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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050화 (1,050/1,497)

〈 1050화 〉 1050. 신위

“제가 귀인을 너무 오래 붙잡아둔 것 같군요. 신전 안으로 들어가시죠. 귀인을 위한 방을 이미 준비해두었습니다.”

“여자가 필요한데… 혹시 있습니까?”

“미녀 신도들을 모두 모아두었습니다. 방에서 귀인만을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그것도 신탁입니까?”

“강지우 인도자의 보고를 들었지요. 그리고 저희는 이미 예전부터 귀인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광신님의 신탁이었지요. 물론 그때는 귀인께선 귀인이 아니셨습니다만…. 지금에 와서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지요.”

나를 예전부터 주시하고 있었다는 말에는 좀 식겁했다.

‘이상함은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아주 멀리서 나를 감시하고 있었나?’

그게 아니면 내 뒷조사를 하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불쾌했다. 그러나 교주에게 직접 따지기에는 힘이 없었다. 따져도 얻을 수 있는 건 사과 말곤 없을 테고.

교주는 박수호와 일반 신도들에게 입을 열었다.

“여러분은 내일 제물이 되실 겁니다. 광신님을 위한, 세계를 위한 제물이지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십시오. 광신님을 향한 최고의 봉사가 될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교주님. 광신님을 위해 기꺼이 저희를 희생할게요.”

신도 중 한 명이 대표로 말했다. 다른 이들도 동의의 뜻으로 머리를 깊게 조아렸다. 그중에는 박수호도 껴 있었다. 교주는 흡족하게 웃었다.

나는 박수호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네 동생인 가인이는 내가 잘 챙길게. 잘 가라, 박수호. 그동안 나름 즐거웠다.’

문득, 셀브레티나 라는 여신이 병신처럼 느껴졌다. 왜 박수호를 용사로 삼은 거지?

“좋습니다. 여러분은 목욕재계하여 몸을 청결히 하고, 내일 의식이 올 때까지 기도하여 정신 또한 깨끗하게 만드십시오.”

“네. 교주님.”

“자. 저기로 가시면 됩니다.”

신도들이 일어나 교주가 가리키는 곳으로 갔다.

나는 눈을 살짝 치떴다. 박수호가 내 옆을 지나가면서 내 손을 살짝 친 것이다. 뭐가 원인인지는 모르겠으나, 박수호의 세뇌가 풀린 것 같았다. 어쩌면 이 신전 공간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용사인가 뭔가라고 하니까. 특별한 힘이 있겠지.’

박수호에게 뭔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나중에 한 번 만나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후, 교주가 직접 내 방을 안내했다.

5성 호텔 부럽지 않게 꾸며진 방이었다. 그 넓은 방에는 미녀들이 섹시한 란제리를 입고 있었다. 동양인, 서양인 할 것 없이 모두 뛰어난 미색을 갖췄다.

“어서 오세요, 귀인님.”

“귀인님께 봉사하겠습니다.”

“어떠한 플레이도 받아들일 수 있어요.”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바지를 벗었다.

•••

만족스러운 섹스 시간을 보낸 나는 샤워를 하고 방 밖으로 나왔다. 박수호를 만날 생각이었다. 몰래 움직이는 짓거리는 안 한다. 나는 귀인. 교주에게도 배려받는 게 나다. 내 눈치를 봐야 하는 건 신도들이었다.

“이봐.”

지나가는 신도 하나를 불렀다. 신도는 나를 보자마자 머리를 숙였다. 갈색 머리의 외국인이었다.

“네. 귀인이시여.”

영어로 대답했다. 나는 유희 생활 어플 덕분에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사용할 수 있었다.

“박수호가 있는 방이 어디지?”

“박수호…?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내일 신위 의식에 바쳐질 제물들이 있는 곳 말이야.”

“아! 제물들의 기도실 말입니까?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있습니다만…. 교주님의 명령으로 그곳에 함부로 들어가면 제물들이 부정 타기 때문에… 출입을 금하셨습니다.”

“난 괜찮아. 아니면 뭐냐. 내가 부정하냐? 어?”

