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053화 (1,053/1,497)

〈 1053화 〉 1053. 신위

[30일 전으로 회귀했습니다.]

익숙한 침대 위에서 눈을 떴다.

나답지 않게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내 방이었다. 햇빛이 커튼을 투과하여 방안을 밝힌다. 습관적으로 침대 옆으로 손을 뻗어 스마트폰을 찾았다. 그리고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2021년 5월 30일 일요일 오후 1시 22분이었다.

일단 날짜만 봤을 때, 나는 성공적으로 30일 전으로 회귀했다.

‘5월 30일 일요일…. 이때 내가 뭘 했더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면 특별한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이때쯤엔 한참 [백환] 세계에 들어가 있었지.’

유희 세계 속 기억까지 합치면 실제로는 30일이 아니라 훨씬 많은 시간의 기억이 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정신을 집중해서 떠올리려고 노력해봤다. 어쩌면 미래에 영향을 끼치는 특별한 일이 오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안 떠올라. 30일. 일요일이지만 헌터에겐 공휴일은 크게 의미 없어. 특히 프리랜서처럼 지내는 내겐 더더욱.’

손가락은 꾸준히 움직여 유희 생활 어플을 확인했다.

[성유진

레벨: 79

근력: 100 체력: 100 민첩: 100 지능: 92 정력: 100 마나: 100]

[사용 가능 포인트: 110]

능력치는 회귀전과 똑같았다.

‘[백환] 유희 세계에서 돌아오고 능력치를 올린 게 회귀 전 6월 10일이었지.’

나는 [백환] 세계를 포함한 다른 유희 세계를 확인했다. 정지된 세계들은 회귀 전과 다를 바 없었다.

‘회귀는 설명대로 유희 생활 어플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군. 다행이다.’

회귀 티켓을 쓰고도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다. 특히, 다시 하는 건 어마어마 한 일이지만 너무 귀찮았다.

‘휴대폰에 있는 자료들은… 멀쩡하잖아.’

협회를 움직일 증거를 모은다는 이유로 찍은 사진과 동영상들이 스마트폰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난 유희 생활 어플을 제외한 스마트폰의 자료도 30일 전으로 돌아갈 줄 알고 인벤토리에 백업해 뒀는데. 괜한 짓이었군.’

생각해보면 유희 생활 어플은 스마트폰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 이 스마트폰은 다른 평범한 스마트폰보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도가 높고, 또 용량도 무제한이며 충전시키지 않아도 항상 배터리가 100%다.

‘회귀 전에 사용했던 핵폭탄은 없고…. 화련비도와 스톰브레이커는 인벤토리에 들어 있군.’

나는 중요한 물건들을 상자에 담아 인벤토리에 넣어 둔다. 꺼내기도 쉽고 도둑맞을 일도 없기 때문이다.

‘이때 인벤토리가 아니라 집에 놔뒀다면, 복사가 가능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혀를 차면서 아쉬움을 털어냈다. 30일 전으로 회귀한 것만으로 만족하자.

스마트폰을 조작해 통화 기록과 메시지 기록을 확인했다. 회귀 전 기록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에 이걸로 오늘 무슨 일을 했는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5월 30일 일요일 오후 2시 15분.

나: 하린 누나. 일어났어요?

한하린: 일어났어.

나: 어제 술 많이 마셨는데 괜찮아요?

한하린: 머리 아파. 너는?

나: 저도 똑같죠. 해장국 한 뚝배기 ㄱ?

약 한 시간 후에 한하린과 주고받을 메시지가 기록되어 있었다.

‘한하린….’

심장이 두근거렸다. 죽은 한하린의 핏기없는 얼굴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지금 한하린은 살아 있다. 회귀 전의 일은 나만 기억하고 있을 뿐인 일이다.

‘오늘 뭘 했는지 기억 났어. 29일 토요일은 한하린과 홍대에 가서 놀았지. 오후에 식물 카페에 가서 음료수 한 잔 먹고, 노래방에서 놀다가 레스토랑에서 저녁 먹은 뒤에 2차로 유명한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산책 좀 하다 모텔에 가서 술 마시다 섹스하고 새벽에 들어왔지.’

한 번 떠올리니 줄줄이 떠올랐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나는 술에 취하지 않는다. 내가 올린 능력치인 ‘정력’은 고환뿐만이 아니라 다른 신체에도 영향을 끼친다. 내 고환이 초월적이듯이, 다른 내장. 그러니까 간도 초월적인 간이라는 것이다.

