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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051화 (1,051/1,497)

〈 1051화 〉 1051. 신위

교주는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광신의 그림을 향해 기도하고 있었다.

그 그림은 광원교 신도들이 보는 그림과 달랐다. 촉수가 달린 괴물이 그려진 그림이었다. 광원교의 진짜 광신(狂神)의 모습이다.

나는 교주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붉은 뇌전을 품은 푸른색 검기가 교주를 향해 날아간다.

우우웅.

공기가 떨리는 듯하더니 교주 주위로 반투명한 배리어가 나타나 검기를 막아냈다.

교주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나를 향해 돌아본다. 당황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귀인께서 많이 분노하신 듯하군요. 저희의 대접이 그렇게 미흡했습니까? 혹여 귀인께 잘못을 저지른 신도가 있다면 벌을 내리셔도 됩니다.”

교주가 느긋하게 말했다.

칼끝을 교주에게 겨누었다. 파지지직. 붉은 뇌전이 허공을 꿰뚫으며 교주에게 날아갔다. 이번 공격 역시도 배리어에 막힌다. 다만, 배리어가 흔들리는 걸 확인했다. 저 배리어도 무적인 건 아니다.

“귀인이시여. 무엇에 그리 화가 나셨는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중요한 때입니다. 우리는 내일 드디어 광신님을 알현하게 될 것입니다.”

“교주. 넌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게 불쾌하셨습니까? 광신께서 내리신 신탁이셨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언제부터였지?”

“대충 3개월 전에 신탁이 내려왔었지요. 전에도 말했듯이 지금에 와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과거의 일입니다. 저희는 그저 주시만 했을 뿐이지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주시했으니 내 인간관계도 알고 있겠군.”

“물론 알고 있습니다. 허나, 알고만 있을 뿐이지 무언가를 한 적은 없습니다.”

“한하린에 대해서도 알고 있나?”

“최근 S급 헌터가 된 한아영의 여동생이 아닙니까. 그리고 귀인과 친한 여성분이시죠.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제이신지? 아, 한하린이라는 분을 광원교에 데려오고 싶습니까? 귀인께서 선택하신 분이니 저는 물론 환영합니다. 인도자의 자리까지는 내줄 수 있을 것 같군요.”

“한하린이 죽었다.”

“오, 이런…. 상심이 크시겠군요. 귀인께서 원하신다면 저희 광원교에서 진혼제를 실시하겠습니다.”

“한하린은 네놈들 손에 죽었다.”

그제야 교주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예? 그거 뜻밖이군요. 귀인께서 화가 나신 것도 이해합니다. 관련 있는 자들은 모두 찾아내 벌을 내릴 테니 고정하시지요.”

“제물로 바쳐져 죽었다.”

“아…. 그렇군요. 지하 시체 저장고에 들어가셨나 보군요. 냄새가 지독한 곳이긴 하죠.”

“역겹군. 네가 저지른 짓이지 않나.”

“제가 교주이긴 하나 모든 것을 주관하지는 않습니다. 신전에서 의식을 진행하고 관리하는 건 첫 번째 인도자인 무라트이고, 제물을 관리하는 자는 따로 있습니다.”

“…제물을 관리한다고? 그냥 막 죽이는 게 아니었나?”

“광신께 바치는 제물입니다. 그냥 막 죽일 수는 없지요. 더럽고 질 낮은 제물을 바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광신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진노하지 않으시면 다행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신위 의식은 특별합니다. 광신님에 대한 신앙이 가득한 신도들이 제물이니까요. 신도들의 희생에 광신께서도 감동하실 겁니다.”

“무라트인가 뭔가 하는 인도자는 죽였다. 제물 관리자도 죽이고, 너도 죽일 거다.”

“제 생각보다 더 많이 분노하신 모양이군요. 이해합니다. 하지만 분노를 가라앉히십시오. 한하린의 죽음이 문제라면, 한하린을 되살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칼을 쥐고 교주에게 다가가던 내가 멈칫했다.

“되살린다고?”

“예.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으나…. 광신께서 힘을 써주신다면 가능합니다. 귀인께서 내일 직접 광신님을 만나 요구해보십시오. 고작 인간 하나의 목숨. 광신께선 귀인의 소원을 들어주실 겁니다.”

“됐다. 내가 알아서 하지. 너는 여기서 죽어라.”

검기에 감싸인 칼을 휘둘렀다. 배리어가 저항하는 듯하더니 갈라졌다. 교주의 어깨가 베인다.