“아, 아닙니다! 귀인이시라면 괜찮으실 겁니다! 네! 그렇고 말고요!”

그의 반응을 보고 어쩌면 내 지위가 교주보다 더 높은 걸지도 모르겠다.

‘브라마센이 날 사도로 삼으려고 한다는 것과 관련 있는 건가?’

나는 앞장서서 걸어가는 신도를 바라봤다. 입고 있는 옷이나, 분위기로 보아하니 제법 지위가 있는 것 같은 신도다.

“야. 사도가 뭐야?”

“사도는 광신님의 힘을 나눠 받은 존재…. 광신님의 화신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교주보다 더 높다는 거군.”

“지위만을 따지면…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난 사도가 될 예정이고.”

“아마도 그러할 것입니다.”

사도(진)이다.

그러니 교주도 내게 친절한 것이다. 나는 씨익 웃었다. 나쁘지 않았다.

“이곳입니다.”

하얀 문 앞에 섰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수고했어. 이제 가봐.”

“예.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제 이름은….”

“네 이름은 됐어. 얼굴 기억했으니 그냥 가라고.”

“예. 귀인이시여.”

사회생활 좀 할 줄 아는 신도가 물러났다. 나는 그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대리석 바닥이 가득한 곳이었다. 한쪽에는 깨끗한 물이 흐르고, 다른 한쪽은 대리석 바닥에 알몸의 신도들이 무릎 꿇고 정면을 보며 기도에 집중하고 있었다.

신도들은 내가 왔음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만큼 기도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면 벽에는 불쾌한 무늬가 잔뜩 그려져 있었다.

‘아마 저것도 세뇌 효과가 있겠지. 박수호는 또 세뇌에 걸렸을지도 모르겠어.’

그때는 뒤도 안 보고 돌아가서 섹스나 해야지.

신도들 사이에 앉아 있는 박수호를 찾았다. 박수호도 알몸이었고, 시선은 정면에 향해 있었다. 나는 그가 세뇌에 걸리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성기가 발기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근처에 있는 미녀 신도들의 알몸을 보고 발기한 것이리라. 나는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쿠퍼액이 흐른 흔적따윈 머릿속에서 바로 지워버린다.

“야. 박수호. 제정신이지?”

박수호가 이쪽을 쳐다봤다.

“형!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내가 여기 쉽게 온 줄 알아?”

“전 형이 절 버린 줄 알았어요.”

“날 그렇게 모르냐. 난 그런 놈 아니야. 일단 일어서.”

박수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나는 있는 그대로 눈살을 찌푸렸다.

“발기하고 뭐하냐.”

“계속 무릎 꿇고 앉아 있어서 다리가 말을 안 들어요. 그리고 발기는… 어쩔 수 없잖아요. 주위를 둘러보세요.”

여자와 남자들이 있었다. 특히 여자의 경우 미녀가 대다수였다. 그 숫자만 100명이 넘는다. 그중에는 바닥에 무릎 꿇고 상체까지 숙이며 기도 하는 자들이 있었다. 엉덩이가 벌어져 보지가 딱 보이는 자세였다.

“후우. 형이 비교적 멀쩡해서 다행이에요. 역시 형은 정신력이 뛰어나네요.”

“비교적 멀쩡해? 난 완전 멀쩡해.”

“에이. 여기까지 와서 허세는. 진짜 멀쩡했다면 그런 짓을 시켰을 리가 없잖아요.”

광원교에서 내가 했던 짓거리들이 스쳐 지나간다. 나는 이 일에 대해서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래서. 뭐 방법이라도 있냐? 밖으로 나가서 협회에 도움을 요청해?”

“아니요. 그래선 너무 늦어요. 셀브레티나 여신님의 말로는 당장 신위 의식을 막지 않으면 위험하대요.”

“……셀브레티나와 대화라도 했냐?”

“네. 이 공간 자체가 지구보다는 셀브리어에 가깝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여기가 신전인지라 셀브레티나 여신님도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할 수 있어요.”

“그래? 그럼 이제 뭘 할 건데?”

