? 총리는 수월 길드에 과할 정도의 보수를 주라고 했지. 혹시 수월 길드에 목줄을 채우려고?’
온갖 추측이 난무했으나, 답이 무엇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지부장은 복잡해지는 머릿속에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거나 자신이 살려면 총리가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문이 열리고 약속했던 인물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앞머리가 빈 50대 중년 남자였다. 겉보기에는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다. 지부장은 몸을 긴장시켰다. 그는 저 겉모습에 속지 않는다.
박주형.
수월 길드의 A급 헌터이자 간부다. 수월 길드에서 3년을 일했으며, 수월 길드 마스터의 친동생이다. 박주형에겐 수월 길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마다하라 지부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여전히 신수가 훤하시군요.”
“오랜만입니다. 오시는 길이 불편하지는 않으셨습니까?”
“하하. 좋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이제 제 고향처럼 느껴집니다.”
“박 씨. 이 기회에 일본에 귀화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군요.”
“한국 상황이 안 좋습니까?”
“그렇게 나쁜 상황은 아니긴 합니다만, 이번 정권이 저희 길드를 적대하더군요. 정말이지… 대한민국이 누구 때문에 멀쩡한 것도 모르는 건지. 나 원….”
박주형이 인상을 쓰며 한국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지부장은 그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쳐주며 테이블을 힐끗거렸다. 테이블 아래 도청기가 있었다. 지금의 대화 내용은 총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이 대화 내용이 퍼지면 나도 끝이지만… 어쩔 수 없어.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바로 끝장이었을 테니까. 위기를 기회로 바꾸자. 이참에 나도 총리 라인에 들어가는 거야. 겨우 홋카이도 협회 지부장 자리에 만족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쓸데없는 대화를 나누던 지부장은 곧 본론을 꺼냈다.
“홋카이도에 나타난 침식 던전. 수월 길드에서 맡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희에게 맡겨주신다니 영광입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지금 상황이 썩 좋은 편은 아닌지라….”
“의뢰비는 섭섭지 않게 준비했습니다.”
지부장이 준비한 서류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불법 자금에 관한 서류들이었다. 박주형은 진지하게 서류를 살펴봤다.
“…평소보다 2배 이상 많군요.”
“지금 협회 내에서 제 위치가 위태로운 편입니다. 적이 너무 많지요. 최대한 빠르게 침식 던전을 처리해주셨으면 합니다.”
“아…. 그러시군요.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 뭐냐…. 수월 길드에 있는 S급 헌터를 파견해주실 수는 없습니까?”
“죄송합니다. 현재 그녀는 저희도 컨트롤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스케줄이 다다음달까지 꽉 차 있어서 빼기도 뭐하지요. 하지만 저희 수월 길드에는 그녀 말고도 뛰어난 헌터들이 많습니다. 늦어도 일주일 내로 침식 던전을 공략해드리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하하. 당연히 믿습니다. 수월 길드의 능력이야 이미 입증되지 않았습니까? 자, 일 이야기는 이쯤하고… 이곳까지 오시느라 피로하셨지요. 박 씨를 위해 료칸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일본의 료칸은 세계 제일이지요. 무척 기대됩니다.”
박주형이 씨익 웃었다.
그들은 준비한 차를 타고 료칸으로 향했다.
고급 료칸에 들어선 박주형은 흠칫 놀랐다. 아마츠카 코요리. 일본의 S급 헌터인 그녀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 마다하라 지부장님. 저 여성분은…!”
“당황하지 마십시오. 이 료칸은 유명하신 분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저분도 료칸을 즐기러 오신 거겠죠. 마침 잘 된 일이니 인사나 나눠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제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 같군요. 소개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박주형의 두 눈이 빛났다.
이건 기회였다. 일본의 S급 헌터와 인맥을 만들 기회!
박주형은 지부장을 데리고 코요리에게 다가갔다. 코요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지부장과 박주형을 바라봤다.
“안녕하십니까, 코요리 님. 홋카이도 지부장인 마다하라 고다로입니다. 이쪽은 수월 길드의 박 씨입니다.”
“…예. 아마츠카 코요리입니다.”
“수월 길드의 박주형입니다. 그 유명한 바람의 무녀를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박주형이 고개를 숙였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저자세로 나갔다.