‘찰나.’

교주가 무언가를 하기 전에 다시 칼을 휘둘러 교주의 목을 베었다. 교주의 머리가 아래로 떨어지다 말고 우뚝 멈춘다.

“귀인이시여. 화가 풀리셨습니까? 저에 대한 공격은 여기까지만 허락하겠습니다. 이번 일에는 제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러니 여기서 멈추십시오.”

교주의 머리통이 허공에 떠 있었다. 목 절단면에서는 피가 떨어지는데도 살아 있다. 기괴했다. 나는 칼로 교주의 미간을 찔렀다. 칼은 교주의 머리통을 꼬치에 꿰는 것처럼 관통했다.

“…귀인. 저는 분명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 선택을 한 건 귀인의 뜻입니다.”

교주의 머리와 몸에서 촉수가 푹 하고 나타났다. 꿈틀거리는 수십 개의 촉수를 보며 나는 눈을 가라앉혔다. 교주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게 아니면 원래 인간이었으나, 인간이 아니게 되었거나.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교주는 내가 죽인다.’

파지지지지지직!

붉은 뇌전이 일어나며 교주의 머리를 감전 시킨다. 교주의 머리에서 삐져나온 촉수들이 쭈뼛거리더니 메케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고기 타는 냄새가 났다.

“끄어어어어어어!”

교주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나는 계속해서 전류를 흘려보냈다. 교주가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콰앙!

갑자기 충격파가 발생해 몸이 뒤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나는 등에 느껴지는 고통에 이를 악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교주는 그 잠깐 사이에 몸을 회복한 상태였다.

“이 불멸의 증거가 보이십니까? 광신께서 제게 허락해주신 힘입니다. 아아…. 저는 광신님이 내린 은혜로 영원히 살아갈 것입니다.”

“죽여도 죽지 않는다라… 화풀이로 딱 좋네.”

억지로 마나를 쥐어 짜냈다. 솔직히 말해서 내 몸은 이미 한계였다. 지하 의식실에서 한하린의 시체를 보고 분노한 나머지 잠깐 힘을 컨트롤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었다. 그렇다고 후회는 하지 않는다. 이미 상관없는 일이다.

‘이대로 마나 역류로 죽으면… 완전 회복을 쓰면 돼.’

콰르르르릉!

억지로 쥐어 짜낸 마나는 천둥소리와 함께 내 몸속을 질주한다. 뜨겁다. 아니, 찌릿하다. 몸속에서 번개 하나가 날뛰는 기분이었다.

‘스톰브레이커!!’

스톰브레이커는 화련비도와 융합하여 내 몸을 감쌌다. 허공에 검이 나타났다. 내 몸 주위로는 붉은 뇌전이 꿈틀거렸다.

‘가속, 찰나!’

교주에게 달려들었다. 교주는 반응하지 않았다. 아니, 반응하지 못한 것이 맞다. 교주는 헌터가 아니었다. 힘이 있긴 하나 그건 광신에게 받은 힘이었다.

검을 휘두른다. 1초에 3번 이상 교주의 몸을 베어냈다. 교주의 몸은 베어내는 족족 재생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기세가 붙은 검격은 더 빨라졌다. 그리고 동시에 근육이 터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진다. 억지로 짜낸 마나도 점점 바닥난다. 피를 토하면서도 검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멈춘 것은 검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였다. 검을 휘두를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내장은 이미 타버려서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 몇 번이나 죽음을 경험해봤기에 알 수 있다. 나는 곧 죽는다.

“화는 좀 풀리셨습니까?”

교주가 아무렇지 않게 회복했다. 입가에 옅은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나를 비웃는 것 같아서 또 화가 치솟는다. 문제는 바닥에 쓰러진 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다.

“그 짧은 시간에 75번이나 죽었습니다. 허나 귀인은 절 죽이지 못했습니다. 이게 바로 광신님의 위대한 힘입니다.”

“광신의 똥구멍을 빨아 얻은 힘이라 좋으시겠군.”

“저는 광신님의 똥구멍이라면 기꺼이 빨 수 있습니다!”

“…….”

교주도 결국 광신도라는 것을 잠깐 잊고 있었다.

“너도, 광원교도, 광신도. 전부 내가 죽여버릴 거다.”