‘절대 정신이 있어서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을 일도 없지.’

내겐 술은 콜라 같은 음료수였다.

집 밖으로 나갔다. 계단을 이용해 오피스텔 6층에서 4층으로 이동했다. 한하린의 집 현관문이 나를 반겼다. 나는 익숙하게 비밀번호를 눌렀다. 띠리리리. 현관문이 열렸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기 전 현관 앞의 신발들을 빤히 쳐다봤다.

다른 신발들은 다 정리되어 있는데 딱 하나, 한하린이 즐겨 신는 하얀 하이힐만은 방금 벗은 것처럼 흐트러져 있었다.

별거 아닌데도 마음이 놓였다. 한하린은 여기에 있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없었다. 자연스레 침실로 향했다. 침대 위에 널브러져 누워 있는 한하린이 보였다.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 얇은 이불 사이로 삐져나온 길쭉하고 하얀 팔과 다리. 침대 주위에는 옷이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다. 나와 함께 지낸 지도 거의 2년. 한하린도 나처럼 알몸으로 자는 것에 익숙해진 것이다.

“후우….”

눈살을 찌푸린 채 잠들어 있는 한하린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하린은 죽지 않았다. 내 눈앞에 살아 있었다. 긴장이 풀리자 졸음이 쏟아져 왔다.

‘어차피 시간은 많아. 그러니 지금은….’

나는 옷을 벗고 한하린의 침대에 올라갔다. 얇은 이불을 걷어 내자 그녀의 알몸이 보였다. 풍만한 가슴. 아래쪽의 무성한 보지털. 한하린이 확실했다. 그녀의 보지털 쪽은 꽤 엉망이었다. 말라비틀어진 정액이 있었고, 보지 구멍에선 아직 굳어지지 않은 정액이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내 정액이군. 모텔에서 섹스하고 바로 들어와 잤을 테니까.’

그녀의 목과 가슴에는 내가 남긴 키스 자국이 있었다.

나는 한하린을 끌어안았다. 그 풍만한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눈을 감았다. 익숙한 살 냄새… 라고 하기에는 술 냄새가 좀 심했다.

“으음.”

한하린이 신음을 흘렸다. 그녀의 팔과 다리가 버둥거렸다. 그럼에도 내가 계속해서 끌어안고 있자 포기했는지 내 몸을 마주 끌어안았다.

규치적으로 뛰는 그녀의 심장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이번엔 반드시 지킨다.’

나는 편안함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

내 어깨를 잡고 밀어내는 힘을 느낀 나는 두 눈을 떴다. 따뜻하고 푹신한 가슴 위로 한하린의 얼굴이 보였다. 눈을 뜬 그녀는 숙취에 눈살을 찌푸리며 내게 말했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안 떨어져?”

“하린아. 조금만 더. 조금만 이대로 더 있게 해줘.”

“하아.”

한하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포기의 한숨이었다. 그대로 30분 정도 끌어안고 있었다. 더 그러고 싶었는데 한하린이 진짜 화를 내려고 하길래 관뒀다.

침대에서 일어난 한하린은 몸에 옷을 걸치지도 않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부터 했다.

“너도 샤워해. 아까 보니 술 냄새나더라.”

“알겠어. 근데 하린 누나. 오늘 시간 넉넉하지?”

“내일 훈련 일정이 있어. 어제처럼 못 놀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

“그렇게 말하고서 또 시답잖은 이야기는 아니지?”

“진짜 중요한 이야기야.”

나는 진지하게 말했으나, 한하린은 미심쩍은 눈으로 날 바라봤다.

“이야기 할 시간은 충분히 있어. 샤워부터 해.”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한하린에게 유희 생활 어플에 대해 말할까?’

나는 한하린을 믿을 수 있었다. 그것과 별개로 한하린이 나를 믿는 것은 별개였다. 나는 한하린의 속마음을 모른다.

‘…그건 나중에 말하자.’

한하린은 믿지만, 다른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사고로 내 능력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질 가능성이 있다. 이 세상에는 독심술 능력을 각성한 사람도 존재하니까.