아마츠카 코요리는 그런 그를 향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수월 길드의 업적은 익히 들어왔습니다. 일본과 좋은 관계를 구축했으면 좋겠군요.”
“하하. 저희 수월 길드는 일본을 좋아합니다.”
그들이 악수했다.
부스럭.
박주형은 손바닥에 닿는 이질적인 감촉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종이 같은 무언가가 손바닥에 닿았다.
“스티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 네. 아무것도 아니군요.”
박주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츠카 코요리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니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코요리는 지부장에게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그와 둘이서 이야기를 하고 싶군요.”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직원들은 이미 자리를 비켰다. 여관 로비에 둘만 있게 되었다. 코요리는 침묵 속에서 손에든 스티커를 바라봤다. 풍신께서 주신 스티커다. 스티커에는 ‘아마츠카 코요리에게 절대복종한다.’라는 일본어가 적혀 있었다.
코요리는 음양술로 불을 일으켜 스티커를 태우고 박주형에게 말했다.
“오늘 있었던 일은 누구에게도 말씀하지 마십시오.”
“네. 그러겠습니다.”
“수월 길드에 관해 궁금한 게 많습니다.”
“물어만 봐주십시오. 뭐든 대답해드리겠습니다.”
코요리는 그의 태도를 보며 조용히 감탄했다.
역시 풍신님의 힘은 엄청났다.
•••
수월 길드의 홋카이도 침식 던전 공략이 정해졌다. 한하린이 참가하게 되었다.
회귀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일정이다. 본래 6월 11일 토요일 새벽에 떠나는 일정이 하루 일찍 당겨졌다.
‘회귀 전에는 따로 홋카이도 협회와 조정하는 시간이 있었겠지.’
이번에는 그 조정 시간이 순식간에 끝났다.
‘계획대로 절대 최면 스티커를 사용해 수월 길드 간부인 박주형을 노예로 만들었어. 내가 아니라 코요리에게 복종하지만… 코요리는 내게 복종하니 그게 그거지.’
박주형은 수월 길드를 무너뜨리기 위한 좋은 카드가 될 것이다.
한하린은 6월 10일 금요일에 급하게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나는 그녀와는 따로 홋카이도로 이동할 것이다. 그러기 위한 공간 이동 주문서는 준비되어 있다.
‘한하린은 아예 그곳으로 데려가기도 싫지만…. 이번엔 한하린이 있어야 해.’
수월 길드는 실패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실패는 전 세계 모든 이들이 알게 될 것이다. 그래야 수월 길드의 명성이 떨어질 테니까.
‘공략대가 도착하는 건 저녁. 그리고 지금은 오전이지.’
찌이이익.
공간 이동 주문서를 찢어 홋카이도로 이동했다.
숲속이었다.
회귀 전에는 이곳이 침식 던전의 일부였다.
‘지금 시점에선 아니지. 홋카이도 침식 던전의 초반은 동굴형 던전이었어.’
간단한 이야기였다. 동굴형 침식 던전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영역을 넓혀 근처 숲까지 침식한 것이다. 던전을 1년 정도 내버려 두면 홋카이도 전체를 침식할지도 모른다.
나는 동굴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찾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일본 협회 직원들이 침식 던전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으니까. 침식 던전이 나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입구가 한정적이다. 아무리 나라도 저기로 몰래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다.
‘이중 던전이 되는 건 6월 13일 일요일 오후. 공략대가 실종되는 시간이지. 한하린이 광원교 신전에 붙잡히는 시간이기도 하고.’
떠오르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빌어먹을 수월 길드가 제대로 대처만 잘했어도 한하린은 죽지 않았을 거야.’
나는 이를 뿌드득 갈며 숲을 뒤로했다. 내가 향한 곳은 광원교 소속의 고급 여관이다. 여관 가까이 다가가니 경찰들과 헌터들이 보였다.
‘일본도 광원교를 잡고 있군. 이 여관이 광원교 소속이란 걸 알아낸 건가? 생각보다 무능하지는 않군.’
나는 그들을 뒤로하고 몰래 움직였다. 내 목적은 여관이 아니라, 여관 뒤에 숨겨져 있는 비밀 통로다. 그곳을 통해 광원교 신전으로 들어갈 수 있다.
‘아주 개박살을 내주마.’
분노를 숨기며 통로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