“우선 신위 의식을 막아야 해요. 지금 바로 완전히 막는 건 불가능할 테니… 의식실을 박살 내고 시간을 벌어야죠. 그 후에 밖으로 빠져나가서 협회에 이 일을 알려 도움을 받는 거예요.”

“협회를 쉽게 움직이게 하려면… 증거가 필요하겠네.”

“증거는 주위에 많아요. 당장 이 광경만 봐도…. 그리고 형한테는 스마트폰이 있죠?”

“넌?”

“기도실에 들어오자마자 옷이랑 전부 뺏겼어요.”

“그래. 일단 밖으로 나가자. 바깥에 있는 신도의 옷을 빼앗아 입든지 하면 되니까.”

나는 박수호와 함께 기도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박수호는 복도를 지나가는 신도의 옷을 빼앗아 입었다. 내가 명령하니 신도는 바로 옷을 벗어주었다.

“형은 진짜 절대 권력을 가지고 계시네요.”

“내가 원해서 가진 게 아니야.”

근데 원하는 권력이지.

나는 뒷말을 삼키고 박수호와 함께 신전 내부를 이리저리 둘러봤다. 협회를 움직일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였다.

“가볼 곳은 다 가봤고. 이제 의식실로 가볼까.”

의식실은 신전 지하에 있었다.

신도에게 물어서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참고로 신전에서 의식은 매일 24시간 동안 진행된다고 한다. 특별한 신위 의식과는 달랐다. 이 의식은 광원교가 예전부터 매일 했던 의식이다.

“형. 이 앞은… 진짜 최악일 거예요. 마음의 준비는 됐어요?”

“그건 네가 해야 할 것 같은데.”

박수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우리는 이 앞에 있는 의식이 어떠한 것인지 알고 있다.

의식.

광원교 수련회에서 했던 의식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신전에서는 인신 공양 의식을 진행한다. 2시간마다 사람을 죽여 제물로 바친다. 하루에 12명이 제물로 죽는 것이다.

‘광원교가 이 신전을 얻은 건 약 2년 전부터라고 하니까…. 최소 8,000명 이상 제물로 죽었겠지.’

제물은 신도들이 아니었다. 지구 곳곳에서 납치한 인간들이었다. 신도를 제물로 바치는 건 신위 의식이 유일하다.

박수호와 나는 의식실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웠다. 그리고 공기가 뜨거웠다.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강당처럼 넓은 공간이었고, 그 중심에는 계단 위에 놓인 제단이 있었다. 제단 위에 남자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목이 잘린 시체였다. 핏물이 계단을 타고 아래로 흐른다.

“귀인!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한 남자가 헐레벌떡 내 앞으로 뛰어왔다. 교주 정도는 아니지만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다.

“인도자인가?”

“첫 번째 인도자인 무라트라고 합니다!”

“그렇군. 죽어라.”

파지직.

뇌전을 담은 주먹을 휘둘렀다. 무라트의 머리가 그대로 박살 나며 사방으로 튀었다.

“유진 형!”

“뭐, 불만있어?”

“아니요! 혹시 무기 필요하시나 해서요!”

박수호는 근처 신도에게 빼앗은 검으로 광신도들을 베고 있었다.

“난 됐어.”

검을 찬 신도들이 박수호에게 달려든다. 못해도 C급 헌터들 수준인데, 박수호는 손쉽게 그들을 제압했다. 박수호 자체의 힘이 아니다. 그러기엔 뭔가 엉성하니까. 어떠한 힘이 박수호를 돕고 있다.

“귀인이시여! 왜 이러 십니까!”

“광신께서 너희를 죽이라 하셨다.”

“아, 그렇군요. 그럼 죽여주십시오!”

“…….”

무기를 버리고 양팔을 벌리며 죽음을 재촉한다. 입가에 환한 미소까지 짓는다. 그 꼴이 짜증 나서 최대한 고통을 주기 위해 뇌전으로 감전시켜 죽었다. 허나 신도의 황홀한 미소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아. 광신님의 곁으로 갑니다…!”

도리어 내 쪽이 더 기분 나빠졌다. 나와 박수호는 묵묵히 신도들을 모조리 죽였다. 그들은 내 명령에 저항도 포기했다. 살려두기에는 교주가 거슬렸다. 나보다 교주의 명령을 우선시할 수 있으니까.