“광신님을 죽인다니… 무척 불경한 말이군요. 귀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딴 말을 입에 올렸다면 바로 사지를 찢어 죽여버렸을 겁니다. 허나, 귀인이시니 이해하겠습니다. 곧 광신님이 강림하십니다. 귀인의 처분은 제가 아니라 광신께서 내리실 일입니다.”

허공에서 촉수 5개가 나타났다.

촉수들은 갑옷을 입은 내 몸을 휘감으며 꽉 붙잡았다.

“그러니, 그때까지 가만히 계셔주십시오. 귀인.”

“…이미 의식실을 망가뜨렸다. 광신이 강림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다.”

“네? 아. 그렇군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부족한 것들은 제물로 메꾸면 됩니다. 신도들은 광신님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겁니다. 무엇보다 박수호가 있지 않습니까. 박수호. 셀브레티나의 힘을 받은 그는 제물로서의 가치가 무척 뛰어납니다.”

교주가 느긋한 얼굴로 말했다. 초조함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었다.

콰아앙! 쾅! 쾅!

교주실 밖에서 폭발음이 들린다. 사실 아까부터 들렸던 소리다. 아마 박수호가 날뛰고 있는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박수호를 잡아야겠군요. 이곳에 얌전히 계셔 주십시오.”

교주가 밖으로 나갔다.

“…….”

나는 허공을 쳐다봤다.

유희 생활 어플의 알림창이 보였다.

내 능력인 유희 생활 어플은 스마트폰과 연동되어 있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스마트폰으로 유희 생활 어플을 조작하는 게 편리하다. 하지만 그 능력의 근간은 바로 나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지 않더라도 몇몇 조작이 가능하다.

[30일 회귀 티켓

30일 전으로 회귀합니다.

가격: 1,000,000 포인트

※주의

유희 생활 어플은 회귀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티켓을 사용한 세계만 회귀합니다.]

[30일 회귀 티켓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교주를 죽일 방법이 없다는 걸 안 나는 완전 회복 대신 바로 30일 회귀권을 사용하려 했다. 교주가 밖에서 날뛰는 박수호를 잡으러 가지 않았다면 분명 사용했을 것이다.

‘회귀하기로 정한 이상 지금 바로 쓰는 건 아까워.’

[완전 회복을 사용합니다.]

몸이 회복되었다. 마나도 차오른다.

나는 붉은 뇌전으로 내 몸을 구속하는 촉수들을 태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귀한다. 한하린을 구할 방법은 그것뿐이야.’

회귀는 단 한 번의 기회다. 보다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선 정보가 필요하다.

‘시간적 여유는 있어.’

지금은 29일.

한하린이 수월 길드의 공략대와 함께 일본으로 떠나는 날은 11일이다. 30일 전으로 돌아가도 10일 이상의 시간이 남는다. 한하린을 구할 수 있다. 아니, 지킬 수 있다.

‘정보! 교주 새끼를 확실히 죽일 수 있는 정보가 필요해.’

그 외에도 광원교에 대한 정보가 더 필요하다.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크니까.

나는 교주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신전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엉망이었다. 여기저기서 불기둥이 치솟고 폭발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박수호가 생각보다 더 잘 날뛰고 있다는 걸 알았다. 덕분에 좀 더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교주에 대해 알고 있을 만한 놈은… 인도자 놈들이군.’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인도자를 찾기 힘들었는데 유일하게 강지우를 발견했다. 강지우는 이 난리 통에서도 차분하게 기도를 하고 있었다.

“강지우.”

“유진 씨군요. 갑옷을 입으셨군요. 무슨 일인가요?”

“닥치고 내 질문에 대답해라. 넌 교주가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나?”

“뭔가 오해하고 계시군요. 교주님은 인간이십니다.”

“모르는 건가. 교주의 그 꼴을 보고도 인간이라 할 수 있을지 궁금하군.”

“아. 교주님의 그 모습 말인가요? 광신님의 축복을 받은 모습이지요. 저도 광신님의 축복을 받아 언젠가 그 모습이 될 거랍니다.”

“……알고 있었다는 거군. 그럼 어떻게 해야 교주를 죽일 수 있는지도 알고 있나?”

“지금의 교주님은 죽지 않아요. 광신님이 교주님께 내리신 축복은 불사니까요.”

“강지우. 전 세계에 있는 모든 광원교 지부의 위치를 말해라.”

“한국은 부산이고, 일본은 홋카이도, 미국은 플로리다 주….”

강지우는 망설이지 않고 정보를 술술 뱉어냈다. 너무 쉽게 말해서 도리어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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