‘회귀 전 박수호 같은 일도 있을 수 있지. 세뇌에 걸려 내 정보를 발설한다거나. 유희 생활 어플에 관한 건 처음에 다짐했던 대로 숨기자. 적어도 내가 감당할 수 있게 될 때까지.’

30일 회귀 사실은 알릴 생각이다.

수월 길드의 진실을 알리려면 그편이 편했다. 그저 내가 수월 길드는 좋지 않은 곳이니 탈퇴하라고 해도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수월 길드는 이미 썩었어. 대한민국 2위. 허울은 좋지만, 그 내부는 썩어 문드러지고 있지. 그딴 길드에 한아영과 한하린을 둘 수 없지.’

애초에 수월 길드가 일본 협회의 의뢰를 받는 것부터가 이상했다. 어떤 유착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회귀 전의 일이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제법 길었던 샤워를 끝마치고 나온 나는 거실에서 한하린과 마주 앉았다. 한하린은 짧은 나시티와 핫팬츠의 편안한 복장이다.

“마셔.”

그녀가 컵을 건넸다. 꿀물이었다. 나는 달달한 꿀물을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하린아. 놀라지 말고 들어. 난 사실 30일 전으로 회귀했어.”

한하린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예상했던 대로 불신이 가득한 눈동자였다.

“취했니? 아니면 또 장난질이야?”

“난 진지해. 진짜 30일 전으로 회귀했다고!”

“하아. 그래. 회귀자 성유진 씨. 상승하는 주식 정보라도 공유해줄래?”

“안 믿나 본데. 나 진짜 회귀했다니까? 증거도 있어. 그리고. 하린이 너는… 미래에 죽어.”

“……”

한하린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아니, 달라진 건 내 분위기였다. 한하린의 눈동자에 비친 내 얼굴은 한껏 일그러져 있었다.

“…네가 회귀했다는 증거부터 보여봐.”

나는 TV에 USB를 꽂았다. 광원교를 나락에 떨어뜨리기 위해 준비한 자료들. 이것들이라면 충분히 증거가 될 것이다.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한하린의 시체가 찍힌 사진이나 동영상은 없지만…. 미래의 영상이면 증거로서 충분하지.’

나는 증거들을 하나, 하나 보여주며 설명했다. 사진 중에는 미래의 기사를 스크랩한 것도 있었다. 회귀하기 전, 광신이 지구에 강림하기 전에 있었던 여유 시간에 기사를 캡처하며 자료를 모았다.

“6월 8일. 일본 홋카이도에 침식 던전이 발생하고 수월 길드가 일본 협회의 의뢰를 받아 공략대를 보내게 돼. 거기에 네가 포함되고.”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한하린의 죽음과 관련된 일을 설명했다. 광원교. 그리고 광신 브라마센 까지.

한하린의 표정은 다양했다. 처음에는 의심 그 자체였다가, 중간부터는 긴가민가했고. 광신이 찍힌 동영상을 보고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으윽….”

“하린아? 왜 그래?!”

“저 영상 속의 괴물을 보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다급히 영상을 껐다.

원인은 짐작 가는 게 있었다. 악신이자, 광기의 신인 브라마센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일본 헌터들도 브라마센을 본 것만으로도 미쳐버렸을 정도니까. A급 헌터도 브라마센의 시선에는 버티지 못하고 미쳐버렸고.

‘그나마 영상이라 한하린이 완전히 미쳐버리지 않은 거야.’

완전히 미쳐버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미쳐버렸다면 엘릭서 하나를 사용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아. 하아.”

“누나. 진짜 괜찮아?!”

“…좀 조용히 해. 숙취 때문에 머릿속이 엉망이 될 것 같으니까.”

“그거 숙취 때문이 아니라 브라마센의 광기 때문에 그래. 브라마센을 보자마자 머리가 아파 오기 시작했잖아.”

“…모습만 봤을 뿐인데 미쳐버리게 하는 괴물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괴물이 아니라 신이야. 이유는 모르겠지만, 놈은 호시탐탐 지구를 노리고 있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준비했던 거야. 아마 광원교 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준비했겠지.”

브라마센은 치밀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명색이 악신인데 광원교 하나만 믿고 일을 진행했을 리 없다. 분명 다른 수단이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방심하지 않는다. 내 여자는 내가 반드시 지킨다.’

시간이 지나자 어느 정도 진정한 한하린이 내게 질문했다.

“넌 어떻게 회귀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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