“형. 이놈들은 죽여 마땅한 놈들이에요. 어떻게 인신 공양 같은 걸 할 수 있겠어요.”

“알았으니까. 진정해. 나보다 네가 더 문제야. 지금.”

“아. 그게…. 젠장.”

박수호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박수호는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박살 내기 시작했다. 의식에 필요한 물건들이 하나, 하나 부서진다. 이걸로 신위 의식까지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의식실 뒤편에 있는 문을 발견했다. 피가 잔뜩 묻어있는 문이었다.

문을 열었다. 아래로 이어진 계단이 보였다.

‘여기도 지하인데 더 낮은 지하도 있다고? …혹시 진짜 의식실 같은 곳인가?’

비밀 통로라고 하기엔 문이 너무 대놓고 있었다.

지하로 내려간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체가 널려 있었다. 일만구가 넘는 시체가 언덕이 되어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쌓여있었다. 고인 핏물이 얼마나 많은지 내 종아리까지 올라왔다.

목이 잘린 시체가 가장 많았고, 배가 갈라지거나, 심장이 척출된 시체가 그다음이었다. 토막 난 시체는 보기 드물었다.

‘알몸인 걸 보니 제물로 바쳐진 인간들이군. 썩지 않는 걸 보면 뭔가 조치를 해놨군. 시체를 나중에 또 쓸 생각인가?’

철퍽철퍽.

앞으로 걸어갔다. 여긴 시체 저장고. 더 볼 것도 없었다. 그러나 무언가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그걸 확인해야 한다.

“헉! 미, 미친…! 형! 어디 가요?!”

뒤에서 박수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시했다. 지금 박수호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심장이 뛴다. 불길함이었다.

뚝.

내 다리가 멈췄다.

한하린이었다.

배가 갈라져 내장이 전부 엿보이는 상태의 한하린이 있었다.

“…….”

분노가 차오르다 못해 머릿속이 순간적으로 하얘졌다.

파지지지지직.

시퍼런 뇌전이 내 다리를 타고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핏물이 증발하고 시체가 불탄다. 불길은 시체 전부로 번졌다.

파지지지지지직.

뇌전은 계속해서 타올랐다.

“형! 형! 정신 차려요! 유진 형!!!”

“난 제정신이야.”

절대 정신은 내가 분노로 미치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 머리끝까지 분노와 증오가 차올라도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다.

“…박수호. 오늘이 며칠이지?”

“오늘이요? 28일이잖아요. 아니지… 자정이 지났으니 29일인가. 형. 그보다 일단 여기 있으면 저희도 위험해요. 빨리 나가요.”

“…….”

나는 한하린의 시체가 불타 사라지는 것을 끝까지 확인한 뒤에야 바깥으로 나갔다.

목적지는 교주가 있는 곳이다.

“형! 어디 가요? 형?! 밖으로 빠져나가야 해요! 증거는 전부 찾았고, 의식도 늦췄으니 밖으로 빠져나가서 협회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고요!”

“너 먼저 가라. 난 교주 새끼 죽이고 갈 테니까.”

“그 교주는 다른 신도들처럼 약하지 않아요! 광신의 힘을 받았을 게 분명하다고요! 형, 제발 냉정히 생각해요!”

“난 냉정해. 냉정하니까 넌 네 꼴리는 대로 해. 난 내 꼴리는 대로 할 테니까. 어차피 지금부터는 전부 의미 없어. 지금부터는… 그냥 내 화풀이야.”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아, 진짜! 형 제발!”

박수호가 내 앞을 막아서다가 흠칫 놀랐다. 그는 나를 막지 못했다. 박수호는 감이 좋았다. 계속 막아섰다면, 내가 박수호를 죽여버렸을 테니까.

“아, 진짜…! 알았어요. 형은 형 마음대로 하세요. 전 제 마음대로 할 테니까.”

박수호가 떠났다.

나는 교주실 앞에서 화련비도를 소환해 손에 쥐고 문을 발로 차 열었다.

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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